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소식 몇년간의 치밀한 계획과 일사불란한 준비사업을 거쳐 개주시 서해판사처 쌍천안촌에 위치한 서해쌍천안조선족양로원(아래 쌍천안양로원으로 략칭)이 마침내 로인들을 맞아들이게 됐다. 쌍천안양로원 박종철(46)원장과 쌍천안촌 최송파주임에 따르면 8월말까지 이미 100여명의 로인들이 직접 찾아오거나 전화로 입주를 예약한 상황, 9월중순부터 로인들을 맞아들이고 10월초에 개업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2009년 7월에 착공식을 가진 쌍천안양로원은 300여무의 부지에 주건물 건축면적이 3,000평방메터에 달하며 동시에 170여명의 로인들을 수용할수 있다. 양로원 박종철원장은 로인들을 위한 사업인것만큼 소홀할수 없다며 모든 숙박시설을 일류만을 고집, 이미 안해와 함께 피땀흘리며 아글타글 모은 돈 500여만원을 투입했다.
박종철원장이 고향마을에 양로원을 건설하기까지는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에피소드가 있다. 1998년 안해 주홍옥씨가 일본에 건너가 한 양로원에 취직하면서 이들 부부는 양로원과 떨어질수 없는 인연을 맺게 된다. 안해에 앞서 1992년에 한국에 일하러 나갔던 박종철씨는 옹근 9년만인 2001년에 귀국하여 적잖은 귀국인원들처럼 처음 몇년을 하는일없이 허송세월했다. 2007년초, 계속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안해 주홍옥씨는 남편을 일본으로 초청하고 자신이 일하는 양로원을 참관시키며 고향에 양로원을 꾸리면 어떠냐며 넌지시 물어왔다. 박종철씨는 안해의 갑작스런 제의라 처음엔 어안이 벙벙했지만 며칠 동안 일본에 머물면서 안해가 다니는 양로원을 포함하여 다른 두곳의 양로원을 돌아보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괜찮은 사업일것 같았다. 특히 고향마을인 쌍천안촌만 보아도 1,800여명 인구중 500여명이 한국에 나가있고 또 300~400여명이 국내 대도시에 진출해있다보니 이들은 고향에 있는 나이 많은 부모들의 일상생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고향에 단신으로 남아있는 로인들의 생활을 보살펴주는것은 너나가 다 좋은 의의있는 일일것 같았다. 일본을 떠나면서 박종철씨는 고향마을에 조선족양로원을 꾸리기로 안해와 약속했다.
고향에 돌아오자바람으로 그는 무순 장당에 괜찮은 조선족양로원이 있다는 말을 듣고 찾아갔다. 양로원을 돌아보며 주인의 소개를 듣고보니 애로사항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다. 가장 큰 문제는 자금이였다. 자기가 한국에서 벌어온 돈과 안해가 일본에서 번 돈을 다 내놓아도 턱부족이였다. 이에 그는 양로원건설을 잠시 뒤로하고 양로원건설에 필요한 돈부터 벌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이튿날 반금에서 대장금불고기집을 경영하고있는 형님을 찾아가 영구에 대장금불고기집 분점을 세우겠다고 청구했다. 형님은 두손들어 찬성했다. 2008년 봄, 그는 마침내 150여만원을 투자한 영구 대장금불고기집을 오픈했다. 형님의 노하우를 그대로 전수받아서인지 아니면 그가 양로원을 꾸리려는 마음이 갸륵해서인지 불고기집은 첫시작부터 호황을 이루었다. 매일마다 아침 10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손님들이 몰려드는데 지금까지 하루 평균 7천원 이상의 매상을 올리고있다. 1만 5천원 이상을 팔 때도 있다며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안해 주홍옥씨가 일본에서 귀국하면서 양로원을 꾸릴 시기가 성숙됐다고 판단한 이들은 쌍천안촌 지도부를 찾아가 타산을 털어놓았다. 최송파주임을 비롯한 촌지도부는 이들의 계획에 찬성을 표하면서 유관 토지사용 규정에 따라 300여무의 부지를 제공했으며 이들은 2009년 7월 양로원 주건물 착공식을 가질수 있었다.
올 5월 양로원설립이 눈앞에 다가오자 박종철씨는 자신이 양로원관리경험이 없음을 자인하면서 국내 국외 양로원 견학길에 올랐다. 그는 다시 한번 무순 장당에 있는 조선족양로원을 찾아 돌아본후 대만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양로원을 돌아보면서 느낀점이 많았는지라 중국보다 경제상황이 좋은 대만의 양로원경영경험을 배우고싶었던것이다. 그는 대만에 1주일간 머물면서 두곳의 양로원을 고찰하고 돌아왔다.
“일본이나 대만에서 양로원을 돌아보며 가장 절실히 느낀 점은 집같은 아늑함과 깨끗함이다. 제반 시설에서 될수록 일본이나 대만의 양로원처럼 하려 한다. 제 후반생의 사업으로 고향에 양로원을 세우는것만큼 리익을 최종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로인들을 제 부모처럼 모시고 로인들이 양로원을 자신의 집으로 생각하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을것이다.” 고 말하는 박종철씨의 얼굴에는 행복의 미소가 어려있었다. 김창영기자
첫댓글 개발구 고향이 영구이까 늙어서 들어갈곳이 생겼네...좋겠다..ㅋㅋㅋ
일본,한국에서 많이보고 느꼈기에
중국의 그어느 요양원보다는 훨신 훌륭할거야...
제가 충남 부여군의 한요양원에 갔을때도
중국에도 한국식 요양원이 있었다면,,했는데.
늙어서는 바오마랑같이 다른안산시 요양원에서 ,,, 다같이 살~자!
그때는 안산시청 언니들도 다 오겠지...
화투도 ,,마작도 하고,,,
그다가 참이슬도 마시고...
빨리 늙고시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