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단풍
십일월 둘째 일요일이다. 막바지 단풍철을 맞아 고속도로는 차량의 행렬이 줄을 잇고 곳곳 휴게소도 인파들로 붐빌 테다. 설악에서 불붙어 내려오던 단풍이 이제 남녘 산자락까지 물들여간다. 어제 근교 산행은 나서려고 마산역 광장 농어촌버스 출발지로 갔더랬다. 광장에는 산행 전세버스가 넘쳐났다. 여항산 미산령을 넘었더니 정상부는 나목이 되고 산허리 단풍이 절정이었다.
평소 일요일과 달리 아침을 느긋하게 맞았다. 전일 산행기를 남겨 놓고 행선지를 물색해 봤다. 북면 지인 농장을 방문해 볼까, 안민고개로 올라 불모산 단풍을 감상해 볼까나 하다가 두 곳 다 마음을 접었다. 행락객들이 교외로 빠져나가고 관공서가 문을 닫은 일요일을 택해 내가 가 볼 곳은 도청 일대 도심의 단풍거리로 정했다. 배낭을 짊어질 일도 도시락을 챙길 일도 없었다.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벚나무는 거의 나목이고 메타스퀘이어 가로수는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즈음이었다. 메타스퀘이어는 다른 가로수들보다 단풍이 늦게 드는 편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집에서 가까운 용지호수로 가 보았다. 초등학교 앞과 낮은 아파트단지 근처는 은행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실 정도였다. 잔잔한 호수 수면에는 분수가 솟구쳐 운치를 더했다.
봄날이면 벚꽃이 화사했던 호수 산책길에는 벚나무는 빨간 단풍잎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용지호수에서 길 건너 용지문화공원으로 갔다. 세무서와 토지주택공사를 비롯한 관공서와 인접한 공원이다. 잔디는 색이 바랬고 낙엽활엽수들은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용지문화공원 일대는 관공서 밀집 지역이라 평일엔 이면도로까지 차량이 넘쳐나는데 휴일이라 차량과 인적이 드물어 한산했다.
도청에서 시청광장으로 향하는 중앙로 일대에도 단풍이 곱게 물들어 갔다. 도교육청 앞까지 노란 은행잎이 깔린 보도를 따라 걸었다. 횡단보도로 건너편 창원교육청 앞으로 갔다. 경남신문사와 한국전력 이면도로는 붉게 물든 벚나무 단풍이 아직 남아 있었다. 평일이면 업무용 차량이나 행인이 붐빌 곳인데 아주 한적했다. 차량 운행이 없으니 소음이나 매연도 신경 쓰일 일 없었다.
연금공단 사무실 곁 공한지 군락을 이룬 물억새가 이삭이 패어 눈길을 끌었다. 저만치 도청 청사가 보였고 더 멀리 정병산이 에워싼 산세가 드러났다. 남향 정병산은 소나무를 제외한 낙엽활엽수들이 황갈색을 물들고 있었다. 서쪽 촛대봉에서 정상을 거쳐 독수리바위까지 바위 능선이 드러났다. 나는 고소공포를 약간 느껴 이제 정병산 산등선 등반도 어렵고 아래서 쳐다보는 정도다.
도청 뜰로 들어섰다. 도백이 바뀌자 도정 구호와 색상도 다르게 내걸었다. 도청 동편 연못으로 가보았다. 여러 수목이 어우러진 정원수들에도 가을빛이 완연했다.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른 산책로 데크엔 여름 철새로 남녘으로 내려가지 않은 한 마리 왜가리가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연못에서 자유로이 헤엄치는 비단잉어를 사냥할 생각이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모른 척 눈감아주었다.
경남경찰청 청사를 돌아 창원대학으로 향했다. 창원중앙역이 가까웠다. 동문으로 드니 캠퍼스는 한산했다. 공대를 거쳐 자연대 앞을 지나니 내년도 학생회 구성을 위한 플랜카드가 내걸렸다. 인문대와 사회대 앞을 지나니 은행나무는 샛노란 단풍으로 물들어 있었다. 생활관 앞 연못 청운지에는 거위와 흰뺨검둥오리 한 쌍이 한가로이 헤엄쳐 놀았다. 둑에는 물억새가 운치를 더했다,
창원국제사격장 아래서 창원의집으로 내려갔다. 고택에는 휴일을 맞아 젊은 부부와 아기들이 더러 보였다. 퇴촌 고목을 둘러 길 건너 창원천으로 내려섰다. 물억새가 핀 개울엔 왜가리가 한 마리 놀았다. 아직 꽃이 저물지 않은 코스모스가 있었다. 반송공원 북사면 수변 산책로 산수유나무는 열매가 익어 빨갛게 달려 있었다. 한 노인이 열매를 따느라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어댔다. 18.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