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
참고말씀: 민14:23; 시95:11; 막16:19
읽을말씀: 히4:1-16
주제말씀: 히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첫째, 들은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순종해야 합니다(1-13절).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히4:1)
히브리서 기자는 무엇을 두려워한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여전히 유효하지만) 혹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 있을까 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1절)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전해 받은 복음, 즉 들은 바 말씀이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믿음과 결부시켜야 합니다. 즉 들은 바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참고로, 왜 출애굽 1세대는 실패하고 말았습니까? 들은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 들은 말씀이 그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2절)
이처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혈통적 이스라엘입니까? 아닙니다. 영적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한 자입니다.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3절 상)
물론 하나님은 언제부터 이 안식을 준비하셨습니까?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입니다.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 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3,4절)
히브리서 기자는 다윗이 민14:23에서 인용한 것(시95:11)을 재인용함으로써, 무엇을 강조합니까? 안식에 대한 약속이 모세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후대에 오는 모든 영적 이스라엘에게도 유효하다는 점입니다.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5,6절)
즉 광야생활 이후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안식에 관한 약속이 유효하므로, 이 약속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함을 촉구하였던 것입니다.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6,7절) /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8,9절)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어찌해야 합니까?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11절 상) 그리해야만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11절 하)
한편, 히브리서 기자는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도구가 곧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고, 또한 돌이켜 능히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주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12절)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들은 말씀을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또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즉 우리를 영원한 안식으로 인도하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 그리하고 있느냔 말입니다.
둘째,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14-16절).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
히브리서 기자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이 누구이심을 강조합니까? 우리에게 계시는 큰 대제사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14절 상) 그분은 어떻게 되셨으며 곧 누구시라고 밝힙니까? 승천하셨으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14절 중)
왜 그분은 큰 대제사장이십니까?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과는 비교조차 안 되는 우월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어째서입니까? 레위 계통의 대제사장은 이 땅의 지성소에 들어갔으나 예수님은 그 실체인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승천하신 이...”(14절 중) /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막16:19)
왜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언급합니까?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14절 중) 이와 동시에 무엇도 강조합니까? 예수님의 인성입니다. 즉 예수님이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 되셔서 인간이 당하는 시험을 실제로 당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영육간의 연약성을 아시고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은 이로되...”(15절 상) 다만 예수님께는 무엇이 없습니까? 죄입니다. “...죄는 없으시니라.”(15절 하)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신 분으로써, 모든 믿는 자의 구주가 되신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이 예수님이 단번에 완성하신 믿음의 도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14절 하) 또한 이 예수님을 힘입어서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16절 하)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알고, 이 예수님을 의지하여 날마다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도리를 굳게 잡고 살아가고 있느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