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시기 왕유와 함께 왕맹으로 별칭되던 대표적 자연시인인 맹호연.
평생을 전업작가로서 이백의 존경을 받은 인물.
그가 동정호에 왔다가 낚시꾼들을 보고 떠오른 느낌을 시로 써서
당시에 재상으로 있던 지인 장구령에 주었다는데...
팔월이라 호수물이 가득 넘실거리고,
호수는 허공을 품어 하늘과 구분이 안간다네.
안개가 운몽택에서 김처럼 피어오르고,
물결은 물에 비친 악양성을 뒤흔든다네.
호수를 건너가고 싶건만 배도 없고 노도 없고,
일없이 한가로이 지내자니 밝으신 임금님에게 부끄럽네.
앉아서 낚시꾼들을 구경하노라니,
부질없이 낚인 물고기가 부러워진다네.
낚인 물고기처럼,
자기도 승상에게 낚여서 등용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으리라.
그러나, 낚인 물고기는 곧 죽음이란 사실은 왜 무시했을까?
그 정도로 취직이 절박했었는지.
그래서 그런지 맹호연의 자연시에는 도처에 사람의 한숨과 걱정이 배어 있다.
그에 반해 평생을 무사하게 높은 벼슬에 있던
왕유의 자연시는 그야말로 인간을 배제한 자연이었다.
그래서 맹호연이 훨씬 연장자이었지만
후인들이 그를 앞세워 "왕맹","왕맹체"로 불러주었던 것일까.
어느 곳에서는 이렇게 역대 악양루, 동정호 관련 명편들을 감상할 수 있게 해 전시해 두기도 했다
악양루 관련 시로는 최고의 명편으로 꼽는 두보의 <등악양루>
이백보다 열한 살 후배였지만 서로 의기투합하였고,
이백이 시에 있어서만은 그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그야말로 낭만파, 시선이었다면,
그는 철저히 현실에 바탕하여, 조국과 백성에 대한 사랑을 시로 나타내었었다.
그래서 그는 시에 있어서만큼은 공자에 버금가는 시성이라 불리었고,
그의 현실주의 시를 시로 쓴 역사란 뜻의 "시사"라고 불리었던 것이다.
예전에 동정호에 대해 소문을 들었는데,
이제사 악양루에 오른다네.
오나라 초나라가 호수 중심으로 동남쪽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이 주야로 호수 위에 떠 있네.
친척과 벗들에겐 한 자의 소식도 없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