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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 전공의 사직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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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외과 전공의 4년차이다.
졸국이
얼마 남지 않아
앞날을 걱정하던
그냥 평범한
외과 전공의이다.
요새
전국 의사 총 파업에 관하여
의료계가 뜨겁다.
나 역시
파업에 동참하고 있고,
정말
처음 시작이 너무 힘들었던
병원과
거리두기를 실천 중이다.
그리고
오늘
업무 개시명령이
떨어졌다고 하여,
망설임 없이
사직서를 작성하였다.
난생 처음
사직서를 작성하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
길지만
정말 오랜만에
글을
한 번 써볼까 한다.
난
많은 이들이 실패했다고
일컫는
의전원 졸업생이다.
즉 '의전충'이다.
의전원을 처음
만들었을 당시부터
'돈으로
의사 면허를 발급한다,
고위층 자제의
신분세탁의 방법이다.'
등의 의견이 많았다.
다만,
수능을 망쳤던
나에게
의대를 갈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적용한 것도
사실이었다.
또한 의전원 시장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몰리지 않은
'그들만의 리그'였기에
의전원 입시시험인 MEET를
잘 보기만 하면
나에겐
기회가 열려있었다.
난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의사가 되고 싶었다.
동네 의사선생님들이
멋있기도 했지만,
제일 멋졌던 건
드라마 속 의사들이었다.
정말 죽기직전의 환자들이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들어오면
기적처럼 살려서
집으로 돌려보내는...
그리고
그런 무서운 상황을
전적으로
환자의 목숨을 위해서
받아들이는...
그 모습은
나에게
너무 충격적으로 멋졌다.
저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불현 듯 하게 되었고,
그 뒤로는
의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난
기회를 잡은 사람이라
생각했고,
재수를 거쳐
의전원에 입학했다.
의대 합격의 감격과
내가
의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을
버틸 수 있게 해주었다.
대표적으로
의대의 살인적인 공부량을
들 수 있는데,
의대 공부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지금까지의 사고방식과
조금 다른 학습능력들을
요구하였고,
학습량도
감당 못 할 정도로
많았다.
그래도
복지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부모님께
폐를 끼치기 싫었고,
한 학기 천 만 원에
가까운 학비를
덜어드리기 위해
노력해서
장학금을 받으며
다녔다.
시험은
정말 자주 봤는데
시험 한 달 전부터는
4시간이상 자본 적도 없고,
주말에도
늘 공부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본과 2학년을 넘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후
병원으로 등원하였고,
꾸준히 열심히 했던
결과로
꿈에 그리던 병원으로
올 수 있었다.
인턴으로
일을 하기 시작하니
'일반인'일 때의
나 자신은
전혀 알지 못했던
근무체계를 알게 되었다.
막연히
겁은 먹고 있었지만
실상을 접하니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근무시간은
말도 안 되게 길고,
당직은
모든 과에서
퐁당퐁당으로 섰으며,
당직을 선 다음날
12시간 근무는
당연하여
36시간 근무 후
12시간 휴식이 기본이었고,
어떤 과에서는
매일매일
당직을 서기도 했다.
그래도
함께하는 동기들과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보며
버틸 수 있었다.
최저 시급을
약 300원정도 넘긴
급여명세서를 보면서도
나에게
이런 환자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준
병원에 감사했다.
주말에 하루 정도
쉬는 날이 생겨
집에 들어가게 되면,
잠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른 날은
모두
병원에서 생활했다.
4~6명이서
생활하는 당직실에서
자고, 먹고, 씻는 것 모두
병원에서 해결했다.
근무시간 내내
그 누구도
인턴에게
밥 먹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근무시간에
식사 시간이
명시 되어있고
이걸 빌미로
1시간 시급이
지급되지 않지만,
나의
식사시간을 지켜서
콜이 온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정확한 시간을 정해서
식사를 해본 적도 없다.
식사 시간은
길어야 15분이었다.
또한
끼니를 거르는 일은
매우 비일비재했고,
정신없이
하루가 끝날 무렵
허기가
미친듯이 밀려와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인턴 동기들과 함께
인스턴트 식품이나
배달음식으로
한 끼를 때우는 게
일쑤였다.
정형외과를 돌 당시
인턴이 두 명이었는데,
한 명은
응급실 당직
나머지 한 명은
병동 당직이었다.
이걸
우리말로는
에브리데이 당직
줄여서
‘에당’이라고 불렀다.
오프 시간이라고는
주말 일요일에
서로 12시간씩
돌아가며 쉬는 시간이
다였다.
이걸 28일간 반복 하다
가끔 힘들어서
저녁에 수술방으로 배달된
밥버거를 먹으며
수술방 식당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난 외과를 선택했다.
처음
의사가 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당시부터
난
생명을 다루는 과를
하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고 목표했던
멋진 의사 상을
따라가기 위해
난
외과를 선택했다.
외과 교수님들이
왜
외과를 선택했냐고
물으시면
주저 없이
‘멋있어서요’
라고 대답했다.
처음에는
이 큰 병원에서
외과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가슴이 벅차
너무 행복했다.
나의 명찰을
하루에도 수십차례
들여다보며
나 스스로
대견해했다.
응급실 당직 때
치프 선생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환자
진찰하는 것도,
당직 서면서
안 좋은 환자를
여럿 살리는 것도
너무 뿌듯했다.
우리 동기들
그리고 선후배들
모두
같은 마음일 것이다.
죽을 환자를 살리고
그러면서
내가
의업을 행하고 있다는 것의
만족감으로
이 힘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하지만,
난 외과 1년차
6월에
업무를 중단하고
무단결근을
1주일간 하였다.
이유는
‘너무 힘들어서’였다.
이식외과 수련을 할 당시
퐁당퐁당 당직을 서며
일을 했고,
응급실콜,
응급 이식콜
모두 받아야했다.
또한
응급 뇌사자
이식이 생기면
1년차는
전날 당직과 상관 없이
자동 당직이었다.
그 중
2주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당직을 서게 될 때가
있었는데,
13일 연속 당직을 선 후
오전 6시 50분에 일어나
7시 회진을 늦어
4년차에게
매우 혼났고,
‘이렇게는 더 못살겠다’
라는 생각이
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그대로
짐을 싸서 나왔다.
그렇게
자취방에서 잠든 나는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다.
외과를
너무 하고 싶었던
이런 나도
업무의 과중 앞에서는
무너졌다.
이 곳을 거쳐 간
모든 선배들과 동기들이
더할 나위 없이
대단해 보였다.
이후
동기들과 선배들의
설득과
외과라는 의업을 위해
다시 돌아와
벌써
전공의로서
마지막 년도를 보내고 있다.
작년
법무부장관의 딸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부산 모 의전원에
재학중이고,
난
한 편 조차
제대로 마무리 하지 못한
논문도
그 분은
고등학생 신분으로
이미 제1저자로
등재했다고 하는
천재라 한다.
하지만
그녀의 학점은
낙제 학점인
2.0 미만이었다.
의대에서는
단 한 과목 낙제(F)하거나,
전체 학점 2.0 미만이면,
여지없이 유급이다.
그게
2학기 말이든
1학기든 상관없이
무조건 1년 과정을
새로 하여야 한다.
우리 학교 학비는
타 학교보다 비싸서
2학기 마지막 시험의
재시험은
‘2000만원 빵’이라는
말도 있었다.
정말
집안이 부유하지 않고서는
온 머리가 다 빠지도록
공부하게 된다.
하지만
부산의 모 의전원은
규정까지 바꿔가며,
낙제 학점인 학생을
구제했고
벌써
본과 4학년이라고 한다.
또한
그 학점으로
전학기 추천 장학금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논문조차
본인이 썼을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는
논란은
여전히 뜨겁다.
이런 와중에
정부는
‘공공의대’를
만들겠단다.
이
말도 안 되는 취지는
나와 같은
외과의 및 흉부외과의들을
더 많이 배출하고
시골에
의사를 더 많이
배치하기 위함이란다.
또한
추가로
외과 및 흉부외과 지원자가
적으니
1년에 400명씩
더 뽑아서
10년간 4000명
증원하겠단다.
메머드급인
우리병원에서
외과의
세부전공인 외상외과는
현재
전임의(펠로우)가 없다.
그리고
우리 동기 중에서도
외상외과를 희망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럼
4000명 충원된
인물중에서는
몇 명이나
‘제2의 이국종’이
될 수 있을까?
왜
외상외과, 흉부외과를
지원하지 않는지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봤을까?
단지
인원만 늘어나면
갑자기
외상외과 흉부외과 지원자가
쑥쑥 늘어날까?
답은
이미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절대 아니다.
의사도 사람이다.
또한
우리 외과의들은
외과를 선택한 순간
포기한 것들이
엄청나게 많다.
비급여 진료를 포기했고,
개원을 포기했고,
내 평범한 삶을
응급 환자에게
저당 잡혔다.
하이엔드 수술을
할 수 있는 의사는
극히
대학병원에 수렴되어
있고,
그 자리는
이미 만석이다.
하지만
10년 뒤에는
외과의의
절벽이 나타난다.
이 말은 즉슨,
현재의 50%의 외과의가
10년 뒤
은퇴를 맞이한다는 것인데,
10년 뒤 새로 입학하는
4000명이
모두 외과에 가더라도
지금의
전문인력이
길러지지 않는다면
신입 외과 전공의
4000명을
가르칠 인력은
현저히 부족하다.
즉,
소위 기피과로 불리는
외과, 흉부외과, 비뇨기과 등은
‘지금’ 바로
수술할 의사를
쭉쭉 길러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해결책으로
덜컥
의대 증원과
공공 의대 설립한다는 것은
불편한 현실을
외면 할 뿐
어떤 해결책도
되지 않는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사 증가율은
OECD 1위이며,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이다.
이 대책 없는
증원은
훗날 많아진
의사 수를
감당해야 할
미래의 우리에게 줄
빚일 뿐이다.
10년 뒤면
이미
OECD의 평균 의사수를
훌쩍 넘을텐 데
그때
가서
'아님 말고'하는 식의
정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난
내가
외과의사라서가 아니라
의료계에
발 담근 후부터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
왜
우리나라는
정말 필요한
생명을 다루는
과들에 대한 처우가
밖에서
미용 진료를 하는 의사들
혹은 한의사보다 못한 걸까?
물론
미용 및 피부질환의 진료가
가치가 없다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경험한
온갖 범복막염 환자에 대한
수술 및 진료가
국가에서 지정한
수가로 보기엔
밖에서
비급여로 진행하는
미용진료, 성형 수술보다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이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만 추측하기로
우리 선배님들이
환자에 대한 사랑이
너무 크고
병원을 운영하던
주체가 아니었기에
그냥
감내하자고 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역시도
처방 한 번 할 때마다
가격 및 급여 제공이
가능한지
먼저 살피니까
말이다.
(돈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전공의에게 책정된
우리 병원의 위험수당은
월 25000원이다.
에이즈환자가
응급실에 충수돌기염으로
내원하고,
C형 간염 환자가
범복막염으로 응급실로
내원해도
우린
진료 거부권이 없어
수술해야 하는데
위험수당은
25000원이다.
한 건 당이 아니라
월 25000원이라는 것!!)
다시
본래 얘기로 돌아와서
현재
정부가 말하고 있는
모든 문제점의 해결책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기피과가
기피과가 되지 않도록
하면 된다.
자신의 진로를
정할 때,
내가 투자한
비용과 시간과
노동의 강도에 비하여
적은 보상이 주어지고
일자리도 적고,
근 10년을 투자하여
애써 배운
하이엔드 진료를
할 수 없다면,
어떤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현재 기피과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
너무나도 간단하게
귀결될 수 있는
정확한 문제점을
안고 있고,
해결해야 할 정부는
등잔 밑 그림자처럼
아예
보지 않으려 한다.
그 과를
하고 싶게 만들려면,
생명에 관련된
진료 및 수술에
많은 보상이
돌아가게 하면 된다.
그 후
모든 인턴 및 학생들이
열망하여
내과, 외과, 흉부외과에
진학할 수 있게
유도하면 된다.
현재 피안성, 정재영으로 일컫는
인기과들에 몰린 인기를
생명으로 직결된 과로
향하게 하면 된다.
그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많은 보상을
보장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알아서
병원에서
더 많은 전문의 채용을
하게 될 것이고,
일자리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레
인턴 및 학생들은
자신들의 소신을 쫓아
소위
메이져라 부르는
내외산소 및 기피과로
몰리게 될 것이다.
또한
보상이 많다 보면,
지방의
대학병원 및 중소병원에서도
수술 및 하이엔드 진료에
더욱 투자를 하게 되고,
그럼
현재
정부에서
명분만들기에 급급한
지역의사 수급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10년 뒤 4000명 증원보다
빠르게 말이다.
또한 이는
결국
전체 의료의 질 향상에도
매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난
‘일반인’이었던 시절
대학병원 교수들이
제일 돈 잘 버는
의사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대학병원 교수들이
페이 닥터들보다
금전적으로 대우받지 못한다.
다만,
직업의 안정성과
배운 하이엔드 진료를
은퇴까지 할 수 있으며,
은퇴 후 사학연금,
전공의 배치 등의
이점이 있고
또한
그에 따라오는 명예도
의사로서 무시할 수 없는
큰 매리트이다.
하지만
외과 주니어 스텝의 경우
업무 강도는
정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고,
대부분의
응급 환자들의
수술 및
수술 후 케어를
도맡아 하게 된다.
미용 진료를
보고 있는
다른 의사선생님들을
욕하고
분열시키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사람을 살리는데
밤을 새서
당신의 가족을 지키는
의료와
아무런 수련을
받지 않고
나가서
비급여로
보톡스를 넣는 의료 중
어떤 의료를
보전해야 하고
보상해야 하는
의료인 것인가?
너무나도 간단한 답을
정부는
거짓말로만 일관하고,
병원에서
자신의 청춘을
환자를 위해
바치고 있는
젊은 의사들이
바른 의료를 위해
외치는
절규를
짓밟고 있다.
언젠가
분명
이 파업도 끝날 것이고,
난
외과 전문의로서
평생을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
어떤 진로가
기다리고 있을지,
이 의료계가
어떻게 변화 될지는
정말
아무도 모른다.
다만
난
2020년 여름
아주 뜨거운 투쟁이
있었고
의료계의
미래를 위하여
나의
전공의 경력,
면허까지 걸었던
싸움이 있었고,
그에
참여했다는 사실에
후배들에게
한 점 부끄럽지 않을
그런 의사가
되고 싶다.
2020년 08월 26일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의국에서
이성호
첫댓글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