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이사를 그리 많이 다니지 않은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사1.
대학다닐때, 졸업후 일본가서 공부할 때는 혼자 몸이라 이사다니기도 쉬웠다.
안산에 직장을 구하고, 아내 만나 결혼할 때 방 두칸 짜리 다가구 전세집에서 살다가
첫 아이가 태어난지 두 달만에 지금의 빌라를 사느라 은행 대출을 무려 이천 만원이나 받았다.
빌라가 대단지고 당시 좀 이름이 있어서 33평이 6400만원 하였다.
이자가 평균 12%대여서 받는 월급에서 원금과 이자가 나가는게 얼마나 많던지....
나중에야 아파트 살걸 후회해 본적이 있다.
둘째, 셋째까지 지금 살던 집에서 아주 어린시절을 보냈다.
이사2.
셋째가 태어난지 두 달 되었을때 영종도 건너 신도라는 작은 섬에 부임해서 관사에 살았다.
인천공항이 한창 건설 중이라,
월미도에서 여객선을 타고 영종도 선착장에 도착하고,
영종도를 가로질러 삼목선착장에 가면 어선보다 조금 더 큰 작은 여객선이 하루 몇번씩 섬을 오갔다.
작은 배 아래 들어가면 옹기종기 동네 어른들이 인천을 다녀오느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태풍이나 파도가 조금이라도 높으면 배는 출항을 못했고,
영종도에 주차해두지 않고 차를 싣고 섬에 들어갈때면 배삯이 비쌌다.
인천공항이 개항할 무렵 영종대교가 개통되고 섬밖을 나오기가 그나마 수월해졌다.
지금은 큰 여객선들이 수시로 다닌다.
그때는
아직 팬션들이 많이 생기기 전이라 섬의 경치도 너무 좋았고,
나는 시간 날 때 마다 필름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거나
시티100을 타고 집뒤 포장도 안된 구봉산을 굉음을 내며 오르내기도 하였다.
한눈에 강화도, 인천시내, 영종도, 장봉도, 대부도 지역까지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마당에 꽃밭도 가꾸고 완전 전원주택처럼 만들어 4년을 살았다.
이사3.
안산에 다시 부임해서 관사 26평 주공아파트에 들어왔다.
교통이나 교육환경은 너무 좋았지만 말이 26평이지 실평수가 작아서 참 좁게 살았다.
살던 빌라는 직장때문에 나가서 살던 결혼 안한 동생이 들어와 살았다.
관사여서 전세나 월세나 필요없고 관리비만 내면 되서 그나마 적은 월급이지만 아이들 키우기가 쉬웠던 것 같다.
여기서 4년을 살았다.
이사4.
중국 연길로 한겨울인 2월에 이사했다.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새로 사업을 해보겠다고 연고도 없는 연길에 가기로 했다.
아파트 살면서 가지고 있던 오래된 가구는 다 버리고
집안과 사무실에 가득 채워져 있던 책들은 몇권을 제외하고 후배들을 불러서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었다.
타던 차도 두 대 처분하고 아이들 옷가지와 당장 필요한 그릇 몇종류를 포장하니,
우체국 박스 좀 큰거 25개다. 트렁크 각자 1개씩 다섯개..
다섯 식구인데 이삿짐이 이것밖에 안된다니 놀랐다.
미니멀 라이프의 실천처럼 보였다.
연길 아파트는 실평 26평 정도이고 7층이었는데 엘베가 없었다.
중국은 이정도 높이에는 엘베가 없어도 문제 없단다.
아이들이 학교다니고 아내가 시장보기에 너무 힘들었다.
당시 월세 700위안으로 15만원 정도 되었다.
중국집은 보통 침대 한 두개, 냉장고, 세탁기, 물통정수기 정도는 기본적으로 주인이 준비해 준다.
겨울난방만큼은 시내 어느 아파트 보다 잘 들어왔다.
연길시 재정국 소유 아파트라서 석탄을 빵빵하게 태워주었다.
7층에서 일년을 살고, 2층에 실평 40평 월세 1200위안 짜리가 나와서 당장 이사하고 3년을 살았다.
국제학교가 코앞이었지만 아이들 통학과 회사를 출퇴근 하려고
에어컨도 옵션인 작은 빵차를 새차로 하나사서(8백만원 정도 주었고 다마스 보다 조금 더큼)
4년동안 잔고장 없이 잘 타고 다녔다.
이 차로 백두산도 가고 두만강도 가고 용정도 가고 소위 연변자치주 지역을 엄청 다녔다.
이사5.
또 4년을 살고 추운 2월에 한국으로 다시 이사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친구들을 떠나는게 서운했던지 좀 더 살다가 가면 안되냐고 말한다.
한국에서 들어갈 때 처럼 쓸만한거는 다 나눔하고 또 박스와 트렁크에 꼭 필요한 짐만 가지고 나왔다.
다행히 한국에는 집이 있다.
빌라에 살던 동생이 결혼하면서 거의 일년을 비워두었던 집을 손보고 들어왔다.
그동안 건설사의 부실시공으로 말이 많았는데 이사들어 오던 해 부터 재건축이야기가 나오고 곧 조합이 만들어졌다.
95년-21년 사이에 집 값은 약 6천에서 3억 정도로 올라 있었다.
처음 부터 작은 아파트를 샀더라면 재건축 할 때 돈이 덜 들었을 텐데
편하게 좀 넓은 집에 살자고 빌라를 산것인데 자기 부담금이 부담된다.
이주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고 서류정리 다하고 이삿짐을 옮겨줄 회사도 예약했다.
아이들은 한 때 나마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라고 이사하는 날 빌라단지 한바뀌를 돌며 사진도 찍고 논다.
여기서 10년을 살았다.
이사6.
살던곳에서 10분 정도 거리의 신축입주 아파트를 전세도 아닌 월세로 구했다.
이 도시가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되면서 매매가, 전월세가가 폭등했기에 집 구하는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 출퇴근을 위해 전철역이 가까워야 했기에 인터넷 발품을 많이 팔았다.
이미 주변에는 대단지 아파트가 많이 생겼고,
이사한 곳은 1300여세대 단지인데 32층 중 19층이고, 64가구에 엘베는 단 한대다.
그나마 단지 시설도 좋고, 재래시장을 비롯 동네주변에 필요한 것은 이미 다 있어서 맘에 든다.
이곳에서 3년 정도를 살아야 할 것 같다.
금욜에 이사하고 추석연휴에 정리하고, 어제 동네한바뀌 돌아보았다.
3년 지나면 다시 입주할 아파트가 있을 것이고, 그때 아파트 값도 오를 거라 생각은 한다.
잘 된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잘되긴 해도 그리 행복할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부담금이 부담되기 때문이고,
바다와 들과 마당이 있던 섬에서 살던 시절이나
두만강 앞 연길에서 강건너 사람들 보며 살던 시절
좁던 주공아파트에서 시끌시끌 살던 때 처럼 뭐 그리움이나 추억을 다 큰 아이들에게 다시 줄 수 없기도 하다.
뱃머리는 영종도 삼목선착장 뒤에 보이는 산은 신도 구봉산 능선-작년 사진
살던 빌라에서 이삿날 기념사진 찍은 아이들
이사한 곳 19층에서 바라본 초지역과 시내외곽
첫댓글 멋진 인생이십니다
흥미롭게 잘 봤습니다 정말 힘들지만 멋진 인생사셨네요 전 이제 겨우 한번 이사했는데 그만큼 고생도 추억도 없어서 뭐 할말이... ㅎ이사 자주 다녀야 부자된다고하는데.. 가족들 아이들 모습 너무 행복해보입니다 부럽네요
잘 봤습니다
도시 아파트나 빌라 살때는 이삼년만 살아도 싫증이 났지요 열번정도 이사 다닌거 같네요 시골 마당있는 집으로 이사오니 사오년 살았는데도 싫증은 안나고ᆢ더 늙기던에 도시 근교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올리신 글 읽으면서 ᆢ참 좋은, 맑은 분이라는 느낌이 옵니다
분명 담담하게. . 최대한 줄여가며 간단히 써내려 가신 글일텐데 이상하게 감동적이고 울컥합니다. 백두산, 연길에서 찍으셨을 사진도 궁금하구요. 빵차도 궁금해요 ㅎㅎ
고단함이 묻어나는 이사 스토리인데 왜 이렇게 아름답게 느껴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