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사랑을 전달하는 천사들의 집~!
 
 
 
카페 게시글
....................♡ 병무기자 스크랩 75세 할머니가 만화로 그려보는 6·25
호박조우옥 추천 0 조회 50 16.11.28 17: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75세 이춘자 어르신이 초상화를 그리는 중>




"너희는 노래하고 춤추니? 우리는 만화 좀 그려~!"

"시니어 만화가 '누나쓰' 회원이거든~!"


60세 이상 시니어들로 구성된 새내기 만화가들이 펜을 들었습니다. 빼꼼공원을 찾은 시민들에게 '누나쓰' 회원들이 무료로 초상화를 그려서 나눠줬습니다. 28청춘 어머니기자의 초상화도 그렸는데  길게 땋아내린 머리와 모자를 포인트로 잡아서 멋지게 그려낸 솜씨를 보니 만화작가로서 재능이 돋보였습니다. 새내기 시니어 만화가들의 도전하는 모습에서 뜨거운 열정이 끓어 올랐습니다.




<이춘자 어르신이 만화로 그린 6·25 전쟁이야기 빼꼼공원에 전시>



<춘자랑 누리랑>




공원내에 전시된 이춘자(75) 어르신의 '춘자랑 누리랑' 만화 이야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어르신이 그려낸 만화를 보니 7세의 손녀에게 6·25를 겪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내용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손녀가 할머니의 6·25 시절에 어려웠던 이야기를 듣고 깨우침을 받게 됐습니다.  

할머니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전쟁이야기 한 번 들어볼까요?




<75세 이춘자 어르신이 손녀 누리양에게 들려주는 6·25 전쟁이야기>




7세 어린 누리가 유치원에 가기 싫다며 울었습니다.

75세의 이춘자 할머니는 누리양을 데리고 유치원에 함께 가겠다며 달랬습니다.

폴짝 뛰며 좋아하는 어린 손녀에게 전쟁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손녀 누리양에게 할머니가 겪었던 6·25 이야기를 해주고>




6·25 전쟁시절 7세였던 할머니는 지금의 손녀와 같은 나이였어요.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지요.

갑자기 비행기 소리가 엄청 크게 나고 폭탄이 터지면서 '쾅~쾅~쾅~!' 굉음이 울렸어요.





<할머니의 어린 시절은 전쟁으로 모든 게 힘들었단다>




6·25 전쟁이 시작되고 곳곳에서는 빗발치는 총탄과 대포로 건물이 무너지고 아수리장이 됐지요.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마을은 불에 탔어요. 계속되는 공격으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죽었어요. 간신히 살아 남은 사람들은 평화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서 남쪽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했지요.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지요. 열차 지붕위에도 올라타서 이불을 둘러싸고 추위를 버텨야했지요. 그 시절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없어서 매우 춥고 배가 고파 힘들었지요.


열차를 타지 못한 사람들은 머리에 짐을 이고 허리엔 아기를 업고 줄줄이 걸어서 피난을 떠나야 했지요. 한강 다리를 건너다가 폭격을 당해 끊어진 다리 위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지요. 피난민들의 행렬 위로 폭탄이 떨어져 불시에 가족을 잃는 고아들이 수없이 많이 생겨났지요.

아이들은 "앙~ 앙~ 앙~" 울면서 가족을 찾아 헤맸지요. "어머니~! 아버지~!"를 부르며 눈물로 콧물로 전쟁터에서 헤맸던 어린 고아들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6·25를 보내고 어려웠던 시절엔 학교도 없어서 공터에서 공부를 했지>




7세의 어린 이춘자 할머니 가족은 무사히 친척집으로 피난와서 살게됐지요. 벼이삭을 지키기 위해 세워둔 허수아비도 보고 메뚜기를 잡아보기도 했지요. 피난 생활은 궁핍했고 아이들은 공부할 학교가 없었어요. 넓은 나무 그늘 아래 공터에 앉아서 공부를 했지요. 책상이 없어서 빳빳한 화판을 들고 다녀야 했구요. 낚시 의자처럼 작은 의자도 들고 다녀야만 했지요. 책가방도 없어서 넓은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지요. 비가 내리는 날에는 학교를 갈 수가 없어서 친구들을 만날 수도 없었어요.



<6·25 시절엔 매우 가난해서 힘들었지>




지금 누리가 다니는 유치원은 현대식 건물로 돼 있어서 비가 와도 갈 수 있지요. 하지만 그 시절엔 학교 건물도 없고 책상도 없고 피아노를 배울 수도 없고, 놀이기구도 없었지요. 시원한 에어컨도 없고 풍선놀이, 비누방울놀이, 등도 할 수 없었지요. 할머니 어린시절엔 팽이치기, 제기차기, 줄넘기, 구슬치기 하면서 놀았어요.


피난민들은 아주 가난했기 때문에 처녀, 총각들이 결혼을 할 때도 예복이 없어서 세탁소에서 예복을 빌려입고 결혼을 했지요. 식이 끝나면 예복을 돌려줘야 했지요. 6·25 시절엔 가난해서 작은 집에서 살았지요. 여름엔 도둑들이 긴 막대기로 창문을 통해 옷을 훔쳐가기도 했어요. 벼룩이 간을 빼먹지..

6·25 전쟁 때는 모든 물자가 부족해서 그만큼 어려웠다는 이야기죠.




<할머니의 6·25 전쟁 이야기를 듣고 7세 손녀가 깨우침을 알게 돼 >




어린 손녀에게 6·25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내 어린 시절의 자화상이 그려졌어요. 고요한 날이 없는 시끌시끌한 시절이었지요. 어린 시절과 젊은 한 때를 그렇게 보냈어요. 돌이켜보니 내 젊은 시절과 우리 역사가 겹쳐 보였어요. 마치 하얀 도화지 위에 흑점이 뿌려져 있는 듯이 보였어요. 쓰리고 고통스러웠던 일을 기억 속에서 더듬어 나가보니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요.




<누나쓰 회원들이 지역 내 어르신들을 위해 초상화를 그리는 중>



<이춘자 만화작가가 그려주신 초상화 좋아요>



<6·25에 대한 만화를 그려주셔서 감사해요. 누리양 가족>




할머니의 6·25 전쟁이야기를 듣고 "할머니~! 유치원 선생님이 도둑이 들면 112에 신고하라고 했어요. 6·25 전쟁 이야기 들어보니 정말 힘들었겠어요. 앞으로는 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유치원에도 잘 다니고 친구들과 싸우지 않을 거예요."라고 누리양이 말했습니다.


"누리가 똑똑하게 자라줘서 유치원 선생님께 고맙다고 해야겠다. 그래 우리 누리 착하구나, 할머니 전쟁 이야기 듣고 많이 깨달았다니 다행이구나. 공부를 많이 배워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훌륭한 사람이 되거라. 할머니가 사랑해 누리야~!"라는 이춘자 어르신의 말속에서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겨있었습니다.




<시니어 만화가 누나쓰가 간다>



<조관제선생님 역시나 누나쓰가 최고쥬. 글쥬.>





'손녀에게 들려 준 6·25 전쟁 이야기'가 만화를 통해 자연스럽게 깨우침을 준 이춘자 어르신의 손녀 사랑이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부족함 없이 풍족한 시대를 살아가는 유치원아이들에게 교훈적인 울림이 됐습니다. 말로만 들려주는 이야기보다 만화로 그려진 이야기가 관심을 높여 주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쓰리고 아팠던 6·25 참상의 산 증인으로서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후대들에게 생생한 교훈이 됐습니다.  두 번 다시는 전쟁의 참상이 재도발하지 않도록 우리 국민 모두가 국방을 튼튼하게 지켜가는데 앞장서야 되겠습니다.









<취재: 청춘예찬 어머니기자 조우옥>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