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보 환급금 핑계로 보험금 줄이는 보험사들... 막막한 저소득·중증질환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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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보험 본인부담금상한제에 따른 사후 환급금에 대해 민간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어 저소득층 환자들의 부담이 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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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중증질환자 중 일부가 민간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상품에 가입한 뒤 오랜 기간 보험료를 내고도 고액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 파탄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민간보험사들이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보)에서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라 추가로 보전해주는 의료비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다.
본인부담상한제는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 당시 과도한 의료비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본인이 부담한 연간 의료비 지출액이 소득수준 등에 따라 정해진 개인별 상한금액(2017년 기준 122만~514만원)을 넘어서면 건보에서 그 초과액을 환자에게 돌려주는 제도다. 저소득층이면서 중증질환자의 경우 더 많은 환급금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1년간 총 치료비로 1000만원을 부담한 환자의 경우 본인부담금 상한액이 200만원일 경우 800만원을 추후에 돌려받을 수 있다.
혜택이 점점 강화되면서 건보 환급금도 늘었다. 2010년 4118억원이었던 본인부담상한제 지급실적은 2017년 1조3433억원으로 대폭 증가했다. 2017년 기준 지급 대상자는 69만5000여명이다.
건보에서 돌려주는 의료비는 늘고 있지만 수혜자 가운데 일부는 오히려 고액의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의료비는 병원 치료를 받을 때마다 내야 하는데 건보 사후 환급금은 환자의 소득 등을 정산한 후 1년 뒤에나 지급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간보험사들도 환자가 나중에 본인부담금 상한액을 초과하는 치료비를 건보에서 돌려받게 된다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당장 필요한 치료비를 건보에서도, 민간보험사에서도 받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건보에서 돌려받는 의료비는 늘었건만... 기이한 상황
농협생명 실손보험 가입자인 김아무개(48)씨도 이런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김씨는 희귀질환인 화농성한선염을 앓고 있다. 치료에 필수인 면역억제제 주사, 복용약, 드레싱 처치를 받아야 하는데 한 달 치료비는 150만원이 넘는다.
김씨의 경우 본인부담금 상한액은 310만원 정도다. 1년 치료비 1800여만원 중 310만을 뺀 1490만원은 1년 뒤 건보에서 돌려받게 된다. 하지만 건보 사후 환급금이 나오기 전까지 치료 때마다 청구되는 의료비는 오로지 김씨가 감당해야 한다. 농협생명에 보험금을 지급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실손보험금을 받지못해 매달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대출까지 받았다"며 "1년 뒤 건보에서 사후 환급금이 나오면 보험금을 다시 돌려주겠다, 필요하다면 각서까지 쓰겠다고 (보험사에) 호소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농협생명 측은 보험 약관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약관상 보상하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지급이 어렵다"며 "선지급 뒤 환급금을 돌려받는 것 역시 애초에 보상하지 않는 보험금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밝혔다.
자궁내막암 3기 진단을 받은 이아무개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씨는 "삼성화재가 처음부터 본인부담금 상한 초과액을 제외하고 보험금을 지급했다"며 "건보에서 1년 뒤 돌려받은 돈을 보험사에 주지 않으면 형사처벌한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고 난 뒤에야 보험금을 제 때 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정작 필요할 때 도움 안되는 실손보험... 2009년 뒤바뀐 표준약관
이처럼 보험사들이 강경한 태도를 보이게 된 것은 지난 2009년 10월 실손의료보험 표준약관이 개정되면서다. 개정된 약관에는 '본인부담금의 경우 건보 관련 법령에 의해 건보로부터 사전 또는 사후 환급이 가능한 금액 등에 대해 보상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다.
문제는 일부 보험사의 경우 표준약관 개정 이전에 판매된 상품에 대해서도 해당 내용을 소급해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는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 심사와 관련해 본인부담상한제 적용 때 보험가입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2009년 10월 이전 가입 계약에도 소급해 보상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보 내부에선 민간보험사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건보 노동조합이 공개한 공문을 보면 건보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사후 환급금은 공단이 부담하는 보험급여비용으로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가입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주는 공적급여"라며 "의료서비스 외의 소비재를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 보전 성격의 금품"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후 환급금을 민간보험사에서 공제하고 지급하는 것 자체가 국민건강보험법 및 상한제 도입 취지 등을 고려할 때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며 "이는 민간보험사의 사익을 우선하고,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축소하게 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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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이 공개한 공문을 보면 건보는 "본인부담금 상한제 사후 환급금은 공단이 부담하는 보험급여비용으로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 가입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주는 공적급여"라며 "의료서비스 외의 소비재를 추가로 소비할 수 있는 소득 보전 성격의 금품"이라고 밝혔다. |
ⓒ 국민건강보험공단 노동조합 |
이같은 견해는 판례에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지난 2017년 인천지방법원은 본인부담상한제에 따른 사후 환급금이 민간보험사의 실손보험에서 보상하지 않는 '건보 급여액'과 같은 것으로 볼 수 없다는 내용을 판결문에 담았다.
건보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가입자가 의료비를 실제 지출하기 이전에 지원하는데, 이는 의료비 영수증에 '급여' 항목으로 분류돼있다. 민간보험사의 실손보험은 급여항목을 제외한 나머지 의료비인 '비급여' 항목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한다. 그런데 건보의 본인부담상한제 사후 환급금은 '급여'로 볼 수 없는 특수 형태의 보험금이라고 법원 쪽은 판단했다는 얘기다. 민간 실손보험이 건보 사후 환급금을 일종의 '급여' 항목으로 간주하면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과 대비되는 의견이다.
법원도 문제라는데... 소극적인 금감원
상황이 이런데도 금융감독원은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금감원 보험감독국 관계자는 "2009년 이후에는 약관상 해당 사안이 정확하게 (보험금을 주지 않는) 면책으로 포함됐다"며 "그 이전 계약에 대해서도 앞서 2010년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 내린 바 있다"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은 의료비 청구 시기와 건보 쪽 사후 환급금 지급 시기가 맞아떨어지지 않아 피해를 보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해 표준약관을 개정할 의사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병원에 따라 본인부담금 상한액 초과분에 대해 의료비를 청구하는 곳도, 그렇지 않은 곳도 있어 이를 보험 관련 제도로만 해결하기 어렵다"며 "당장 병원비를 내야 하는 소비자를 위해 가능한 소비자에 유리한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하고 있다, 약관 개정에 대한 의지도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수 순천향대 금융보험학과 교수는 "소득 수준이 어느 선 이하이면서 중증환자인 경우 실손보험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약관에 포함할 수 있다"며 "국회에서 현행 약관은 '제2의 건강보험'이라는 실손보험 취지에 맞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 개정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주 대표도 "현행 제도는 소비자가 건보와 민간보험사에 보험료를 이중으로 내면서 보험사의 배만 불리고 있는 꼴"이라며 "본인부담상한제를 폐지하거나 대폭 축소하고, 이에 들어가는 돈을 현재 건보 비급여로 분류되는 면역항암제 등을 급여화하는 데 쓰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