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자 김범수(55) 의장이 이재용(53) 삼성전자 부회장을 제치고 한국 최고 부자에 등극했다. 29일 블룸버그통신은 “김 의장은 134억달러(약 15조4000억원)의 순자산을 보유해 121억달러(약 13조9000억원)의 이 부회장을 제치고 국내 1위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그것은 자수성가한 기술·기업가들이 한국의 수십 년 역사를 지닌 재벌들을 넘어서 어떻게 한국의 부자 목록에 오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전했다.
김 의장은 지긋지긋한 가난을 딛고 일어선 흙수저 출신이자 국민기업 카카오톡을 창업한 자수성가의 대명사로 불린다. 그는 전남 담양에서 서울로 이사 온 부모 밑에서 2남3녀중 셋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막노동과 목공일을, 어머니는 식당일을 해가며 그를 키웠다. 할머니를 포함해 여덟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김 의장은 친척집 골방에서 공부하며 5남매 중 유일하게 대학을 갔다.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던 시절, 마음이 흐트러질 때마다 '혈서'를 쓴 일화도 유명하다. 이처럼 지독한 가난을 겪은 김 의장은 스스로로 가난에 대한 트라우마를 종종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던 저는 30대 시절에 이를 때까지 '부자가 되는 것'을 오직 인생의 성공이라 여기며 달려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김 의장의 가족에 대한 주식 증여와 전 재산 절반 기부는 모두 화제가 됐다. 김 의장만의 가난을 극복했다는 증명이었기 때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 1월 아내와 자녀를 포함한 친인척에게 카카오 주식 33만주를 증여했다. 이는 유년시절 함께 고생했고 자신을 뒷바라지하며 희생한 누나와 동생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 2월 밝힌 전 재산 절반 기부 역시 김 의장의 철학이 돋보인 장면이었다. 자신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은 만큼 기부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의지였다. 김 의장은 당시 "빈부 격차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세우고자 노력하고, 아프고 힘든 이들을 돕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의장은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 없이 스스로 최고의 기업을 일궜다. 김 의장은 1992년 서울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하고 삼성데이타시스템(현 삼성SDS)에 입사했지만, 1998년 스타크래프트 열풍을 보고 창업을 결심했다. 한양대 앞에 '미션 넘버원'이라는 이름의 PC방을 차린 뒤, 이때 번 돈으로 1998년 11월 한게임을 창업하기에 이른다. 2000년에는 삼성 입사 동기였던 네이버의 이해진 의장과 한게임을 합병한다. 바둑, 테트리스 등 웹보드게임 인기를 바탕으로 빠른 성장을 거두지만, 김 의장은 2007년 8월 대표직을 내려놓고 홀연히 미국으로 떠난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한 미안함 때문이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자 김 의장은 카카오톡과 함께 돌아왔다. 무료 메시지 전송으로 큰 인기를 얻은 카카오톡은 출시 4년 만인, 2013년 누적 가입자 1억명을 돌파할 정도로 승승장구한다. 이후 국내 2위 포털사이트인 다음과 합병, 카카오뱅크, 카카오택시, 모빌리티, 게임,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전방위적으로 사업을 확대하며 한국에서 네 번째로 큰 회사를 만들었다.
김 의장은 2009년 NHN을 떠나며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의 존재 이유는 아니다'라는 구절을 남겼다. 항상 도전을 마지않는 정신이 김 의장을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 자리로 끌어 올렸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