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분자 술을 빚다
김종해
고창에서 택배로 보내온 복분자 딸기
커다란 유리병 용기 속에
35도 소주와 설탕에 재워
서재 한 귀퉁이에 저 혼자 두었다
술이 익어가는 석 달 열흘
그간의 입맛 도는 궁합을
나는 짐짓 잊고 지냈다
여름 가고 가을 가고 첫얼음 얼던 11월 하순
술 담근 지 드디어 백날째 되는 오늘
밀봉된 복분자술 유리병을 딴다
나 한 사람의 인생사 속에
날마다 저녁마다 삶의 매듭이 되어주던
한 잔의 술
나이 여든이 지나서
오늘은 내 손으로 술을 빚고 홀로 마신다
누구에게나 숙성되어가는
삶의 사계四季와 시간이 있으므로
삶이여 인생이여 고맙고 즐겁구나
한 잔의 복분자 술이
오늘은 내게 따뜻한 잠언箴言이 되어준다
⸻계간 《시와 함께》 2021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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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 1941년 부산 출생. 1963년 《자유문학》에 시 당선, 1965년 〈경향신문〉신춘문예 시 당선으로 등단. 시집 『인간의 악기』 『신의 열쇠』 『왜 아니 오시나요』 『천노, 일어서다(장편서사시)』 『항해일지』 『바람 부는 날은 지하철을 타고』 『별똥별』 『풀』 『모두 허공이야』 『늦저녁의 버스킹』 등. 시선집 『누구에게나 봄날은 온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