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영국 지도. 물론 영국만 캡쳐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일랜드도 포함합니다
기후
식생
원자재
중세 영국의 경제적 상황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열도에서는 양치기가 크게 흔했으며, 양모는 저지대의 산업 중심지로 수출되어 옷감이 되었습니다. 북쪽으로 갈수록 땅이 덜 좋아지고 밀농사를 짓기보다는 가축을 길렀습니다. 서쪽의 언덕과 구릉에는 여러가지 광물들도 있습니다.
시장
런던과 더블린 두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더블린을 고른 이유는 당시 아일랜드의 무역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페나인 산맥을 경계로 열도를 둘로 나누기때문입니다.
둘 다 붉은색인 이유는 시장 중심지의 종주국의 색으로 칠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정복 외에도 지도를 칠할 수 있는 다른 방법들을 추가하고 싶었습니다.
문화
단일적인 영국 문화를 넣기로 했습니다. 물론 노섬브리아나 머시아 등 방언-언어들을 넣을 수 있었겠지만, 일반적으로 별도의 민족으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수백년 전 바이킹들의 침략때부터 이미 공통의 영국인 정체성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스코틀란드는 반대로 여러가지 문화들이 섞여있습니다. 저지대의 스코트인들은 남쪽의 도시들에서 부로 왕국을 지배하고, 북쪽의 목축지에는 게일 하이랜더가 있습니다. 서쪽의 열도에는 바이킹계 게일 부족들이 있으며, 북쪽 끝에는 바이킹계 영향이 조금 남아있습니다.
웨일스는 영국에 정복된 지 백 년정도 되었지만, 앵글시에서 카디프까지는 모두 웨일스어를 사용합니다.
영국계 아일랜드인들은 아일랜드 남동쪽 무역 도시들에 모여살며, 변경지대의 전초지에도 조금 살고 있습니다.
열도의 대도시들은 유럽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도 살 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플란데런 직조공들입니다만, 수가 너무 적어서 지도에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노르만 (검열됨)은 두 왕국과 그 속국의 (검열됨)으로써 지배적인 영향을 행사합니다. 1066년의 정복은 이제 잊혀져가고 있지만, 영국, 스코틀란드, 그리고 프랑스 귀족들 사이의 계속된 교류는 프랑스어가 잊히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종교
굳이 올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조금의 유대인들이 있지만 안보일 것입니다. 이들을 제외하면 전부 가톨릭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까요?
> 존 위클리프가 대화에 참여했습니다
지역
아일랜드는 전통적인 네 지역으로, 영국은 현대 행정구역과도 조금 닮은 대략 앵글로색슨 왕국들의 경계를 따라 나누었습니다.
프로빈스
역사적으로 큰 변동이 없었던 영국의 전통적인 카운티[역주: 영국의 전통적인 행정/지리적 구획]을 따라 나눴습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스코틀란드의 셔[shire]들은 꽤 난잡하여 반듯하게 프로빈스로 묶기 어려웠습니다. 지역 전문가분들 나와주세요
로케이션
어떤건 영어로, 어떤건 아일랜드어로 되어있는 이유는 소유자에 따라 이름이 바뀌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아직 작업 중인 기능이며, 그 지역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언어나 아니면 그냥 영어로 고정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정부 체제
아일랜드의 투아스[역주: 게일 아일랜드의 전통적인 행정/지리적 구분]는 부족정 정부 체제로 시작하며, (검열됨) 등의 기능들과 함께 유럽 내에서 가장 독특한 플레이스타일 중 하나를 제공합니다
국가들
영국
영국은 열도에서 가장 압도적인 위치를 갖고 있습니다. 많은 권력이 남작들에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권은 켄트나 요크셔나 가리지 않고 고르게 미치며, 국가는 전반적으로 꽤 통일되어 있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런던시의 상인들은 왕권으로부터 독립된 전통적인 자유를 만끽하고 있으며, 왕은 이웃한 웨스트민스터에서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역주: 런던시는 수많은 행정구역 개편에도 살아남아 셀프 양원제를 포함한 여러 특권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두르함의 팔라틴 공국은 별도의 태그로 만들지는 않았지만, 성직자 계층에게 큰 정치력을 주는 건물들로 대신 표현되어 있습니다.
맨 섬은 조금 불확실합니다. 문서 상으로는 윌리엄 몬타구에게 보상으로 준 '왕국'이지만, 우리는 그가 섬에서 실제 권력을 행사했는지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에 맨 섬은 영국과 스코틀란드 사이에서 소유권이 몇 번 넘어갔지만, 사실상 지역 귀족들의 의회에서 다스린 것으로 보입니다. 아시는분은 연락주세요
이러한 결정을 내린 이유는 영국은 이미 봉건제를 빠져나가고 있던 중이었기 때문에, 이런 작은 정치적 변화는 태그를 따로 만드는 것보다는 계층 및 (검열됨) 시스템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남는 외교 용량[역주: 윾4의 외교 개수가 드디어 큰 나라일수록 많이 잡아먹는 용량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는 다른 나라를 상대하는 데 사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웨일스
웨일스는 1500년대 중반이 되어야 영국에 공식적으로 합병됩니다. 그렇기에 공국은 영국의 속국으로 게임을 시작합니다.
웨일스 공국은 옛 귀네드 왕국의 경계를 크게 넘지 않습니다. 남동쪽의 나머지는 변경백들이 다스렸으며, 이는 강력한 귀족 계층으로 표현했습니다.
웨일스 공국에 대한 다른 안은 현대의 국경의 반대쪽에 있던 변경백들까지 포함시켜 더 크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 판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이상해 보일 수 있지만, 이 지역들 역시 1500년대가 되기 전까지는 '웨일스 변경'의 일부였습니다. 이는 영국 플레이어가 변경백들을 상대하는 것은 모두 웨일스 플레이어에게 맡기고, 프랑스를 패는 등 다른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할 것입니다.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영국의 왕의 힘의 중심은 패일 공국의 더블린 성입니다. 하지만 왕은 섬 전체에 흩어져 있는 아일랜드-노르만 백작들을 통솔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몇은 신하로 남아 있으나, 나머지는 왕의 통제로부터 빠져나오는데 성공했습니다.
게일계 국가들의 타니스트리 상속법[역주: 아일랜드 씨족의 상속법으로, 왕족 중 하나를 다음 왕인 타니스트로 선출하는 제도. 구체적인 방법은 씨족마다 달랐지만 일반적으로 8촌 또 4촌들에게 피선거권(?)이 주어짐. 주로 왕의 아들이 타니스트로 선출되었으나 장자상속과는 거리가 멀었음]은 분명한 장점도 있으나, 라이벌 분가 간 분쟁을 촉발하기도 합니다. 버크 내전이라고 부르는 전쟁은 두 사촌 버크들이 서로 백작령을 놓고 싸우는 과정에서 강력했던 얼스터 백작령을 쇠퇴시켰습니다. 북쪽의 아일랜드 백작들은 드 베르로부터 자신의 땅의 대부분을 되찾았았지만, 여기에는 두 라이벌 오닐 사촌들이 반 강 양안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서로 싸우는 아일란드인들을 통일하는 자는 하이 킹 작위를 얻을 수 있습니다. 메스와 코노트는 공작위로 게임을 시작하기 때문에 조금 유리합니다.
스코틀란드
[역주: 독자들이 스코틀란드 독립전쟁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일지가 써있네요;; 영미권에서는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전쟁인가봅니다. 아래 내용은 위키백과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1차 스코틀란드 독립전쟁의 영웅 로버트 브루스가 1332년 죽자 왕위에 오른 데이비드 브루스는 나라를 다스리기에 너무 어렸기에 의회의 섭정이 대신 다스렸습니다. 그러자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다시 한번 스코틀란드를 정복할 마음을 품었습니다. 특히 이번에는 스코틀란드의 왕이었던 존 발리올의 아들인 에드워드 발리올이 왕위를 되찾기 위해 영국의 편에 선 상황이었습니다. 8월에 에드워드는 스코틀란드에 상륙했으며, 장궁을 사용해 스코틀란드군을 격파합니다. 이후 영국도 군대를 보내 에드워드를 도왔으며, 스코틀란드의 대부분을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에드워드 발리올은 영국에 충성을 맹세하며 국경지방을 영국에 할양했습니다.
그러나 동맹국 프랑스가 스코틀란드에 대한 무조건적 지원을 약속하며, 영국과 스코틀란드로 원정을 떠날 대군과 함대가 준비되어있다고 선언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루스는 동맹국 프랑스로 망명했으며, 섭정들이 싸움을 이어나갔습니다. 영국의 에드워드 3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군대를 물려 영국으로 돌아갔으며, 이를 틈타 스코틀란드 세력은 스코틀란드의 대부분을 되찾았습니다.
]
에드워드 발리올은 자신의 스코틀란드 왕위를 향한 투쟁을 계속합니다. 1337년에 그가 차지한 땅이 어디까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우리는 그가 퍼스 성의 충성파들을 내쫓고, 그의 동맹 영국인들이 브루스로부터 로우랜드 땅을 많이 빼앗았음알 알고 있습니다. 발리올은 또한 맥도날드[역주: 그 맥도날드 맞습니다] 및 기타 헤브리데스 족장들의 지지 또한 갖고 있었습니다.
한편, 스코틀란드의 섭정 앤드류 드 모레 경은 그의 주군 데이비드 드 부르스 2세가 프랑스에 있는 사이 반란군을 향해 결정적인 역공을 가했습니다.
[역주: 결국 스코틀란드는 백년전쟁에서 프랑스가 어그로끌어주는 사이에 독립에 성공합니다. 두 차례의 스코틀란드 독립전쟁을 계기로 영국계와 게일계를 모두 포함하면서도 영국과는 구별되는 스코틀란드인 정체성이 확고해지게 됩니다. 군사적으로 대규모 중기병대를 장궁으로 격파하는 선례를 제공했습니다. 영국군이 이 경험을 어디에 적용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왕조
플랜태저넷, 발리올, 부르스는 자명하므로 아일랜드를 확대해 혼돈의 족장과 백작들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인구
다음주는 아나톨리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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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요새
이 건물은 귀족 계층이 돈을 써서 스스로 지을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을 짓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특권이 필요합니다
첫댓글 아일랜드 부족제...
어질어질하네요...컴이 버텨낼 수 있을지
시피유 두개달아야하는건가...?
저 시기에 인구가 5백만 이상.. ㄷㄷ
우리나라도 대충 그정도 됐을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