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gqkorea.co.kr/2017/06/02/%ED%98%90%EC%98%A4%EB%A5%BC-%EC%9D%B4%EB%A6%84-%EC%A7%93%EA%B8%B0-%EC%8B%9C%EC%9E%91%ED%95%9C-%EC%84%B8%EB%8C%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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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이 되어 어버이날 카네이션 카드 뒷면에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꼭 호강시켜 드릴게요”라고 꾹꾹
눌러 썼다. 엄마는 그걸 속 옷 넣는 서랍장에 넣어두었는데, 나는 과자를 사먹기 위해 그 서랍장을 뒤져 동전을 꺼내면서 늘 그
카드를 다시 봤다. 내가 훌륭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학교에서 책에서 TV에서 하여간 온갖
장소와 매체에서 한없이 쏟아졌다. 어른들의 말을 잘 따르되 경직되지는 말 것. 창의적이되 허무맹랑하지는 말 것. 당돌하되 예의
바를 것. 똑똑하되 잘난 체하지는 말 것. 어린이다운 희망과 열정을 가지되 어른 못지않게 바쁜 하루를 보낼 것.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미리 알되 돈에 욕심을 가지지는 말 것. 알면서도 모른 체할 것. 또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책에 쓰여있고, 어른들이 책을 읽으라 했고, 책에는 어른의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쓰여있으니까.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때로는 생각했다. 이 세상은 아이들을 속이기 위한 어른들끼리의 음모가 아닐까. 주문들은 모순적이거나,
허황되거나,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시라도 어른들에게 사랑받지 못하면 생존이 불가능하므로 그런 위험한
생각에 깊이 빠질 겨를이 없었다. 꿈이 뭐니, 장래 희망이 뭐니, 하는 질문에 우리는 가열차게 대답했다. 회사 사장이요,
선생님이요, (유명한) 화가요, (베스트셀러) 작가요, 아무튼 돈 잘 벌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리라는 포부를 대었다. 그 확신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는 시키는 어른도 우리 중 누구도 몰랐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되지 못하면 죽어버리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것은 경쟁 지옥으로 돌진하는 결사특공대의 선언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던 2007년 어느 날, 사회
선생님이 교실에서 영상을 틀어주었다. <2007, 대한민국에서 ‘초딩’으로 산다는 것>. 교실에 앉은 우리는 “학원을
조금만 다니고 싶다”는 말을 남기고 태권도 도복띠로 목을 맨 또래의 이야기에 눈물지었다. 한편으로는 굳이 하고 싶지는 않은 학원
교습이나 과외 혹은 학습지를 몇 개 하는 데 그친, 그렇게 가혹한 환경에 놓이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한편 부모의 고된 노동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들을 호강시키는 번듯한 어른이 되는 것은 어느새 내 행동을 판단하는 기준이자 삶의 목표가 되었다.
그것이 키워준 값을 치르는 당연한 도리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 도리를 다하는 길은 세상에 대해 또 나에 대해 알아갈수록
요원해졌다. 결국 이 세상에서 나는 번듯한 어른이 되기는 글러 먹었다는 결론이 자꾸만 나왔다. 내 유년기와 청소년기 전반은 ‘내가
글러먹었다’, ‘내가 태어나서는 안 될 사람이었다’는 작은 목소리가 지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