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6 메테오라의 공중수도원 앞에있는 숙소를 출발 그리스 북쪽의 작은 도시 베르기나에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2세의 왕능을 봤다. 마케도니아를 세계 대 제국으로 만든 알렉산더 대왕은 그의 아버지 필립2세가 그리스를 미리 평정해 놓았기 때문 세계로의 진출 그리고 제국확장이 가능했다. 왕능 참관후 국경을 넘어 그리스를 뒤로하고 불가리아의 산탄스키에 입성했다
6.17 불가리아가 자랑하는 문화재 릴라수도원은 산탄스키에서 두시간거리, 오전에 수도원을 보고 릴라산에 있는 세븐 레이크 호수를 보러 릴라산의 리프트 타는 곳으로 왔으나 비가 많이와서
포기하고 다음날 아침에 날이 개이면 가기로 했다. 대신 근처의 유황온천에서 지친 몸을 풀었다.
이곳 릴라산의 수도원도 동방정교회의 수도원이다. 엄밀히는 불가리아 정교회의 수도원, 동방정교회란, 로마제국이 4세기말 동,서로마제국으로 나뉘었을 때 서로마제국교회는 로마 총대주교휘하로 들어가서 오늘날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하는 가톨릭이되고, 동로마제국교회는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총대주교, 안티오크 총 대주교, 예루살렘 총대주교,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등 동로마제국 영토내의 4개 총대주교 휘하로들어간다 이들이 동방정교회다.
이슬람세력이 점차 동로마제국세력을 대체해 나감에 따라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를 제외한 나머지 3곳 총대주교의 세는 점차 축소된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오스만 터키하에서도 동방정교회는 존속했고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역할도 터키의 포용정책으로 지속될 수있었다. 오스만 터키는 세금만 내면 기독교를 믿든 다른 종교를 믿든 이를 허용했다. 게다가 타 종교의 관할내에서의 자치도 허용했다.
세금은 총액을 배당하는 방식으로 하여 총대주교는 지역별로 할당을 해서 징수했는 데, 터키당국에 내는 금액에 자기몫을 더해서 걷었다. 점차 세금이 중과되고 과도한 세금징수에 반발한 각국 교회에서는 독립을 추진하게 되고, 결국 독자적인 정교회로 떨어져 나가게 된다. 그래서 각나라가 독립적인 정교회로 콘스탄티노플로 부터 분리되는 바람에 루마니아정교회, 불가리아정교회, 세르비아정교회, 러시아정교회등 국가별로 독립적인 정교회가 있게되는 것이다.
고대 마케도니아 왕국의 첫 수도 아이가이(Aigai)는 19세기 때 그리스 북부의 베르기나(Vergina) 인근에서 발견되었다. 300기 이상의 분묘가 있는 고분군이 있는데, 이들 분묘 가운데 일부는 기원전 11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대형 고분에 안치된 왕족 분묘 가운데 하나는 필리포스 2세(Philippos II)의 것으로 밝혀졌다. 필리포스 2세는 그리스의 모든 도시를 정복하여 아들인 알렉산드로스(Alexandros the Great)가 고대 그리스 세계를 확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크고 작은 전투마다 직접 현장에 나타나 지휘를 했고, 그 때문인지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들과 전쟁을 하던 중에 부상을 입고 애꾸눈이 되기도 하였다
그리스 에서 국경을 넘으면 바로 나오는 불가리아의 국경도시 산단스키,
산단스키(불가리아어: Сандански, Sandanski, 1949년 이전까지는 스베티브라치(Свети Врач, Sveti Vrach))는 불가리아 남서부에 위치한 블라고에브그라드 주의 도시로, 인구는 26,472명(2011년 2월 기준), 높이는 296m이다.
도시 이름은 불가리아의 혁명가인 야네 산단스키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피린 산맥 기슭에 위치하며 산단스카비스트리차 강과 접한다. 산단스키 시내 로마시대유적
평균 기온이 14.1℃(불가리아에서 가장 높은 연간 평균 기온)에 달할 정도로 온화한 기후를 띤다.
광천수가 솟아나오기 때문에 휴양 관광지로 유명한 도시이다
불가리아는 동부 유럽 발칸반도의 남동부에 있는 나라로서 터키와 접경한다.
터키의 동유럽 진출 통로에 입지하고 있기 때문에 1396년부터 500년간 오스만투르크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1878년 러시아· 투르크 전쟁 결과 자치공국이 되었고 1908년 불가리아 왕국으로 독립하였다.
1945년 공산당이 집권하고 1946년 왕정제를 폐지하여 불가리아 인민공화국이 되었다가 1989년 동유럽 민주화의 영향으로 공산정권이 붕괴된 후 1991년 신헌법을 채택하여 불가리아 공화국이 되었다.
정식 명칭은 불가리아공화국(The Republic of Bulgaria)으로, 해안선의 길이는 354㎞이다. 면적은 11만 879㎢, 인구는 718만 6893명(2015년 현재), 수도는 소피아(Sofia)이다.
주민은 불가리아인이 전체 인구의 83.6%, 터키인이 9.5%, 그밖에 집시·마케도니아인·아르메니아인·러시아인·그리스인 등 여러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용어는 불가리아어이며, 터키어·마케도니아어도 쓰인다. 종교는 불가리아정교가 82.6%, 이슬람교가 12.2%, 가톨릭교가 1.7%이다.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 불가리아 남서부 릴라 산맥에 위치한 동방 정교회 수도원이다. 불가리아의 수도인 소피아에서 남서쪽으로 117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수도원 안에는 교회, 주거 구역, 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릴라 수도원(Rila Monastery)은 10세기경 동방정교회(Orthodox Church)의 성자 반열에 오른 운둔자로 알려진 릴라의 성요한(St John)이 설립했다.
수도원을 비롯하여 성 요한의 금욕적인 삶의 은둔처·무덤은 신성한 장소로 여겨졌으며, 중세 불가리아의 정신적·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9세기 초 화재로 훼손되어, 1834년~1862년에 재건축되었다.
불가리아 르네상스(18, 19세기) 특유의 특징을 잘 보여주며, 슬라브족의 문화적 정체성을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것으로, 불가리아에서 가장 문화적·역사적이며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유적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릴라산 릴스키마나스틸에 있다. 1983년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육과학문화기구)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14세기 초 큰 지진이 일어나 건물이 파괴되자, 이 지방의 귀족인 프레리요 드라고보라가 외적의 공격이나 자연재해에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요새 형식으로 건설하였다. 당시의 건물 가운데 1335년 세운 높이 25m의 프레리요탑이 남아 있다.
17∼18세기에는 오스만투르크제국 내란으로 여러 차례 습격을 당하였으며 1833년에는 큰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불탔다.
1834년 수도원 재건사업이 시작되어 면적 3만 2000㎡에 수사들의 독방 300개, 예배실 4개, 도서관, 프레스코화로 장식한 손님용방, 높이 22m에 이르는 굴뚝이 있는 수도원관리실 등을 건설하였다.
수도원 중앙에 있는 성모성당은 그리스 십자 모양의 평면에 둥근 지붕 24개를 얹은 3랑식(三廊式) 성당이다. 회랑(回廊)의 벽면과 천장은 19세기에 그린 선명한 빛깔의 프레스코화 1,200여 점으로 장식되어 있다.
외부에서 보면 마치 요새 같은 모습을 한 이 수도원은 인상적인 장소이다. 여러 가지 사건을 겪어 왔던 이 수도원은 은자들로 이루어진 수도원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이반 릴스키에 의해 탄생했다.
그는 치유 능력을 지녔다고 해서 유명했으며, 이후 중세의 통치자들은 무척이나 그의 유골을 손에 넣고 싶어 했다. 유골은 1183년 에스테르곰으로 갔다가 비잔틴 제국과 불가리아를 거쳐 결국 1469년 릴라 수도원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수도원 건물 자체도 빈번하게 약탈당하고 이를 다시 짓는 일을 계속해 오느라 유골에 못지않게 파란만장한 나날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