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fiba.basketball/asiacup/2022/news/korea-s-hulk-ha-seung-jin-was-one-of-asia-s-best-big-men
2000년대의 첫 20년간 아시아 농구무대는 빅맨의 것이었다. 중국의 야오밍은 2000년대 초반을 지배했다. 그가 은퇴하고서는 이란의 하메드 하다디에게 바통이 넘어갔다. 야오밍과 하다디 두 시대를 겹쳐뛴 대한민국의 센터도 이름을 넣을만하다. 그는 하승진, 포틀랜드에서 뛰었던 전 NBA 선수이기도 하다. 피바 아시아컵 무대에서의 활약을 살펴보도록 하자.
십대 거인
하승진은 18세를 갓 넘긴 시점에 2003년 하얼빈 피바 아시아컵 데뷔를 했다. 221cm의 미숙한, 십대 센터의 역할은 5명이 두자릿수 득점을 올린, 잘 훈련된 팀에서는 제한되었다. 하지만 그는 카자흐스탄과의 4강에서 13득점을 올리며 대회 최고의 활약을 보여줬다. 한국은 그 해 결승무대까지 오르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에서 야오밍을 상대한 그의 기록은4점, 파울4개. 하승진의 존재감은 아직 미미했으나, 그가 보여줬던 미래는 밝았다.
뒤늦은 생일선물
2007년은 하승진의 해였다. 세번째 아시아컵 무대를 치르는 하승진은 말그대로, 한국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해 5위에 오른 강팀 요르단을 상대로 하승진은 21득점 12리바운드 4블락 9/13의 필드골로 괴물같은 활약을 보였다. 활약에 힘입어 한국은 70-65로 이길수 있었다. 8월 4일 22살의 생일을 맞은 그가 상대한 것은 레바논. 15득점 10리바운드 6/10의 필드골로 활약했으나, 76-74로 아깝게 지며 생일을 자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3위 결정전에서 25득점 7리바운드, 심지어 이는 경기 후반은 파울아웃된 채로 만들어낸 기록이다. 한국은 80-76으로 승리했고 그는 두번째 메달을 차지했다. 개인 최고의 활약은 아니었지만 한국의 득점과 리바운드를 리드했다 (17.3득점 9.1리바운드) 2007년 도쿠시마에서도 득점 7위, 리바운드 3위, 블락 2위, 필드골 1위-68.7%를 기록하며 대회 최고의 선수중 하나였다.
And another one
2011년 그의 영향력은 줄어들었지만 5연속 대표팀에 출전했다. 말레이시아와의 대결에서 10득점과 4리바운드를 올렸을뿐, 나머지 경기에서는 제한된 역할과 시간으로만 출전했다.
하지만 일본과의 8강전 14득점 7/10필드골, 8리바운드 대회 개인통산 최고기록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007년의 폼을 재현했다.
이 대회에서 한국과 하승진은 또다시 3위, 필리핀을 상대로 70-68로 꺾으며 끝이났다. 5번의 아시아컵무대에서 그는 한국을 4강으로 4번 이끌었으며, 3번 메달을 차지했다. 2007년부터 그는 두자릿수 득점에 약간 모자란 9.9득점을 36경기에 걸쳐 기록했고 6.7리바운드와 58.8%의 필드골을 기록했다. 비록 하승진의 이력서가 야오밍, 하다디 시대의 지배자들에게는 미치지 못할지라도, 그는 분명 아시아컵 무대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였다.
첫댓글 07하킬은 인정ㅎ
폭풍~
죽기 전에 하킬 업글 버전 볼 수 있겠죠?
07하킬이 대만 씹어먹던 생각 나네요
골밑을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있네요.투핸드 덩크, 떡블락 등등..이때가 신체적으로 가장 전성기 였던것 같습니다.
그땐 대만도 곧잘하던 기억이 나네요. 쩐원딩, 첸신안이였나?
nba에서 한경기 13득점 5리바를 기록한적이 있는데...사람들은 폭풍2어시만 기억하는 ㅜㅜ
드랩동기 거인 3인방중에 느바커리어는 최고죠 😂
@One And Only 아하 ㅋㅋ
승진이형 사라...ㅇ..... 응원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