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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2: 24 한 알의 밀 - 요 12: 26 나를 섬기려면
요 12: 24 한 알의 밀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이 말씀은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다.
한 알의 밀이 땅에 심기우지 않고 창고 속에 있으면 한 알 그대로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땅에 심기어 썩으면 거기에서 싹이 나고 자라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의 이치이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님은 복음의 확산에 대하여 한 알의 밀의 예를 들어 설명하여 주었다.
2]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은 인류 구원의 사역도 이와 같다.
그는 많은 사람의 구원을 위해 죽으셔야 했다. 그가 죽지 않으시면 그 사역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나, 그가 한 알의 밀과 같이 죽으심으로 많은 죄인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다.
이사야는 예언하기를,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라고 했다(사 53: 10-11).
3] 죽으면 많은 열매를 및느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므로 많은 이방인이 천국으로 들어오게 될 것을 가리킨 비유이다.
사 53: 10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 사 53: 10 -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거기 말하기를, "그의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라고 하였다. 이렇게 그의 속죄적 희생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인 만큼, 그를 따르는 자들(믿는 자들)이 영생을 얻는다.
요 12: 25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와 미워하는 자 -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 )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시면서 그를 믿고 따르는 우리가 그를 본받아 죽음을 각오해야 함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은 고난과 핍박이 있고 죽음의 위협이 있는 길이다.
그 길은 심지어 순교의 피를 흘려야 하는 길이다. 그것은 오늘날도 어떤 공산국가들이나 이슬람 국가들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예수 믿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겨야 가능한 일이다.
1]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란 말은, 자기 힘으로 자기 생명을 구원하려 하는 자를 가리킨다.
이제 예수님의 속죄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므로(24절), 모든 사람은 자기 생명의 구원을 그에게 맡기고 그만 믿고 따라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그들은 생명을 잃는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생명을 미워하는 듯이 주님만 사랑하며 바라보아야 구원을 얻는다. 사람이 이렇게 되기 어렵다. 그러나 그가 용이하게 그렇게 되는 길이 있다.
벴겔(Bengel)은 말하기를, "우리의 영혼이 우리 자신의 생명을 미워함에 도달하는 방법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푹 적시움이 있다"라고 하였다.
2]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
여기 기록된 희생의 원리는, 일반 사회에도 적용되는 진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그를 믿는 자들의 지켜야 할 원리를 보여주신다. 곧, 이 말씀은 믿는 자들이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 그리스도만 따라가야 하는 신령한 희생의 도리를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셔서 우리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셨으니(24 절), 우리는 우리 자신을 따르지 말고(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말고) 그만 따라가야 된다.
그리스도께서 구속 사업을 위한 자기의 죽으심에 대하여 말씀하신 뒤에는, 이어서 그를 믿기(따르기) 위한 우리의 희생을 권고하셨다.
* 마 16: 21-27 –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 눅 9: 20-26 – 20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니 21 경고하사 이 말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명하시고 22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25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바로 아는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길 수 있고 하나님의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죽기까지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육신의 생명을 아까워해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그를 믿고 따르기를 포기한다면 그는 영생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눅 14: 26-27, 33 – 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27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면, 그는 아직도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한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가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그는 결코 고난과 핍박을 당하며 심지어 순교를 당하며 끝까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사람이 자기 생명을 미워하면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자기 생명을 미워할 수 있다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적 가치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자신의 인간적 조건과 환경적 조건을 초월하는 믿음이 참 믿음이다. 그런 믿음을 굳게 가지고 끝까지 견디는 자는 영생에 이를 것이다.
자신의 목숨을 버릴 각오를 하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확실히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16: 25에서도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요 12: 26 나를 섬기려면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저를 귀히 여기시리라. )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침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본이 되셨다.
그는 이제 우리가 그를 믿고 섬기려 한다면 이 점에서도 그를 따르라고 교훈하신다.
즉 우리는 목숨을 내어놓고 죽음을 각오하고 그를 따라야 한다. 그를 참으로 알고 믿는 자들은 즐거이 그렇게 할 수 있고 또 하려 할 것이다.
그가 우리같이 무지하고 무가치한 죄인들, 벌레와 같은 자들을 위해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 수 있고 그를 위해 죽음의 자리에도 나아갈 각오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1]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
이것은 위의 말씀에 이어서 참된 신자 되는 원리를 더 자세히 가르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이 해설된다. 곧, 사람이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25절 하반), 여기서 주님을 따른다(믿는다)는 말로 바뀌었다. 주님을 따르는 자가 주님을 섬기는 자이다. 그리고 주님을 따르는 자는, 고난도 주님과 함께 받게 된다.
그렇게 하는 자는 장차 주님과 함께 거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다(하반절).
* 딤후 2: 11-12 – 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우리가 주를 부인하면 주도 우리를 부인하실 것이라.
2]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으리니,
신자의 구원을 내세의 장소와 관련시키는 사상은, 특별히 요한복음에 많다.
* 요 14: 2 -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 요 17: 24 -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 요 8: 21, 33 –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33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
그러나 이와 같은 내세 사상도 그리스도의 인격을 중심하고 있다. 곧, 그 장소가 그리스도의 계신 곳이라는 것이다. "나 있는 곳", "나의 가는 곳"이란 말씀들이 그 뜻이다.
공관 복음도 내세의 장소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니다.
* 마 19: 28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 눅 23: 4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로 "천국"이란 말에 내세(來世)를 포함시킨다. 천국이란 말이 내세의 장소성(場所性)도 포함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주로 운동의 경역(곧, 하나님의 통치 경역)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신약 성경이 말하는 내세적 구원은,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혹은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되는 사실을 그 중심 요소로 가진다는 것이다.
여기 예수님과 및 그를 섬기는 자들이 동일한 곳에 들어감에 대하여, 볼트만(R. Bultmann)은 다음과 같이 잘못 말하였다. 곧, "여기에 나타난 교훈은 노시스(露智派) 신비의 구속 교리와 부합한다. 노시스는 우주적 관련에서 그런 구속자의 구원 받는 자들의 연합을 가리키고, 여기 요한 복음은 역사적 관련에서 그것을 말한다"라고 하였다(Johannes Evangelium, p. 326).
그는, 특별히 32절의 모든 사람을 이끄는 "들리움"이란 말 해석에서도 이와같은 견해를 표시하면서 말하기를, "예수님은 다시 여기서 신비(노시스 신비)의 술어로써 말씀하신다"라고 하였다(Johannes Evangelium, p. 330).
그러나 예수님의 돌리우심은, 노시스의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우주 전쟁을 통과하여 성립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신 구원사적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들리우심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아버지 하나님에게 순종하신 까닭에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사 부활 승천케 하신 것을 가리킨다.
3] 사람이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
예수께서는 또 자기를 진실히 믿고 따르는 자들에게 두 가지 복된 약속을 하신다.
하나는 그를 섬기는 자들이 그가 계신 곳 즉 천국에 함께 있을 것이라는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섬기는 자들은 장차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고난도 즐거이 참았다.
* 히 10: 34-35 –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35 그러므로 너희 담대함을 버리지 말라. 이것이 큰 상을 얻게 하느니라.
* 벧후 1: 10-11 –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다른 하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들을 귀히 여기실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셨고 우리를 불러 그를 믿고 섬기는 자가 되게 하셨지만, 우리가 그를 진실히 믿고 섬기며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더 기뻐하시고 더 사랑하시고 더 귀히 여기실 것이다.
* 요 14: 21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창조자, 섭리자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기뻐하시고 더 사랑하시고 더 귀히 여기신다면 이것보다 더 복된 일이 없다.
4] 한 알의 밀알 (요 12: 20-26)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자 많은 군중은 그의 입성으로 인하여 과연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하는 많은 기대를 가지고 예수님을 주목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당장에 어떤 변화를 바라는 군중들에게 아무런 흥미를 주지 못했다. 오히려 예수님은 그들이 상상하지도 못하는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실망하게 했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대하여 ‘호산나’를 외쳤던 그들의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버린 것이다.
(1) 밀알이 열매를 맺으려면
예수님은 그가 영광을 얻으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주님이 하신 말씀대로 주님은 하늘에 올라가셔야 할 분이셨다.
* 요 6: 62 -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예수님이 이처럼 영광을 얻으시는 길은 그의 죽으심의 고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 빌 2: 8-11 –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그의 죽으심의 고난만 바라보신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오는 말할 수 없는 영광도 바라보셨다.
* 히 12: 27 -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①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셨다.
주님의 이 말씀은 자연의 원리다. 밀이 씨앗으로 심겨지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밀이 심겨지는 일은 마치 그 자신의 생명을 죽이는 일과 같은 원리이다. 자신이 썩고 온전히 회생하기 때문이다.
② 예수님은 이 말씀은 하시고 즉시 그 해석을 하셨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라고 하신 것이다. 이 말씀은 두 가지 뜻이 함유되어 있습니다.
⒜ 이 말씀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한다.
여기서 자기 생명이라고 표현한 생명은 인간의 육신적인 생명을 말한다. 이 생명은 헬라어로 ‘프쉐’인데 이것은 혼으로써 자연적 생명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나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고 하신 생명은 ‘조에’로 이 생명은 주님께 받은 영원한 생명을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신적인 생명을 버리시는 일을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지는 것으로 비유하신 것이다.
⒝ 다른 뜻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참 생명을 얻는 생활 태도를 밝히신 말씀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은 바로 주님을 섬기는 생활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고 하셨다.
그런데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주님을 따르는 생활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생활인데 이런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신적인 생명을 버려야 한다고 하셨다.
⒞ 이 생활은 죄에 대하여 죽는 생활을 말한다.
* 롬 6: 11 -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런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육신의 일을 벗어버리고 영을 쫓는 생활을 말한다.
* 롬 8: 13-14 –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리스도인의 이런 생활은 지난날의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생활을 말한다.
(2) 주님을 섬기는 자의 축복
예수님은 “사람이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르라”라고 하셨다. 우리는 이 주님의 말씀을 우리의 신앙생활의 거울로 삼아야 한다.
주님을 섬긴다는 말과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같은 의미의 말이다. 그를 믿으면서 섬기기를 원치 않는다면 그 사람은 과연 믿음을 가진 사람인가?
성경은 주를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교훈해 주고 있다.
* 롬 12: 11 -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 롬 14: 18 -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① 예수님은 나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자도 거기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
주님이 계신 곳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 나라를 말씀한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라고 하셨다.
* 요 14: 2-3 –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이곳은 주님을 섬기는 모든 성도를 거하게 하실 충분한 장소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염려할 것이 없다. 이 세상에서는 거지로 살아왔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생활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나사로도 있다.
예루살렘 여인 중에 가장 미천하고 일곱 귀신이 들렸던 여인이었지만 주님을 섬기는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막달라 마리아도 있다.
② 예수님은 주님을 섬기는 이들에게 “내 아버지께서 그를 귀히 여기시리라”라고 하셨다.
귀히 여기신다는 말씀은 지극히 사랑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귀히 여기시는 그리스도인이야 말로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사람인가?
하나님께 귀히 여기심을 받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다. 주님을 성심을 다하여, 있는 정성을 다하여, 열심으로 섬기면 되는 일이다.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내 육신의 생명이 썩을 때 그때 비로소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며 하나님의 귀히 여기심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밀알이 땅에서 썩듯이 육신이 원하는 생활을 버리고 주님을 섬기는 생애를 보내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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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움켜쥔 행복은 씨앗이지만 나누는 행복은 꽃이고 열매라고 합니다.
오늘도 꽃피고 열매 맺는 행복한 하루 힘차게 만들어 가시길 기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