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뛰어난 재질과 내구성을 자랑하는 명검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설속에 등장하는 명검은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텐데 이번 시간에는 실제 장수들이 사용하거나 의례용 이지만 보물로 기록될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명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김유신의 사인검
사
인검, 혹은 사인참사검으로 불리는 명검으로 서라벌 중악에서 선인을 만나게된 김유신은 신비로운 도술을 전수받으며 수행을 하는도중
별의 정기가 서려있는 보검을 얻었다고 합니다. 현재 경주의 단석산에는 칼로 잘라낸듯한 바위가 곳곳에 남아있는데 일각에서는 김유신이
검술 수련을 하면서 바위를 자른 흔적이라고 이야기 하고있습니다. 이후 사인검은 왕실의 종친이나 충신들이 받게 되었고 호랑이의
기운을 받아서 장인 한사람이 평생에 거쳐서 한자루만 만들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성계의 전어도
나
옹대사가 함흥을 지나가던 중 묏자리를 보더니 왕이 날 자리라고 말했는데 우연히 사실을 알게된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땅을
파보았더니 칼자루에 금빛 용머리가 새겨진 칼 한자루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후 이성계 일파가 어떤 무기도 통하지 않는 용의 후손
우왕을 죽일때 전어도를 사용해서 그를 베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고려 말 ~ 조선 초기에 사용된 전어도의 칼 길이는
147cm, 도신 92cm, 자루길이 55cm로 칼집의 길이만해도 103cm 가 넘는 장검이었다고 하네요..
이순신의 쌍룡검
충
무공 이순신이 사용한 쌍룡검에는 "쌍룡검을 만드니 천추에 기상이 웅장하도다. 산과 바다에 맹세한 뜻이 있으니 충성스런 의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도다."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쌍룡검은 이순신이 실제 전장에서 사용한 명검이기 때문에 국보로
지정될만한 가치가 있지만 1912년 이후부터 행적이 묘연한 상태로 2010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쌍룡검의 행방을 추적했지만
해외로 반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백제의 칠지도
상
당히 기괴한 모습을 하고있는 칠지도는 백제의 진지왕 4년에 만들어진 검으로 현재는 일본 국보 고고자료 제15호로 지정된
상태입니다. 길이 74.9cm 도신에는 고급 기술인 금상감 기법을 사용해서 62개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실제 사용하는 무기가
아니라 의례용 또는 장식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칠지도의 명문 해석과 관련하여 한일 역사 학계에서는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있는데 크게 3가지 사료로 나뉘어진 임나일본부설과 광개토왕릉비의 실재 여부를 입증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입니다.
해모수의 용광검
북
부여를 세운 해모수가 사용하는 삼신기중 하나로 태양의 힘을 쓸 수 있는 결정체를 용광검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부여와 고구려의
건국신화에 따르면 해모수가 하늘에서 내려올때 오룡거 (다섯 마리의 용이 이끄는 수레)를 타고 왔으며 머리에는 검은 까마귀 털로
꾸민 오우관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도를 차고 있었다고 하는데 사실 여러모로 신비에 싸인 신화적 인물이기 때문에 용광검 또한
실존했는지 정확한 여부를 확인하기는 어려운 부분입니다.
경주 계림로 보검
유
럽 혹은 중동지역에서 만들어 진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경주 계림로 보검은 현재 보물 제 635호로 지정되 있으며 5~6세기
신라시대의 검으로 발굴당시 다양한 매체에서 황금보검으로 소개 되었습니다. 1973년 미추왕릉 인근에 있는 계림로 도로공사현장에서
발견된 계림로 보검은 철로 제작한 칼날과 칼집은 삭아서 없어졌지만 보석으로 장식된 부분은 온전히 남아있는 상태로 불가리아에서
발견된 트라키아 시대의 유물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주며 서역에서 건너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