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고속도로 망상해수욕장 톨게이트를 지나, 남쪽으로 조금 내려오면, 완만한 사문재가 나온다. 사문재를 살짝 넘으면 주유소가 있고 묵호여고가 있고 묵호여고 앞에서 왼쪽으로 꺽으면, 해맞이 길이다.
나는, 해맞이길 입구에서부터 충격을 받는다. 그녀의 냄새 때문이다. 아카시아꽃 냄새는 그녀의 냄새를 닮았다. 주렁주렁 아카시아 꽃을 지나 드디어 해맞이길에 들어서면, 멀리 동해의 도심지가 발한동을 시작하여 부곡동, 그리고 천곡시내가 잠깐 보이고 심지어 삼척 시내의 흔적도 살짝 엿보인다. 밤에는 그 야경이 거뭇거뭇 산 동네 사이로 마치 보석을 뿌려놓은 듯 소박하다. 그곳 시내를 초록봉이 가슴 가득 안고 내려다 보고 있다.
이윽고, 아! 묵호항이다.
커브를 돌아나가면, 묵호항의 전경이 가슴까지 환하게 한다. 어선과 여객선과 화물선이 두둥실 떠 있는 곳, 가끔씩 울릉도로부터 돌아오는 파란색 썬플라워호를 볼 수도 있다. 항구로 돌아오는 어선들, 입항을 대기 중인 화물선, 그리고 여객선.........
묵호항은 항상 이렇게 붐비고 있다. 항구 앞에는 온통 어지러운 건물들이다. 어항과 산업항과 여객항이 무질서하게 개발되어 혼란스럽다. 그 한 구석을 사람들이 비집고 들어와 살고 있다.
그곳이 묵호항 산동네 안묵호이다. 해맞이길은 안묵호 산동네 능선을 가로지르는 길이다.
나는, 그 길을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다닌다.
창호초등학교를 지나 묵호등대로 향하다 보면, 어달리 앞바다로부터 펼쳐지는 동해바다가 눈 앞에 한 가득이다.
그곳에는, 오징어와 명태를 말리던 빈 덕장의 골조들이 초라하게 서 있다. 과거, 오징어가 많이 나던 시절, 그곳에는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널려 펄럭이고 있었다.
해맞이 길은, 자동차로 5분도 걸리지 않는 길이지만, 지나면서의 표정은 사뭇 다양하다. 도심과 항구 그리고 바다, 그리고 사람들의 삶의 흔적들.......
기가 막힌 경치들과 고단한 삶의 표정이 파노라마를 만들어 내는 곳이다.
묵호항에서 등대로 올라오는 길이, 논골담길이다. 과거, 먹고 살기 위해 이 산동네에 무허가 집을 짓고 들어왔던 사람들이 늙어서도 살고 있는 곳, 그곳을 동해시청에서 아름답게 꾸며 놓았다.
그 논골담길의 좁은 경사진 골목을 단발머리 소녀가 손에 찌그러진 양은 사발을 들고 폴짝거리며 올라오고 있다. 사발에는 소녀의 아버지가 마실, 한 잔에 50원짜리 막소주가 담겨 있는데, 소녀가 폴짝이며 뛰어오는 통에 이미 반 정도는 흘러내리고 없었다.
소녀는, 틀림없이 아버지에게 그것 밖에 주지않더라고 거짓말 할터이고, 아버지는 그런 소녀를 속인 가겟집 노파를 향해 욕설을 퍼부을 것이다.
소녀는, 나중에 커서 돈을 벌어서 아버지를 위해 대병 소주를 사주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소녀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해 가을, 아버지는 바다에 나갔다가 로프에 발이 걸려 빠져 죽고 말았다.
소녀의 아버지는, 북에도 자식들을 남겨 둔채, 그 자식들도 영영 보지 못하고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카시아 꽃향기가 나는 동문산 해맞이길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나는, 해맞이길 입구에서 항상 아카시아 꽃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들었던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한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이곳, 안묵호 산동네로 돌아왔던가. 내가 사춘기 시절 방황했던 이곳에서 그녀는 지독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그해, 그녀는, 폐결핵을 앓고 있던 바로 위 오빠가 죽었다. 그녀는, 오빠의 피 묻은 옷을 물을 아끼기 위해 바닷물로 빨면서 지독한 피냄새를 경험했다. 그리고 집안에서 머리가 제일 좋았던 항만청에 다니던 큰 오빠가 화물선 꼭대기에서 떨어져 원인도 모르게 죽었다. 그리고 아버지 마저........
집안에 세 남자가 죽고, 어머니를 비롯하여 온가족은 각자가 살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는, 사춘기에 막 접어 들어, 부산으로 내려가 신발 공장에 다니며, 야학에서 공부를 했다.
내가, 다시 묵호항으로 돌아오고, 천곡동 술집 여주인을 만나면서 소녀의 이야기와 묵호항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 시작은 항상 해맞이길이다. 나의 하루는 해맞이길로 시작해서 어판장 까지다.
안묵호 발한 삼거리에서 방황하던 소년이 늙은 대게 장삿꾼이 되어 돌아왔다.
다행히 그는 글쓰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