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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좋은글과 좋은음악이 있는곳 원문보기 글쓴이: 무지로소이다
3집 "81 미워 미워 미워/여와 남
Disc 1 / Side A
1. 미워 미워 미워 작사:정욱 작곡:정풍송 2:38
2. 일편단심 민들레야 작사:이주현 작곡:조용필 3:36
3. 잊을 수 없는 너 작사:이명희 작곡:조용필 3:35
4. 강원도 아리랑 (강원도민요) 2:37
5. 님이여 작사:지명길 외국곡 3:23
6. 황성옛터 작사:왕평 작곡:전수린 3:31
7. 오빠생각 작사:최순애 작곡:박태준 3:39
Disc 1 / Side B
1. 여와 남 작사:김형균 작곡:조용필 3:07
2. 물망초 [Kbs-Tv 일일연속극 '물망초' 주제가] 작사:이희우 작곡:조용필 3:39
3. 고추 잠자리 작사:신광철 작곡:조용필 4:46
4. 내이름은 구름이여 작사:전종현 작곡:조용필 3:26
5. 길잃은 철새 작사:유호 작곡:최창권 3:34
6. 너의 빈자리 작사:임석호 작곡:조용필 3:52
조용필은 이름이 갖는 무게에 걸맞게 적용하는 잣대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가능한 뮤지션이다.
대중에게 각인 된 1980년대 대중음악계를 지배한 슈퍼스타로써
그를 바라보면, 앨범의 판매량에 눈이 먼저 가고,
'오빠부대의 원조'라는 흔하디 흔한 별칭이 떠오른다.
물론 이런 이미지의 조용필에게 어울리는 곡은
"돌아와요 부산항에", "창밖의 여자", "친구여"등의
국민가요일 것이다.
3집은 개별 곡의 파괴력은 그것만큼은 못하지만,
민요("강원도 아리랑")부터 동요("오빠생각")까지
넓은 스펙트럼에 걸쳐 있다. 대중이 조용필하면
떠올리는 트로트 풍의 곡인 "미워 미워 미워"와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A면의 모두에 위치하며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산가족 찾기가 시작되던 당시 할머니가 가사를
보내주어 만들었다는 "일편단심 민들레야"는
조용필이 처음으로 작곡한 트로트이다.
A면을 살펴보면 어떤 전략을 통해 그가 세대를
아우르는 국민가수로 불릴 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발매 20년이 넘은 지금 조용필의 3집 앨범을
들어보면 A면에서는 조용필의 절창 외에는
큰 감흥이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1980년대 성인의 정서에 맞춰 만들어진 음악과
2000년대 젊은이의 정서와는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B면으로 넘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용필 3집의 B면을 들으면 A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선한 느낌까지 받게된다.
단지 앞서 언급한 히트곡들에 비해 덜 알려졌기 때문일까?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록 뮤지션 조용필과 밴드 위대한 탄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조용필의 새로운 모습일 뿐 아니라,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만들었던 록 음악은
2000년대에 들어도 촌스럽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 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록 뮤지션이라는 관점에서 조용필을 바라볼 때 빠질 수
없는 것이 위대한 탄생이라는 당대의 밴드라면,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역사는 바로 "고추잠자리"가
수록된 3집 음반에서 시작된다.
여기서 놀라운 것이 조용필의 작곡 능력이다.
조용필 하면 일단 노래 잘하는 가수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앨범의 수록곡 중 동요, 번안곡 등 기존에
존재했던 곡들을 제외하면 트로트 "일편단심 민들레"부터
로킹한 "여와 남"까지 9곡 중 7곡이 조용필이 작곡한 곡이다.
록 뮤지션으로 조용필을 바라봤을 때 3집을 대표하는 곡은
단연 "고추잠자리"이다.
당대 최고의 연주자들이 모인 위대한 탄생의 탄탄한 연주와
파격적인 효과음향을 사용해 곡의 구성을 마음먹은 대로
주무른 편곡, 가성과 진성을 넘나드는 조용필의 보컬은
당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이 보여줄 수 있었던 최상의 결과물이다.
물론 앨범의 성격을 규정 지을만한 이런 곡이 B면의
3번째 곡으로 수록된 것은 역설적이다.
조용필 스스로 트로트 가수의 이미지를 원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용필이라는 수퍼스타 역시 음반사의 압력 혹은
상업적 성공에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결과적으로 이 곡이 히트했다는 것은 기획사가 대중의
새로운 기호를 쫓아가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트로트 곡이나 현악 세션이 필요했던
팝 발라드 곡의 경우 위대한 탄생은 레코딩에 참여하지 않았다.
곽경욱(리드 기타), 김태환(베이스), 김정수(기타), 김청산(키보드),
이건태(드럼)의 라인업으로 시작된 위대한 탄생은,
비록 스포트라이트는 조용필 한 사람에게 집중되었지만,
각자의 파트에서 명실상부한 최고의 연주인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구성에 대해 대한민국의 밴드에서
악기별로 최고 수준의 연주인이 한 명씩 차출되었다고
농담 삼아 얘기하곤 했다.
다만, 위대한 탄생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3집 앨범에서
그들의 역할은 단지 조용필의 백밴드에 가까웠다.
하지만, 위대한 탄생은 5집 이후 각자의 편곡은
스스로 할 정도의 재량권을 얻으며,
단순히 조용필의 백밴드로 치부하기에는 어려운 수준에 이른다.
이런 점에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은 시간이 흐를수록
록 밴드로서의 면모를 갖춰갔다고 할 수 있다.
3집에 참여했던 위대한 탄생의 초기 라인업은
4집까지 참여하고 독립한다.
이처럼 조용필의 음악은 이중 잣대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
특히 3집 음반은 조용필의 양면이 A면과 B면으로
정확히 구분되어 있는 특이한 음반이다.
개별 곡의 완성도는 뛰어나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을
보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음반이다.
조용필의 록 음악에 대한 열의는 컸지만,
그 열의는 현실의 한계 속에서 만개하지 못했다.
물론 이러한 현실의 한계는 누구에게나
높은 벽이었을 것이고, 대부분 순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대상이 조용필이라서 남는 아쉬움이 더 클 것이다.
조용필이 아니었다면, 누가 이 한계를 깰 수 있었을까?
이런 면에서 뮤지션의 제 권리 찾기에 큰 관심이 없었던
그의 모습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조용필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자기 자신을 엔터테이너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노년층까지 자신의 팬으로 포괄하기
위해 여러 장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000년대에도 흔하게 볼 수 있는 뮤지션이 하고
싶은 음악과 음반사가 원하는 음악이 혼재 되어 있는
백화점식 음반들이 조용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이런 의미에서
조용필의 3집은 절반의 완성이었지만,
"고추잠자리"의 대성공 이후 4집에서는
"못 찾겠다 꾀꼬리"라는 또 다른 스타일의 록 음악을
자신 있게 앨범의 첫머리에 내세우게 되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를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B면에 수록된
"물망초"나 "여와 남" 같은 로킹한 곡이 사랑노래라는
점에서 가사의 정서는 A면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암울했던 시기 록 음악이 가질 수 있었던 메시지의 부재는
조용필의 록 음악이 갖는 가장 큰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