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스의 눈
최정윤
카페를 트램으로 상상하기
그러면 시간을 달리는 걸 느낄 수 있지
(못 말리는 이 영원의 비포장도로 여기서 탈선은
개근보다 흔해 빠진 일)
창을 열면 단지 계절 탓만은 아닌
시원한 바람이 들이치고
잔 속에서 녹는 얼음이 카페의 속도를 증명한다
얼음이 녹으면 짜이 맛이 밍밍하니까
천천히 빠르게 들이킬 것
내일과 내생 중 어느 게 더 가까운 다음 역인지 티베트 격언
우리는 알 수 없으므로
트램을 카페로 상상하기
그러면 옆자리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걸기 쉬워지지
이 트램은 영화도 틀어주나 봐요
사람들이 걸어가고 나무가 흔들리는 장면이
무성영화 치고 참 생생해요 영화 제목이 뭔가요
여몽환포영?
안 어울리게 고상하군요
눈을 감았다 뜨기
당신은 폭주족이 운전하는 난폭한 카페에서 음료를 쏟거나
분위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오는 트램에서 수다를 떨고 있다
상상이 아니었잖아
내뱉는 순간
커피 내리던 트램 기사와
운전하던 카페 직원이 동작을 멈추고
세계의 온갖
모든 눈이 당신을 응시할 것이다
대단한 스펙터클이 있었던 건 분명하지만
정작 줄거리는 설명할 수 없는
간밤의 꿈에서 그랬듯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느린
에 유의할 것
죽이는 생각
사람들 머릿속에는 죽이는
생각뿐이다
애인을 죽이고 시간을
죽이고 기를 죽이고 숨을 죽이고
죽이고 죽이다가 언젠가 죽고 말,
사람인 나도 죽이는
생각 중이다
시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시가 너무 아름다워서
사람이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이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죽는다면
과로사보다는 우아하고 돌연사보다는
유쾌할는지
아름다운 언어로 인한 죽음,
이름하여 ‘미어사’가 호상 중의 호상이 되어
모두들 앞다투어 시인에게 달려갈지
아니 그 이전에
나를 얼마나 죽이고 죽여야
예뻐 죽을 만큼의 말이
튀어나올지
이러다 죽겠지
생각하면서
나는 무턱대고 아름다움의 급소를
겨누고 있다
내 손끝은 뾰족하지도 않은데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면?
세상에 모든 경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종교도 국가도 없는 세상을 노래했던 존 레논이 생각난다. 하지만 종교나 국가만 없는 게 아니라, 우리의 시공간이 마치 점토와 같아서 손 가는 대로 마음껏 만질 수 있다면 더 재미있고 자유로울 텐데. 카페가 트램이 되고, 트램이 카페가 되고, 내일은 어제가 되며 어제가 내일이 된다. 존 레넌이 멀쩡히 돌아와 새로운 노래를 작곡하고, 나는 꼬마 시절의 부모님을 만나 소꿉놀이를 할 수도 있다.
지난 겨울 짜이 인도식 밀크티. 홍차와 우유에 카더멈, 마살라, 생강 등 각종 향신료를 넣어 끓인다.
를 끓이고 또 마시며 이런 터무니없는 생각들을 했다. 짜이를 끓이는 행위에는 어딘가 시 창작과 유사한 면이 있어서, 그 시간만큼 나는 망상할 자유를 얻는다.
더 많은 이들에게 망상할 자유가 주어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 망상을 극도로 혐오하는 세력으로부터 돌팔매를 맞을 것 같아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게 된다. 망상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망상에 빠진 사람들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총알이 날라와도 솜뭉치로 바꾸면 그만, 꿈이 괴롭다면 깨면 그만일 일. 두려움을 무기로 세상을 주무르려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무서운 게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