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있던 글이라 반말입니다. 이해해 주세요!

봉준호 감독의 <마더> 와 함께 올 상반기 한국 영화 최대의 화제작으로 손꼽히고 있는 영화 <박쥐> 가
지난 30일 드디어 개봉했다. 중요한 시점이다. 3부작 중 가장 약했던 <친절한 금자씨> 와 졸작이라
일컬어 반론이 없을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로 그의 작품에 대한 일반 대중들의 믿음이 많이 희석된
지금이기 때문이다. 좋으면 좋아하면 그만일 것을 구태여 시키지도 아니한 변명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도 같은 이유다.
본격적으로 그를 변호하기 전에 제대로 밝히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난 이 작품을 <복수는 나의
것> 과 <올드보이> 를 능가하는 그의 최고작으로 생각하고 있다. 공공연히 가장 좋아하는 영화로
밝히고 다닌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 를 제치고 <내 생애 최고의 영화> 자리에 등극할 수
있을지는 오늘 아침 조조와 2회로 한 작품을 연달아 감상하고 온 지금의 내 흥분이 조금 가라앉은
후에 (이성이 돌아오면) 판단할 일이지만, 일반 관객은 말할 것도 없고 비평가 집단 내에서도 평이 쩍쩍
갈리는 마당에 내 입장을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어 보여 하는 말이다. 난 이 영화에 당당하게 내 이름
<강동희> 석자를 걸고 걸작중의 걸작이며 역작중의 역작이라 일컬을 생각이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있으면 꿀밤을 때려 줄 작정이다. 심지어 깐느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 작품이
황금종려상을 받지 못하면 그게 말이 안 되는 거라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글쓴이도 안다, 비평가라면서 영화를 논하며 사사로운 감정을 열거하는 것이 얼마나 프로답지 못한
것인지를.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난 이 영화를 텍스트적으로 분석하고 영화적 장치와 거기에 숨겨진
함의를 읽어내며 작품에 영화사적 의의를 부여하기 전에 비평이 아닌 글을 먼저 쓸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작품을 감상하고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경으로 비교적 이른 시각이었으나 다들 나처럼
백수인지 아니면 월차를 내고들 보신 건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일찌감치 작품을 보고 온 이들의
실망으로 도배돼 있었다. 내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난 이 작품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 작품이 아닌 게
싫다. 그렇다고 JSA처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영화라면 지금의 타는 내 가슴이 이처럼 뜨겁진
않았을 거다. 인지부조화가 생긴다 …
그래, 영화가 내 취향이 아니란 말은 인정해 줄 수 있다. 가슴이 좀 아프지만 영화가 재미없다는 말도
참아줄 수 있다. 그러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은, 즉 집필 직전의 시간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면서까지
지금 날 내 자판 앞에 앉도록 한 것은 일부 관객들의 연출자에 대한 냉소적 해석 탓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예술하는 박찬욱에 대한 조롱이다. 도통 알 수 없는 작품을 내걸고 이것이
예술이노라 일컫는, 말하자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랑 비슷한 거다. 박찬욱의 팬들은 허세고,
박찬욱의 작품도 허세고, 진짜 웃기지도 않으면서 웃고 진짜 재밌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 영화 좋아하면
뭔가 있어 보이니까 좋아한다고, 박찬욱의 작품 역시 실상은 허섭스레기에 불과함에도 불란서
코쟁이들이 좋아해 주니까 우리도 좋아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식민지 근성이라고. 솔직히 나도
박찬욱이 복수 3부작과 <박쥐> 를 향한 작은 섬이라고 고백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를 볼땐 그런
생각도 좀 했다. 이 영화, 좀 아닌 것 같다. 좋은 영화가 좀 아닌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의 심경 헤아리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박쥐> 는 정말 다르다. 비록 섬이랍시고
졸작을 발표한 전과가 있긴 하지만 관객수 80만으로 죄값을 치렀으면 이제는 그를 완전히 새로운
잣대로 평가해 줘야 한다. <박쥐> 는 분명한 수작이다. 읽히지 않는 글이나 모양을 알 수 없는 그림과는
달라서 마치 <내 사랑 싸가지> 처럼 가뿐히 읽히고 낸시 랭처럼 쉽게 해석된다. 미리 언급한, <도통 알
수 없는 작품> 이 아니란 얘기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의 모호함, <박쥐> 엔 없다. 모든 장면들은
직선적이고 영화적 쾌감은 10분마다 폭발한다.
비슷한 맥락으로, 영화제용 영화라는 비난이 있다. 역시 변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뤄질 수 있다. 비록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욕설, 조폭 혹은 틀에박힌 불륜 치정극이나 백혈병 괴담은 아니지만 작품은
이른바 <영화 너무 많이 본 감독> 의 B급 성찬이며 김기영 영화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올드보이> 보단 JSA가 재밌었던 당신이라도 충분히 즐길 만한 영화적 쾌감이 있는 작품이다.
당신이 모름지기 빈센트 반 고흐의 아이리스나 가레스 퓨의 SS 콜렉션을 보며 느꼈을 예술적 체험의
극단이 영화에 생생히 녹아있다. 익숙한 즐거움은 아니지만 아주 색다른 즐거움이며, 분명 즐거움이다.
영화제용 영화, 절대 아니다. 오히려 <올드보이> 보다 훨씬 대중적이며 <친절한 금자씨> 보다 친절한
작품이다. 해석의 여지가 다양한 장면들은 종종 보이지만 해석 자체가 비평가 아니고야 불가능한
장면들은 단 한 컷도 없다. 포도주스처럼 꿀꺽꿀꺽 잘 넘어가는 영화다. 거기에다 내세우고 나서는 것을
즐기지 않는 그의 평소와, 곳곳에 설치된, 은막을 찢어버릴 듯한 B급 감성의 장치들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상 따위의 잿밥이 아닌 영화 그 자체를 즐기며 찍었다는 것,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글쓴이도 씨네필이라기엔 모자라다. 하지만 자칭 씨네필이라면서, 자칭 영화광이라면서 이 작품을 너무
어렵게만 보려는 시각은 좀 거두어 줬으면 좋겠다. 박찬욱에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해야 하나. 영화
이상의 것을 기대하면 안 된다, 그는 영화 감독이니까. 실망스러우면 차라리 재미없었다고 말해라.
구태여 나는 영화광이라며 묻지도 않은 정보와 곁들여 얄팍한 해석을 내놓는 것, 내 눈엔 우습게
보인다. 허세 부리는 놈 취급도 안 해 줬으면 좋겠다. 누가 뭐래도 난 이 영화가 좋았다. 미칠듯이
좋았다. 이 감정, 진실하고 신실하다. 생애 단 한 편의 영화만 볼 수 있다면 난 이 영화를 택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