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아이헨도르프
하늘이 대지를 고요히 입 맞추는 것 같았네
희미하게 떨리는 꽃들의 몸짓으로
대지가 몽롱한 꿈에 넋을 잃도록
밤하늘 공기가 들판을 지나 걸어갔고
이삭들이 부드럽게 일렁였다네
수풀이 나지막히 바스락거리고
그렇게 밤이 별처럼 투명했다네
내 영혼은 팽팽하게
활짝 날개를 펴고서
고요한 대지를 지나 날아갔다네
마치 보금자리를 향해 가는 듯
[해설]
이렇게 아름다운 시를 두고서 낭만주의가 병들었다고 비판만 하는 것은 모독일지 모른다.
독일 낭만주의 시의 형식적 아름다움은 우리말로 온전히 번역되기 어렵다. 모국어 시의 외국어 번역이 반역이 된다는 점에서 이 시 또한 예외가 아니다.
바바라 바우만의 <독일문학사>는 이 시를 ‘이미 저물어가는’ 낭만주의의 대표적 서정시로 예시하였다.
아이헨도르프는 평화로운 전원풍경에 대한 낭만적 묘사의 대가였다. 그가 방랑하는 어느 백수 건달 Taugenichts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또한 한편의 아름다운 서정시였다.
이 시는 은은한 달밤의 정경을 천지가 은밀히 몸을 섞는 에로스적 교합의 이미지로 그려 보인다. 천상의 하늘이 지상의 대지에게 고개 숙여 입을 맞춘다, 사랑하는 여인의 수줍은 몸짓 같은 대지에게.
2연에서 시인은 밤의 대기가 들판 위를 걸어간다고 언술한다. 투명한 달빛에 드러난 자연의 몸짓을, 백주의 두려움을 피한 평화로운 인간의 걸음으로 의인화한다. 숨죽인 교합의 환희를 이삭들의 부드러운 일렁임으로 의태화한다, 수풀의 나지막한 바스락거림으로 의성화한다.
3연에서 시인은 스스로 내면의 영혼에 날개를 달고 황홀경의 대지 위를 날아가는 새가 된다. 영혼의 둥지로 귀소하는 새, 우리의 시인 고은이 제주 사라봉 산길에서 보았던, 늙은 떡갈나무가 무슨 낯 뜨거운 일을 짐짓 외면하는 것 같은, 날갯짓으로.
그러나 바바라는 아이헨도르프가 낭만주의의 위험성을 의식하였으며, 스스로 ‘조심해라, 깨어 있어라, 활기를 가져라’ 경고했던 시인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엊그제, 서울 지하철 유리벽에 그의 번역시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번역은 너무 딱딱하다. 마치 에누리 없이 자로 잰 직각 보행을 보는 것 같다.
[출처] 아이헨도르프, 달밤|작성자 어진재
[작가소개]
아이헨도르프[ Joseph von Eichendorff ]
국적 : 독일
출생 – 사망 : 1788년 ~ 1857년
직업 : 서정시인, 작가
독일 낭만파 서정 시인ㆍ작가. 할레ㆍ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법학을 배웠으며, 낭만파의 아르님(V. Arnim)과 브렌타노(C. Brentano)가 편집한 《소년의 마법 피리》 가요집의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매혹적 필치로 자연을 그렸다. 그의 영감(靈感)은 독일의 숲에서 얻은 것으로 골짜기를 거니는 사람의 기쁨, 자연이 부르는 소리, 숲의 신들의 말 등, 주옥과 같이 영롱한 리듬으로 읊었으며, 민요조의 시는 널리 애창되고 있다.
<작품>
1915년 [장편소설] Ahnung ung Gegenwart
1926년 [장편소설] Aus dem Lebeneines Taugenichts
1934년 [장편소설] Dichter und Ihre Gesellen
[시] 망가진 가락지
[네이버 지식백과] 아이헨도르프 [Joseph von Eichendorff]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
첫댓글 하늘이 대지에 입 맞추고
바람이 대지 위를 걸어간다
감사합니다
무공 김낙범 선생님
댓글 주심에 고맙습니다.
싱그러운 오월도 무르익어 갑니다.
신록의 대지위에 오늘도 멋진 필적 남겨주시길
소망합니다.
명시입니다,,좋은글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