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로이터, 슈피겔 등 많은 외신이 한국의 사이버 여성혐오를 조명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양궁 국가대표 안산 선수의 숏커트를 본 남초 커뮤니티 유저들이 갓 스물인 여성이 짧은 머리를 한 건 분명 ‘탈코르셋’일 거라는 억측을 퍼뜨린 것이다. 숏커트를 시작으로 여대 출신인 점과 ‘얼레벌레’, ‘오조오억’ 같은 단어를 쓴 것을 그가 페미니스트라는 증거로 내세웠다.
게시글과 댓글은 순식간에 불어났고, ‘안산=페미니스트=남혐’이라는 공식까지 만들었다. 실로 집단적 광기에 가까웠다. 화룡점정으로 금메달을 반납하고 허리 숙여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한 모든 이의 반응은 싸늘했다. 다수의 외신은 이 풍경을 두고 ‘온라인 학대’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국제적 행사 앞에서 외신의 신랄한 평가가 오가자 정치인들은 이 현상을 비판했다.
남초 커뮤니티는 몹시 당황한 듯했다. 보수 언론사 폭스(FOX)는 다른 해석을 내놓을 거라 기대했지만, 역시 ‘안티 페미니즘 운동’이라는 표현을 전했다. 뉴스에 대한 해외 반응은 더욱 술렁였다. 지금 2021년이 맞느냐는 뼈 있는 질문과 한국은 이게 뉴스거리가 될 정도냐는 의아함이 넘쳐났다. 모두가 알고 있다. 남초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저 공식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 시대착오적인지, 저들 빼고 모두 알고 있다. 도대체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시작은 GS였다. GS25의 ‘남혐 손가락’ 논란이 들끓었을 때, GS의 반응은 사과였다. 비논리적인 억지에 명확한 해명을 전하는 게 아니라 죄송하다며 고개부터 숙였다. 이 행동의 근본적 원인을 따지는 데 모두 게을렀다. 이를 시작으로 카카오, 네이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이 잇따라 사과했다. 이번 국제적 망신은 이때부터 예견된 거나 다름없다.
남성들이 ‘안산은 페미니스트다’라고 문제화한 명제를 먼저 보자. 그 기저에는 ‘페미니스트는 부정적 존재’라는 개념이 깔려 있다. “너희 기업도 페미지?”라는 비난에 모두 놀라며 사과한 모습은 결국 기업들 또한 남성들의 사고 회로와 같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 페미니즘의 본질이 무엇인지 숙고한 이는 없다. 그때 남성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누구든 페미인지 아닌지 바로 우리가 재단하고 심판할 수 있다고.
국내 언론도 똑같다. 이런 논란에 ‘성대결’, ‘젠더갈등’, ‘페미니스트 논란’ 따위의 제목을 붙여 마치 대립 가능한 의견인 것처럼 조성했지만, 외신들이 이를 정확히 정정했다. ‘온라인 학대’. 금메달리스트도 피할 길 없던 성차별적 폭력이라고. 아무래도 이 사건은 우리 모두에게 중대한 기점이 될 것 같다. 남성들은 처음으로 우물 밖의 반응을 알았고, 여성들은 더 큰 확신을 얻게 됐다.(이자연 대중문화 탐구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