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 땔감으로 쓸까 하여
공사장 폐목 자재를 얻어다 부렸더니 온통 못투성이다
하필이면 나무에 빠져 죽었을까
죽은 못을 수습하는 동안
나무의 까칠한 잔등에 긁힌 자국이 소금쟁이 같다
죽은 것들을 위하여 겹겹의 나이테를 다 퍼낼 수 없어
아궁이 밑불을 뒤적거리며
퉁퉁 불어 저절로 떠오르기를 기다려도 보았지만
바닥은 개흙, 못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죽음과 침묵 사이엔 얼마나 두터운 합의가 있었을까
나무판자를 덮고 잠들었던 노숙자는
죽은 지 열흘 만에 말라비틀어진 몸을 삶에서 빼냈다
못대가리를 장도리 끝에 걸어 당겼더니
쇳소리를 내며 합판을 빠져나오는
잔뜩 꼬부라져 죽은 못은 죽어서도 쭉 뻗지 못하였다
-『김포신문/김부회의 시가 있는 아침』2022.10.07. -
모든 죽음은 화려하지 않다. 모든 죽음은 안쓰럽고 눈물이 난다. 자연사, 병사, 등등의 모든 것은 본래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불편한 죽음이란 무엇일까? 아무것도 내려놓을 것조차 없는, 그래서 꼬부라진 채 죽어서도 쭉 뻗지 못하는 못의 죽음으로 보며 시인의 감성은 말한다.
이 세상 모든 죽음 중 가장 안쓰러운 것은 죽음과 침묵 사이 잔뜩 꼬부라져 죽어서도 쭉 뻗지 못하는 불편한 죽음과 우리의 삶에 대해.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 선택의 몫이지만 그조차도 못하는 현실이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과제 앞에서 마냥 숨기에는 할 일이 너무 많다. 쭉 뻗고 살면 좋겠다. 잘 때도, 다른 어떤 날도.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나는 할 일이 없어 길을 걸었고
길 위에 내리는 눈도 할 일이 없어 보였다
눈을 맞는 길도 할 일이 없는 것 같았다
눈이 나를 따라 오기도 하고
내가 눈의 꽁무니를 밟고 가기도 했다
눈 밟는 소리가 좋다고 눈이
한 뼘 더 내려야겠다고 했다
나는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도 눈 밟는 소리가 좋다고 했다
길도 끝나는 게 싫어선지 자꾸
골목을 돌아서 가느라 시간이 늦었다
어디로 가기로 한 것도 아닌데
시간이 늦었다고 눈은
길을 더 먼 곳으로 밀었다
길은 기꺼웠고 나는 걸었다
할 일이 없어 뽀드득 뽀드득 걸었다
할 일이 없는 눈이 내렸으므로
우리는 모두 할 일이 없었다
할 일이 없으니 그만
자야만 할 것 같던 밤이었다
그러자고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잠결에도 눈은 할 일이 없어 자꾸 내리고
할 일이 없어 길마저 들어간 다음에도
나무 위로 지붕 위로 눈은
할 일이 없이 자꾸 내린 것 같았다
아침이 무슨 할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왔지만
30년만의 폭설이라고 뉴스가 쏟아졌지만
길은 길 위에서
눈은 눈 속에서
나는 이불 아래서 생각을 주물럭거렸을 뿐
우리는 모두
아무 할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