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도 달도 쉬어가는 하늘궁전, 시기리야
스리랑카의 문화와 역사를 대표하는 3곳의 유적지는
아누라다푸라와 폴론나루와(Polonnaruwa), 그리고 캔디(Kandy)다.
물방울 모양의 섬나라 스리랑카의 중앙부에 삼각형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 이 세 도시는
‘문화 삼각지(Culture Triangle)’로 일컬어지는데 시기리야는 이 문화 삼각지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높이 195미터의 거대한 바위산 정상에 펼쳐져 있는 바위궁전(Rock Palace)은
스리랑카를 찾는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스리랑카 여행의 백미다.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솟아있는 붉은 바위산,
그 정상에 세워졌던 화려한 궁전과 그곳에 살았던 고독한 왕의 이야기는
전설 속의 한 장면처럼 경이로우면서도 슬프다.
시기리야 바위산에 웅장한 궁전을 지은 이는
5세기 이곳을 다스린 왕 카샤파1세(Kassapa. 473~491)다.
타밀족을 물리치고 왕위에 앉은 다투세나(Dhatusena. 455~473)왕은
평민이었던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 카샤파 왕자를 두었고,
왕이 된 후 결혼한 왕족의 부인과의 사이에는 목갈라냐 왕자가 있었다.
스리랑카의 전통은 첫왕자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부왕은 차분하고 지적인 목갈라냐 왕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
이를 알아차린 카샤파 왕자가 광분하여 부왕인 아버지를 죽이는 패륜을 범했다.
형 카샤파가 왕위를 찬탈하자 생명의 위협을 느낀 목갈라냐는
복수를 다짐하며 인도로 망명했다.
옥좌에 오른 카샤파는 심각한 정신분열증에 시달려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철옹성을 지으려 천외의 요새를 찾던 중, 정글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바위 요새를 발견했다 성 밖으로는 악어를 키우는 해자를 만들고, 침입을 대비하여 곳곳에 돌 괴뢰를 설치하고,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는 사자상을 조성하여, 그 목구멍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였다 이 사자는 카파샤왕 자신을 의미하며 누구든 내 목구멍으로 들어온 자는 내 먹이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한다 지금은 날카로운 발톱을 지닌 사자의 두 발 부분만 남아있지만 이 입구를 만들 때 사자를 직접 옆에 놓고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정교한 모양이다. 카샤파는 미친듯이 바위산 꼭대기에 궁전을 지었다. 코끼리를 이용하여 승강기를 만들고 대나무를 사용하여 물을 끌어 올렸으며 정상에는 수영장, 연회장 등을 갖춘 화려한 궁전을 조성하는 등 시기리야의 바위 궁전은 그렇게 해서 탄생했다. 7년여의 난공사 끝에 궁전이 완성되자 왕은 총애하던 무희를 데리고 아무도 접근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높은 바위산 꼭대기의 화려한 궁전 속에 스스로를 가둬버렸다.
카샤파는 두려움에 떨며 이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예술가이며 정신 이상자인 카샤파왕은 한 고승의 충고를 받아들여 부왕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천상의 요정의 모습을 벽화로 그리고, 그 벽화가 반사되어 비치게 하는 거울의 벽을 조성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오는 시기리야 미인도(프레스코 벽화)라 한다.
스리랑카를 대표하는 예술작품으로 전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바위산 입구에서 철제계단을 약 20여분간 올라가야 나타나는데
처음에는 500명 정도의 미인도가 있었지만 지금은 18명의 그림만 남아 있다
거친 바위 면에 정성스럽게 점토와 석회, 꿀을 발라 매끄럽게 만들고 그린 이 프레스코화는
1500여 년 전의 것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시기리야 레이디’로 불리는 이 그림은 천상의 요정 압살라와 그를 시중드는 왕의 시녀들로 추정되는데
카샤파 왕이 죽은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그렸다고 전해진다.
이곳이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되면서 지나치게 농염한 여인들의 모습이 부담스러워
일부를 지워버렸고, 이후 비바람에 시달리다가 1967년 반달인이 이곳을 공격했을 때
다시 한 번 상당수의 미녀들이 파괴되었다.
화려한 보석 장신구로 온몸을 치장하고 풍만한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고혹적인 자세로 꽃을 감상하며 미소 짓고 있는 시기리야 레이디의 모습은
1500년이 지나도 퇴색하지 않았다.
이곳으로 천도한 14년 후,
인도로 망명했던 동생 목갈라냐가 아버지의 복수를 외치며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 왔다
카샤파는 동생과 싸우기 위해 코끼리에 올라타고 전장으로 나갔다.
하지만 싸움이 한창이던 무렵 카샤파를 태운 코끼리가 수렁에 빠져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군대는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결국 후퇴하고 말았다.
수렁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한 채 혼자 남겨진 카샤파는
동생의 군대가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단검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왕을 시해하고 동생을 쫓아내며 왕위에 오른지 18년 만이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왕위에 오른 목갈라냐는
카샤파의 무모한 욕망이 빚어낸 시기리야의 바위 궁전을 승단에 기증하고
수도를 다시 아누라다푸라로 환도했다.
시기리야의 바위 궁전은 이후 상당기간 스님들의 수행처로 사용되다가
어느 때인가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갔다.
그 이후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시기리야는 1898년 영국의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되며
헌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엄하다. 장엄한 바위요새 시기리야는 난공불락의 성채다. 수직에 가까운 절벽을 기어오르면 고독한 왕 카샤파의 하늘궁전에 다다르고 어디선가 바람결에 참회의 한숨이 들려오는 듯하다. 세상을 얻기 위해서 그 세상으로부터 스스로를 유폐시켜야 했던 카샤파! 탁 트인 하늘을 거침없이 수평으로 가르고 있는 광활한 지평선. 온통 밀림만이 끝없이 펼쳐지는 시기리야 암벽 꼭대기에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얼마동안 행복했을까...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카샤파는 어쩌면 죽음으로서 안식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 왕좌의 어지러운 흔적만이 허무하고 그의 몸서리치는 절대고독이 밀려든다 덧없고 덧없어라 시기리야의 바위산에 오늘도 무심한 바람만 지날 뿐이다. |
첫댓글 가슴에 묻어 둡니다 . 감사해요 !!
신묘년이 열리더니
어느새 저만큼 달아납니다.
소원성취하세요 ^.^
세월의 무상함을 알았더라면..참회의의미가 무엇이었을까요.?. 인간의참모습이 아닌 그 마음에..맘 아픕니다_고맙습니다_
인간이 신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 가장 뜨거운 선물은
"욕망"이라는데...
카샤파왕자의 욕망이 선한 쪽이었더라면,
그랬더라면, 우리의 맘이 아프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유적지를 보니 인생무상.
세상 삶이 덧없고 덧없음을 알면서도
욕심의 끈을 놓아 버리지 못하고 삽니다.
사진으로 보는 스리랑카.
광활한 대지만큼이나 웅장함에 매료됩니다.
망루 같은 하늘궁전에서
드넓게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무척 착잡했어요.
헛된 욕망, 부질없는 탐욕이 빚은 덧없는 인생......
목 마름에 허덕이다 쓰러지는 욕망...
여행지를 다니며 역사를 들여다 보면 권력의 끝이 어디인지 말해 주고 있지요
또 한사람의 애닯은 흔적에 마음속 바람이 붑니다
바위궁전에 올라 밀림에서 들려오는 그 소리를 듣고 싶네요
프레스코 벽화의 아름다움에 찬탄하셨지요?
절벽의 나선형 철제계단 850 여개를 올라가면 거의 무방비 상태로
방문객을 맞이하며 고혹적인 눈빛으로 인사합니다.
거센 바람이 불어오곤 하기 때문에 등에 짊어지는 가방 외엔
선그라스, 모자 등은 사용을 금하라는 지시가 있기도 합니다
벽화 속의 여인은 구름 위로 옷을 입지 않은 풍만한 상체만 드러나 있지요
고혹적인 눈을 가늘게 뜨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머리와 가슴 등에 화려한 장신구를 하고 있는 모습...
5세기의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이제껏 봐 온 벽화 중,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귀한 사진들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