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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들의 맑고 아름다운 명시 마을 스크랩 오늘의 詩 한 수 15 / 파리의 우울 - 보들레르
참마로니에 추천 0 조회 19 08.09.01 15:1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새벽 한 시에

보들레르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늦어진 역 마차 두 서너 대가 기진해서 달려가는 소리만이 들려온다. 지금부터 몇 시간 동안 휴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조용한 시간을 가질 수가 있다. 마침내 지긋지긋한 인간의 얼굴도 사라져 버렸고, 이제는 나로 인한 고뇌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제 비로소 나는 어둠에 묻혀 느긋하게 쉴 수가 있다! 우선 이중 열쇠를 채운다. 열쇠의 회전수에 따라 나의 고독은 더욱 깊어지며, 나를 이처럼 이 세상에서 동떨어지게 하고 있는 장벽은 더한층 견고해지는 느낌이 든다.

가증스런 삶! 공포의 도시! 그러면 오늘 하루를 보낸 일을 한번 생각해 보자. 몇몇의 문인들은 만나 보았다. 이들 중 한명은 육로로 러시아로 갈 수 있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리고 어느 잡지사의 편집장과 크게 다투었다. 그는 나를 공격할 때마다 "우리 잡지사에는 신사들만 모였단 말씀입니다." 라고 대꾸하곤 했다. 마치 다른 신문이나 잡지는 불한당들의 손으로 편집되어 있다는 듯한 어투였다. 그리고 한 20여 명의 사람을 만났다. 이들 중 15명은 초대면. 일일이 악수를 나누다 보니 장갑을 준비해 두지 않은 게 큰 실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나기가 내리는 동안 시간을 보내느라 어느 바람둥이 여자에게 들렀다. 그녀에게서 베뉴스트르 의상을 디자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느 극장 지배인을 인사차 찾아갔다. 떠나려 하자 그는 말했다.
"Z를 만나 보면 좋을 겁니다. 우리 극장 작자 중에서는 누구보다도 둔감하고 어리석지만 누구보다 유명하거든요. 그 친구와 얘기하다 보면 뭔가 얻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좌우간 만나 보십시오. 그 뒤에 또 만납시다."
나는 이때껏 해 본 적 없는 여러 가지 우행을 저질렀으며(왜 그랬을까?) 즐겨 저지른 몇 가지 일들을 비겁하게도 부정했다. 허세부리는 죄와 세상의 평판을 두려워하는 죄 - 친구들로부터 대단치도 않은 것을 부탁받고 이를 거절한 반면 한 완벽한 얼간이에게는 추천장을 주었다. 그건 그렇고 이것으로 오늘 하루 일은 끝이던가?

한결같이 불만스럽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도 불만이다. 밤의 정적과 고독 속에서 나는 자신을 되찾고 , 그리고 다소의 자만을 맛보고 싶다. 내가 사랑한 자들의 넋이여, 내가 노래한 자들의 넋이여, 나를 강하게 해 다오. 받들어 다오. 내게서 세상의 허위와 열병을 일으키는 독자를 멀리하게 해 다오. 그리고 그대, 나의 주인인 선이여! 내가 인간 쓰레기가 아니며, 바로 이 내가 경멸하는 자들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증명할 수 있는 몇 줄의 시를 짓도록 은총을 주소서.

          - '파리의 우울'(1869)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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