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최양업 신부 시복시성 기원 희망의 성지 순례, 잘 끝나!
어제(8월 27일)는 최양업 토마스 가경자 신부의 시복시성 기원을 위한 희망성지 순례차 서울 명동대성당과 당고개 순교성지와 포도청 순교자 현양관이 있는 종로성당을 다녀왔다.
저는 김진형 신부와 함께 원주 태장동에서 오전 7시 30분 버스에 탑승, 9시 30분경 명동대성당에 도착, 먼저 천주교 서울대교구 역사관 상설전시 사도회관을 둘러보며 공간적 역사 안에서 서울대교구의 탄생과 변천을 아우르는 시간의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역사가 함께 깃들어 있는 모습을 살펴봤다.
이어서 11시 예정이었던 조규만 원주교구장 주교 집전의 미사가 30분 늦추어진 가운데 11시 30분에 시작되어 원주,제천 등지에서 14대의 버스로 온 순례객과 다볼사이버 성당 신자등 천여명의 신자들이 성당을 가득 메운 가운데 신앙의 열기를 드러내었다.
조주교는 강론에서 " 개신교에서 개종한 어느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가톨릭 교회에는 40개의 보물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성지순례"라고 지적하고 " 한국천주교의 심장이랄 수 있는 명동대성당을 순례한 신자들은 그 보물의 소중함을 깨닫고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을 위해 더욱 열심히 기도함은 물론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애써 주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조규만 교구장은 이날 순례자들에게 "우리 신앙의 밑거름-원주교구 관련 순교자들(여진천 신부 엮음)"이란 책자를 한 권씩 선물하여 순레자들에게 큰 기쁨을 선사하였다.
명동대성당은 한국천주교회의 상징이자, 한국교회 신앙 공동체가 탄생한 뜻깊은 곳이다. 명동대성당 지하묘역에는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인 성 최경환 프란치스코와, 최양업 신부의 선종(1861년)이후 충청도 지역과 배론 신학교에서 사목활동을 이어가다가 1866년 병인박해 때 배론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한 푸르티에 신부와 프티니콜라 신부의 유해도 함께 모셔져 있다.
미사 후 순례단은 명동성당 구내에서 각 본당별로 나누어져 점심을 들고 두 팀으로 나누어져 서울 시내의 다른 순교지를 순례했다. 필자는 태장동 팀으로 당고개순교성지와 종로성당(포도청 순교자 현양관) 두 곳을 순례했다.
우선 당고개(용산)순교성지는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인 복자 이성례마리아와 다른 9명의 교우들이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곳이다. 이성례 마리아는 남편이 옥중에서 순교하고, 옥에 함께 갇힌 젖먹이 막내와 밖에 남은 아들 4명의 걱정에 흔들려 배교했다. 후에 최양업 신부가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간 것이 발각되어 형조로 다시 압송되자 배교를 취소하고, 형장으로 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들에게 신앙을 지킬 것을 당부한 뒤 순교하였다.
그리고 세번째 방문한 종로 성당은 포도청이 있던 곳이다.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성례 마리아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자식들과 함께 한양의 포도청으로 압송되었다. 최경환은 계속되는 문초와 배교를 강요하는 모진 고문에도 신앙을 포기하지 않고 결국 두어달 만에 옥에서 순교하엿다. 최경환 프란치스코처럼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한양의 좌우 포도청과 의금부, 형조, 전옥서 등ㄹ 여러 곳에서 고초를 겪다 순교했는데, 종로성당은 이런 사적지들을 모두 아우르는 포도청 순례지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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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Victor Lubumbe, Leonard Musonda 및 외 7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