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K-팝 수퍼그룹 ‘소녀시대’가 켈리 리파와 일일 초대 호스트가 진행하는 미 TV 인기 토크쇼 “라이브! 위드 켈리”에 출연했다. 이 방송을 본 사람은 결코 흔히 볼 수 없는 TV 속 마법의 순간을 목격했을 것이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이 아니라 공연이 끝난 직후 이어진 짧은 인터뷰 동안에 말이다.
소녀시대 멤버들은 일사불란한 안무와 함께 자신들의 첫 미국 싱글인 “더 보이즈”를 부르며 관객들의 흥을 돋군 후 그대로 서서 숨을 고르며 리파와 이날의 공동 호스트인 하위 멘델을 맞이했다. 리파와 멘델은 외국인들에게 흔히 하듯 손을 사용하여 다소 과장스런 제스쳐를 섞어가며 큰 목소리와 느린 말투로 이들의 미국 TV 출연을 축하했다.
그리고 나서 멘델은 멤버 중 한 명인 발랄해 보이는 티파니에게 “영어 잘 하시네요!”라며 칭찬했다. 그러자 티파니는 완벽한 노스 캘리포티아 액센트로 “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거든요”라고 말했고 옆에 있던 갈색머리의 깜찍한 제시카도 “저도요!”라고 말했다. 멘델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래요…영어 참 잘 하시네요!”를 반복했다. 이에 티파니가 어색한 상황을 수습하며 “네, 저도 알아요, 감사합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거든요!”라고 재치있는 멘트를 날리자 멤버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멘델을 탓할 수만도 없다. 소녀시대는 젊은 한국을 상징하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인기있고 앨범이 많이 팔리는 걸그룹인 것이다. 멘델에게는 티파니와 제시카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마치 미국 가수 겸 작곡가 케이티 페리가 크메르 말을 하는 것과 같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티파니와 제시카를 비롯해 SM 엔터테인먼트와 JYPE 같은 연예기획사들이 미국에서 선발하는 한국계 미국인 음악인들이 늘고 있는 것은 단지 세계화 현상만은 아니다. 이들은 세계 청년 문화를 장악하려는 한국의 전략적 비밀 무기인 것이다.
아직도 멘델의 말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는 티파니는 샌프란시스코 태생에 LA에서 자란 소녀다. “15살 때 SM 오디션에 갔다가 한국에 트레이닝 받으러 오라는 초대를 받게 되었다. 부모님은 완강하게 반대하셨지만 설득했다. 그때 내가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도 잘 모르겠지만 앞으로 음악을 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트레이닝은 정말 힘들었다. 3년동안 아이돌이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다.”
한국의 팝가수 트레이닝 프로그램은 매우 혹독하고 포괄적이다. 미래의 아이돌들은 기숙사에서 합숙을 하며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 늦게까지 노래와 춤, 연기를 배운다. 어떤 경우엔 (제시카 처럼) 10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훈련을 시작하기도 한다.
모든 비용은 연예기획사에서 지불한다. 한국 대표 연예기획사인 SM은 아이돌 한 명 양성에 약 3백만 달러를 사용한다. (멤버가 9명인 소녀시대의 경우는 곱하기 9다.) 대부분의 훈련생들은 중간에 그만두거나 혹독한 훈련을 견디지 못하지만 끝까지 견디는 이들이 누릴 대가는 실로 엄청나다. 소녀시대만 보아도 멀티미디어 수퍼스타에 블록버스터형 브랜드 파워로 LG폰에서 인텔 프로세서, 굽네 치킨(한국 최대의 오븐구이 치킨체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광고계약을 맺고 있다. 이들이 창출하는 총 수익흐름은 한해 5천만 달러가 훌쩍 넘어 모회사인 SM으로서는 상당히 가치있는 투자처가 된다.
“소녀시대는 아시아 최대 걸그룹일 것”이라고 영어로 서비스되는 세계 최대 K-팝 사이트 숨피닷컴 창업자이자 CEO 수잔 강은 말한다. “2009년 “지”를 히트시킨 후 계속 그래왔다. 그 곡의 뮤직비디오만도 유투브에서 6천4백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아프리카에 있는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세계 전 지역 사람들이 이 비디오를 보았다. ‘스파이스 걸스’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최고 전성기를 합쳐놓으면 이 정도 될까 싶다.”
아시아에서 소녀시대는 태국, 필리핀, 대만, 특히 세계 제 2위 음악시장인 일본의 음악차트를 석권했다. 유럽에서는 파리 “SM 타운” 콘서트표가 15분 만에 매진되었다.
하지만 아시아와 유럽은 모국어가 아닌 언어로 된 미디어를 적극 수용해 온 전적이 있다. 일본, 중국, 한국을 비롯해 다수의 아시아 국가 초등학교에서 영어는 필수과목이다. 유럽인의 절반 이상은 제 2외국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한편 이곳 미국의 경우, 영어 이외의 언어로 대화를 할 정도의 실력이 되는 미국인은 5분의 1 미만이다. 비영어권 노래가 팝 차트에서 히트를 치는 경우가 종종 있는(이런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한 경우도 6번이나 되며 가장 최근의 예는 로스 델 리오의 스페인곡 “마카레나”다) 이 나라지만 이 곡들은 예외 케이스이며 현실은 ‘미국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영어로 불러야 한다’이다.
그것이 소녀시대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데 티파니와 제시카가 그렇게 중요한 역할을 한 이유다. 숨피의 강 CEO는 “여기서 성공할 수 있는 그룹은 소녀시대나 2NE1일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2NE1은 미국 힙합그룹 블랙아이드피스의 윌, 아이, 엠에게 사사받고 있는 4인조 한국 걸그룹으로 이 가운데 세 명이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멤버 중에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미국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데 큰 차이를 가져온다. ‘외국인’이라는 거부감이 덜할 뿐 아니라 테디 라일리 같은 유명 프로듀서가 곡을 썼고 한국 최고의 기회사 소속이라는 점, 게다가 솔직히 소녀시대 멤버 9명은 모두가 예쁘지 않은가. 이런 것들이 모두 장점으로 작용한다. 멤버가 9명이 되니 남자라면 데이트하고 싶을 만큼 맘에 드는 사람이 한 명은 있을 것이고 여자라면 롤모델로 삼고 싶어할 것이다.”
과연 소녀시대가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한국 음악네트워크 엠넷(Mnet)이 새로이 론칭한 미국 자매 채널 엠넷 아메리카 대표 아담 웨어는 ‘물론’이라고 말한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었고 소녀시대는 그 점을 이용하려 한다. 업계 시각으로 보자면 천재적인 사업가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길 ‘윌, 아이, 엠이나 지미 로바인(소녀시대 미국 앨범 발매사인 인터스코프 사장)이 나보다 K-팝에 대해 더 많이 아는 게 뭐지?’라고 말한다. 답은 섹시하면서도 퇴폐적이지 않고 건강미를 발산하는 매력있고 재능있는 가수들이다. 이들은 소셜 미디어를 이용할 줄도 안다. 디즈니 채널을 졸업할 때쯤의 청소년들은 재미있으면서도 만족스럽고 눈과 귀를 사로잡을만한 무언가를 찾게 되고 유투브에 가서 소녀시대를 보게 된다. 동영상도 보고 춤도 따라한다. ‘정말 마음에 든다.’ 결국 영어도 아닌 노래에 나오는 온갖 손 동작까지 그대로 따라하는 거대한 팬층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이것이 엠넷 아메리카가 기대하는 바다. 작년 한해 엠넷은 4백만에서 1천2백만 가구로 서비스영역을 확대했으며 이제 엠넷 아메리카 방송은 한국의 음악 글로벌 10대 시장 중 9개국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엠넷 아메리카과 모회사인 엠넷은 K-팝이 한때의 유행이나 틈새시장이 아니라 차세대 팝 장르라는 믿음 하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회사는 그동안 콘서트에 역점을 두어 왔다. 최고의 K-팝 그룹을 한데 묶어 M-라이브라 부르는 글로벌 투어팀을 만들기도 했다”고 웨어는 말한다. “엠넷 아메리카에도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MTV가 하던 새롭고 흥미로운 음악장르의 옹호자 역할을 하도록 한다. MTV는 힙합이 주류로 부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거물급 유럽 음악인들이 미국에서 성공하는 데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MTV는 그런 일을 하지 않지만 아시아 팝, 특히 K-팝을 위해서는 우리가 그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웨어는 좋은 점을 지적했다. 1980년대 말과 90년대 초 아-하, 에이스 오브 베이스, 록셋, 더 카디간스, 아쿠아, 그리고 다소 아방가르드한 뷰욕 등 스칸디-팝 물결을 창조해낸 것도 바로 MTV였다. 이들은 매력적인 외모에 노래까지 잘했지만 언어적 한계에 부딪히곤 했다. 이런 음악인들도 미국에서 성공했는데 소녀시대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두 명의 멤버는 미국 태생에, 다른 멤버 몇 명도 제2외국어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영어가사 발음을 따로 적어외워야 했을 스칸디나비아인 선배들을 당연히 능가하지 않겠는가?
소녀시대 티파니는 말한다. “언어는 아무 문제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전세계에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도 우리 음악을 사랑하는 팬층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알게 된 건 음악은 만국공용어라는 사실이다.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 음악이다.”
첫댓글 좋은글이네요. 이번 미국방송 출연은 소녀들에게는 또다시 새로운 신화를 창조하는 시발점이 아닌가 합니다.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