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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를 유혹하는 음녀들
잠 7:6-15
6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가
7 어리석은 자 중에,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
8 그가 거리를 지나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쪽으로 가는데
9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
10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
11 이 여인은 떠들며 완악하며 그의 발이 집에 머물지 아니하여
12 어떤 때에는 거리, 어떤 때에는 광장 또 모퉁이마다 서서 사람을 기다리는 자라
13 그 여인이 그를 붙잡고 그에게 입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그에게 말하되
14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
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잠 7:6-15 / 어느 날 나는 창가에 서성이다가 창 밖을 내다보았지. 무엇을 찾아보려고 내다본 것도 아니었어. 그런데, 7) 참 멍청한 녀석을 다 보겠더구나. 나이도 많이 먹은 것같이 보이지 않더구나. 그래, 너만한 젊은이였단다. 8) 아, 글쎄 그 친구가 길을 가다가 골목길로 접어드는 게 아니겠니, 바로 그 몸을 파는 여인들이 살고 있는 골목 말이다. 그러더니 그 가운데 어떤 집으로 쑥 들어가더구나. 9) 환한 대낮에 그 골목길로 들어가기는 머쓱했던지, 때는 캄캄한 밤중으로 치달리기 시작하는 해거름이었단다.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할 때 말이다. 10) 궁금하기도 하여 살펴보았더니 몸파는 젊은 여자가 그 친구를 맞이하더구나. 정말 야하게도 옷을 걸쳐 입었더구나. 11) 이 여자는 집에 가만히 붙어 있으면 몸살이 나는 모양이더구나. 마구 지껄여 대며 아무렇게나 행동하더구나. 하여튼 제멋대로 살아가는 여자인 것 같더구나. 12) 어떤 때는 사람들이 북적대는 저잣거리에서 맞아들일 사람을 찾기도 하고, 어떤 때는 넓은 네거리에서 사람을 찾기도 하고, 어떤 때는 골목 모퉁이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짓하고 소리 지르면서 쉬고 가라고 애걸하더구나. 13)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는 마구 입맞추며 이렇게 속삭이는거야. 남이 보건 말건 창피스럽다는 생각은 아예 없는 모양이더구나. 14) `오늘 나는 하나님께 서원한 화목제를 드렸답니다. 아시는 대로 우리 집에는 차려놓은 것도 많아요. 아무 걱정 마세요. 드실 것도 많을테니까요. 15) 당신을 이렇게 모시러 나온 것도 그 때문이 아니겠어요? 밖으로 나왔다가 당신을 만난 것도 참 행운이 아니겠어요?
본 절에서 23절까지 음녀의 유혹이 주는 위협의 중대함을 보여주기 위해 더 이상 이론을 전개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목격한 음행의 실상을 실례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젊은이 가운데에 한 지혜 없는 자를 보았노라(6-9) “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다 보다”라고 합니다. ‘살창’은 햇빛은 가리고 공기만 들어올 수 있도록 만든 일종의 덧문입니다(삿 5:28). 이 문은 밖에서는 안을 볼 수 없는 반면 안에서는 쉽게 밖을 볼 수 있습니다.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자는 외부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있는 자들입니다. 지혜가 없는 한 사람을 보여 줍니다. “음녀의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하여 그의 집 쪽으로 가는데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라”라고 합니다. 자기의 행위를 감추기 위해서 은밀하게 행하는 범죄자들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이 지혜자에게 목격되듯이 하나님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죄악은 결코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준비하고 기다리는 유혹자 간교한 여인이 그를 맞으니(10-15)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음행에 눈이 먼 자를 반갑게 맞이하는 음녀의 행동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무장되지 않은 사람들을 삼키려고 우는 사자와 같이 달려드는 사단의 모습을 보여줍니다(벧전 5:8). 여기서 기생의 옷은 일반적 의상과 달리 여러 가지 색깔로 화려하게 치장된 옷입니다(계 17:4). 간교한 계집이란, ‘숨은 마음을 가진 여자’라는 뜻으로 이는 창녀를 의미한다기보다는 오직 육체적 쾌락을 위하여 남편에 대해서는 남편만을 사랑하는 체하고 정부에 대해서는 정부만을 사랑하는 체하는 간부(간통한 여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육적인 쾌락을 즐기며 어떠한 행동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부끄러움도 모릅니다. ‘내가 화목제를 드려 서원한 것을 오늘 갚았노라’(14)하며 화목제물로 인해 집에 먹을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제사와 행위마저 죄악의 도구로 사용하는 자입니다. “내가 너를 맞이려고 나와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15)라고 합니다. 마치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는 마귀의 모습과 그 모양이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지혜가 우리 가운데 늘 있어서 선악을 의와 불의로 분별하여야 합니다.
적용: 지혜를 추구하는 자들은 죄악의 길로 들어서는 발길부터 돌이켜 죄에 오염되지 않아야 합니다. 성이 상품화되고 타락되어가는 세태를 살아가는 성도들이 정결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욱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며 그 지혜를 간직하는 것입니다.
참된 마음의 평화는 정욕을 억제하고 그 지배로부터 벗어났을 때에야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욕정을 참지 못하는 사람, 세속적이고 외면적인 것에만 몰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진정한 마음의 평화가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이 진실하고 영혼에 충실하려는 사람만이 참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 설 교 >
달콤하나 치명적인 유혹
잠언 7장 10-27절
솔로몬은 그가 사는 왕궁에서 창문 밖으로 한 어리석은 청년을 보았습니다. 이 청년은 해가 저물 때, 황혼 때, 깊은 밤 흑암 중에 음녀가 살고 있는 골목 모퉁이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 때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입니다. 내일의 삶을 위하여 잠자리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이 어리석은 청년은 남들이 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 때에 비로소 길거리로 나와 결국 깊은 밤 흑암 중 활동을 시작하는 음녀를 만나게 됩니다. 어리석은 청년은 음녀를 만나기 위해 일부로 그 시간 뒷골목을 찾아간 것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을 기억해 보십시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성적 유혹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도망쳤습니다. 그 결과 지금도 요셉은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년은 그 반대로 유혹이 머물고 있는 환경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는 사람의 온 몸을 태우는 불덩이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멸망의 길을 향해 나아간 것이죠.
11절을 보면 음녀는 마구 떠들고 있습니다. ‘완패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이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어두운 밤에 집에 붙어 있지 않고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오늘밤만 특별히 이렇게 행동한 것이 아니라, 평상시 그녀의 모습입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때로는 길거리에서, 때로는 사람들 많은 광장에서, 때로는 길모퉁이에 서서 유혹할 사람들을 기다렸습니다. 화장을 하고 예쁜 옷을 입고 단장한 음녀는 그의 집 앞을 걸어가는 청년을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13-15절을 보십시오. “(잠 7:13) 그 계집이 그를 붙잡고 입을 맞추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얼굴로 말하되 (잠 7:14) 내가 화목제를 드려서 서원한 것을 오늘날 갚았노라 (잠 7:15) 이러므로 내가 너를 맞으려고 나와서 네 얼굴을 찾다가 너를 만났도다” 오늘 처음 만난 이 청년을 붙잡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뻔뻔스럽게 입을 맞추며 청년을 유혹합니다. 음녀는 자신이 하나님께 화목제를 드렸다고 말합니다. 화목제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드리는 5대 제사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화목제는 이웃과 잘못된 관계를 회복했을 때 드립니다. 음녀가 자신을 가리켜 “내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아무런 죄도 없고 문제도 없는 깨끗하고 정결한 여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어리석은 청년을 유혹하기 위해서 일부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식은 ‘화목제’를 들먹이며 정결한 척하고 있는 것이죠. 음녀는 화목제를 통해 모든 인간 관계가 다 정리되었고, 이제 그녀가 새출발을 하려고 하는 이 절묘한 타이밍에 자기 눈 앞에 청년이 나타났으므로 둘은 ‘천생연분’(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인연)이나 다름없다고 거짓말을 하며 유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미끼로 삼아 어리석은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과 음행을 저질러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뻔뻔하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6절부터 음녀는 청년에게 자기의 화려한 침실을 소개합니다. 이는 청년의 상상력을 자극하여 육체적 쾌락에 대한 동경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죠. 16절에 나오는 ‘화문 요’는 비스듬히 기낼 수 있는 방석이나 베개를 말합니다. 자기 침상에 푹신한 베개가 있다는 것이죠. 또 아름답고 화려하게 수놓은 이불이 있습니다. 이 당시 애굽 산 비단은 매우 아름답고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17절을 보면 음녀의 침실에는 여러가지 향료들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몰약’, ‘침향’, ‘계피’ 이 세 종료의 항료들은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아주 값비싼 향료들이었습니다. 음녀는 어리석은 청년에게 자신의 화려한 침실을 소개함으로써 육체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음녀는 청년이 자신과 함께 육체적 쾌락을 탐하도록 유혹합니다. 18-20절 말씀을 봅시다. “(잠 7:18)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 (잠 7:19) 남편은 집을 떠나 먼 길을 갔는데 (잠 7:20) 은 주머니를 가졌은즉 보름에나 집에 돌아오리라 하여” 음녀는 청년에게 자신의 남편이 먼 여행에 갈 경비를 가지고 집을 떠난 상태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를 통해 청년이 안심하게 하고, 자신과 함께 음행에 적극 가담하도록 유도했습니다. 자신이 유부녀란 사실을 아무 부끄러움 없이 밝히는 음녀의 태도는 뻔뻔하기 그지없습니다. 이처럼 음녀가 끈질기게 달콤한 말로 그를 유혹하니, 결국 22절에 소년이 그 여자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솔로몬이 이 청년에 대해 평가한 것을 들어보십시오. “(잠 7:22)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잠 7:23)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니라” 음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경고하신 음행을 행한 자의 모습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와 같습니다. 소가 자기가 죽으러 가는지도 모르고 도살장 안에 들어가는 것처럼, 음녀의 유혹에 끌려가는 청년은 자신이 죽을 운명도 모르고 음녀에게 넘어갔습니다. 음녀를 따라간 청년의 삶은 도살장에 끌려간 소처럼 결국 파멸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반드시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인데, 화살이 그의 간을 뚫어버릴 것입니다. 간이 화살에 뚫린다는 이 말은 얼마나 끔찍한 모습입니까? 이처럼 음녀를 따라간 청년의 생명이 파멸되고, 그의 인격이 무너지고 인간 관계가 파괴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의 아들에게 주의를 시킵니다. 음녀로 인해 죽은 사람이 이 청년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음녀의 유혹에 걸려 넘어갔습니다. 26절을 보니 “그에게 죽은 자가 허다합니다.” 그 수를 다 파악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27절에 솔로몬은 음녀의 길은 죽음의 길이고, 그가 들어가는 곳은 사망의 방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음녀를 따라 행음의 길을 선택하는 자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음녀의 달콤한 유혹에 넘어간 대가는 결국 죽음입니다. 죄악을 따라 살아가는 자는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죄가 우리의 삶을 망가뜨리고 망하게 합니다.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괴로움이 두 눈과 마음에 차오르는 비극적인 삶을 맞이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행의 길을 버리십시오.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십시오. 하나님 말씀 중심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달콤하고 치명적인 죄악의 유혹도 모두 물리칠 수 있습니다.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곧 영적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지혜로운 자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음녀의 길
잠 7:1-27 / 민병석 목사
우리는 성경에서 자주 음녀 또는 음행, 간음이란 단어를 대하게 되고 이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한 책망과 경종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일은 이처럼 성경에 자주 나오는 음녀나 음행에 관한 표현은 육적인 죄에 대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영적인 교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7장에서는 어리석은 한 소년이 한 간교한 계집의 유혹에 말려 음부에 깊이 빠져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런데 그 내용을 살펴볼 때 사실적인 사건이라기보다 오히려 영적인 교훈의 의미가 더 많다는 사실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강해는 육적 간음이 아니라 영적 간음에 초점을 맞춰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1. 지혜로 이기는 음녀의 간교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아내로 비유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과의 밀접하고 오묘한 관계를 나타낸 곳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신랑으로 성도들을 신부로하여 서로간의 신령한 영적 연합 관계의 신비성을 나타내 보이신 곳도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을 좇는 일을 한 아내가 지아비를 버리고 음행하는 행위로 비유하여 그런 일을 음행, 음란한 행위로 정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영적인 음녀에 대한 교훈으로 보고 이 음녀를 요한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음녀와 결부시켜 종말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신앙 생활에 교훈을 삼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17:1-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 ). 계시록에 나오는 음녀는 그 이름이 1절에서 '큰 음녀'라고 했습니다. 이 자에 대하여 큰 음녀라고 부른 이유가 2절에 나옵니다.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음녀는 자기의 음행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을 모두 취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큰 음녀의 이름으로 불려지는 것입니다. 이 음녀가 마지막 때에 세상에 나타나 온 세상과 더불어 음행을 자행하여 온 땅을 그의 음행으로 더럽힌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말적인 하나님의 심판이 세상이 이 음녀와 음행한 결과로 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한계시록 2장에 나오는 두아디라 교회에서 음행으로 교회를 더럽히는 큰 음녀의 정체를 보게 됩니다. 이 음녀의 이름이 이곳에서 이세벨이란 이름으로 나오는데 교회에서의 이들의 영적 지위는 거짓 선지자라고 했습니다. 이세벨은 시돈 땅의 왕 엣바알의 딸로 이스라엘 아합왕의 아내가 된 여인입니다. 이 여자가 시집 올 때 시돈에서 850명의 바알선지와 아세라선지자들을 거느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로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게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게 했습니다. 이세벨은 이처럼 음녀가 되어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인류의 종말에 가서 이처럼 이세벨과 같은 거짓 선지자가 큰 음녀의 모습으로 나타나 하나님의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종들을 핍박하여 온 땅으로 음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음녀로 인하여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 음녀의 정체
두아디라 교회에 나타난 음녀 이세벨의 모습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내 종들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도처에 거짓된 선생들이 나타나 하나님의 종들을 가르칩니다. 언제나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의 사상적 감화를 받으며 오래 계속될 경우에는 그 사상에 동화되는 것입니다.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는 것처럼 공산주의자에게 교육을 받으면 공산주의자가 되는 것이요, 의과대학에서 공부를 하면 의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음녀는 이처럼 하나님의 종들을 꾀어 가르친 결과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행음이란 진리가 아닌 사탄의 거짓 진리를 따르는 일을 말합니다. 우상의 제물이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사탄의 거짓된 진리를 받아 먹고 그 사상에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교회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참생명을 노략하는 일이기 때문에 성도들로 진리에서 이탈하게 하고 행음하게 하며 거짓 진리를 먹여 참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미혹에 빠트리게 하는 것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서는 이런 거짓 선지자의 활동을 용납했습니다. 진리를 가장한 그들의 겉모양을 바라보고 한 형제로 인정해 준 것입니다. 그러면 이 교회는 어떤 교회였습니까? 계2:19절에서 말씀하기를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고 칭찬해 주신 교회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이들이 이 음녀 이세벨의 활동을 교회에서 용납해 주는 일로 주님의 홋된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이 자칭 선지자라고 하는 음녀의 존재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이 자의 정체를 살펴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이 음녀에 대하여 '큰 음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음녀가 앉은 곳은 '물위'라고 했습니다. 물위란 말은 전세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물에 대하여 15절에서 '네가 본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음녀는 전세계적인 거대한 기구를 말합니다. 적그리스도의 사상에 물들어 하나님의 교회를 비진리로 이끌어 타락케 할 음녀의 기구는 세계 전 인류를 상대로 하는 전세계적인 기구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기구를 거역하는 행동을 할 수 없으며 이 기구를 벗어나서 복음을 전하는 일이란 어려울 것입니다. 이들은 세상에 거주하는 백성들은 물론 임금들에게 까지라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입니다. 그래서 계17:18절에서 '또 네가 본바 음녀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음녀는 스스로 움지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타고 활동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계17:3절에서 이르기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다'고 했습니다. 이 붉은 빛 짐승은 누구인가요? 적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늘의 전쟁에서 패한 사탄은 붉은 용이라고 부르고 그 자의 성육신이라고 볼 수 있는 적그리스도는 붉은 빛 짐승인 것입니다. 음녀라고 하는 배도 기구는 적그리스도와 짝하여 종교적 권세를 잡아 이 권세로 온 세상을 음행의 포도주로 취하게하여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음녀가 입은 옷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4절 말씀에서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옷은 사상을 말합니다. 진리로 옷 입지 않고 사탄이 입는 자주 빛 옷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사탄의 색갈이 붉은 빛인 것처럼 자주 빛 옷과 붉은 빛 옷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의 거짓과 배도와 비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음녀가 꾸민 몸을 보면 얼마나 매혹적인지 모릅니다.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몄다'고 했습니다. 음녀의 종교적 사상은 아주 시기에 적절한 복음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을 능히 매혹시킬만한 것입니다. 이 때 적그리스도는 이미 모든 인류들로부터 이 시대의 신으로, 메시야로 추앙을 받을 시기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적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전하는 새로운 복음에 동조할 것입니다.
그의 손에는 금잔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이 금잔 안에는 음행의 포도주가 들어 있으며 이 포도주를 먹이는 일로 모든 사람들의 영적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 어떤 사람이라도 이 음행의 포도주에 한번만 취하면 깨어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그리스도로부터 짐승의 표을 받아 최종적인 하나님의 심판의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음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하는 미혹의 손길이 잠7:10절과 18절에 나옵니다. 10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그 때에 기생의 옷을 입은 간교한 계집이 그를 맞는다'고 했습니다. 기생의 옷이란 붉은 빛과 자주 빛 옷과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간교한 자태를 말하는 것 입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아침까지 흡족하게 서로 사랑하며 사랑함으로 희락하자'는 것입니다. 음행의 포도주로 취하게 한후 간음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잠언에서 음녀의 밥이 되어 음부로 이끌려간 소년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 결국은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는 미련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소년은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음녀의 미혹에 넘어가 결국은 생명을 잃게 되는 것입니다. 2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러가지 고운 말로 혹하게하며 입술의 호리는 말로 꾀므로 소년이 곧 그를 따랐으니 소가 푸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일반이라 필경은 살이 그 간을 뚫기까지에 이를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라고 하신 것입니까?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일반이라'고 경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음녀와 더불어 간음을 행한 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하여 계2:21절에서 23절 말씀까지 보시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그를 (누구를? 이세벨) 어디 던져요 (침상에 이 침상은 죽음의 침상을 가리킵니다. 기왕이면 보루네오 침대에?) 이 음녀의 최종적인 운명에 대하여 계17:16절에서 이처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네가 본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다음에 이 음녀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은 어떻게 된다고 했습니까? '그와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진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 증인이 외치는 펴 놓인 작은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고 회개치 아니하면 후 3년 반의 대환난 가운데 던져버릴 것이라고 경종하신 것입니다. 간음이란 음란한 여인의 간교한 꾀임에 빠져 얼마간 외도하는 일을 말합니다. 미련한 처녀들 모양으로 영적인 흑암 중에 빠져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만일 1260일간 회개 기간 동안에 회개치 않으면 어디 던져버려요?
다음에 이 음녀의 자녀들은 어떻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까? 자녀란 음녀가 낳은 2세들로 완전히 음녀화되어 회개할 여지가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자들은 '사망으로 죽인다'고 하셨습니다. 이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심판의 표적이 되어 사망으로 죽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음녀가 주는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음녀화된 사람들은 이미 짐승의 표를 받아 사탄의 소유임을 확인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음녀의 미혹을 이기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지혜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음녀에 대한 지혜는 요한이 받은 요한계시록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계1:3절에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자는 안타까이 호소하는 것입니다. 24, 25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들들아 나를 듣고 내 입의 말에 주의하라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며 그 길에 미혹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만 주의하면 결코 음녀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 음녀는 포도주를 먹이되 음행의 포도주를 먹이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할 수 없는 것입니다. 네 마음이 음녀의 길로 치우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 길에 미혹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세상 정욕으로 채워져 있고 세상 소망으로 차 있으면 음녀의 길로 치우치게 되며 미혹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잠7:1절에서 '내 아들아 내 말을 지키며 내 명령을 네게 간직하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5절에서 이르시기를 '그리하면 이것이 너를 지켜 말로 호리는 이방 계집에게 빠지지 않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결 론
여러분, 우리들은 지금 인류의 종말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큰 음녀가 반드시 세상에 등장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음행의 포도주로 미혹할 그런 날이 올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지혜가 없으면 이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게 될 것입니다. 이 술에 취하면 술에 취한 사람이 아무리 올바른 자세로 걸으려해도 걸어지자 못하고 올바른 판단을 하려해도 판단이 서지 않는 것처럼 그 미혹에 깊숙이 빠지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십이오. 특히 음녀의 등장에 경계하며 우리에게 살 길을 알려 주시는 펴 놓인 작은 책인 요한계시록을 배우십시오. 그리하여 이 세상이 배도 세력에 의해 모든 교회가 타락하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적그리스도를 따른다해도 여러분은 결코 진리에서 떠나지 마시고 진리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승리하는 성도가 되실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