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폭탄도 견디는 구조' 우크라이나 댐 왜 무너졌나…러시아 고의적 자체 폭파에 무게 VOA(미국의 소리)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주 노바 카호우카 시에 있는 카호우카 댐 붕괴를 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책임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이 지역을 점령중인 러시아가 고의적으로 폭파시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군수·공학 전문가들이 조심스럽게 카호우카 댐이 내부 폭파로 붕괴됐을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싣고 있다고 6일 보도했습니다. 댐이 무너지는 원인으로는 크게 댐 자체의 구조적 결함, 외부에서 가해진 충격, 내부의 고의적인 폭발 등을 꼽을 수 있는데, 이번 카호우카 댐 붕괴의 경우 내부의 고의적인 폭발로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폭탄이나 미사일로 인한 외부 충격은 댐의 일부에만 파손을 가할 뿐, 이번처럼 절반으로 쪼개지는 결과를 낳긴 어렵다는 점이 내부 폭발설에 힘을 싣습니다. 특히 막대한 양의 물로 둘러싸인 댐을 외부 충격을 동원해 폭파하려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의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따라서, 외부에선 폭탄이 떨어지더라도 폭발 과정에서 위력이 줄어든다고 전문가들은 뉴욕타임스에 밝혔습니다. ■ 전쟁 중에도 대파된 전례 없어 폭발물 전문가인 닉 글루맥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교수는 "(미사일의) 탄두에 실을 수 있는 폭발물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이를 직접 맞는다 해도 댐을 붕괴시킬 순 없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댐 붕괴에 필요한 힘의 규모를 생각해 보라, 엄청나게 힘든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우크라이나군이 헤르손 시를 탈환할 당시, 카호우카 댐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이 격렬한 교전을 벌인 적이 있습니다. 당시 로켓 공격 등으로 수문 일부가 파손되긴 했지만 댐 구조물에선 손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댐 전문가인 그레고리 배처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교수는 댐이 수량 증대로 인한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할 경우 일반적으로 댐의 양쪽 둑에서 먼저 균열이 발생한다고 뉴욕타임스에 설명했습니다. 5일 밤부터 6일 새벽 사이 폭발로 파손된 카호우카 댐의 경우 그렇지 않고, 댐의 중간 부근에서 파괴가 시작돼 양측으로 넓어지는 상황입니다. 배처 교수는 "수문 일부가 손상된 상태에서 수위가 상승할 경우, 수문 일부가 찢어질 수는 있지만 이 정도 규모로 파괴되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이같은 전문가들의 증언은 우크라이나의 포격으로 댐이 파괴됐다는 러시아의 주장과 배치됩니다. 1956년 지어진 카호우카 댐은 높이 30m, 길이 3.2㎞ 규모에 수력발전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담수량은 18㎦로 미국 유타주의 그레이트솔트호와 맞먹습니다. 이 댐은 러시아가 지난 2014년 불법 병합한 크름반도(크림반도)의 식수원이고, 주변 경작지에 농업용수도 공급하고 있습니다. 인근에 있는 유럽 최대 자포리자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도 카호우카 저수 시설에서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이 댐이 5일 밤부터 6일 새벽 사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로 붕괴된 가운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서로 상대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댐과 주변지역은 러시아가 점령 중입니다. ■ 특별히 튼튼한 카호우카 댐 우크라이나 국영 수력발전회사의 이호르 시로타 대표는 카호우카 댐이 "원자폭탄을 견딜 수 있도록 지어졌다"고 뉴욕타임스에 밝히고, 내부 폭파가 확실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사일 공격으로는 이 정도까지 댐을 파괴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카호우카 댐은 모래와 자갈로 만든 사력댐입니다. 사력댐은 외부 폭발에 특히 강합니다. 우크라이나는 댐을 포함한 노바 카호우카 지역을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사실을 근거로 러시아가 댐을 무너뜨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내부 폭파' 도대체 왜? 카호우카 댐을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가 자체적으로 벌인 '내부 폭파'가 맞다면, 그 동기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집중됩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되찾기 위해 펼치는 '대반격'과 관계있다는 분석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댐 붕괴로 드니프로강이 불어나면서 우크라이나군이 강 동편의 러시아군 장악 지역으로 진격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댐이 무너진 뒤 시간이 지나면서 하류 지역 침수 범위가 급속도로 넓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계속 진행하려면, 전력을 그보다 북쪽에 있는 돈바스 지역에 집중해야 합니다. 돈바스 지역은 오래 전부터 친러시아 세력이 장악해온 곳이라, 전투 환경이 러시아에 크게 유리합니다. 이번 전쟁에서도 친러 무장세력과 러시아 용병업체 '바그너 그룹', 그리고 러시아 정규군이 돈바스 일원에서 상당한 전과를 올리며 영역을 확장해왔습니다. 따라서, 카호우카 댐 폭발이 우크라이나 남부를 둘러싼 전략적 체스판을 뒤흔들었다고 BBC는 평가했습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지난해부터 러시아가 반격을 지연시키기 위해 댐을 공격할 수 있다고 경고해왔습니다. ■ "최소 10만 명 홍수 영향권" 7일 댐 붕괴 이틀째에 접어들면서 홍수 범위가 넓어져, 인근 주민 피해도 커질 전망입니다. 주변 도심과 주거지 침수가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대피 인원도 늘고 있습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최소 10만 명이 홍수 피해 영향권에 들어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러시아 테러리스트들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협한다는 점을 이번에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비난했습니다. ■ 미국은 신중한 입장 미국 정부는 이번 사태를 관망하면서, 향후 전황에 미칠 영향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협력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단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신중한 입장을 내놨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번 사태에 러시아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습니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카호우카 댐에 대한 전례 없는 공격에 충격받았다"고 말하고 "민간 기반시설 파괴는 분명히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러시아와 그 대리인들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유엔 안보리 긴급회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6일 긴급회의를 열어 카호우카 댐 파손 사건에 관해 논의했습니다. 마틴 그리피스 유엔 인도주의·긴급구호 담당 사무부총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사태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민간 기반시설이 입은 가장 중대한 피해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피해의 크기는 앞으로 며칠 뒤에는 완전히 드러날 것"이라면서 "우크라이나 남부의 수십만 명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은 확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홍수로 인해, 비축 중이던 지뢰나 폭탄 등이 유실돼 퍼져 나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주변의 광활한 지역의 주민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될 것이라고 그리피스 부총장은 말했습니다. 그리피스 부총장은 이어서, 이미 전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식량 공급에 더 큰 충격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그러면서, 유엔은 아직 카호우카 댐 파손의 이유를 파악하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국제법상 댐과 같은 위력적인 힘을 가진 시설들은 파괴될 경우 민간인 사상자와 피해를 막기 위해 특별히 보호하도록 돼있다고 덧붙였습니다. VOA 뉴스 오종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