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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웸반야마는 실버 앤 블랙 유니폼을 입은 역대 최고의 선수 중 어디에 이름을 올릴까요?
By 조쉬 파레데스 |
1967년 댈러스 채퍼럴스로 창단한 이래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스포츠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당분간 전체 정규 시즌 승률이 60% 이상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NBA 팀 중 가장 높은 승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5번의 NB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LA 레이커스, 보스턴 셀틱스, 시카고 불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등 4개 팀만이 역사상 더 많은 타이틀을 확보했습니다.
스퍼스 농구의 새로운 시대는 여전히 전성기를 되찾고 2014년 이후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차세대 인재인 빅터 웸반야마의 합류는 이를 위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랑스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 선수는 알라모 시티에서 개인적 영예와 우승이라는 하드웨어의 형태로 성공을 거둔 여러 유명 선수들의 발자취를 따르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2017년 이후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선수 목록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습니다.
프랜차이즈 역사상 최고의 스퍼스 선수 30인 명단을 소개하기 전에 몇 가지 참고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목록, 순서 및 이유는 모두 제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목록에 누락된 선수나 누군가의 순위에 문제가 있다면 제 탓으로 돌리세요(혼자서, 조용히).
이 리스트의 목적상 1년차 선수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도미니크 윌킨스나 존 루카스 같은 선수는 비록 뛰어난 선수였더라도 이 목록에서 볼 수 없습니다.
각 선수의 전체 NBA 커리어가 아닌 스퍼스에서의 시간만 고려했습니다.
제가 전반적으로 적용하는 특정 기준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선수는 NBA 우승에 기여한 공로와 프랜차이즈의 방향성 때문에 더 높은 순위에 올렸습니다.
다른 선수들에 대해서는 선수에 대한 개인적인 느낌보다는 개별 통계와 제 연구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이 선수들 중 상당수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뛰었던 선수들이니까요.
30번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0. 프랭크 브리코프스키(1987-90)
1986-87시즌에 LA 레이커스에서 스퍼스로 트레이드된 프랭크 브리코프스키는 스퍼스에서 세 시즌을 보냈고, 1988년 샌안토니오에서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습니다.
알라모 시티에서 경기당 평균 11.6점, 5.6리바운드, 2.3어시스트라는 상당히 생산적인 기록을 남겼지만, NBA의 샐러리캡 증가로 인해 데이비드 로빈슨이 합류한 지 한 시즌 만에 트레이드되는 불운을 겪어야 했습니다.
브리코프스키는 커리어에서 우승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1996년 시애틀 슈퍼소닉스가 NBA 파이널에 진출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이라이트: 1988년 휴스턴 로케츠와의 경기에서 34점 15리바운드 6어시스트를 기록.
29. 데릭 화이트 (2017-22)
샌안토니오 스퍼스의 많은 드래프트 후기 성공 사례 중 하나인 데릭 화이트는 2017년 전체 29순위로 지명된 이후 시즌이 지날수록 더 나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화이트의 루키 시즌에 단 17경기 만에 그를 풀타임 주전으로 기용할 수 있을 만큼의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화이트는 샌안토니오 시절 막바지에 이르러 리그 최고의 슛 블로킹 가드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고, 전반적인 수비력도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공격력이 잡히기 시작하면서 그는 양면 능력을 갖춘 선수로 거듭났습니다.
안타깝게도 스퍼스는 전면적인 리빌딩을 추진하면서 젊은 핵심 선수들에게 더 큰 활로를 열어주기 위해 27살의 그를 보스턴으로 보내야 했습니다.
그는 앞으로 몇 년 동안 팀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 중 한 명으로 남을 것입니다.
하이라이트: 2019년 덴버와의 플레이오프 시리즈에서 괴물 같은 36점을 기록한 3차전.
28. 로드 스트릭랜드 (1989-92)
뉴욕에서 NBA 커리어를 빠르게 시작했지만, 마크 잭슨의 존재로 인해 1989-90시즌에 닉스는 로드 스트릭랜드를 샌안토니오로 트레이드했습니다.
그는 곧바로 신인 데이비드 로빈슨과 함께 번성하여 스퍼스를 이전 시즌보다 기적적인 35승 반전으로 이끌었습니다.
스트릭랜드는 샌안토니오 시절 내내 부상에 시달렸지만, 세 시즌 동안 경기당 13.9점 8.2어시스트를 기록했습니다.
하이라이트: 1991년 1라운드 1차전 골든스테이트와의 경기: 30점 13어시스트 9리바운드.
27. 빌리 폴츠 (1975-80)
1975년 뉴욕 네츠에서 두 번째로 ABA 올스타에 선정된 빌리 폴츠는 샌안토니오 스퍼스로 트레이드된 후 다시 한 번 올스타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폴츠는 그 시즌 경기당 평균 16.5점, 10.4리바운드, 리그 최고의 3.0블록을 기록했습니다.
1997년 ABA 30주년 기념일에 폴츠는 ABA 올-타임 팀에 선정되었고, 이력서에 ABA 우승(1974년)을 한 번 남기고 은퇴했습니다.
하이라이트: 1977년 뉴올리언스 재즈와의 경기에서 31점, 14리바운드, 6블록의 기록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26. 데니스 로드먼 (1993-95)
프랜차이즈 문화와 선수 개성이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인 데니스 로드먼의 샌안토니오 스퍼스 시절은 확실히 흥미로웠습니다.
한때 "성경을 믿지 않아서 배짱이 싫었다"고 말했던 데이비드 로빈슨 같은 선수의 건전한 성격과 자주 충돌했지만, 그가 코트에서 얻은 결과 중 일부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비록 스퍼스에서 총 128경기밖에 뛰지 않았지만 로드먼은 여전히 17.1리바운드로 스퍼스 프랜차이즈 경기당 리바운드 기록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예상대로 그는 총 리바운드 비율에서도 스퍼스 역사상 1위에 올라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1995년 서부 컨퍼런스 세미파이널 2차전에서 로드먼이 22점 22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스퍼스를 레이커스를 제압합니다.
25. 파우 가솔 (2016-19)
만약 스퍼스가 파우 가솔을 지금보다 10년 정도 일찍 영입할 수 있었다면, 그는 이 목록에서 10계단 정도 더 높은 순위에 올랐을 것입니다.
가솔은 팀 던컨이 떠난 2016-17시즌에 팀의 새로운 스타들인 라마커스 알드리지, 카와이 레너드와 함께 팀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훌륭한 빅맨이었습니다.
가솔은 스퍼스와 계약할 당시 36살의 나이였지만, 당시에도 여전히 기량이 충분히 남아있었습니다.
2017년 오프시즌에 팀이 제시한 연장 계약은 아쉬운 결과로 끝났지만, 파우는 나이와 부상이 겹치기 전까지 실버 앤 블랙에서 여전히 빈티지한 활약을 펼쳤습니다.
하이라이트: 파우는 2017년 유타 재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20,000번째 득점을 기록하며 유럽 선수로는 두 번째로 이 기록을 달성했습니다(더크 노비츠키).
24. 윌리 앤더슨(1988-95)
1988년 전체 10순위로 지명된 윌리 앤더슨은 조지아 출신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첫 시즌 평균 18.6점, 5.1리바운드, 1.9스틸을 기록한 그는 올-루키 팀에 선정되었고, 첫 두 시즌 동안 단 한 경기만 결장했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 7시즌 동안 뛰어난 활약을 펼친 앤더슨은 1995년 확장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랩터스의 지명을 받았고, 30세가 된 후 해외에서 뛰게 되었습니다.
하이라이트: 앤더슨은 3년 간격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1989,1992)를 상대로 커리어-하이인 36득점을 기록합니다.
23. 존 비슬리(1967-72)
이 선수는 앞서 언급한 "개인 통계에 더 많은 재고를 넣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저는 1967년 댈러스 채퍼럴스의 첫 시즌을 함께하지 못했지만, 존 비슬리가 댈러스에서 334경기를 치르면서 기록한 수치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습니다.
1969년 올스타전 MVP 상을 수상하며 첫 세 시즌 동안 올스타에 올랐던 텍사스카나 출신의 파워포워드입니다.
네 시즌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댈러스/텍사스 채퍼럴스에서 경기당 평균 17.9점 11.0리바운드를 기록한 그는 유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하이라이트: 비슬리는 1968년 채퍼럴스의 창단 첫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 경기당 평균 27점을 기록하며 3연승으로 채퍼럴스를 이끌었습니다.
22. 리치 존스(1969-75)
댈러스 채퍼럴, 텍사스 채퍼럴, 샌안토니오 스퍼에서 6시즌을 보낸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그는 6시즌 중 5시즌 동안 평균 16.5점, 8.0리바운드, 3.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습니다.
하이라이트: 리치 존스는 1973년 차파랄 소속으로, 1975년 샌안토니오 스퍼 소속으로 올스타에 선발되었습니다.
21. 스웬 네이터(1973-75)
제 시대 이전의 또 다른 스타였던 스웬 네이터는 1975년에 경기당 평균 16.4리바운드라는 리그 최고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이 목록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네이터는 샌안토니오에서 보낸 두 해를 포함해 6시즌 동안 경기당 평균 12개 이상의 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네이터는 통산 140경기에서 경기당 평균 14.8점, 15.2리바운드, 1블록이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남겼습니다.
만약 그가 샌안토니오에 더 오래 머물렀다면 이 순위에서 몇 계단 더 올라갔을 것입니다.
하이라이트: 스퍼스에서의 첫 시즌에 올-ABA 세컨드 팀에 선정된 스웬 네이터.
20. 패티 밀스 (2011-21)
2012년 3월, 샌안토니오 스퍼스는 중국 농구협회에서 신장 플라잉 타이거즈에서 잠시 활약했던 6-1 포인트가드 패티 밀스를 영입했습니다.
패티 밀스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서 74경기를 뛰었으나 2011년 NBA 리그 중단으로 인해 해외로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10년 동안 밀스는 믿을 수 있는 백업 선수이자 NBA 챔피언,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선수로 성장했습니다.
역대 최장수 스퍼스 선수 중 한 명인 패티의 이름은 여러 팀 부문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브루클린으로 떠날 당시 그는 출전 경기 수 7위(665경기), 3점슛 성공 2위(1,171개), 자유투 성공률 1위(86.7%)를 기록했습니다.
패티는 알라모 시티에서 뛰었던 가장 열정적인 선수 중 한 명이자 가장 친절하고 자선적인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이라이트: 패티 밀스가 가장 중요한 순간, 즉 2014년 NBA의 가장 큰 무대에서 폭발합니다.
19. 테리 커밍스(1989-95)
여름 픽업 게임에서 입은 심각한 무릎 부상으로 인해 샌안토니오에서 보낸 6시즌 중 절반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지만, 테리 커밍스는 스퍼스 커리어 전반기에 보여준 활약으로 꽃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1989-92시즌부터 주전 파워포워드로 활약한 그는 정규시즌에서 경기당 평균 19.3점 8.4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그 기록을 22.7점 9.7리바운드로 더욱 끌어올렸습니다.
무릎 부상 이전 8시즌 동안 경기당 22.4득점 9리바운드를 기록했던 커밍이 무릎 부상 이후 경기당 6.0득점 4.1리바운드에 그친 것을 생각하면 놀랍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이라이트: 1990 서부 컨퍼런스 플레이오프 1라운드 막판 경기에서 커밍스는 28득점 14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덴버를 패권으로 몰아넣습니다.
18. 디존테 머레이 (2016-현재)
이 순위는 확실히 급상승할 가능성이 가장 큰 순위입니다.
수치만 보면 디존테 머레이는 이미 적어도 15위 안에 들 자격이 충분합니다.
하지만 2022시즌을 평균 트리플-더블에 근접한 기록으로 마무리하더라도 더 높은 순위에 올리기에는 아직 한 시즌이 너무 이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머레이가 최근 NBA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스테픈 커리의 말처럼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얼굴로 자리매김한 첫 번째 사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디존테의 다재다능한 플레이는 스퍼스의 역사에서 그를 리더보드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2021-22 시즌에 머레이처럼 통계적인 시즌을 보낸 선수는 리그에서 많지 않으며, 25세의 이 선수에게 조만간 바뀔 이유가 보이지 않습니다.
머레이가 조만간 상위 10위권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그의 한계가 아닙니다.
하이라이트: 데뷔 첫해에 1옵션으로 2022 NBA 올스타팀에 선발된 디존테 머레이.
17. 조니 무어(1980-88, '89-90)
조니 무어의 샌안토니오 시절 기록은 목록에 있는 다른 선수들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의 수명과 포스트시즌 활약은 제 생각에 충분히 뛰어넘는다고 생각합니다.
스퍼스에서 보낸 첫 6시즌 동안 무어는 경기당 평균 10.5득점, 8.7어시스트, 2.2스틸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플레이오프에서는 경기당 14득점 10.1어시스트로 기록을 끌어올렸습니다.
안타깝게도 무어는 1985년 사막열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30세가 되기도 전에 농구 선수 생활을 마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어는 팀 어시스트, 스틸, 트리플-더블 부문에서 상위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조니 무어는 1983년 NBA 플레이오프 1, 2라운드에서 11경기 평균 22.5득점, 14.6어시스트, 2.5스틸을 기록하며 눈부신 활약을 펼칩니다.
16. 아티스 길모어 (1982-87)
드디어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비록 전성기는 스퍼스에 합류하기 전이었지만, 아티스 길모어는 샌안토니오에서 30대 중반까지 5시즌 동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 보낸 첫 시즌과 네 번째 시즌에 NBA 올스타팀에 선정된 그는 여전히 리그 역사상 가장 효율적인 득점원 중 한 명으로 남아있습니다.
길모어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동안 총 6번이나 필드골 성공률에서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그 중 2번은 실버와 블랙에서 기록했습니다.
그는 경기당 평균 16.5점, 11.1리바운드, 2.2블록을 기록하며 1987년 스퍼스 커리어를 마감했습니다.
하이라이트: 아티스는 36세의 나이에 경기당 평균 16.7득점, 8.5리바운드, 1.5블록을 기록하며 마지막 NBA 올스타에 출전했습니다.
15. 제임스 사일러스(1972-81)
휴스턴 로케츠가 1972년 제임스 사일러스를 드래프트한 후 그를 포기했을 때 큰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6-1의 가드였던 사일러스는 댈러스 채퍼럴스에 입단하자마자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이 도박은 이후 9시즌 동안 큰 결실을 맺었습니다.
사일러스는 1972-73 올-루키 팀에 뽑혔고, 이후 2년차와 3년차에 두 차례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알라모 시티에서 보여준 그의 위대함으로 인해 그는 1984년 스퍼 역사상 최초로 등번호를 영구결번 시켰습니다.
하이라이트: 사일러스는 경기당 평균 득점(23.8점)과 어시스트(5.4개)에서 모두 커리어-베스트 기록을 세우며 1976년 마지막 올스타에 출전했습니다.
14. 앨빈 로버트슨(1984-89)
전 스퍼 디존테 머레이가 가장 닮은 선수를 꼽으라면 양면성을 지닌 앨빈 로버트슨입니다.
머레이가 겨우 10살이었을 때 로버트슨은 두 시즌 연속 경기당 스틸 부문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로버트슨은 엘리트 수비 외에도 포지션과 사이즈에 비해 리바운드(5.4)가 매우 뛰어났으며, 경기당 16점을 추가했습니다.
그의 최고의 농구는 1985-86시즌 경기당 평균 17.0점, 6.5리바운드, 5.5어시스트, 3.67스틸을 기록한 2학년 시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을 리그 신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앨빈 로버트슨은 스퍼스 소속으로 3경기에서 10개의 스틸을 기록하며 리그 역사상 최고의 도둑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13. 에이버리 존슨(1990-2001)
이제 샌안토니오에서 우승을 차지한 또 다른 선수를 소개할 차례입니다.
에이버리 존슨의 꾸준하고 과소평가된 커리어는 마침내 '빅 펀더멘털'이 등장하면서 보상을 받았지만,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마침내 큰 순간이 찾아왔을 때쯤에는 더 많은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스퍼스에서 10년 이상 활약한 소수의 선수 중 한 명인 존슨은 통산 4,47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프랜차이즈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입니다.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퓨어 포인트 가드의 정의였으며, 동료들을 세팅하는 능력으로 팀원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코트 밖에서도 커뮤니티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이라이트: Little General이 스퍼스의 첫 번째 우승에서 가장 빅 슛을 터뜨렸고, 이는 향후 20년 동안 여러 차례의 우승으로 이어졌습니다.
12. 더마 드로잔 (2018-21)
훌륭한 조연진의 부재로 인해 결국 스퍼스 팬덤에서 드물게 암흑기를 맞이했지만, 더마 드로잔을 12위보다 훨씬 더 낮게 평가하는 것은 드로잔에게 불쾌감을 줄 것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인 그는 과거를 잊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던 팀의 득점왕이 되었습니다.
드로잔이 샌안토니오에서 적어도 한 번의 올스타 시즌을 보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더 많은 관심을 받았다면 아마도 여러 번 선정되었을 것입니다.
그는 평균 21.6, 6.9, 4.2를 2021년에 기록했습니다.
그가 지금 시카고에서 하고 있는 일은 더 나은 보완 요소로 둘러싸여 있다면 항상 할 수 있었던 일이며, 스퍼스가 스퍼스에서의 훌륭한 기간 동안 그에게 그것을 제공하지 못한 것은 아쉽습니다.
드로잔은 샌안토니오 시절 내내 리그에서 가장 클러치력이 뛰어난 선수 중 한 명이었으며 현재 스퍼스로서 경기당 득점 부문에서 조지 거빈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이라이트: 더마는 2019년 덴버 너게츠를 예상치 못한 7차전으로 몰아넣은 6차전에서 대활약을 펼칩니다.
그는 야투 12개 중 16개를 성공시키며 25점을 기록했고, 7어시스트 7리바운드를 추가했습니다.
11. 마이크 미첼 (1981-88)
조지 거빈과 함께 풀 시즌을 뛰면서도 팀 득점 선두를 달릴 수 있다면, 당신은 특별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84-85시즌 마이크 미첼이 기록한 평균 22.2점은 샌안토니오에서 한 시즌 동안 스퍼스가 아이스맨을 능가한 유일한 기록입니다.
미첼은 커리어 통산 4번이나 득점 10위 안에 들었고, 스퍼스에서 전성기를 보낸 3년 동안 평균 23점 5.7리바운드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유일한 올스타 출전은 클리블랜드에서 이루어졌지만, 알라모 시티에서 그의 유니폼을 은퇴할 자격이 있는 올스타에 몇 번 더 뽑혔어야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1988년에 은퇴했지만 미첼은 여전히 샌안토니오 스퍼스 역사상 필드골과 경기당 득점 부문에서 역대 6위에 올라있습니다.
하이라이트: 1982년 미첼(45)과 거빈(50)은 벅스와의 3차 연장전에서 무려 95점을 합작했습니다. 이는 NBA 역사상 듀오가 기록한 최고 득점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10. 브루스 보웬 (2001-09)
이 목록은 때로는 통계에 의존하고 때로는 감정에 의존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일반 팬이라면 브루스 보웬에 대해 딱히 눈에 띄는 것이 많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샌안토니오라는 도시와 팀의 성공에 있어 그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포포비치 감독은 보웬의 유니폼 결번이 발표되었을 때 "단순한 사실은 브루스 보웬이 없었다면 2003년, 2005년, 2007년에 스퍼스가 NBA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보웬이 우리 프랜차이즈에 얼마나 중요한 선수였는지를 이야기할 때 통계는 의미가 없습니다."
보웬은 8시즌 동안 매일같이 코비 브라이언트부터 르브론 제임스까지 리그 최고의 퍼리미터 선수들을 수비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2002년부터 2009년까지 총 574경기 중 단 3경기만 결장하며 스퍼스의 성공에 필수적인 포지션에서 최고의 아이언맨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보웬은 공격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특히 코너에서 던지는 3점슛은 스퍼스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슛 중 하나였습니다. 스퍼스가 우승을 차지한 2003시즌에는 44.1%의 3점슛 성공률로 리그 1위를 기록했으며, 이는 샌안토니오에서 한 시즌 동안 40% 이상의 3점슛을 기록한 다섯 번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포포비치 감독은 "그의 성공은 노력과 결단력이 실제로 성과를 낸다는 증거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게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하이라이트: 브루스 보웬은 36세의 나이에 2008 NBA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되며 통산 5번째로 올-디펜시브 퍼스트팀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올-디펜시브 세컨드 팀에도 세 번 선정되었습니다.
9. 카와이 레너드 (2011-18)
노력의 대가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가면서 카와이 레너드의 급격한 상승세는 확실히 특별했습니다.
샌디에이고 주립대에서 3점슛 성공률이 25%에 불과했던 그는 킬러 점프슛을 개발하며 샌안토니오의 육성 시스템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갔습니다.
15순위로 지명되었을 때만 해도 레너드가 얼마나 다재다능한 선수인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의 첫 몇 년 동안은 더 큰 스타들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레너드는 세 번째 시즌이 끝날 무렵 NBA 파이널 MVP가 되었고, 다섯 번째 시즌부터는 매년 올스타에 선정되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그의 퇴장을 둘러싼 모든 드라마는 제쳐두고라도, 스퍼스는 레너드가 없었다면 우승 반지를 하나를 갖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이라이트: 2014 NBA 파이널 1, 2차전에서 총 18점을 기록한 카와이는 마지막 3차전에서 경기당 23.7점, 9.3리바운드, 2.0스틸로 폭발적인 활약을 펼치며 두 번의 NBA 파이널 MVP 중 첫 번째 상을 수상했습니다.
8. 션 엘리엇(1989-93, '94-01)
션 엘리엇은 팀 던컨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기 직전의 스퍼스 시대에 큰 역할을 했던 선수입니다.
스퍼스가 그를 트레이드한 짧은 시즌을 제외하고는(그리고 아마도 절대 트레이드되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는 커리어 내내 샌안토니오에서 보냈습니다.
11년 동안 엘리엇은 1996년 샌안토니오에서 열린 올스타전을 포함해 두 번의 올스타전에 출전했습니다.
꾸준히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펼친 것도 인상적이었지만, 신장 이식 수술 후 7개월 만에 코트에 복귀한 것만큼 고무적인 일은 없었습니다.
프로 선수가 신장 이식 수술을 받고 복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복귀 첫 경기에서 그는 2점보다 더 큰 의미를 지닌 원핸드 플러시를 성공시켰습니다.
이 이야기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그의 동생 노엘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기증자라는 점입니다.
션은 기분 좋은 이야기 외에도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플레이오프 슛 중 하나를 선보였는데요,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 않고는 이 글을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하이라이트: 션은 1999년 메모리얼 데이의 기적을 이뤄냈습니다.
7. 라마커스 알드리지 (2015-21)
레너드 신화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라마커스 알드리지를 NBA 챔피언으로 언급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2015-16시즌 카와이 레너드와 함께 빅3에서 2옵션으로 전환한 그는 경기당 평균 18.0득점 8.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그 결과 스퍼스는 프랜차이즈 기록인 67승을 달성했습니다. 스퍼스는 포스트시즌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다음 시즌에는 25세와 31세의 새로운 듀오와 함께 다시 영광을 재현할 수 있는 조연으로 팀을 꾸렸습니다.
알드리지가 샌안토니오에서 보낸 6시즌은 다양한 무기를 보유한 유망주로 출발했지만, 은퇴와 이적을 거치며 암울한 시기로 변했습니다. 이는 모두 기존 스타의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 보낸 6시즌 동안 라마커스는 올스타팀에 세 번이나 이름을 올렸고, 세 명의 명예의 전당 헌액자가 떠나는 팀의 아픔을 덜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라마커스가 커리어를 마감하기 전에 스퍼스에서 마땅히 누렸어야 할 타이틀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이라이트: 라마커스는 2019년 오클라호마시티 썬더에서 20/33 야투 56점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6. 래리 케논 (1976-80)
물론 저는 래리 케논이 스퍼스에서 뛰던 시절에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그의 유니폼이 왜 영구결번 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는 샌안토니오에서 5시즌 동안 경기당 평균 20.7점 10.3리바운드 3.0어시스트를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세 차례 올스타에 선발되었습니다.
스퍼스에서 치른 32번의 포스트시즌 경기에서도 거의 비슷한 평균 기록을 유지했습니다.
케논은 제임스 사일러스, 조지 거빈과 함께 샌안토니오의 원조 빅 3를 형성하며 NBA 영광에 근접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케논의 지문은 프랜차이즈 리더보드 곳곳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현재
필드골 성공 9위
총 리바운드 4위
총 득점 9위
경기당 득점 4위
경기당 출전 시간 2위
경기당 리바운드 7위
경기당 스틸 6위
앙투안 카나 대니 페리 같은 나중의 35번 선수들에게도 감사하지만, 그 등번호는 오래전에 서까래에 걸려 있었어야 합니다.
하이라이트: 1980년, 케논이 디트로이트 피스톤스를 상대로 51득점을 올리며 20점차 승리를 거둡니다.
5. 마누 지노빌리 (2002-18)
NBA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식스맨으로 널리 알려진 마누 지노빌리는 NBA 75주년 기념팀에서 소속될 수 있었던 커리어를 팀을 위해 희생했습니다.
샌안토니오에서 16년간 활약한 그의 타고난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마음과 허슬, 열정에 가려졌을 뿐이었습니다.
샌안토니오는 마누 지노빌리의 존재로 인해 스포츠 역사상 전 세계 팬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노빌리는 상대하기는 싫지만 팀에 두고 싶은 선수의 궁극적인 예시였습니다.
그는 커리어 내내 최고 수준의 선발로 뛸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었지만, 스퍼스에서 선발로 출전한 경기는 3분의 1에 불과했습니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그가 선발로 뛴 두 시즌이 모두 NBA 올스타 출전('05, '11)으로 끝난 것은 실수가 아니며, 그가 이타적인 팀 동료가 아니었다면 몇 번 더 올스타에 올랐을지도 모릅니다.
그렉 포포비치 감독은 지노빌리의 유니폼 은퇴식에서 "마누가 없었다면 우승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맹렬함, 추진력, 승리에 대한 믿기지 않는 의지, 경쟁력은 차트를 벗어났습니다."
지노빌리의 이름은 스퍼스의 기록에 수십 번이나 등장합니다:
3점 필드골 시도 및 성공 부문 1위
출전 경기 3위, 총 출전 시간 5위
자유투 성공 4위
총 리바운드 5위
총 어시스트 4위
총 스틸 1위
총 득점 5위
마누 지노빌리는 스퍼스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사랑받는 선수일지도 모릅니다. 샌안토니오에서 뛰었던 세계적인 선수들을 고려하면 이는 많은 것을 말해줍니다. 최근 지노빌리의 노력으로 올 9월에 1차 투표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될 것이라는 발표가 나왔는데, 이보다 더 자격이 좋을 수는 없죠.
하이라이트: 마누는 디트로이트를 상대로 평균 18.7점, 5.9리바운드, 4.0어시스트를 기록하며 2005년 파이널 MVP 후보에 올랐습니다. 시리즈에서 38.7%의 3점슛 성공률을 기록했고, 우승을 결정지은 7차전에서는 23득점을 기록했습니다.
4. 토니 파커 (2001-18)
샌안토니오 스퍼스로서 토니 파커보다 더 많은 시간을 코트에서 보낸 선수는 단 한 명뿐입니다.
2001 NBA 드래프트 1라운드 마지막 순번으로 지명된 그는 단숨에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공 사례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20살의 나이로 NBA에 데뷔한 두 번째 시즌에 그는 우승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했습니다.
24세에는 NBA 올스타에 두 번이나 선정되었고 NBA 파이널 MVP를 수상했습니다.
모든 것을 종합하면, 그는 4번의 NBA 챔피언, 6번의 NBA 올스타, 그리고 가장 성공적인 포인트 가드 중 한 명이었습니다.
파커를 코트 위에서 특별하게 만든 것은 번개처럼 빠른 스피드와 치명적인 스핀 무브와 킬러 티어 드롭의 조합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6-2에 불과한 키에도 불구하고 페인트 득점 부문에서 종종 리그 상위권에 올랐습니다.
토니 파커가 샌안토니오에서 뛰었던 최고의 포인트가드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NBA 75주년 기념팀에서 제외된 것은 범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그가 컬렉션에 있는 하드웨어에 완벽하게 만족한다고 생각합니다.
파커가 샌안토니오의 커리어 리더들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아보세요:
출전 경기 및 총 출전 시간 2위
필드골 3위
자유투 5위
어시스트 1위
스틸 5위
총 득점 4위
윈쉐어 3위
하이라이트: 토니 파커는 2007 NBA 파이널에서 경기당 평균 24.5점, 5.0리바운드, 3.3어시스트를 기록하며 56.8%의 놀라운 야투율을 기록하며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를 완전히 제압했습니다. 그에게 NBA 파이널 MVP를 수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3. 조지 거빈(1973-85)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득점력과 위풍당당함으로 샌안토니오 농구를 전 세계에 알린 조지 거빈은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공격수 중 한 명이었습니다.
상대 팀에서 그의 득점을 30점 미만으로 제한하는 인센티브로 승격을 내걸었을 정도로 공격에서 압도적인 존재였습니다. 효과가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냉철한 성격 때문에 스포츠계 최고의 별명 중 하나인 '아이스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거빈은 코트 안팎에서 하는 모든 행동에서 냉정함을 뿜어냈습니다.
1977-82시즌까지 5시즌 중 4시즌 동안 경기당 득점 부문에서 NBA를 이끌었으며, 특히 1979-80시즌에는 평균 33.1점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여전히 스퍼 역대 경기당 최다 득점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두 시즌 후 기록한 평균 32.3점은 2위에 해당합니다.
샌안토니오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 지 37년이 지난 지금도 거빈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출전 경기 5위, 총 출전 시간 4위
필드골 2위
자유투 3위
총 리바운드 3위
총 어시스트 6위
총 스틸 3위
총 블록 3위
총 득점 2위
하이라이트: 1983년 포스트시즌에서 거빈은 1라운드에서 평균 28.2점 7.8리바운드, 2라운드에서 레이커스와의 6연전 시리즈에서 22.7점을 기록하며 초인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조지가 없었다면 오늘날 샌안토니오라는 팀이 존재할 수 있었을지 확신할 수 없으며, 이는 카운트다운의 2위에 있는 신사에게도 적용됩니다.
2. 데이비드 로빈슨 (1989-2003)
조지 거빈이 샌안토니오 농구를 지도자 반열에 올려놓았다면, 데이비드 로빈슨은 샌안토니오가 역사적으로 영광스러운 시즌을 보낼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팀을 유지했습니다.
7-1, 235파운드의 체격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매일 밤 그가 했던 일을 할 수 있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그렇게 쉽게 보이게 만들었는지 상상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누구보다 빠르게 플로어를 누비고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제독이 농구 코트에서 한 일은 완전히 불공평했습니다.
네, 빅맨은 슛을 막고 덩크슛을 던져야 하죠.
하지만 공을 coast-to-coast 가져가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71점까지 가는 도중에 미드레인지 점퍼를 얼굴에 박아 넣으면 안 되죠.
저는 1995년경부터 스퍼스의 팬이 되어서 그의 커리어를 절반 정도밖에 보지 못했지만, 직접 보니 더더욱 믿기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렉 포포비치 감독과 샌안토니오에 더 잘 맞았던 것은 그가 코트 밖에서 어떤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빈슨의 팔뚝보다 더 큰 것은 그의 마음뿐이었습니다.
2001년 샌안토니오에 장학금을 통해 교육을 제공하는 카버 아카데미를 설립한 그는 이후 학교에 1,1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습니다.
이는 그가 도시와 세계를 위해 해온 수많은 큰 일 중 하나에 불과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V 암 연구 재단의 이사회 멤버가 되었습니다.
전설이 된 스퍼스의 문화는 모두 로빈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그는 그 과정에서 코트 위에서 프랜차이즈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두 번의 NBA 챔피언으로 은퇴한 로빈슨이 프랜차이즈 리더보드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전 경기 4위, 출전 시간 3위
필드골 4위
자유투 1위
총 리바운드 2위
총 어시스트 7위
총 스틸 2위
총 블록 2위
총 득점 3위
트리플-더블 2위
하이라이트: 데이비드 로빈슨이 챔피언이 된 그의 swan song game은 대단했습니다.
로빈슨은 37세의 나이에 뉴저지를 상대로 13점을 올리고 17리바운드를 잡아내며 자신의 두 번째 NBA 우승을 차지합니다.
로빈슨의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스퍼스는 1997년 탁구공 하나가 모든 것을 바꾸기 전까지 우승의 고비를 넘지 못했습니다.
1. 팀 던컨 (1997-2016)
팀 던컨의 탁월함을 이야기할 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됩니다.
그의 일관성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아니면 그의 수비력에 초점을 맞춰야 할까요?
그의 기본기는 어떨까요?
그가 NBA에서 19시즌 동안 모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는 사실도 분명 언급할 가치가 있습니다.
17시즌 연속 스퍼스를 50승 이상으로 이끈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코트 위에서 팀에 대해 이야기할 것이 너무 많아서 다 다루기 힘들 것 같아서 시도조차 하지 않겠습니다.
어쨌든 통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던컨이 샌안토니오에 완벽하게 적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짐작하셨겠지만 그의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주제가 느껴지기 시작했나요?
던컨만큼 겸손한 자세로 많은 성공을 거둔 슈퍼스타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며, 그는 거의 20년 동안 그것을 해냈습니다.
최근에야 스퍼스의 팬이 된 사람들은 최근 리빌딩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스퍼스에 대해 제가 어떻게 그렇게 낙관적이고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곤 합니다.
제게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렉 포포비치와 팀 던컨의 듀오가 결성되었을 때 이 팀은 엄청난 축복을 받았으며, 그 조합은 5번의 우승, 다른 어떤 팀과도 비교할 수 없는 커뮤니티, 그리고 모두에게 황금 표준이 된 조직으로 이어졌습니다.
개인적으로도 던컨은 샌안토니오에서 가족 및 친구들과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고, 힘든 시기에 기대할 수 있는 존재이자 평생의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팀 던컨 시대 내내 스퍼스의 팬이 될 수 있었던 행운을 누린 사람에게는 몇 번의 시즌 패배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팀 던컨의 프랜차이즈 업적에 관해서는 스크롤할 준비를 하세요.
출전 경기 및 출전 시간 1위
필드골 1위
자유투 2위
총 리바운드 1위
총 어시스트 3위
총 스틸 6위
총 블록 1위
총 득점 1위
트리플-더블 5위
승 점유율 1위
하이라이트: 팀 던컨은 2003년 시리즈 결정전인 6차전에서 역사상 유일한 NBA 파이널 쿼드러플 더블로 기록될 만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공식 기록은 21점, 20리바운드, 10어시스트, 8블록이었지만, 비디오 증거에 따르면 실제로는 10블록을 기록했습니다.
팀 던컨의 명예의 전당 경력은 어떤 식으로든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역대 최고의 스퍼로서 그의 자리를 차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https://airalamo.com/posts/the-top-30-san-antonio-spurs-of-all-time/17
원문 링크입니다.
https://open.kakao.com/o/g0VgOtRe
진짜 멋진 프랜차이즈....
스퍼스를 응원해주세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96파이널에서 로드맨에게 농락당하던 브리코우스키도 샌안을 거쳐갔었군요. 후에 웸비 이름이 던컨 바로 아래로 갈 겁니다.
저도 잘 모르는 선수인데 좋은 선수였더라구요.
웸비가 트로피 몇개 가져다 줄지 기대됩니다.
고 스퍼스 고!
고 스퍼스 고!
고 스퍼스 고!!!
팀 둔칸!
진짜 너무 좋은 선수였습니다!
잘 봤습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독 정적인 분위기에 다이나믹한 선수라 보는 맛 좋았던 데릭 앤더슨은 너무 짧게 뛰었나보네요.
샌안에 잘 없던 유형이라 인기 많았었죠.
조금 아쉽게 탈락한 듯 하네요.
순번9번만 보면 화가...ㅎㅎㅎ
저도 빼려다가.......ㅎㅎㅎ
너무 잘 봤습니다. 팀던컨-로빈슨! 매력 쩔었죠.
던컨 로빈슨..최고입니다
히트 던로도 그래서 첨에 정이 가드라구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최고의 선수는 던컨이 분명하겠지만, 가장 존경스러운 선수는 로빈슨이라 봅니다~
완전히 공감합니다.
전 제독으로 스퍼스 팬이 됐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샌안 팬이 아니다보니 질투나네요. 근데 저는 레이커스 팬이고 ㅋㅋㅋㅋ 그러고보니 샌안의 팀컬러는 언제부터 이랬던걸까요. 거빈이 활약하던 때 부터였던 걸까요? 아니면 로빈슨?
거빈때 슬슬 그러다가 제독이랑 션 엘리엇이 이끌다가...그러다 던컨오고 제독이 2인자로 자처해서 간 것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근데 레이커스는 뭐..워낙 레전드들이 많아서 질투하시기엔...ㅋㅋㅋㅋ
알드리지...ㅠㅠ 코트에서 다투거나 성질부리거나 하는거 한번도 본적없는거 같습니다. 너무 착할듯..
우승타이틀 있으면 너무 좋았을텐데..
알드리지 너무 미안하고 짠해요ㅜ
진짜 좋아했던 선수고 지금도 스퍼스 팬들은 너무나도 좋아하죠...
코치로라도 와주길...
어릴 때,
샌안토니오가 데이비드 로빈슨이고, 데이비드 로빈슨이 샌안토니오다. 라는 말을 들으며 이 팀을 지켜봐왔는데...
이제는 명실상부, 샌안토니오가 팀던컨이죠.
둘다 위대한 선수. 위대한 선후배입니다.
완전히 공감합니다...
저도 제독으로 입문을 해서 던컨보다 제독이 더 애정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던컨 정말 너무나도 좋은 선수에요.
우리 팀. 그 자체 던컨, 제독.
진짜 복받은 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