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의 비유>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 그물이 가득 차자 사람들이 그것을
물가로 끌어 올려놓고 앉아서,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세상 종말에도
그렇게 될 것이다. 천사들이 나가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불구덩이에 던져 버릴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너희는
이것들을 다 깨달았느냐?” 제자들이 “예!”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제자가 된 모든 율법학자는 자기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는 집주인과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들을
다 말씀하시고 나서 그곳을 떠나셨다.(마태 13,47-53)>
1) ‘그물의 비유’에서,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다.”
라는 말씀은, ‘혼인 잔치의 비유’에 있는,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마태 22,10).” 라는 말씀과 같고, “좋은 것들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들은 밖으로 던져 버렸다.” 라는 말씀은,
‘가라지의 비유’에 있는,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 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49절-50절의 말씀은,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실 때 하셨던
말씀을(마태 13,41-42) 다시 반복하신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르 16,15).
그래서 ‘복음 선포’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일이고,
우리 교회는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은 모습이 됩니다.
선한 사람도 있고, 선하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사실 그것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도 아니고, 구분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또 구분하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나라, 구원, 영원한 생명이라는
‘같은 목표’로 함께 모인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느냐?’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무엇을 위해서 어떻게 살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어떤 사람으로 심판을 받게 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선한 사람이었는데 타락해서 악한 사람으로 끝날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었다가 회개해서 선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구원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 판단은 ‘사람의 일’이 아니라, ‘주님의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서로 도와주고 격려하고 권고하면서
끝까지 함께 가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복음서에 있는, ‘심판과 멸망에 관한 말씀들’은,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경고 말씀들이고, 그런 일을 당하지 않도록
늦기 전에 회개하라고 촉구하시는 말씀들입니다.
구원과 멸망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의 삶’이 그것을 선택합니다.
3)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도 다 한때 그들 가운데에서 우리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랐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본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러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 여러분은 이렇게 은총으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그분과
함께 일으키시고 그분과 함께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베푸신 호의로, 당신의 은총이 얼마나 엄청나게
풍성한지를 앞으로 올 모든 시대에 보여 주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에페 2,3-8).”
하느님은 인간들이 어떻게 살든지 말든지 내버려두고
지켜보기만 하다가 나중에 심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냥 내버려두면 멸망할 사람들을
모두 구원하려고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모든 사람을
하나도 빠짐없이 구원하려고 애를 쓰십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죽었던’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죽었던’이라는 뜻입니다.
‘살리셨습니다.’ 라는 말과 ‘하늘에 앉히셨습니다.’ 라는 말은
틀림없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는
‘강한 확신’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과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생활이면서, 이미
시작된 ‘구원’과 ‘생명’을 누리는 생활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시작 단계이고,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다.” 라는 말은,
우리가 구원과 생명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것과
그 은총에 믿음으로 응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 강조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실천하는 믿음’을 뜻합니다.
4) 49절의 “의인들 가운데에서 악한 자들을 가려내어”
라는 말씀은, 악한 자들이 ‘의인’인 척 하면서
의인들 속에 섞여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자주 꾸짖으신 위선자들이 그런 경우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에서, 잔치에 참석했지만 혼인 예복을 입지
않아서 쫓겨난 사람도 그런 경우입니다(마태 22,11-14).
혼인 예복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신앙인답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