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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10대 때 본 영화가 잊혀지지 않는다.
원제명은 아이반호이다. 일명 흑기사 라고도 한다.
12세기 영국이 무대인데, 전체적인 스토리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뚜렷이 기억하는 건 용감무쌍하고 잘 생긴 기사(騎士) 한 사람을 두고 두 여인이 사랑하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삼각관계인데 한 여인은 청순한 색슨왕의 공주요, 또 한 여인은 화사한 미인인 유대인 부호의 딸이다. 색슨왕의 공주역엔 그 당시 청순한 미녀인 조안.폰테인이 맡았고, 유대인 딸 역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맡았다.
난 그 당시 이 영화를 보면서 두사람중 누구 한 사람을 택하라면 어느쪽도 어려워 둘 다 데리고 살면 안될까 하는 의문을 품은 적이 있다. 두 여인은 한 남자를 사랑했을 뿐 서로 질투는 하지 않았다. 유대인 부호의 딸인 레베카는 사랑하는 아이반호를 위해선 아이반호가 색슨왕의 공주와 결혼하는 것이 좋다싶어 자신의 처지를 알고 떠난다.
내 처제는 서구형 미인이다.
오똑한 콧날과 큰 눈, 긴 속눈섭으로 어쩌면 바비인형같다는 생각도 했다.
직장 생활하면서 이 처제 얘기를 하면 주위 사람들은 내 처인 마누라 치켜 올리는게 아닌가라고 웃음을 터트렸는데 사실 아내도 어디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미인이다. 두 자매간의 차이점이라면 처제는 서구형 미인인데 비해 아내는 동양형 미인이라면 말이 맞아 떨어진다. 아내는 40대의 나이에도 20대의 팽팽하고 흰 얼굴피부를 가졌으며 누가 보더라도 첫인상에 호감을 주어 얌전하고 조신하다는 이미지를 풍겼다.
장모님 말씀을 들으면 더욱 분명해진다. 처제는 어릴 때 부터 큰 눈과 오똑한 코로 동네 사람들로 부터 트기 아니냐는 소리를 들었으며, 아내는 흰 피부와 도톰한 눈두덩, 사탕물고 있는 아이처럼 도드라진 두 볼로 아기부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난 결혼후에 처제를 많이 좋아했다. 처제가 중학생 때 형부 집이라고 놀러 오면 난 처제를 데리고 인근 야산으로 가 카메라로 독사진을 많이 찍어 줬는데 처제도 나이답지 않게 곧 잘 포즈를 취해 주었다. 나를 매혹하는 건 처제의 큰 눈이었다. 새까만 눈동자에 옆을 쳐다볼 때의 흰자위는 너무나 깨끗해 내 마음을 사로 잡았다. 너무나 귀엽고 깜찍해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에선 뒤에서 한 번 껴안아 준 적이 있다. 분명코 좋아했지만 결코 그것을 사랑이라고 표현은 못하리라.
난 딸,아들 이렇게 남매를 둔 40대 가장으로 직함은 은행차장이었으며, 서울에서 32평 아파트에 새로 산 자가용을 굴리는 자칭 중산층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다. 난 아내를 사랑했으며 내 모든 것을 걸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아내는 내 편일 것이며, 날 용서해 줄거라는 어떤 확신에 차 있었다. 아내를 사랑했지만 천성적으로 표현은 못하고 살았다. 굳이 표현을 안해도 내 마음 알아주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 해서 아내에게 상처가 될 말인 줄도 모르고 내가 경험 한 일을 얘기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난 언젠가 은행 인근에 있는 다방 아가씨를 좋아해 다방출입이 잦았으며 결국 그 다방 아가씨를 내 차에 태우고 교외로 나가 잔 적이 있다.
허참, 내가 이런 이야기를 왜 아내에게 했는지 ...
그것은 내가 아내를 믿고 내가 어떤 행위를 할지라도 아내는 날 용서할 것이라는 착각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아내는 그 소리를 듣고 즉시 반응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퇴근후에 집에 오니 아내는 못먹는 깡소주를 마시고 울고 있었다.
나는 심장이 멎어 버리는 것 같았다.
"여보, 왜그래?"
" 몰라서 묻나요?"
아내는 반쯤남은 소주잔을 기우리며 빈정대듯 말했다. 그제서야 난 제 정신을 차렸다.
아, 어제 밤에 내가 한 말....
내 가슴을 주먹으로 치고 싶었다. 왜 그런 말을 주의도 없이 했는지 도무지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런, 멍청한 놈...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어안이 벙벙했다.
그 사건 이후 아내는 조금씩 변해 갔다.
우선 부부사이의 대화가 줄었으며 대화를 한대도 다람쥐 쳇바퀴 돌듯
알맹이 없이 헛도는 경우가 많았다. 아내의 평소 밝은 표정이 어두워 졌다.
아내는 자기 휴대폰에도 비밀번호를 부여해 내가 문자메시지는 물론 통화도 못하게 막아놓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 사이의 신뢰가 무너졌으니 각자의 비밀은 따로 지키자는 신호였는지, 아니면 남편인 나 자신을
못믿으니 자기방어를 위한 고육책이었는지 굳이 따지고 싶지는 않다. 왜? 잘못은 내가 먼저 저질렀으니까,
아내의 비밀에 내가 이의를 제기할 만한 그 어떤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때 부터 인지는 모르나 아내는 휴대폰통화를 할 때는 내가 있는 자리를 피했다.
내가 거실에 있으면 방으로, 방안에 있으면 거실로 자리를 피해가며 통화를 했다.
낮은 목소리로 휴대폰을 감싸고.
왜 그러냐고 물어도 달리 반응은 없다. 당신이 알아서 뭣하느냐로 면박을 줘 버린다.
난 할 말이 없어 그냥 그러냐로 얼버무린다. 사실 딱히 내가 아내의 동정을 살필 이유도 마음도 없었다.
아무리 부부사이라도 사생활은 있겠거니 하는 태도로 그걸 인정해 버리고 말았다.
그런 것을 이유로 말다툼을 한다는 자체가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내의 행동에 이상징후가 발견되었다.
딴 사람이 보면 모르겠으나 15년을 살아온 부부임으로 느낌이 이상했다.
휴대폰 전화를 받으면 나를 피해 자리를 옮겼으며, 내가 도둑 고양이처럼 살며시 닦아가 들어보면 아내는
"예, 예, 알았어요." 란 말을 자주 했으며 통화중에 표정은 물론 목소리도 밝았다.
의심을 가질 만했다.
이제 까지 아내는 나만 보고 사는 여자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으나 그것이 궁금증으로 변했다.
아내는 가끔씩 문자메시지의 수신함을 들여다 보고 웃는 듯도 했다. 한 번 믿음이 의심으로 변하니 여러가지가 마음에 걸렸다.
중2와 고2인 애들에게 대하는 태도에서도 미묘하게 관심이 덜하는게 아닌가라는 의심도 들었다.
난 궁금한 것은 못참는 성격이다. 내가 물어도 아내는 대답을 안하니 내가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아내가 깊이 잠든 새벽시간에 난 아내의 휴대폰을 도둑처럼 몰래 꺼내어 빈 방으로 갔다.
탁자위 백지에 우리가족 전체의 주민등록번호와 각자 휴대폰번호, 집 전화번호 , apt동호수 , 처가집 장인 장모님의 주민번호,
자택전화번호등 동원 할 만한 자료는 모두 적어놓고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를 풀기로 했다.
사실 이렇게 해서 비밀번호를 푼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과연 몇 퍼센트의 확률에 도전하는게 될까. 그러나 어리석은 줄 알면서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아내가 잠든 사이 백지에 적어둔 자료를 바탕으로 새벽까지 낑깅대며 4자리 숫자를 이리저리 대입해 봤지만 실패했다.
그 짓거리도 2시간을 넘기자 제 풀에 나가 떨어지는 것이다.
오늘은 포기다. 또 한 번 은 도전 하리라.
세월이 약인지 아내의 표정도 밝아졌고 나의 불장난도 잊혀지게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밤 잠이 오지 않자 예전에 실패한 아내의 휴대폰 비밀번호가 생각났다.
또 몰래 아내의 휴대폰을 가져와 빈 방에서 나혼자 그 전에 썼던 자료용지를 펴놓고 암호해독에 들어갔다.
살인범은 늘 현장 가까운 곳에 있듯이 비밀번호는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쉽게 풀렸다.
그 때의 쾌감은 무시못할 환호성이었다.
비밀번호는 아들의 출생월일인 0928 이었다.
환호작약하며 비밀번호를 넣고 문자메시지의 수신함으로 들어갔다.
" 모든게 좋아요, 님의 모든 것... "
발신함을 열어 보았다 .
" 그렇게 많이요? 농담이시죠!"
수신과 발신의 문구는 단답형인양 짤막했지만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
" 이것들이..."
누굴까? 상대방이 누구인지가 먼저 궁금했다.
발신자의 휴대폰 전화번호를 메모했다.
이틑 날 출근 해서 여직원을 시켜 발신자를 알아보았다.
신호음이 가자 저 쪽에서 말이 흘러 나왔다.
"녜, 재료공학과 박교수 입니다."
" 어느 대학이시죠."
" 왜 그러시죠, 누구세요?"
" 예, 전 A잡지사 권기자입니다."
" 내가 모르는 사람이군요, 여긴 D대학입니다."
" 원고 청탁 관계로 편집장님이 계신가 전화해 보라고 해서요."
" 아, 예."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미스 리는 임기응변이 좋은 여직원이라 믿고 맡겼는데 임무수행을 잘 했다.
D대학 박교수라...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무슨 일로 대학교수를 알게 됐는지가 궁금했다.
좋아, 이미 실마리는 반이 풀린거나 마찬가지다. D대학 박교수란 인적사항을 알았으니 나머지는 너무나 쉬운것이다.
재료공학과 박교수라면 그가 누군지를 알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와 같다.
이틑 날 12시가 땡치지 마자 구내식당으로 달려가 점심을 부리나케 먹고는 서무대리에게 가사일로 급한 볼일이 있다는 전갈을 하고는 택시를 잡아타고 D대학이 있는 한남동으로 직행했다 .
대학본부 동 건물에 있는 교무처를 찾아가 내 은행 명함을 내밀고 재료 공학과 박교수의 이름과 주소를 물어 보았다.
나하고는 고등학교 동창생이라 최근 소식듣고 한 번 만나 회포를 풀려고 왔노라고 둘러 대었다.
교무처의 30대 젊은 남자직원은 내 명함과 옷차림을 보고 안심했는지 이름과 주소를 알려 주었다 .
내가 놀란것은 주소가 내가 사는 아파트와 인접한 아파트라는 것이다.
우째 이런일이...
나는 탐정 셜록홈즈처럼 의문점을 하나 하나 풀어갔다.
같은 동네라, 그렇다면 공통점이 있을 것이 아닌가?
무엇일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해 본 결과 애들과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왜냐하면 아내는 남녀공학인 D고등학교 운영위원이란 감투아닌 감투를 쓰고 있다는게 생각났다.
아내는 본시 내성적인 성격이라 잘 나서지 않는 타입인데 딸애가 학급 반장을 맡고 있어서 담임이 설득하고 회유한 결과였었다.
D고등학교를 찾아가 교무주임을 만났다. 1학년 3반인 아이의 이름을 대고 내 명함을 건넸다.
교무주임은 반갑게 인사하면서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아내가 학교운영위원인데 같은 운영위원중에 D대학 박노준 교수가 있는지 물어 보았다. 교무주임은
" 예, 그런 분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시죠?"하고 물었다.
" 아, 애들 문제를 상의하고 싶어서요, 대학교수님이니까, 내 아이 적성에 맞는 학과와 장래성에 대해 알아 보려구요."
하고 임기응변식으로 답변했다.
"아, 예 그러시군요."
하고 교무주임은 아무 의심없이 친절하게도 담임을 불러 주소와 전화번로를 알으켜 주게했다.
모든 게 명약관화해 졌다. 그러면 학교운영위원으로서 회합을 가졌을 것이고 거기서 만난것이다.
그건 그렇고 어떻게 가까워 졌는지가 2차로 풀어야 할 과제다.
사랑이 영원한 것인가.
나는 자문해 보았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는데...
대개 연애결혼한 부부는 사랑해서 결혼했다고 하고 살면서 사랑한다고 말을 밥먹듯이 하지만 살다가 어려움이 닦치면 이혼하는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 세대에서는 이혼이 배우자 서로에게 어떤 결함으로 치우쳤지만 근래에 와서는 이혼율의 증가로 큰 결함으로 인정치 않는다. 오히려 서로 맞지 않아 오래도록 불화하며 사느니 깨끗이 접고 새출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세태 아닌가.
한국의 이혼율이 세계최고라는 말도 들은 것같다. 결혼한 부부 3 쌍중 한 쌍은 이혼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랑도 영원한 것이 못되는 것이 아닌가. 왜냐하면 서로 죽고 못살아 부모가 반대하는 결혼을 사랑이란 미명으로 저돌적인 결혼을 한 부부도 오래지 않아 이혼하는 예를 주변에서 많이도 보아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주관은 이혼은 인생의 비극이고 배우자 당사자들의 상처보다는 2세인 아이들에게 주는 상처가 너무 커 이혼 이후 아무리 잘 산다 한들 결국 실패한 인생이라는 다소 보수적인 생각을 갖고있는 사람이다.
응겹결에 아내의 문자 메시지 첫장만 열어 보았으나 지금 까지의 경과가 궁금했다.
첫대면에
' 당신의 모든게 좋아요.'
' 그렇게 많이요! 농담이시죠.' 란 말이 나올 수는 없다.
그렇다면 휴대폰에 저장된 모든 메시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어느 날 밤 나는 아내에게 맥주 한 잔 하자고 제의하고는 전에 먹다 남겨둔 처방약인 수면제를 아내 모르게 태워 마시게 했다. 아내가 잠에 골아 떨어진 밤 12시 이후 나는 아내의 휴대폰 문자메시지의 발 수신함을 모두 다 열어 보았다.
박교수의 메시지 부터 열어 보았다. 날짜 순이다.
3.16 13:00
어제는 참 유쾌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차도 맛있게 마셨구요.
너무 예쁘신 분이란 인상을 받았습니다.
3.20 13:20
학교 캠퍼스에 흰 목련이 피었습니다.
파아란 하늘을 배경으로 핀 목련꽃이 어쩌면 님의 모습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더군요.
3.30 14:00
제 마음 저도 모르겠어요.
자꾸 님 생각이 나지 뭐예요. 제가 점심 초대 한 번 하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세요!
"하, 이런 카사노바 같은 놈! 어디 두고보자."
3.31 13:50
어저께 덕분에 점심 맛있게 먹었습니다.
4월에 벚꽃피면 그 때 또 한 번 뵙지요.
벌써 그 때가 기다려 지네요. ㅎㅎ
4.15 14:25
그대가 밀어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꽃벌 한 마리
날아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일 이었다는 듯이 _ 박노준_
"얼씨구 자알 논다, 이놈 바람둥이 맞구먼"
4.23
벚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이 때 벚꽃같은 님의 얼굴 한 번 보고 싶군요.
오는 금요일 뵙지요. 기다리겠습니다. 그 때 그 까페에서. 12:00에
수신함의 문자는 여기서 끝난다.
이어 발신함을 열어 보았다.
3.16 14:00
교수님에게 예쁘단 소릴 들으니 영광이군요.
주변에 예쁜 여학생들이 많을 텐데 말이예요.
3.20 14:00
너무 띄워 주시는 거 아니예요?
몸 둘 바를 모르겠네요.
3.30 15:00
교수님 초대라면 응하고 싶네요.
시간과 장소를 알려 주시면 그 때 뵙지요.
30.31 14:20
제가 드려야 할 말씀을 하시네요.
점심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안녕히.
4.16 14: 30
시인이신가요?
시가 제 마음에 너무 와 닿네요.
멋져요!
4.23 14:30
녜, 잘 알았습니다.
발신은 여기서 끝났다.
오는 금요일 그 때 그 까페라...
어디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몇번 만났다는 이야기 아닌가.
순간적으로 불같은 질투가 일어났다. 피가 꺼꾸로 치솟는 것 같았다.
이것들을 어찌해야 하나?
메시지 내용으로 보면 보통으로 발전된게 아니다.
이미 마음을 뺏겼다고 봐야한다.
그 때 그 카페라.. 어디지 ? 내가 어떻게 알고 찾아가나?
얼른 생각키운건 하나 뿐이다. 미행을 하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변장을 해야 가능할 것이다. 변장은 어떻게 하나?
머리 속으로 그림을 그려 보았다. 안경을 쓴다. 그리고 턱수염을 붙인다.
등산용 파카를 입는다. 머리엔 요즘 유행하는 챙이 좁은 야구모자를 눌러 쓴다.
바지는 청바지를 입고 신발은 운동화를 신는다. 그러면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칠까?
과연 몰라 볼 까? 실패할 망정 시도는 해 봐야지 않나?
좋다, 실행에 옮기자! 결심을 했다.
이틑 날은 목요일인데 출근하자마자 지방에 사는 조카 결혼식 참석을 이유로 휴가계를 써서 지점장 결재를 올렸다.
형식적 기록일 뿐 허가는 당연지사다.
퇴근하면서 변장에 필요한 의복과 모자와 신발과 가짜 턱수염과 일체의 위장품을 집 인근에 있는 모텔에 보관하고 집으로 갔다.
미행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아내가 택시를 잡아 탄다면 어떻게?
모범 콜택시를 불러 예약금을 주고 집 가까운 쪽으로 익일 10:00까지 와 달라고 부탁해 두었다.
금요일 오전 08:00 출근한다면서 바로 인근에 위장물을 보관해 둔 모텔로 가서 위장을 했다.
거울을 쳐다보니 모를 것 같았다.
매일 넥타이에 양복만 입고 다니는 내가 파커잠바에 턱수염 붙이고 안경쓰고 챙 좁은 야구모자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내가 봐도 우쑤꽝스런 타인 같았다. 이만 하면 됐겠지, 허허.
모범 콜택시는 약속한 시간 약속한 장소에 정확히 도착했다.
위장복을 입은 나는 택시에 타고 앉자마자 아파트 정문을 주시했다. 통로는 하나뿐이다.
아파트정문 맞은 편 도로에 주차시켜 놓았으니 시계(視界)는 양호하다. 한 시간 쯤 지났을까 .
아내가 정장차림으로 아파트 정문앞을 지나간다. 택시를 잡으려고 도로변에서 기다린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부탁했다.
"기사 아저씨. 저 건너 정장차림의 부인 보이시죠?"
"아, 녜 저 건너 귀부인 같으신 분 말이죠?"
"녜, 맞습니다. 저 여자가 택시를 타면 놓치지 말고 따라 잡으세요, 수고비는 알아서 주겠습니다."
"아, 예 걱정 마십쇼. 내 운전 경력이 20년 입니다."
운전기사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감으로 어떤 사태인지 때려 잡았을 것이다.
앞의 택시는 자유로를 거쳐 마포방향으로 빠지고 있었다.
아현동고개를 넘어 충정로를 거쳐 보신각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더니
남산 쪽으로 내질렀다. 퇴계로에서 남산을 향해 올라 갔다.
남산에는 벗꽃이 만개해 화사한 봄볕에 아름다움을 더했다.
이 좋은 풍광속에서 내가 지금 뭣하는 짓인가를 생각하니 비애가 느껴졌다.
앞 택시는 경사진 남산도로를 돌고 돌아 남산 타워앞에 멈추었다 .
아내가 택시에서 내려 타워 쪽으로 걸어갔다. 타워의 승강기를 탈 모양이다.
그러면 목적지는 분명해졌다.
남산 타워 꼭대기는 방송국의 송신탑이지만 그 아래 비행접시모양의 구조물에는 전망대와 레스토랑이 있다.
몇년 전 이었던가 .
처제가 찾아왔을 때 난 처제와 저 남산 타워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서울 야경을 보여준 적이 있다.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가.
내가 처제와 저녁을 먹었던 장소에서 아내가 유부남과 점심을 같이 먹다니 ...
허참, 세상이 넓은 것 같아도 좁기만 해 보였다.
난 운전기사에게 미터기에 나온 요금은 물론 수고비도 아끼지 않고 주었다.
내려서 시계를 보니 11:30이었다.
난 담배를 한 대 물고 불을 붙였다.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
담배를 깊게 빨아 들이고 길게 내뿜었다.
내 몰골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이게 뭔가!
난 벚꽃이 활짝핀 남산에서 시내를 내려다 보았다.
북쪽으로는 내가 즐겨 산행하던 북한산과 도봉산의 봉우리가 한 눈에 들어왔다.
강남쪽으로는 한강물이 보였으며 강 건너로는 저 멀리 잠실에서 부터 반포까지 아파트가 숲을 이루었다.
서울은 참 넓기도 하다.
이 좋은 계절에 이 좋은 풍광을 눈 앞에 두고 앞으로 전개될 일들을 샐각하면 기가 막혔다.
아, 내 팔자야.
시간이 12:00가 되는 걸 보고 승강기를 타고 올라갔다.
밖이 보이지 않는 승강기는 초고속으로 올라갔다. 비행접시모양의 구조물 상층은 전망대였고 하층이 레스토랑이다.
이 레스토랑의 좌석은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정도의 저속으로 조끔씩 움직인다.
두 시간 쯤 앉자 있으면 앉은 자리에서 360도 회전해 서울 시내의 풍경을 한 자리에서 다 볼 수있다.
레스토랑의 출입문 오른 쪽으로으로 들어가면서 시선을 둘러 보았다.
10m전방에 아내의 뒷모습이 보였고 맞은 편엔 앉은 키가 커보이는 양복차림의 신사가 보였다.
첫 눈에 보이는 인상이 눈이 크고 코가 반듯한 사람이어서 입은 옷과 더불어 말쑥하게 보였다.
난 뒤쪽에서 표적들이 45도 각도쯤 보이는 곳에 자리잡고는 저격수처럼 전방을 주시했다.
챙이 좁은 야구모자를 더욱 깊게 눌러 썼다.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것이다.
난 아내와 연애결혼한 사이다.
중간에 대학 동창생이 다리를 놓아 주었으나 연애는 연애다.
처음 만난 장소를 잊을 수 없다 . 대구시내 중심부에 중앙공원이라는 소공원이 있다.
그 소공원 앞에 중앙다방이라는 다방이 있었고 거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시간은 기억나지 않으나 대낮이었다.
먼저 도착한 쪽은 나인데 난 다방 안 쪽에서 정문이 보이는 쪽에 자리했다.
난 정문을 보고 있었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원피스차림의 여성이 다방안으로 들어왔다.
실내를 살피고 문이 있는 카운터쪽으로 가더니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로 왔다.
" 저, 혹시 김,... "
" 예, 제가 깁니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의 표정은 밝았고 웃기 까지 했다. 첫인상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온 것 같았다.
하얀 얼굴피부에 곱상한 얼굴 , 목둘레가 사각으로 패인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모습은 청량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날씬 하기도 했으며 손목은 투명했고 가늘었다.
커피를 시켜 마시고는 바로 일어나 다방 길건너 중앙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앞에서 난 오징어와 땅콩을 사서 손에 들고 들어갔다. 빈 벤치가 있어 둘이 앉아 뭔 얘기를 하긴 한 것 같은데 기억은 없다.
그 첫 만남이후 나는 그 젊은 여성을 잊었다. 분명 의도적인 잊음인데,
저렇게 젊고 예쁜 아가씨가 나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다는 결론이었다. 난 스스로 자신이 없었다.
3개월이 흘러간 시점에 우연히 만난 동창이 후일담을 물었을 때 난 잊었노라고 답해 주었다.
그런데 그 동창녀석 왈,
" 전화를 기다리는 눈치던데..."하는 것이 아닌가.
그 즉시 난 용기를 갖고 전화해서 만났다. 그렇게 해서 그 해의 크리스마스는 외롭지 않고 즐겁게 보냈다.
난 시내 카페에서 핑크 레이디 칵테일을 시켜놓고 그 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으니까.
그 때 잡은 손목의 매끄럽고 부드러움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내가 잠시 회상에 잠겨 있는 사이 표적인 두 사람은 무슨 얘긴지 들리진 않지만 대화를 계속해 나갔다.
남자는 신이 나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순간 아내의 웃는 모습이 보였다.
한 쪽 손을 입으로 가리고 웃는데 왼쪽으로 돌아선 아내의 웃는 모습 프로필이 내 눈에 들어왔다.
볼에 주름이 지게 웃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 억, " 하고 구토가 나올것만 같아 일어나서 화장실로 갔다.
다행히 구토가 나진 않았지만 속이 메스꺼워 주저앉은 자세로 담배 한 대를 피워 물었다.
어떡하지? 들이 닦쳐 소란을 피워? 그건 너무 천박한 행동같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럼 어쩐다?
더 이상 레스토랑으로 들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난 승강기를 타고 내려왔다.
더 이상 지켜 볼 힘이 없어서 였다. 내가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
확인은 그걸로서 족하다.
그 날 난 대취해서 집에 들어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게 쏘다니며 마시고 걷고 또 마셨다.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있었다.
"유진아빠! 너무 취했네, 누구하고 그렇게 마셨어요?"
"아, 몰라 묻지마!"
그러고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엎어서 골아 떨어졌다.
아내는 내옷과 양말을 벗기고 물수건을 가져와 내 발을 딱아주고는 이불까지 덮어주고 나갔다.
야누스의 두 얼굴인가.
아내는 내가 미행한 줄은 모르고 있다. 해서 평상시와 같이 나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가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하늘같이 믿은 아내가 나 모르게 유부남과 만났다. 정담을 나누고 웃었다.
술에 취해 의식이 몽롱해졌다.
오늘은 모든 걸 잊고 잠이나 자두자.
간통!
유부남과 유부녀가 만남면 우선 떠 올려 지는게 이것이다.
착하디 착한 아내가 그만한 용기가 있을까.
아니냐, 사람이 정이 통하면 없는 용기도 나오는 것이고, 그게 자연스러운 감성이고
인간은 결국 감정의 동물아닌가. 하지말란 법이 있지만 이 때의 사랑감정은 법을 무시해 버린다.
간통죄가 과연 필요한 것인가.
페미니스트들은 주장한다. 간통죄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혼인의 순결과 가정의 보호에 있다고.
예전에는 이것이 선인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같은 문명사회에서는 여성이 약자가 아니다.
또 하나 간통죄는 쌍벌죄이기 때문에 당사자중 한 사람은 처벌받는 여성이다.
한 쪽 여성이 처벌 받는데 여성보호라는 것은 모순이다.
그 다음 혼인의 순결은 보호 될지언정, 가정의 보호라는 것에는 쉽게 동의할 수 없다.
간통죄로 고소하는 한 이혼은 필수적이며 그 가정은 붕괴를 맞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기에 고소해 처벌받아 범죄인을 만드는 배우자와는 정이 떨어져 살 수가 없고,
또 고소자는 이혼을 전제로 고소하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만나 살을 썪고 살았으면 마무리도 깔끔하면 좋으련만 서로 원수가 되어 헤어진다는게 슬프다.
이것이 평소의 내 소신이었고 주장이었다.
그러나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가 마음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이 세상에는 절대 선도 없고 절대 악도 없다.
진리라는 것도 역사이래로 바뀌어 왔다.
내가 앞서 나가는 건지 아내가 간통했다는 증거도 없고, 하리라는 증거도 없다.
법에 필요한 증거를 잡기 위해선 추한 행동과 추한 모습을 들어내야 한다.
어쩐다? 머리가 몽롱해 지는게 생각하기가 싫어졌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대의 결함까지도 용서해야 하는 것인가.
사람이 살아 생전에 한 사람만 죽도록 사랑해야 하는가.
이 세상에 실수가 없는 완벽한 사람이 있을 것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괴롭혔다.
모른 척하자.
난 그렇게 결심했다. 그러면서도 은유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유진엄마, 나에게 말못할 비밀이 있나?"
"무슨 말씀이예요? 전 그런거 없어요."
"오호, 그래요. 잘 알겠습니다아. 그럼 , 박교수는 뭐야? "
아내가 흠칫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신이 그걸 어떻게?...."
"왜 내가 모를 줄 알았나?"
" 그래요 , 박교수 만났어요, 사람이 젊잖하고 격식이 있습디다.
당신같이 천박하지 않아요, 당신은 하고 싶은데로, 욕망대로 살면서 나는 왜 안되요!"
아내가 공격적으로 나왔다. 이미 엎질러진 거 당차게 나가야 한단 생각에서 일까.
순간적으로 작심하고 나온게 분명했다.
어, 이것봐라. 적반하장아닌가. 난 그래도 잘못했다고 이실직고 하고 용서를 빌줄 알앗는데...
독기를 품었구먼... 순진하기만 하던 아내가 독기를 품고 대들줄은 상상도 못했다.
"뭐, 젊잖하고 격식이 있다고! 지금 누굴 약올리나! "
목소리 큰 내가 언성을 높혔다.
아내도 지지않고 발악을 한다.
"당신 지금껏 살아온 내력을 돌아봐요! 가슴에 손을 얻고 생각해 봐요!
당신은 하고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잖아, 그 동안 전 어떻게 살았나요?
내가 옷을 사입기나 했나, 취미생활을 한게 있나, 오직 저축해서 잘 살자는 요량으로 아둥바둥 살아온
죄 밖엔 없어요! 당신은 주제넘게 골프에 스키에 , 그도 모자라 도박에 주식에, 갖다 버린 돈이 얼마요.? 난 동창회도 안나가고 살었고요. 당신은 다른 여자와 놀아 나는데 왜 나는 안되요?"
이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아내가 말한게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양심에 찔린다.
호기심 많은 난 다른 사람이 안해 본 것 많이도 하고 살았다.
바람기만 하더라도 그렇다.
다방 아가씨 따먹은 것은 발설을 했지만, 그외 룸 싸롱 여급도 따 먹었고, 카바레에서 만난 유부녀도 따 먹었다.
물론 돈이야 들었지만 , 사진촬영을 핑계대고 청순미를 살려야 한다며 여고생도 차에 태우고 출사도 했다.
갖은 취미생활은 다 해보았다. 등산에 탐석, 수영, 요가, 수상스키까지 했으니 누구보다 다양한 경험을 한것은 맞다.
아내 말대로 욕망에 허우적거리며 살았던 것이다.
그런 내가 아내의 불륜을 용서 못한다. 이건 너무 이기적인 처사다.
남자는 바람을 피워도 되고 여자는 안된다. 그럼 남자의 상대는 누군가. 여자 아닌가.
감정적으론 용서를 빌고 용서해 주는 아량으로 매듭지어지길 기대했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성적으론 내가 잘못 살아온 게 너무 많으니 따지고 들어갈 틈이 없다.
학교운영위원들이 모여 접촉하다보니 친해질 수도 있으리라.
이성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사랑한다 싶으면 넘어가는 것도 자연의 이치라 생각된다.
예수가 '죄없는 자만이 저 여인을 돌로 쳐라' 햇을 때 돌을 던진 사람이 있었던가.
아하, 참 어쩐다.
내가 진정으로 아내를 사랑 한다면 아내의 한 번의 실수는 아량으로 넘어가야한다.
이성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영 기분이 내키지 않는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천사같은 아내가 나 아닌 다른 남자와 사귀고 그것도 모자라 악을 쓰며 대든다.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단 말인가.
그 변화는 나에게 책임이 있지 않는가. 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잔다는 것은 절대로 없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절대로 그럴 만한 용기도 없고 그럴만한 위인도 못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렇다면 내가 내자신의 과거를 반성한다는 차원에서 이만 덥고 넘어가야지 않겠나.
불쏘시개를 자꾸만 뒤적이면 결국 서로 상처를 받고 나쁜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의 대립과 싸움은 필연적으로 이전투구의 추한 전쟁이 될게 뻔하다.
이런 전쟁에서는 승자가 없는 상처투성이의 패자들만 있을 뿐이다. 그 나쁜 기억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두렵다.
애들은 또 무슨 죄인가.
부모가 화합하지 못하고 언성높혀 싸우는 광경을 본다면 그네들에게도 가슴아픈 상처를 줄 뿐이다.
냉전의 시간은 길었다.
서로 말을 아끼며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상대방의 잘못은 파고 들었다.
출근할 때 와이샤쓰 다림질이 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면
" 당신, 집에서 하는 일이 뭐야! 이렇게 해도 되는거야"
로 면박을 주고나면 그 때는 말이 없이 순응하다가도 내가 반주로 술을 먹으면 왜 밖에서 먹는 술도 모자라 집에서 까지 마시냐로 핀잔하고 담배를 피울라고 하면 밖에 나가 피우라고 성질을 부린다.
냉전이 길어지자 안팎으로 무슨 일이 되는 게 없었으며,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쳤다.
고2인 딸 아이의 성적이 하강했다.
난 그래도 교육대학 가기를 희망했지만 담임은 지금 성적으로는 못미친다고 했다.
사실 냉전하는 당사자인 나 자신도 지쳐 들러갔다. 사람이 꼬투리를 잡으려면 한도 끝도 없다.
평소엔 이해하고 지나가던 일도 따지고 들어가니 나 자신도 피곤했다.
뭔가 전기를 마련해야 했다.
내가 먼져 지고 들어가자. 지는게 이기는 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화해의 표시는 내가 먼저 했다.
"유진엄마, 우리 여행이나 한번 하자구, 봄 나들이 우리도 한 번 해야 하는 것 아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도 곱다는 속담이 맞아 떨어진다.
"당신이 웬일로 그러셔? "
목소리의 톤이 낮은 음으로 바뀌었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서해안 고속도로로 빠져 전주로 갔다.
전주에서 군산가는 도로는 벚꽃의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이 때 맞추어 전주-군산도로에는 마라톤 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벚꽃터널을 뛰는 건각들을 보니 나도 발로 뛰고 싶었다.
길이 좀 막히기는 했지만 전주-군산도로의 벚꽃은 마치 순결한 처녀처럼 깨끗하고 향기로웠다.
우리는 석양이 질 무렵에 군산항이 바라다 보이는 어촌횟집 3층에 자리를 잡고 창 박으로 지는 석양의 노을을 보고 있었다.
바다 건너는 옛날 초등학교 사회교과서에서 본 장항제련소의 높은 굴뚝이 유아독존처럼 우뚝 서 있다.
바다는 군산항과 마주보는 장항제련소를 초입으로 내륙으로 길게 들어와 있다. 그곳이 금강하구인 셈이다.
석양은 마치 용광로에서 나오는 불덩이 같이 붉게 빛났다.
창을 통해서 석양빛이 우리 자리를 위로하고 있는 듯이 테이블위에 비추었다.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모듬회를 시켜놓고 소주를 한 잔 씩 따르며 건배했다.
내가 먼저 말했다 .
"유진엄마, 우리 이제 냉전 끝내고 예전처럼 지내자, 내가 그간의 일은 다 용서해 줄께..."
"전 용서받을게 없어요, 박교수는 같은 학교운영위원이라 모임에서 만나 밥먹고 차마신 것 밖에 없어요, 그것도 죄인가요? "
아내는 다소 도발적으로 나왔지만 못소리는 죽어 있었다.
"그래 내가 알아,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은 ...
하지만 기분 나쁜것은 입장 바꿔도 사실아닌가 이 사람아,"
"뭐 그렇다면 그럴 수 있겠죠. 당신이 이해 해 주면 고맙지요. 하지만 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녜요!"
"알어, 알어, 당신이 어떤 여잔데..."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외삼촌은 의성경찰서 안계지서의 주임이라고 했다.
경찰 정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 키가 크고 흰 얼굴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남자였다.
외숙모가 옷행상을 한다고 대신동 시장에 옷을 사가기 위해 우리 집을 자주 찾았다.
외숙모도 키가 크고 흰 얼굴이 40초반의 농염한 미인이라고 생각되었다.
후일 외숙모가 시누위인 어머니에게 외삼촌이 바람을 피운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때 어린 나의 생각에 외숙모같이 미인 아내로 두고 어떻게 바람을 피우나 하는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어느 날은 외삼촌이 찾아와 변명하기를 여자들이 자꾸 따른다는 것이다.
자기는 방어적인데 여자들이 자기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 다는것이 핑계였는데 타당한 건지 아닌지는 그 당시 몰랐다.
언뜻 옛날의 외숙모와 아내가 영화에서 처럼 오버 랩되었다.
촌스런 표현이지만 양귀비같은 아내를 두고 내가 바람을 피웠다는게 핏줄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유전자가 멀어 실감은 나지 않지만 혹 명주실같이 가는 유전자의 한 가닥이 몰래 숨어 내려와 내 몸에 박힌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지금의 아내와의 갈등은 내가 원인제공을 했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식사를 끝내고 카운터에 계산하면서 주인 여자에게 외지인인데 군산에서 구경할 만 한데를 물으니
은파유원지가 유명하다고 했다. 그리로 차를 몰고 갔는데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군산에는 은파유원지라고 호수가 있는데 대구시 지산동에 있는 수성못 유원지보다는 조금 커 보이는 그 호수 주변으로 나무 둥치가 실한 벚꽃나무들이 꽃을 만개시키고 있었다.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열정이다. 열정은 맹목적이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열정 앞에서 현실을 지배하는 모든 윤리적인 금지와 제도적인 억압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다.
태우면 한 줌 무기질 일 뿐이지만 , 살아 숨쉬는 인간이란 기억, 담백질과 욕망의 기이한 존재일 뿐이다.
기억과 욕망이란 신의 영역이다. 욕망이 없으면 존재의 이유가 없다!
꿈은 이루어 지는 순간, 존재의 의미는 사라진다.허무의 심연 ! 자본주의적 욕망으로 살아온 것은 나 자신이다!
내가 누구를 탓할 수있겠는가!
유원지란 어디가나 그럿듯이 근처엔 모텔들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밤을 뜨겁게 보내야지...
하늘에다 데고 오색의 빛을 내뿜는 네온사인이 있는 모텔에 들어갔다.
모텔의 방은 비교적 넓었으며 침구는 깨끗했다.
방에 들자마자 나는 욕조에 수도꼭지를 틀어놓고 아내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면서 아내의 옷을 하나 하나 벗겼다. 아내는 나의 옷을 벗겨 주었다.
같이 욕실에 들어갔다 .
샤워물을 끼얹고 난 다음 나는 아내의 몸을 내 손으로 비누칠을 해 주었다.
목덜미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내 손은 아내의 몸을 빠진데 없이 문질러 주었다.
40대 중반의 나이였지만 아직도 아내는 팽팽하고 매끄러운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아내의 전신에 비누칠을 마치자 이번엔 아내가 내 몸에 비누칠을 해 주었다.
내 페니스는 거칠게 발기했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 아내를 껴안고 침대로 갔다.
난 아내의 몸을 핥고 내 부드러운 손으로 애무했다.
아내가 반응하기 시작했다. 내 페니스는 아내의 자궁을 향해 돌진했다.
아내가 낮은 신음소리를 냈다. 난 더욱 맹렬한 기세로 습격에 습격을 거듭했다.
"여보 , 좋아..."
"아, 너무좋아요. 계속해 줘요!"
난 당신이 아니면 차라리 죽겠다는 헌신으로 봉사했다.
드디어 태양의 흑점처럼 폭발했다.
내 모든 의식이 허물어져 내리고 증발해 버리는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모처럼 깊고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 끝 ---
첫댓글 잘읽고가요~ 너무 어린분이 쓴 소설하곤 또 다른 느낌에 동감대가 많이 생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