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궁지 외규장각
1782년 정조는 왕실 관련 서적을 보관할 목적으로 강화도에 외규장각(外奎章閣)을 세웠다. 외규장각은 1776년 창덕궁에 설립된 규장각의 분소와 같은 성격을 띠게 되었고 병인양요로 불타 없어지기 전까지 1,007종 5,067책이 소장돼 있었다고 한다.
1866년 병인양요가 발생하여 프랑스 함대에 의해 강화 행궁과 외규장각 도서들이 불에 타 없어지는 큰 피해를 입었다. 또한 프랑스 군대는 은궤, 어새 등과 함께 외규장각 도서 중 의궤류와 고문서들을 약탈해 갔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는 지난 1975년 국립도서관 사서로 일하던 박병선 씨가 베르사이유 별관 파손 창고에서 처음 발견, 세상에 알려졌으며, 1992년 7월 주불 한국대사관이 외규장각 도서반환을 요청하면서 논의되기 시작했다. 이후 1993년 9월 서울에서 열린 김영삼 전 대통령과 미테랑 대통령 간의 정상회담에서 '교환 기본원칙'이 합의됐고, 이때 한 권이 '반환'됐다.
그러나 한국 측은 무조건적인 반환을 주장하는 한편, 프랑스 정부 측은 외규장각 도서를 국내로 반환하는 대신에 국내에 소장 중인 비슷한 가치를 지닌 우리 문화재를 대신 프랑스에 내주는 '등가교환'을 내세워 협의를 했으나 약탈당한 문화재를 상호대여 형식으로 돌려받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우리 문화계의 반대로 합의가 무산됐다.
한편 2010년 11월 G20 정상회의에서 양국 대통령은 외규장각 도서를 5년 단위 갱신이 가능한 임대 형식으로 대여하기로 합의하였으며, 이에 따라 296권이 모두 반환되었다.
고려궁지 외규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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