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0일 (목)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학자 기념일 말씀 묵상 (에제 36,23-28) (이근상 신부)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3 “나는 민족들 사이에서 더럽혀진, 곧 너희가 그들 사이에서 더럽힌 내 큰 이름의 거룩함을 드러내겠다. 그들이 보는 앞에서 너희에게 나의 거룩함을 드러내면, 그제야 그들은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주 하느님의 말이다. 24 나는 너희를 민족들에게서 데려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너희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겠다. 25 그리고 너희에게 정결한 물을 뿌려,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너희의 모든 부정과 모든 우상에게서 너희를 정결하게 하겠다. 26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 너희 몸에서 돌로 된 마음을 치우고, 살로 된 마음을 넣어 주겠다. 27 나는 또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가 나의 규정들을 따르고 나의 법규들을 준수하여 지키게 하겠다. 28 그리하여 너희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에제36,23-28)
먼저 마음, 레브(לֵב)부터 보아야 한다. 히브리어에서 마음은 오늘 우리가 생각하는 감정의 중심과는 거리가 멀다. 레브는 생각하고 판단하며 결단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이다. 지혜도 의지도 감정도 아직 갈라지지 않은 채 그 안에 함께 있다. 솔로몬이 청한 것도 “잘 듣는 마음”(לֵב שֹׁמֵעַ)이었다(1열왕 3,9). 우리는 흔히 그가 지혜를 청했다고 말하지만, 성경에 쓰인 단어는 마음이다. 그러니 돌로 된 마음과 살로 된 마음을 냉정한 마음과 다감한 마음의 대조로 읽으면 곤란하다. 돌로 된 마음은 움직이지 않는 삶이다. 이미 굳어진 사고방식과 태도와 선택을 바꾸지 않은 채, 오히려 세상의 모든 것을 자기에게 맞추려는 삶이다. 반대로 살로 된 마음은 말씀과 현실 앞에서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이다. 더 놀라운 것은 에제키엘이 “너희의 살에서 돌의 마음을 치우겠다”고 말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본래 살이다. 만지면 느끼고, 부르면 돌아보며, 상처받고 변하도록 지어진 존재이다. 그런데 그 살 한가운데 돌이 들어앉았다. 크고 작은 상처에 응답해 온 우리의 습 그리고 그리 굳은 습을 자신의 본모습이라 믿고, 마침내 그것을 우상처럼 지키는 게으름. 살아있는 아픔에서 점점 단단해지는 상처...
그러므로 돌로 된 마음은 대개 사악하거나 냉정한 마음이라기보다 너무 익숙하여 더는 묻지 않는 마음이다. 때로는 부드럽고, 야들야들할지라도 이미 삶을 다 알아버렸다고 믿는 마음, 그렇게 우리를 움켜쥐는 마음들. 변화보다 안정을 거룩하게 여기는 마음. 살로 된 마음은 그 반대다. 쿵쾅거리며 길을 찾는 마음. 때로는 차갑고 때로는 격하지만 계속해서 길을 묻는 마음이다. 길을 잃었기에 당신께 묻고, 당신의 벗들에게 묻고, 가난한 이들에게 길을 묻는다. 그리고 그 물음 끝에 자신의 삶을 움직여 가는 자의 수고이다.
영신수련이란 바로 우리 안의 돌로 된 마음을 살로 된 마음으로 바꾸시는 당신의 뜻에 응답해 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우리 마음을 바꾸는 훈련이 아니라, 우리 안의 돌을 치우고 살의 마음을 주시는 일에 자신을 내어놓는 수련이다. 영적 식별은 그 응답을 거든다. 완고하게 굳은 우리 마음에 균열을 내시는 당신의 초대를 알아듣는 것. 그 균열 사이로 몰려드는 바람과 폭풍, 때로는 미풍 속에서 어느 것이 당신의 방향인지 묻고, 마침내 그쪽으로 삶을 움직이는 일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2Ctiby8hyUFA8q38swrGP99xACsgdFWbhdrtXLQjkZo547CFmXEQNt5cWFKVJZFW9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