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부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존재, 창조, 통치하시는 분이며, 말씀과 함께 뜻하시고 계획하시며 약속하시고 준비하시며, 말씀대로 진행하시고 맛보게 하시며, 말씀 그대로 누리게 하시고 다 이루시는 분인 것이며..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도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인 것이고 말씀을 직접 보여 주셨으며, 말씀의 나라를 경험케 해 주셨고,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온 세상, 온 우주, 모든 시간과 공간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그 목숨값을 주심으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말씀 그대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셨을 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 때부터 죄악과 진노와 사탄과 음부와 사망과 심판들의 영적 노예 상태에 빠진 인생들을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할 수 있게 하신 것이고, 그 말씀과 함께 살아 있는 믿음이 될 수 있게 하신 것이며,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신 분인 것이고..
성령 하나님께서도 단적으로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말씀을 이 세상에 기록될 수 있게 하셔서 우리 인생들이 접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일 뿐 아니라 그러한 말씀을 우리 인생들이 현실적으로 알고 깨달으며 믿고 행하며 증거하고 누릴 수도 있게 하신 직접적, 실제적인 힘이신 분인 것이며, 더 나아가 모든 말씀들을 말씀대로 경험케 하시고 나타내시며 성취되어질 수 있게 하시는 현실적, 경험적인 힘이 아니실 수 없는 분으로 참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그렇듯 그 자체가 바로 말씀이신 것이고, 오직 말씀으로 하나되시어 말씀대로 역사하시는 분이며, 말씀과 함께 모든 것을 나타내시고 경험케 하시며 이루시는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온 세상 천지만물도 말씀으로 인해 무에서 유로 창조되어 졌고, 특히 에덴동산은 말씀의 동산으로 아담과 하와가 말씀가운데 있었을 때 온전히 누릴 수 있었고 말씀이신 하나님과 함께 거닐 수도 있었으나 말씀을 거역할 때는 쫓겨나게 되고 박탈당했던 것이며..
더 나아가 죄악으로 인해 말씀을 상실한 온 세상, 모든 인류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창세전부터 구원의 계획을 준비하시고 약속하시며 하나님의 시간에 따라 하나하나 진행하시고 구체화하시면서 특히 아브라함을 불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셨는데 직접적, 본질적으로는 말씀과 함께 인 것이고,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시작될 수 있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게다가 계속된 구원의 과정과 진행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람이자 그 누구보다 말씀의 신앙이었던 모세를 통해 구약 율법의 말씀을 주셨고, 회막과 예루살렘 성전 한가운데에도 다름 아닌 언약궤, 곧 말씀의 궤가 있었으며, 실상 그러한 회막이나 성전 안에서 드리는 양과 소 등과 같은 희생 제물의 피 제사를 통해 당시의 관점에서는 오실 메시야이신 구주 예수님에 있어 예표와 모형이 되고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도 그림자와 연결이 되게 하셨는데..
특히 그러한 구약의 모든 제사들의 본질들도 말씀 그대로 드리는 것에 의미와 생명과 근본이 있었던 것이고, 더 나아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들에 있어서의 모든 역사와 상황과 믿음의 선배들, 그리고 그 가운데 있었던 크고 작은 응답과 이적과 승리들에 있어서도 근본적이면서 공통적인 줄기는 말씀, 말씀의 신앙으로 인한 복, 죄악으로 인한 진노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략 2000년 전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님께서는 구약의 율법과 함께 한 약속과 계시의 말씀대로 오신 분이고, 그러한 율법의 말씀들을 폐하신 분이 아닌 완성하러 오신 분인 것이며, 그 가운데 말씀의 삶과 선포와 능력과 나라를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죄악으로 인해 말씀이 막히고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과 단절되어 영적으로 이미 죄와 진노와 음부와 심판들의 종된 인생들과 온 세상을 위해 예루살렘, 곧 시온성에서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말씀대로 부활하신 것인데..
바꾸어 말하면 말씀대로 우리 인생들에 있어 필요한 모든 구원을 말씀대로 다 이루신 분인 것이고,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에 바로 말씀 그대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는 분인 것이며, 특히 그 백성된 자들을 말씀에 약속된 대로 부활할 수 있게 하시어 완전한 말씀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게 되도록 말씀대로 필요한 모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을 위한 값과 대가들을 대신해서 다 치르심과 함께 말씀 그대로 시대와 나라들,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그러한 구주 예수님을 말씀대로 믿는 자들마다 값없이 구원의 백성이 되고, 마치 목욕하듯 통째로 하나님의 것이 되며,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셨는데 그것은 곧 본질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것,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백성, 진정 말씀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임을 의미하고, 하나님의 나라도 하나님의 법이 통치하는 나라로 본질적으로는 절대 진리이자 하나님의 법인 말씀의 나라인 것이며..
실제로는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마다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과 함께 하는 살아 있는 믿음으로 인해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속에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응답들 같은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이 땅에서도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 그대로 누릴 수 있게 됨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게다가 직접적, 현실적인 측면에서는 그러한 모든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 시공을 넘는 전지전능의 하늘의 힘으로 실제가 되고 경험이 될 수 있게 하신 분이면서 근원적으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하나되심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에 있어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영이시자 구주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께서야 말로 본질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것이고..
다른 그 무엇보다 말씀대로의 믿음과 함께 시간과 공간들을 초월해서 말씀대로 실제가 되고 경험할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분인 것입니다..
실상 아래 본문의 2절에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라고 증거되어 있는 것에서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는 것과 같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이 모세 때부터 다윗 때까지 유지되어져 왔었던 성막이나, 또는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은 채 불태워지고 파괴되는 성전, 곧 그렇듯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손으로 만든 성막이나 성전이 아닌 참 성전이시자 이 세상 성전의 원본이시며 완전한 성전이시라 할 수 있는 예수님, 다시 말해 시온성인 예루살렘에서 그 목숨값으로 모든 구원을 다 이루신 구주 예수님을 통해 온 세상에 넘치고 오늘 우리들에 이르고, 영원에 이르기까지 실제로 이어지며, 하나님의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될 수 있게 됨을 잘 통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어쨌든 그 누구보다 오늘날 바로 우리들부터도 완전한 희생양이실 뿐 아니라 오실 메시야의 모형으로 사용된 예루살렘 성전과는 잠시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참 성전이시며, 그 위치와 역할에 따라 완벽한 희생양이시기도 하고 완전한 대제사장이기도 하신 구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에 참예케 된 것이고, 본질적으로 말씀의 백성으로 전적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와 함께 우리들의 신분이나 존재 자체가 천국과 부활과 영생의 백성으로 뒤바뀐 것일 뿐 아니라 이 험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에도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꼭 예루살렘에서나 구주 예수님의 공생애 때가 아니더라도 진정 그 어떠한 때, 그 어떠한 곳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순간순간마다 바로 그러한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들로 인해 죄가 아닌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으로 살면서 갈수록 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충만해 질 수 있고,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의 법, 곧 말씀의 나라인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을 더욱 생생하고 강렬하게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고..
특히 참 성전이신 구주 예수님으로 인해, 곧 그 십자가 붙잡고 그 이름으로 기도함과 함께 시간과 공간들을 넘어 그 어디서든 예배가 가능할 수 있게 되었는데 무엇보다 오늘날의 예배야 말로 마찬가지로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에 따라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그 보혈의 공로를 의지하며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를 덧입어 죄와 세속이 아닌 오직 말씀으로 나아가고 전심으로 결단하면서 비로소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가 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이며, 실상 바로 그러한 말씀대로의 예배의 자리와 시간과 순서들은 이 땅 가운데 임해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사건들을 가장 생생하고 강렬하며 뜨겁게 경험할 수 있는 통로이자 현장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으로 그러한 예배야 말로 근본적으로는 말씀이신 하나님을 향한 전적인 말씀대로의 믿음으로 인해 그 말씀대로의 임재와 영광 가운데 말씀 그 자체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만나며 경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목숨값의 구원과 공로가 없이는 불가이기도 하고 소용도 없는 것인데..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시자 그 예수님의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케 하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이 될 수 있게 하고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고, 그와 함께 말씀에 약속된 모든 은혜와 복과 능력들로 새로워지고 충만해 지는 결정체이자 사함과 나음과 승리와 역전과 부흥의 절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기도의 응답과 예배의 열납들,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힘과 은혜들, 구원의 일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임재와 영광들, 승리와 열매들, 복과 부흥들 등과 같은 하나님의 모든 세계, 신앙의 모든 세계, 복음의 모든 세계는 본질적으로, 곧 한 마디로 말하면 말씀이 아닐 수 없고, 그와 함께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다른 그 무엇보다 중요하며 긴급하고 절대적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인데..
사실상 온전하고 강렬하며 풍성한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에 있어서의 근본과 본질, 이치와 원리, 실제와 경험, 생생함과 강렬함 등에 있어 오직 말씀, 말씀의 신앙, 말씀대로의 믿음이 모든 전제이자 기준이고, 실체이자 방법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끝 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라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라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
만민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미4:1~5)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2월 2일(금)2/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