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시와 서사시의 창작법
손병흥
문예창작에서 서정시(抒情詩)와 서사시(敍事詩)는, 같은 시이면서도 창작의 원리와 표현 방식이 다릅니다. 서정시는 '마음'을 노래하는 시이고, 서사시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시입니다. 두 갈래의 특징을 이해하면, 작품의 깊이와 완성도를, 크게 높일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문예창작은 영감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론(원리) → 관찰(체험) → 창작(실천) → 퇴고(완성)의 과정을 반복할수록, 작품의 깊이가 더해집니다.
문학은 감정과 이야기가 만나는 예술입니다. 서정시는 마음을 노래하고, 서사시는 삶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뛰어난 작품은 이 둘을 조화롭게 아우르며, 독자의 마음과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꾸준히 개성적인 자신만의 작품 세계에도 이러한 균형을 의식하여, 창작 시 감정의 깊이와 이야기의 흐름을 함께 살리신다면, 더욱 풍성한 시적 성취를 이루실 수 있을 것입니다.
1. 서정시(抒情詩)란?
서정시는 시인의 내면 감정과, 정서를 압축하여 노래하는 시입니다. 외부의 사건보다 마음의 움직임이 중심이 됩니다.
특징
- 감정과 정서를 표현한다.
- 이미지와 상징을 중요하게 사용한다.
- 운율과 음악성이 살아 있다.
- 사건보다 순간의 느낌을 포착한다.
-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
예)
낙엽 한 장이 떨어진다.
가을도 내 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 여기에는 특별한 사건은 없지만 감정이 중심입니다.
서정시 창작의 원리
① 감정의 씨앗을 찾는다.
좋은 서정시는 작은 감정에서 시작합니다.
예)
그리움
외로움
기쁨
설렘
감사
후회
희망
- 감정이 선명할수록 시도 선명해집니다.
② 감정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좋은 시는
"나는 슬프다." 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빈 의자 하나가 하루 종일 창밖만 바라본다." 처럼, 이미지로 보여 줍니다.
- 이를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이라고 합니다.
③ 자연과 연결한다.
한국 서정시는 자연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예)
꽃 = 사랑
강물 = 세월
산 = 인생
바람 = 자유
별 = 희망
- 감정을 자연에 이입하면, 시가 더욱 깊어집니다.
④ 함축성을 살린다.
긴 설명보다, 한 줄의 여운이 오래갑니다.
예)
"어머니가 보고 싶다." 보다
"저녁 굴뚝 연기 하나 고향을 먼저 데려온다." 가, 더 시적입니다.
⑤ 여백을 남긴다.
독자가 상상할 공간을 남겨야 합니다.
시는 모두 설명하지 않습니다.
서정시 창작 공식
관찰
↓
감정 발견
↓
이미지 선택
↓
상징 부여
↓
운율 만들기
↓
여운 남기기
예시)
봄비
봄비가 내린다
메마른 들판보다
먼저 젖는 것은
기다리던 내 마음이다.
2. 서사시(敍事詩)란?
서사시는 이야기를 가진 시입니다.
인물과 사건, 시간의 흐름이 존재합니다.
고전의 「동명왕편」, 「용비어천가」처럼 긴 작품도 있지만, 현대에는 짧은 서사시도 많이 창작됩니다.
특징
- 이야기 구조가 있다.
- 등장인물이 있다.
- 갈등이 있다.
- 사건이 전개된다.
- 마지막에 의미를 남긴다.
서사시 창작법
① 주인공을 만든다.
누가 이야기의 중심인가?
예)
농부
노인
아이
여행자
어머니
산새
강물
나무
- 사람이 아니어도 됩니다.
② 사건을 만든다.
예)
비가 온다.
↓
농부가 논으로 간다.
↓
모내기를 한다.
↓
무지개가 뜬다.
- 이것이 이야기입니다.
③ 갈등을 만든다.
좋은 이야기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예)
가뭄
폭설
이별
질병
실패
외로움
도전
- 갈등이 있어야 긴장감이 생깁니다.
④ 변화가 있어야 한다.
처음과 끝이 달라져야 합니다.
예)
두려움
↓
용기
외로움
↓
희망
가난
↓
감사
⑤ 교훈을 억지로 넣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야 합니다.
서사시의 기본 구조
도입
↓
사건 발생
↓
갈등
↓
절정
↓
해결
↓
여운
예시)
모내기
새벽 안개가 논을 덮었다.
아버지는 낡은 장화를 신고
한 걸음씩 물속으로 들어갔다.
모 한 포기 심을 때마다
허리는 더 굽어 갔지만
가을은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의 노동과, 시간의 흐름을 이야기로 보여 주는, 서사시의 한 예입니다.
서정시와 서사시의 차이
구분 서정시 서사시
중심
감정
이야기
표현
이미지
사건
시간
순간
흐름
인물
없어도 됨
필요
구성
정서의 전개
사건의 전개
독자 반응
공감
몰입
두 갈래를 결합하는 방법
현대시에서는 서정성과 서사성을, 함께 활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농부의 하루를 이야기로 전개하면서도, 그 속에 노동의 기쁨과 자연에 대한 감사, 삶의 성찰을 녹여 내면, 한 편의 서정적 서사시가 됩니다.
새벽 어스름, 논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하루의 시작이라는 사건을 품고 있지만, 물결에 비친 하늘과 흙냄새 속에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마음은 서정이 됩니다. 이야기가 정서를 품을 때, 시는 더욱 깊은 울림을 얻습니다.
창작을 위한 실천 연습
서정시 연습: 하나의 감정(그리움, 기쁨, 감사 등)을 정하고, 자연물 하나를 선택하여, 그 감정을 직접 말하지 말고, 이미지로 표현해 보십시오.
서사시 연습: 일상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하나를 떠올려, '도입–사건–갈등–변화–여운'의 순서로, 10~20행의 시를 써 보십시오.
결합 연습: 같은 소재를 먼저 서정시로, 다음에는 서사시로 각각 써 보며, 표현 방식의 차이를 비교해 보십시오.
참고도서
김준오, 『시론』, 삼지원.
오세영, 『현대시론』, 새문사.
정끝별, 『시심』, 문학동네.
이숭원, 『문학의 이해』, 태학사.
손병흥, 『문예창작 징검다리』, 도서출판 보건.
손병흥, 『문학아카데미 시 수필 창작강좌』, 도서출판 보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