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음악과 춤바람 >
1950년대는 전쟁이 끝나고 춤바람이 불던 시대였다.
다음 노래는 황정자가 부른<저무는 국제시장>(1957)이다.
나이롱 양단 호박단 신문네 들어 왔세요
아주머니 나이에는 밤색 빛깔 넘버원
백금반지 파라솔 오메가냐 순금팔찌요
요새는 그것이 유행입니다
자유부인 되지 말고 옥동자를 많이 나아서
군문으로 입대시키세요
나이롱 양단 호박단 비로도를 걸치고 백금반지, 순금팔찌를 두른 자유부인의 초상화를 현란하게 그려내고 있다. 모두 국제 시장을 통해 들어온 외래품들이다.
자유부인들은 옷차림만 화사한게 아니고 병역기피에 앞장선 특권층이기도 했다.
노래에서 역설적으로 아들 낳아 군대 입대시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노래를 보면 자유부인은 그야말로 50년대를 대표하는 특권층의 사치와 허영을 대변하는 대명사였음을 알 수 있다.
여성해방, 인권옹호라는 긍정적 의미 외에 특권층 여성들의 부패와 허영을 동시에 보여주는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가진 것이 ‘자유부인’이었다.
문제는 그 작품이 50년대 태풍처럼 불던 춤바람 유행에 촉진제가 되었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춤바람이라는 불덩이에 기름을 쏟아 부은 것이 <자유부인>이었다.
전쟁은 절망과 욕망이라는 양면성의 얼굴을 빚어낸다.
모든 것을 잃었고 희망마저 무너졌다는 절망감, 좌절감에 휩싸이면서 동시에 어짜피 그럴 바에야 순간순간 인생을 즐기자는 욕망과 욕구가 분출되기 마련이다.
춤바람은 이러한 절망에서 비롯한 퇴폐적 욕망의 분출구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너도나도 춤바람에 휩쓸렸던 것이다.
거기에 물밀듯이 들어오는 서양의 댄스뮤직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
말하자면 195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큰 흐름이 된 댄스음악은 전후의 시대상과 서양음악의 수용이 맞물려서 상호작용을 일으킨 음악장르였다.
거기에 미국문화 문명에 대한 콤플렉스도 함께 작용하였다.
미국문화는 서구문화의 상징이고 고급문화이기 때문에 이를 추종해야 한다는 대중심리가 캬바레 문화, 춤문화를 선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춤바람은 50년대의 유행병이 되었다. 여기에 뒤질세라 너도나도 춤바람에 끼어들었던 것이다.
밭김을 맬 때나 아낙네 맘보가 들린다
이가 빠진 할머니도 헤에이 맘보
아낙네도 맘보, 맘보다, 맘보시대다
김정애가 부른 <아낙네 맘보>(1957)다.
도시, 농촌, 아주머니, 할머니 가릴 것 없이 온통 맘보춤에 취한 그야말로 ‘맘보시대’가 열린 것이다.
밭김을 매다가 논모를 낼 때도 맘보춤 가락에 맞춰 일을 한다.
할아버지 담뱃대도, 이빠진 할머니도 맘보가락에 춤을 춘다.
그야 말로 맘보 천국이 열린 것이다. 남녀노소, 도시농촌, 지역과 계층을 초월하여 맘보춤이 사회구석구석 독버섯처럼 피어났다.
호미자루 내던지고, 빠진 이를 흔들며 맘보춤을 추는 남녀노소들의 춤 풍경이 도처에서 현란하게 펼쳐진다.
심지어는 1930년대 유행하던 사회풍자가인 만요 양식을 닮은 풍자만요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값비싼 양식으로 배부르거나
보리밥 짠지쪽에 배부르거나
목욕탕에 옷을 벗긴 다 같은 친구
값비싼 넥타이에 춤을 추거나
노동복 고무신에 춤을 추거나
영구차에 타고 가긴 다 같은 신세
너도 맘보 나도 맘보 코리안 맘보
김정구가 부른 <코리안 맘보>다.
양식을 먹는 사람이나, 보리밥 먹는 사람이나 목욕탕에서 옷벗기는 다 마찬가지고,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나 고무신 신는 사람도 죽기는 마찬가지니 살아 있는 동안 신나게 맘보춤이나 추자는 노래다.
있는 사람, 없는 사람, 죽기는 매일반이니 살아 있는 동안 맘보춤 추며 신나게 살자는 것이다.
브랜디-대폿잔, 값비싼 양식-보리밥 짠지, 값비싼 넥타이-노동복 고무신을 대비시키면서 부유층과 서민층의 계층의식을 은연중 부각시키고 있다.
50년대는 부익부 빈익빈의 계층 갈등이 심화되던 시대였다.
그러한 사회현상을 꼬집으면서 그 계층 갈등을 맘보춤으로 풀어 보려는 풍자성이 돋보인다.
<월급날 맘보>(김용만), <후라이 맘보>(김용만)도 해학과 풍자가 넘치는 맘보다.
월급날 받은 봉투 한푼도 없어
친구좋아 한잔술에 맘보맘보
젓가락 장단에 맞춰 어깨춤 절로 나네
얼씨구나 맘보, 절씨구나 맘보
김용만이 부른 <월급날 맘보>다.
‘바가지 박박 긁는 마누라 야단쳐도’ 월급날 술마시고 맘보춤에 어깨 들썩이는 한량이 등장한다.
큰 딸이 나이론 치마, 작은 놈이 양복한 벌 사달라 조르지만 맘보춤에 빠져 나몰라 하고(2절), 월급날 빚쟁이 한테 쫓기지만 ‘양재기처럼 배를 내밀고’ (3절) 맘보춤을 춘다.
노래 가락도 맘보리듬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만요풍 가락은 1930년대 강홍식, 안명옥이 부른 만요 <명물남녀>를 연상시킨다.
타락한 남녀가 카뱌레에서 탱고 가락에 맞춰 춤을 추듯이, <월급날 맘보>역시 탱고 가락에 사회 풍속도를 풍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용만은 재치넘치는 해학으로 사회풍자가를 많이 부른 가수로 주목 받았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피었다가 시들으면 다시 못필 내 청춘
마시고 또 마시고 취하고 또 취해서
이 밤이 새기 전에 춤을 춥시다
윤일로의 <기타부기>(1957)는 향락의 극치를 보여준다.
밤새도록 술 마시고 춤을 추는 캬바레 문화의 속살을 생생히 드러낸다.
‘인생이란 무엇인지 청춘은 즐거워’ 그 청춘을 술과 춤으로 태워버리자는 히도니즘(hedonism)의 열정을 노래하고 있다.
‘취하고 또 취해서’ 밤새도록 춤을 추는 젊은이들의 향락문화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 노래는 증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향락주의, 도피주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노세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는 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
얼시구 절시구 차차차, 지화자 좋구나 차차차
황정자의 <노래가락 차차차> 역시 퇴폐, 향락문화의 절정을 보여준다 달도 차면 기울고 화무(花無)는 십일홍(十日紅)인 것처럼 청춘은 한 순간이니 마음껏 즐기고, 놀자는 것이다.
차차차 가락에 몸을 맡기고 ‘지화자 좋구나’를 신나게 불러 보자는 것이다.
다방을 가고 영화를 보고
사교춤 추어야만 여자인가요
때 묻은 행주치마 정성이 어린
이러한 아낙네가 여성 넘버원
-<남성 넘버원>
다방에 가고 영화를 보고 사교춤 추는 것이 여성의 품격임을 과시하고 있다. 행주치마 두르고 가난한 집안 살림 알뜰히 살피던 여성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없다.
이러한 모습들이 50년대 향락문화, 소비문화의 자화상들이다.
결국 50년대 미국식의 춤음악의 유행은 이러한 퇴폐문화의 산물이었던 것이다.
대중가요가 시대의 거울이요, 사회의 산물임을 다시 한번 증명하는 현상들이다.
이처럼 50년대 서구 음악의 수용은 전후 피폐한 시대상황과 맞물려 퇴폐적 향락주의를 자극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한국 대중가요의 발전을 위해서는 의당 음악의 세계화 차원에서 서양음악과의 교류와 정착이 필수적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려 퇴폐, 향락문화를 촉진하는 결과를 빚었다.
그러나 이렇게 부작용을 낳긴 했지만 순수히 음악적 차원에서 볼 때 서양음악의 수용은 한국 대중음악의 발전을 위해서는 긍정적인 역할도 수행했다.
한국 음악의 세계화, 개방화에는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이를 발판으로 60년대 다양한 장르의 대중음악이 꽃필 수 있었던 것이다.
ㅡ문천지 씀
첫댓글 50년대 가요사~~~
잘읽어 보고 그시절 그모습 이해가 되네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그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시대상을 대중가요가 실감나게
그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