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생활성서 – 소금항아리]
마음이 흐린 날, 젖은 한쪽 어깨가 불편하다며 우산을 씌워주시고 계신 하느님께 불평한 적은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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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5/26/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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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오 복음 28장 16-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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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같이 씁니다
우산 하나를 함께 쓰고 가는 젊은 연인을 본 일이 있습니다. 우산이 작아 비를 다 막지 못해도, 그들은 너무 행복해 보이더군요. 사랑스러운 그 모습을 바라보다 보니, 남호섭 시인의 ‘사랑’이 떠올랐습니다. “우산을 같이 씁니다./ 동무의 어깨가/ 내 어깨에 닿습니다.// 내 왼쪽 어깨와/ 동무의 오른쪽 어깨가/ 따스하게 서로 만납니다.// 우리들의 바깥쪽 어깨는/ 사이좋게 비에 젖고 있습니다.” 사랑이라고 하면 어깨를 맞대는 일을 먼저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시인은 사이좋게 비에 젖는 일까지가 사랑의 전부라고 말해줍니다. 삶의 기쁨만이 아니라 설움까지 함께 나누는 것이 사랑이라는 뜻이겠지요. 일부가 아닌 전부를 나눌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셋이면서 하나이시고, 하나이시며 셋인 삼위일체 신비를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구분되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관계라는 점은 아득하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의 관계 안으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저는 우리를 향한 연서戀書로 읽었는데요.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서약처럼 느껴졌습니다. 우리도 삶의 맑음과 흐림을 모두 삼위일체 하느님과 함께하면 좋겠습니다. 가끔 차가운 비가 일상에 찾아오더라도, 우산을 함께 쓰는 마음으로 하느님과 걸어간다면, 한쪽 어깨가 젖어도 마음만은 따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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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준 안토니오 신부(서울대교구)
생활성서 2024년 5월호 '소금항아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