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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작년 봄에 쓴 글입니다.
‘피아노의 숲’님이 올린 글 제목에 문득 이 글이 생각나 제목을 흉내 내어 올립니다.
지금 정수 녀석은 강남에 있는 벤츠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얼마 전 출근길에 만났을 때에는 자기가 연예인의 차도 고쳤다며 그 연예인 고객과 찍은 사진도 보여주었습니다.
맨 왼쪽에 있는 녀석이 정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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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출근길에 정수와 마주쳤습니다.
정수는 2007년도에 제가 담임했던 학생입니다.
두 해 전에 학교 바로 앞에 있는 럭키아파트로 정수 네가 이사를 온 이후로 출근길에 녀석과 종종 마주칩니다.
물었던 담배를 잽싸게 뒤로 감추며 자라목이 되어, 강화 갯벌 방게걸음으로 비칠비칠 걸어옴은 녀석이 나를 봤다는 증표입니다.
학교 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출근하는 길이라고 대답합니다. 이번 학기가 졸업학기여서 서초동의 폭스바겐 자동차 정비소에서 실습을 하는 중인데 졸업을 하면 내년 봄부터 정직원으로 근무할 거라고 합니다.
요즘 같이 취직하기 어려운 때에 잘 됐다는, 진심을 나누고 출근이 바쁜 서로는 이내 제 갈 길을 갔습니다.
교직생활을 하다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통하는, 코드가 맞는 학생이 있습니다. 정수가 바로 그랬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담임을 했던 2007년에 정수는 2학년이었습니다.
공부는 반에서 최하위권이고(녀석은 중 2 때까지 축구선수를 하다가 부상으로 운동을 그만두었습니다.) 흡연 건으로 학생부실로 끌려가서 쓴 자술서에 담임의 확인도장을 받으러 4층 교무실의 제 자리로 찾아온 적이 부지기수였건만 그래도 녀석이 밉거나 성가시지 않았음은 녀석의 그 구김살 없는 성정에 제가 반했기 때문일 겝니다.
하여튼 녀석은 늘 밝고 솔직했습니다. 성적은 최하등급에 가까웠지만 성품만은 ‘1⁺⁺’였습니다.
어느 날에는 절뚝이며 걷기에 까닭을 물으니, 엄마에게 대들었다가 때마침 지방에서 막노동을 마치고 돌아온 아빠에게 부러진 침대다리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며 보랏빛 피멍이 든 장딴지를 보여주면서도 ‘자기 잘못’이라고 씨익 웃었던 녀석입니다. 당시 우리 반 특별구역 담당이던 교무실 바닥청소를 절친인 H, Y, D와 함께 자청해서는 매일 아침 선생님들보다 먼저 등교하여 즐겁게 대걸레질을 해대던 녀석이었습니다.
그해 여름방학 때에는 방과후수업(예전의 보충수업)을 하지 않고 판교 아파트 공사장에서 일하시는 아빠를 따라 일을 해보겠노라고 하기에 그러라고 승낙하고는 개학날 조회시간에 어땠느냐고 소감을 물으니 사람 할 짓이 아니라고 혀를 내둘러 반 아이들이 뒤집어졌습니다.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고도 했습니다.
교무실 청소팀 네 녀석 중 아빠가 조그마한 공장을 갖고 있는 H를 제외하곤 가정형편이 모두 어려웠습니다. 비정규직인 홀어머니의 얄팍한 임금으로 대학생 형과 근근이 살아가는 D도 그렇지만 편찮으신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Y는 형편이 더 어려웠습니다. 전국을 떠돌며 막노동을 하시는 아빠와 정수기 코디 일을 하시는 엄마, 여중생인 누이와 함께 사는 정수도 크게 나을 건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환경의 녀석들임에도 1년 내내 아침 일찍 등교하여 자기네들끼리 찧고 까불며 교무실 청소를 하는 모습이 참 예쁘고 기특해서 한번 삼겹살을 먹여야겠다고 벼르기만 하다가 그 해가 저물어가던 12월 중순의 어느 날, 해가 짧아져 이미 거뭇거뭇 어두워지기 시작한 일과 후의 운동장에 녀석들을 집합시켰습니다.
집합시켜 놓고는 요 며칠 교무실 청소가 엉망이라고 생트집을 잡고서 어둑한 운동장을 두 바퀴 뛰게 함은, 그렇게라도 일부러 벌을 주고 몸을 좀 풀어줘야 고기를 먹일 명분도 서고 소화도 잘 될 것 같아서였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공식 축구경기를 할 수 있는, 꽤 넓은 운동장을 두 바퀴 뛰고 제가 서 있는 자리로 돌아와 허리를 꺾고 헥,헥, 거리는 네 녀석에게 ‘너희들은 이제 죽었다’고 다시 한 번 윽박지른 다음 녀석들을 제 차에 구겨 넣고 15분 남짓 거리의 집 근처 제 단골 고깃집에 풀어 놓으니 그제서야 담임의 속내를 알아차린 녀석들이 ‘물 만난 고기’처럼, 아니, ‘먹잇감을 본 승냥이’처럼 ‘우우∼우’ 고개를 뒤로 젖히고 괴성을 지르며 ☓랄발광들을 합니다.
“맛있게 먹겠습니다.” 떼창 인사도 순간, 익기가 무섭게 쌈장 발라 상추에 싸먹는, 잽싼 손놀림이 봉놋방 노름꾼에 뒤지지 않습니다. 밑반찬 접시가 비워질 때마다 부지런히 서빙을 함에도 그 새를 못 참아 콩나물무침과 마늘기름장을 더 달라고 촌스럽게 소리를 지르니 인솔교사는 주위손님 보기가 무지 쪽팔립니다.
한창 크는 녀석들이라 많이도 처먹습니다. 고기 8인분에, 밥 네 공기와 된장찌개 둘, 뚝배기 계란찜 2 그릇을 숨 한번 몰아쉬지 않고 뚝딱 거덜 냅니다.
그렇게 난동에 가까운 만찬을 끝내고 고깃집을 나와 중앙차선의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지는 횡단보도 앞에서 녀석들을 배웅하려는데 아까부터 쭈빗 대던 Y 녀석이 저에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선생니임, 차..비..가 없..어요”
집이 학교에서 가까운 까닭에 평소 도보등교를 하다가 뜬금없이 승용차 보쌈을 당했으니 그럴 법도 합니다.
“야, 시카, 기껏 먹여주니 차비까지 달라고 하냐? 알아서들 갓!”
이번에도 눈을 부라리며 짐짓 호통 치는 체를 하자 잠시 서로의 얼굴만 멀뚱 쳐다보던 녀석들이 갑자기 꾸벅 인사를 하고는 학교 쪽으로 걸어가니 외레 당황한 건 담임입니다.
이미 깜깜해진 어둠 속으로 저만큼 빨려 들어간 녀석들을 급히 불러서 어쩔 셈이냐고 물으니 다 같이 걸어가기로 했다는 異口同聲입니다. 차비 없는 친구를 홀로 가게 할 수 없어 다 같이 걸어가려는 그 우정이 담임의 심금을 울립니다.
학교까지는 6.5㎞. 대략 시오 리 거리이니 못 걸어갈 거리는 아니지만 찬바람 부는 연말의 밤거리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성싶습니다.
‘에라, 쓰바, 주는 김에 다 주련다’
만 원 지폐 한 장을 냅다 쾌척하면서 4 명이면 차라리 택시를 타고 가라고 이르는 마음이 졸라 쓰립니다.
‘아, 숭악한 시키들, 어서 꺼져라’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비 맞은 중마냥 꿍얼꿍얼 會者定離를 속으로 염불하던 그때, 갑자기 정수 녀석이 횡단보도 옆 시멘트 전신주에 붙어 있던 선전지를 통째로 뜯습니다. 선전지는 밑에 전화번호가 적혀있고, 전화번호는 한 장씩 떼어가기 좋도록 일일이 칼질이 되어 있는, 정수기 코디의 안내지입니다.
자기 엄마의 잠재적 경쟁자이기 때문에 없애는 거라며 멋쩍게 웃고는 신호가 바뀌자 다시 한 번 되돌아 꾸벅 절하고 잽싸게 뛰어가는 정수 녀석.
녀석의 그 뒷모습에 심성 여린 담임은 또 한 번 마음이 짠해집니다.
그랬던 녀석이, 공부라면 저 밑바닥에서 背泳(배영), 蝶泳(접영) 바꿔가며 지 혼자서 자알 놀던 녀석이 안성에 있는 두원공과대학 자동차과에 합격함은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녀석의 지적 능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선뜻 믿지 못하는 합격소식을 가지고 학교로 찾아온 녀석이 자기 적성에 딱 맞는 과라고 디립다 자랑을 해대더니만, 우주복처럼 위아래 一字로 붙은 정비복이 너무 멋있다고 주둥이에 게거품을 물더니만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여 한 학기를 다닌 지난 봄의 스승의 날에는 다시 학교 교무실로 찾아와선 모든 과목이 A⁺이고 한 과목만 A인, 스마트폰으로 찍은 제 성적표를 자랑스레 디밉니다.
내 눈으로 봤으니 안 믿을 순 없지만 내심 떨떠름함을 떨치지 못함은 왠지 무언가에 홀린 듯한 느낌 때문입니다. 게다가 등록금 전액 면제의 장학생이라니....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사건입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담임은 녀석의 그 자랑질이 마냥 귀엽습니다.
이제라도 자기 적성을 찾아 정말 즐겁게 공부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너무 예쁘고 기특합니다.
옛 스승 찾아뵈라는 구실로 오전수업만 하고 학생들을 귀가시키는 스승의 날이기에 오후에 딱히 할 일이 없는 담임은 녀석을 이끌고 학교 근처 재래시장의 삼겹살집에서 낮술을 하기로 합니다. 녀석에겐 언제나 삼겹살이 최곱니다.
“선생니~임, 제가 나중에 카센타를 차리면 선생님 차를 완벽하게 봐드릴게요.”
“아서라, 새꺄, 괜히 수리해준답시고 일부러 볼트 느슨하게 풀어놔 신나게 달리다가 객사하게 하려고?”
말은 또 그렇게 험악하게 해도 담임은 기분이 참 좋습니다. 공부를 못해도, 가정환경이 조금 열악해도 저 밝은 심성으로 제 앞길 씩씩하게 헤쳐 나가는 녀석의 모습이 참 흐뭇합니다.
담임이 껄껄 대니 녀석도 킥킥 웃습니다. 웃다가도 담임 술잔이 비어 있으면 재빨리 엉거주춤 일어나 공손하게 술을 따릅니다. 싹싹함과 씩씩함은... 녀석의 대표 성품입니다.
챙캉!
시장 골목 햇살이 마냥 눈부셨던 봄날 오후, 스승과 제자, 그 靑(청)과 藍(람)의 소줏잔 부딪히는 소리가 청아합니다.
아, 그렇게 작년 스승의 날에 함께 한잔 했던 정수 녀석을 오늘 아침 출근길에 만난 것입니다.
정장이 아닌, 가슴 근육이 도드라져 보이는 반쫄티 티셔츠가 오히려 더 당당해 보입니다. 꾸벅 인사를 하고 수 년 전, 겨울 저녁의 발걸음처럼 잰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녀석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 보입니다.
담임 샘도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교문을 들어서는 마음이 봄날 아침의 공기만큼이나 싱그럽습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정수도 정수지만 리트머스 선생님은 교사의 리트머스 시험종이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지니 참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