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륭이 마지막 집회를 했습니다.
2005年 노조가 결성된 이후 햇수로 무려 11年 동안이나 좀 더 인간다운 노동현장을 만들기 위해 정말 눈물겹게, 정말 처절하게 투쟁했던 기륭조합원들이 이제 기륭 이름으로는 마지막이 되는 집회를 그제 했습니다.
방학 내내 아무 하는 일 없이 소주와 시간만을 축내다보니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았지만 11年 싸움의 마지막 현장에 안 갈 수는 없습니다.

20여 분 늦게 집회장소인 서초동 중앙법원 앞에 도착하여 슬그머니 대열 꽁무니의 한 자리를 차지할 때에 분회장 흥희는 여는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법적으로는 기륭의 악덕 사장 최동열을 응징하지 못했으나 사회적으로는 철저하게 매장을 시켰다는 말은 위안보다 아쉬움이 큽니다.

흥희에 이어서 발언을 한 사람은 세종호텔 조합원입니다.
올해 4月, 비가 내려 아직은 한기가 돌던 그날, 회사의 노조 탄압을 알리는 선전지를 행인들에게 나눠주던 조합원이 ‘손이 시리니 장갑을 달라’고 요청하여 500 원짜리 면장갑 2 개를 건네준 것이 정직 1개월 징계(징계사유는 ‘회사 비품 무단 유출’)의 빌미가 되었다는 본인 사례를 발표하고 있는데 갑자기 여우비가 흩뿌립니다. 제법 굵은 빗방울입니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속수무책으로 고스란히 맞고 있는데 대열 사이로 지나가던 아가씨가 주춤, 머뭇거리며 전신주 사이에 내걸린 펼침막을 한번 훑어 읽는가 싶더니 자기가 쓰고 있던 우산을 발언하던 조합원에게 건네주고 총총히 가던 길을 갑니다.
감동입니다.
그 돌발 상황의 순간을 찍지 못했지만 사진 속의 투명우산이 그 우산입니다.
흐흐, 나중에 술자리에서 ‘함께 맞는 비’ 회원인 영수(맨 마지막 사진에서 제 오른편에 앉은 친구)에게 ‘비가 오면 함께 맞을 게 아니라 그 아가씨처럼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라고 일갈하니 파안대소를 합니다.

마무리 발언은 권영국 변호사가 했습니다.
겉모습은 약해보여도 강단이 대단한, 외유내강의 조선 선비입니다. 늘 약한 자의 편에서 정의로운 사회, 평등한 사회를 구현하고자 애쓰는 참변호사입니다.
작년 12月,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해산 결정을 했을 때에는 엄숙한 재판정에서 그 부당함을 소리쳤던, 기개 있는 변호사입니다.
아래 사진은 그때의 모습입니다.

집회가 끝나자 매주 목요일 6시에 집회를 하는 세종호텔(명동)에도 가야하고, 7시의 빙그레 하청노동자 500日 투쟁문화제(대한문)에도 참석해야 하는 기륭누이들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 어수선한 틈을 타 마이클 잭슨의 문 워크 스탭으로 현장을 조용히 빠져나가려는데 소연이에게 딱 걸렸습니다.
눈치 빠르게 쫓아와 ‘가는 것이냐’고 물음은 ‘한잔 빨자’는 뜻입니다. 心心相印, 不立文字!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선수끼리는 다 압니다.
일단 저는 집에 가서 몸을 좀 추스르고, 기륭누이들은 명동, 대한문의 집회에 갔다가 9시쯤에 ‘상도 포차’에서 다시 만나기로 합니다.
‘상도 실내포장마차’는 쌍용자동차 前 지부장인 김정우가 주인인 간이주점입니다. 상도동 숭실대 근처에 있습니다. 전철 7호선 상도역 1번 출구에서 3분 거리입니다. 정우는 그저 탁자만 행주질 하는 정도이고 요리며 경리, 설거지는 사모님이 다 합니다.
지아비가 사고(?) 안 치는 것만으로도 지어미는 감지덕지일 것입니다.
ㅋㅋ, 이렇게 사고만 안 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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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年 8月, 당시 대통령후보였던 박근혜의 청계천 전태일 동상 방문을 온몸으로 막아낸 ‘상도포차’ 바깥주인의 모습.)

9時.
약속시간에 맞춰 ‘상도 포차’에 갑니다.
집회에는 늦을지언정 술자리에는 늦는 적이 없습니다.
도착하니 어랍쇼? 의외로 손님이 많습니다. 가게 밖 인도에까지 손님들이 넘쳐납니다. 그 뜻밖 광경에, 솔직 토크 하나가 목울대 안에서 자맥질을 합니다.
‘잘린 게 수입은 낫겠군’

드디어 술자리가 벌어졌습니다.
안주는 이 집의 대표안주인 오징어물회에 국수, 계란말이입니다.
방학을 맞아 교재연구 및 현장체험 차 강정. 밀양 등 사회 갈등의 현장을 직접 돌아보고 있다는 순천, 광양, 대전 지역 선생님들이 기륭과 대한문 집회를 함께 했다가 다시 오셨습니다. 서울에서의 베이스캠프는 기륭사무실이랍니다.
사모님만 좌충우돌 바쁠 뿐, 정우는 아직 출근하지 않았습니다. 쌍용차 평택공장 정문 앞에서 매주 목요일마다 여는 문화제를 마치고 올라오는 중이라고 합니다. ㅎㅎ, 조우시간이 짧을수록 다행인 가게주인입니다.
하하호호,
취기도 적당히 오르고 분위기도 한창 달아오르는데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11年 동안 무한반복, 무한횟수로 열렸던, 기륭의 그 숱한 집회, 농성, 문화제들의 마침표처럼, 아니 느낌표처럼 빗방울들이 떨어집니다.
아들도, 아내도 없는 오늘 밤.
雨中飮酒의 운치가 이미 반취한 저에게 계속 마시기를 은근 유혹했지만 막차시간에 마음이 급해진 술벗들이 주섬주섬 일어섭니다.
별 수 없이 따라 일어나 막차일 성싶은 전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올 때에 문득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이 떠오른 것은 기륭도 오늘 집회가 마지막이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영어교과서에서 읽은 ‘마지막 수업’의 맨 마지막 장면은, 알자스 지방을 점령한 독일군의 포고령으로 인해 오늘 수업이 모국어 수업의 마지막임을 선생님이 알려주시면서 칠판에 ‘비바, 프랑스’라고 쓰는 것으로 끝납니다.
기륭도 그렇습니다.
‘비바, 기륭’입니다.
‘비바, 김소연, 비바, 유흥희, 비바, 박행란’입니다
‘오석순, 강화숙, 윤종희, 이인섭, 이현주, 이미영....도 비바’입니다.
그동안 참 욕봤습니다.
짝짝짝짝... 박수를 보냅니다.
기륭 자본과의 싸움은 오늘로 일단 정리를 하지만 또 다른 투쟁의 현장에서 기륭은 모순된 사회구조와 계속 싸울 것입니다. 악덕 자본들과 여전히 싸울 것입니다.
마음으로,
그리고 아주 가끔 뒤풀이 술값 계산으로 저도 열심 응원할 것입니다.
첫댓글 두 주전인가요? 기륭 만만모금 한다고 했는데(정확히 기억이 안나요) 유상샘 알려주세요.
흐흐, '기륭 만만모금'은 뭔 소리여? 기륭이 중심이 되어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의 집' 마련을 위한 제안서는 해솔아빠에게 메일로 보냈으니 나중에 작목반 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이 좋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