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 비교에서 팔정도를 여덟 가지가 아니라 열 가지로 표현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팔정도에 지혜 및 해탈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맛지마 니까야의 117번 경인 커다란 마흔의 경에서 차용한 것이다.
이러한 대비의 장점은 열 가지 결박의 내용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각 항목이 갖고 있는 뜻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점이 있어 보입니다.
특히 자만과 들뜸이라는 내용이 왜 열 가지 결박의 뒷부분에 들어가는지에 대해서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확연하게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견해를 살펴보면 팔정도는 ‘오취온이
나라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 라는 내용이고
열 가지 결박은 ‘오취온이
나다.’라는 내용이다.
- 살아가는 방법은 팔정도는 신구의 즉 몸, 말, 마음으로 나 없이 살아가는 방법인 반면에
열 가지 결박이란
나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행동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 같다.
- 수행 부분에서 팔정도는 정정진을 시작으로 하지만
열 가지 결박에서는
수행을 하지 않는 상태인 자만입니다.
수행자는 정념-정정으로
마음을 가라 앉히지만 중생은 마음이 들떠 있다.
- 그렇게 다른 삶을 산 결과
수행자는 지혜를 얻지만
중생은 무명 즉
오취온이 나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고
그래서 수행자는 해탈을 하지만 중생은 윤회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삶을 사는 사람이 수행자의 삶으로 바뀌기 위해서는
열개의 족쇄에서 풀려나냐 하는데, 그 내용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잘못된 견해가 바르게 잡혀야 합니다. (오취온이 내가 아니다.)
그리고 나서 올바른 견해에 맞지 않는 신구의로 행위(sankhara)가 교정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된 연후에 자만하고 들떠 있는 마음을 정정진-정념-정정 상태로 바꿔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즉 열 개의 결박이란, 이미 알려져 있듯이, 수행의 점차 즉 순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새롭게 생각해 본 것은 팔정도도 수행의 점차로 보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열개의 족쇄 각 항목에 대한 제 이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댓글 님 승!!! 님은 저보다 유식해요 아는것도 많고. 그래서 님 승 ㅎ 그런대 한가지만, 들뜸과 후회는 쌍이에요. 이것도 층위가 달라지면서 거친 층위에서 미세한층위까지. 오~ 절대 님을 무시해서가 아님니다. 님처럼 아시는 것이 많으신분이 이런정도 걍 아시겠지만 무식한 이가 아는척좀 해볼려구 한 소리임다. 그리구 하나더 "자만" 오온이 나다라구 인식하는것은 오온자체가 하는것인가요 아트만이 하는 것인가요 불성이 하는것인가요 아님 식이 하는것인가요. 식이 한다면 어떻게 하는건가요 단순하게 인연 화합 이러지는 안겠죠? 유식하고 유능한 분이라 금방 경전 내용을 찾아서 올려주리라 믿습니다.
님 승이 뭘 뜻하는지요?
님께선 오히려 너무 유식하셔서 제 머리 위도 한참 위에서 내려다 보며 조롱하시는 것 같은데.
스스로 식이라 답해놓고 뭘 새삼스레 또 묻고 있는지요?
할 해드릴까요? 한방망이 들어 드릴까요?
님께는 무슨 말을 해도 관념일 겁니다. 지식종자의 알음알이죠.
세존께서는, 제가 이해한 바로는(^^), 정교한 언어를 구사했습니다. 그 내용을 정확히 알자는 겁니다.
아는 놈이 잘 못 된 것이라 가르쳐 주신 것인데 또 뭘 알자는 것이냐구요?
식에 대해 알고(?) 싶으시면 갈애 부숨의 큰 경을 보면 (맛지마 니까야) 어부 아들 사띠의 의견에 대해 법문해 주신 것이 있으니 읽어보시고 스스로 판단하세요.
들뜸과 후회에 대해서 묻고 싶으신 바가 무엇인지요? 여러 층위가 있어서 어떻다는 건지요? 오개의 들뜸과 오상분결의 들뜸은 층차가 있는 것이란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질문을 하시던지요! 저는 수준이 낮아서 선문답을 알아 듣지 못합니다^^.
기억속에 님때문에 제가 글을 쓰는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할 것 같군요.
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알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불교를 많이 아시는 분들이 보기에는 당연한 이야기 같아 보이겠지만
제 딴에는 제가 쓴 글의 내용을 알기까지는
정말 쉽지 않은 인생 경험이 있었고
또한 니까야를 접하는 행운이 있었습니다.
체험을 해서 이런 글을 쓰는가?
초선도 경험을 못했는데 어찌 수행 체험이란 말을 쓰겠습니까?
제가 보여 드리려는 것은 제 보기엔 세존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틀림이 없다는 것이며
그 내용을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하는 것을 통해서
수행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글을 쓰는 또 하나의 목적은
과연 제 이해가 바른가하는 점검을 여러분들로 부터 받기 위해서 입니다.
제가 불교 공부를 하면서 답답했던 부분은
공부를 했다는 분이 그렇게도 많은데
어째 이렇게 세존의 말씀이 정리가 되어있지 않을까?
왜 이리도 모호한 말로 표현되어 있을까하는 문제점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하다고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해의 지도가 없는데 과연 실천은 제대로 할 수 있을 런지요?
소위 '깨달음'을 얻은 분들은 과연 무상-고-무아를 제대로 보았다고(여실지견) 할 수 있는지요?
저는 세세한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세존께서 알려주신 큰 방향은 이해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부분들을 드러내 보이고
거기에 허물이 있으면 그 허물을 지적 받고 고치면 될 뿐입니다.
또한 저도 의문이 있는 점들을 드러내서 글을 읽는 분들이 이해의 폭을 넓히면 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서
열개의 족쇄에 대한 이해와
오상분결의 자만과 들뜸이라는 부분의 해석 같은것 말이죠.
대단하십니다.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