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용(역사학자)님 페북에서
8.15
친일파 명예회복을 주창하는 인사가 독립기념관장외 된 데 이어 박민의 방송 KBS는 광복절에 굳이 기미가요가 나오는 오페라 나비부인을 방영합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학중앙연구원, 동북아역사재단 등 3대 역사기관의 장도 전부 뉴라이트 인사들로 채워졌습니다. 뉴라이트가 역사 관련 연구비 지원 기관들을 장악했으니 앞으로 친일파를 미화하고 독립운동가들을 테러리스트로 단죄하는 연구성과가 쏟아져 나올 겁니다.
많은 사람이 윤정부는 왜 이렇게 ‘급진적인’ 친일 정책을 펴는가에 의구심을 품습니다. 하지만 징용노동자에 대한 배상 포기와 후쿠시마 핵 오염수 방출 지지부터 지금껏 ‘일방적, 굴종적 친일’은 윤정부의 일관된 정책이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미국은 한일 양국에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요구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일 군사동맹을 가로막는 암초는 언제나 과거사 문제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일본이 상당 부분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였습니다. 1993년 일본 관방장관 고노 요헤이는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1995년 일본 총리 무라야마는 식민지배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인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뉴라이트라는 이념집단이 출현한 뒤, 일본의 태도가 확연히 바뀌었습니다. 한국에 ‘자진해서 친일’하는 무리가 있는데 굳이 반성과 사과의 뜻을 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겁니다. 윤석열 정부는 단시일 내에 친일파를 대량 육성함으로써 ‘한일간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선택했다고 봅니다.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민주주의자’였던 독일인 대다수가 히틀러 집권 이후 ‘나치’로 전향했듯이, 윤석열과 국민의힘 지지자 상당수는 ‘친일정책’마저 응원하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독립지사들은 친일파를 ‘친일모리배’나 ‘부일모리배’라고도 불렀습니다. ‘일본을 부모처럼 섬기며 사익을 탐하는 무리’ 또는 ‘일본에 들러붙어 사익을 탐하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사익을 탐하여 자기 민족도 배신한 자들이 일본천황에게 진심으로 충성했을 리 없습니다. '친일'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형용사였고, 본질은 '모리배'였습니다.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일본에 빌붙어 사익을 취하려는 자들과 싸우는 일도 독립운동이었습니다. 지금 급속히 확산하는 '모리배 의식'과 싸우는 일도, 독립운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