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떠나가는 베드로를 생각합시다.
시작하기 전에 오늘의 현실에 대하여 몇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영적인 부분은 차치하고
예수님의 제자라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일제강점기의 개나리도 예배 현장에서는 기도하는 시늉이라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 저 옆에 계신 분들은 무엇하는 분들입니까?
기도하고 찬송할 때는 같이하여야 하지 않나요.
우리가 이 예배당을 건축할 때
이 예배당에 나오기는커녕 태어났는지도 모를 나이인데
“떫거든 시지나 말지.”하는 말이 있듯이 인사를 하지 안하려거든
처다 보지나 말았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 예배당 건축할 때 기도하고, 벽돌 나르고, 헌금한 성도는 밖에서
비 맞고 서있고 엊그제 온 성도는 안으로 들어간다.
권사인지 집사인지 모를 분들이 가만히 비껴서 들어 가면 좋잖아요!
개선장군처럼 가로질러 걸어가면서 손가락질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떤 분으로부터 매 건당 격려를 받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저분들의 부군은 얼마나 행복하실까? 한번쯤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담임목사는 교회 내에서 신령한 측면으로 보자면 영적인 선생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성도가 위임한 청빙자입니다.
부목사. 전도사는 당회원도 아니고 일 년 임기의의 비정규직과 같은 신분입니다.
그러한 분들이 무슨 큰 권력을 갖은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만이 축복과 저주의 권한이 있는 것처럼 이를 남발하는
이 패역한 사태는 누구 때문입니까?
이와 같은 작금의 사태는 무식한 성도들이 자기 정체성의 상실로 가져온 비극이며 자업자득입니다. 성도여러분 다 우리 때문입니다.
중세 교회와 무엇이 다릅니까?
면죄부를 사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과
무임승차 자는 거절한다는 말과는 무엇이 다릅니까?
성도 여러분!
오 목사의 회개는 하나님과의 문제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영화 밀양에서 전도현이 수감자를 위해 전도차 교도소에 갔습니다.
거기에서 자기 자식을 죽인 범인이 어머니전도현을 향하여
“나는 예수 믿고 죄 용서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는 전도현의 심정.
그 심정이 권 장로의 심정이고, 우리의 심정입니다.
마태복음 5;23~24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여기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죄를 짓거나 잘 못한 일도 아니고”
거기에 비해서 경미할 수 있는 “원망들을 만한 일”입니다.
그것도 당사자에게 가서 해결하고 그리고 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려라. 하셨습니다. 이것이 회개의 순서이고 원칙입니다.
우리교회 큰 거짓말 또 하나 가리켜 드리지요
Maranatha!!하면서 찬송 인도하는 목사가 외처 댑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Maranatha!!하면서 찬송 인도하는 목사가 외처 댑니다. 그러나 그 목사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거짓말이야 유명하지만.
고전16;22의 이 말은 아람말로 ‘주님, 어서 오소서!’ 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로 번역했으나
KJV에서는 Maranatha(마라나타)라고 원어 음으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서초동에 3,000억 원이 넘는 예배당을 건축하면서
“주님 어서 오소서”할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야 이렇게 하면 안 되지요.
먼저 돈이 적게 드는 간이 건물을 짓거나.
주님 천천히 오세요. 해야지.
자 여러분 시작합시다.
제가 총회헌법과 우리교회 정관. 교회사에 대한 말씀을 준비했다가.
어떤 집사님의 글 2014년8월의 희망적인 예배분위기와 8. 15 광복절에 독립 운동사를 읽다가 이 후에 우리교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렇다면 무엇을 준비하여야하나 고심하다가 이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도시에서 술꾼에게 길을 물으면 저기 호프집을 돌아 우측으로 가면 양주집이 있고 거기서 좌측으로 돌아 대폿집으로 가면 이런 식으로 길을 안내 합니다.
운전하시는 분께 길을 물으면 신호등을 위주로 안내 할 것입니다
저도 옛날에 하던 일이라. 몇 가지 조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젊었을 때 조직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여야 강한 조직이 될 수 있나?
여러 가지 형태의 조직을 연구하고 검토하였습니다.
군대조직. 정당조직. 브리타니카 판매조직. 보험사영업조직.
조직연구 중에 구성원의 마음가짐을 연구할 때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콘크리트의 양생과정입니다.
콘크리트가 양생되려면 자갈. 모래. 시멘트. 그리고 물을 비율대로 배합하여 일정시간이 경과한 후 물이 완전히 빠져야 콘크리트의 양생이 마무리 됩니다. (자갈과 모래와 시멘트의 역할생략)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물이 빠져야 콘크리트가 강도 높게 양생됩니다.
주도적인 역할을 한 주체가 역할을 끝내고 사라져 주는 것.
이것이야 말로 조직을 강하게 해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상해 임정시의 애국지사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그분들의 후예들이 건국 후에 어려운 생활환경에서도 정부에 특별한 생활대책을 요구하지 안한 이유는 그분들 마음속에는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올 곧은 매운 마음이 서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2 ; 17. 에는 네 개의 중요 단락이 있습니다.
손짓하여 종용하게 하고
주께서 자기를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하고
떠나 다른 곳으로 가니라. (감옥과 풀려남은 뒤에 설명)
헤롯 아그립바가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이니 유대인들이 기뻐하자
베드로도 죽일 작정으로 감옥에 감금시켜 놓고
간수 16명을 선발하여 감시하는 감옥에서 베드로는 신비하게 풀어나서
마가의 다락방에 도착하여 주께서 자기를 구출한 내용을 말하고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안부 전하라는 말을 남기고
선걸음으로 떠나 “다른 곳으로” 떠납니다.
이때의 마가의 다락방은 성도들의 본거지입니다.
(마가와 요한에 대한 설명)
그 전에는 주께서 최후 만찬을 잡수시던 곳이고
그리고 오순절을 맞았던 곳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다른 곳으로 떠나갑니다. 그는 교회의 안전과 복음전파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하여 사도행전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사라집니다. 그 후 그는 사도행전15장 예루살렘 공의회의에 잠간 참석한 후 사도행전에서 사라집니다.
성도 여러분
베드로가 다른 곳으로 간 당시 상항을 살펴봅시다.
이때에 이스라엘은
모국에만 거주하고 아람어를 사용하는 히브리파 유대인과
해외에 거주했던 디아스포라이며 헬라어를 구사하는 헬라파 유대인과의
보이지 않는 양대 세력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상항에서 복음전파의 주역이 히브리파에서 헬라파로 교체되는 것입니다. 즉 사도행전의 주역의 교체입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는 전원 히브리파 유대인인데
사도행전 6;5의 일곱 집사는 전원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베드로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공생애에 전 과정을 같이했고 인류 최초로 물위도 걸어보고 변화산에서 신비한 체험도 했고 예수님의 고난, 부활, 승천을 아주 가까이에서 경험한 제자이고 성전 앞에서 앉은뱅이도 “일어나 걸어라” 해서 고치고, 그 일로 산 해드린 공의회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하루에 삼천 명이 예수를 영접케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당시 사도로서도 의심이 가는 바울에게 사도행전의 주 무대를 넘기고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도 일부 인사에 국한된 일이지만 지금처럼 교회를 등에 업고 교회를 이용하여 이익을 추구하려는 풍토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정리되고 새로운 목회자를 모실 때 아니 그 이전이라도
열심히 노력한 믿음의 용사들이 그리고 언필칭 평신도 지도자들이
떠나가는 베드로처럼
콘크리트가 양생할 때의 물처럼
독립운동가의 후손처럼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멋있는 마음을 갖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는 우리 모두가 역할을 다하고
적당한 때에 미련 없이 떠나가는 흐르는 물처럼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존귀하게 되는 우리교회가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첫댓글 소명을 다한 후에 흐르는 물처럼 나 자신을 떠나보내라는 말씀 너무 인상적이라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장로님의 통찰력있는 설교에 공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그리고 김집사님...
귀한 말씀 참 감사했습니다. 장로님!!!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역시 사랑의교회의 시들지 않은 장로님 말씀답습니다.
장로님께서 오늘 전해주신 메세지는 단순한 일회용 권면의 설교가 아닙니다.
사랑넷의 모든 지체들에 대해 주님을 대신한 선포입니다.
명색이 제자훈련 받은 사랑넷의 성도로서 깊이 새겨야만 하는 주님의 명령이자 거룩한 숙제입니다.
우리싸움의 결과는 하나님의 공의와 섭리가운데 반드시 오목패당으로부터 강단은 회복할 것입니다.
장로님 권면의 고민은 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회복된 강단에서 지분만큼 안주할 것이냐?
아니면,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해 사명감당자로서 주님의 밀알이 될것이냐?
거룩한 숙제를 준비하고 답해야 할 때입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김집사님~ 수고가 많으시죠? 장로님의 설교 전문을 볼 수 있을까요? 위에 게시된 내용은 중간에서 잘린 것 같군요.
장로님께서 요약본을 주신것 같습니다. 설교 전문 전체를 장로님께 요청하겠습니다.
김집사님~전문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김장로님, 사려깊은 말씀 우리모두의 심금에와 닿아 계속 메아리 치고 있습니다.
어제 김두종 장로님께서 우리 사랑넷의 모습이 하나님 앞에서 어때야 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역할을 다 하고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길 기도합니다.
불신지인이 밀양을 애기하며....
기독교인이 그래서 싫다고 했습니다.
전 그 사람의 용서받음이 진짜가아니라고 했죠...
왜냐면 진짜 용서를 받으려면 진짜 회개를 해야 하는데...
진짜 회개를 한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한 피해자에게 바닥을 기는 심정으로 용서를 구할수밖에 없다구요.
그래서 그 영화의 그 내용은 참된 기독교를 모르고 만든영화라고...
...
그러나 나는 그런 모습이 없었는지
돌아보렵니다.
내안의 죄를 제대로 보지 못한 죄의 자국들이 있을거같아요...
회개하렵니다.
장로님 말씀에 문제의 핵심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사랑넷의 보배같은 장로님들 계셔서 다시 힘을 내봅니다
현재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를 향한 염려를 담고 있는 장로님의 말씀. 늘 기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장로님! 어제 마당에서 주님이 이끄시는 싸움에서 한 명의 장수를 본 듯했습니다. 신앙선배로서의 깊이와 사나이로서의 결기가 느껴져 사랑넷 말단사병으로서 든든함을 느꼈답니다.아마 저들도 이런 장로님이 계셔서 두려워 할 것 같습니다.^^
어제 김두종 장로님의 말씀에서 자신감, 용기를 느꼈습니다. 젊은 부목사와 안내하는 집사들에게 "떫으면 시지나 말지" 하면서 그들이 75세 된 은퇴장로님에게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을 나무라시는 것 참 잘 하셨습니다. 그 사람들 혼이 나야 합니다. 예의범절도 모르는 쌍놈처럼 인사도 하지 않다니 ...
인사도 잘 드리지않다니요? @.@
기본이 안되어있는데 무슨 그리스도인입니까
어른과 뜻이 다른다해도
예를 다해야지 범절도모르는 불한당같은 ㅆㄴ
같으니라구 이런일이있나
어제 존경하는 김두종 장로님 말씀선포 의 모범을 보여주셨읍니다
설교본문 뒷분을 추가했습니다.
초연한 믿음의 귀감을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교회의갱신을바라고있고
거룩한곳에 거짓말로선 존재의 이유를
인정하지않을 뿐입니다
곁따라 부화뇌동하며 교회를 그르치는
우매함을 두고볼수없어 할뿐입니다
교회가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정결해지는것 그때를 가라보는 소망이 현실이되는 날이 오는것 그것이
저희들이 갖는 보상이지 무엇이겠습니까
시멘을바르고 벽돌을 나르고
사랑의교회를 세우신
은퇴장로님들 .여러 어르신의 만강하심을
기원합니다
저가 제일 하고 싶었던 말씀을 장로님이 해 주셨습니다
죄의 면죄부를 파는 것처럼 지금 사랑의교회는 건축에 올인하고
주님 말씀 없는
오직 물질만을 추구하고 인간의 권력을 갈망하는 교회가 되어 버리는것
같습니다
진실로 성령 충만한 교회가 되어야 하는데
한 목회자의 행동으로 사랑의교회는 평신도를 일깨운다가 아니라
평신도를 괴롭히는 교회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멘
김두종 장로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가 꼭 들어야할 말씀을 전해주셨군요.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소임을 다한 후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사라지는 것, 새 생명의 열매를 위해 자신은 죽는 한 알의 밀알로 감사하고 만족하는 것, 사람과 무리의 인정과 환호보다 주님께 기쁨이 되는 것을 더 사모하는 것-- 이런 것이 바로 참제자의 정신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랑의교회 제자훈련의 정신을 바로 계승한 멋진 '안티' 모든 분들께 존경과 사랑을 표합니다.
귀한 신앙의 선배님들을 여기서 뵈니 참기쁨입니다..
장로님 선견자적인 시각으로 귀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너무 멋진 말씀 감사드립니다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
존경하는 장로님의 귀한 말씀을 마음깊이 새깁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자신이 속한 교회의 담임목사를 존경하고 섬기는것은 바람직한 성도들의 자세겠지만
담임목사를 하나님 처럼 섬기는 한국교회의 성도들도 회개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받으셔야 항 영광을 가로채는 교만과 탐심을 내려 놓도록 바른말을 하는 성도들이 많아져야 하며
이를 위해 김두종 장로님들이 평신도를 인도하기 위한 말씀을 주신것 같습니다
투사는 지분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