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침대에 들어가기 직전에 뉴스를 확인하는 것이다. 직업상 밤늦게까지 뉴스를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됐지만 이제는 더 긴장감 있게 뉴스를 보고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필자와 같을 것이다. 3일 일찍 잠이 든 사람들은 아침이 되어 계엄 소식을 듣고 얼마나 당황했을까. 필자는 2년 전 윤석열 정권의 반민주적 행태를 비판하는 칼럼에서 '깨어보면 후진국'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쓴 적이 있지만 하마터면 그것을 넘어 '깨어보면 독재국가'가 현실이 될 뻔했다.
고소득 국가가 되면 민주주의가 공고해진다는 게 정치학계의 통념이다. 지금까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를 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쿠데타나 계엄령 같은 헌정 중단 사태가 발생한 적은 없다. 두터운 중산층, 높은 수준의 부와 교육, 다각화된 민간 영역이 민주주의의 견고한 가드레일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6천 달러인 나라에서 만약 친위 쿠데타가 성공했다면 민주주의 이론을 다시 세워야 할 상황이었다. 그만큼 123 내란사태는 세계사적으로도 극히 드문 사건이다. 시민과 국회는 계엄령을 불과 153분 만에 해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빠른 회복력을 보여줬지만 사건 발생 자체가 한국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드러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민주주의에 전혀 맞지 않는 대통령 윤석열의 독재자 기질과 아내에 대한 유무를 따지지 않는 비호, 극우 유튜브 심취, 그리고 심각한 정치 양극화와 대결구도 등이 절정에 달하면서 폭발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대통령이 위헌 불법 비상계엄까지 감행한 것은 군과 권력기관이라는 조력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군과 경찰력의 조력을 받아 독재자가 되려는 망상에 빠진 것이다. 나라는 급속히 선진국이 됐고 시민들은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춰갔지만 군과 권력기관은 그렇지 못했다. 국가의 물리적 강제력을 독점한 군과 권력기관에는 여전히 독재의 잔재가 묻어 있었다.
이들이 친위 쿠데타를 주도하거나 가담한 가장 큰 동인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정권 최고의 배후였던 김영현 국방부 장관은 방첩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관, 특전사령관 등을 끌어들였다. 이들 장군들은 주권자인 국민보다 자신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과 김영현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내란을 기도한 점쟁이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인사를 미끼로 육사 출신 후배들을 유혹해 상당수를 구슬렸다. 과거 쿠데타는 늘 군 정보조직인 육사 카르텔이 진원지였다. (1961년) 516 쿠데타는 정보장교로 경험을 쌓은 박정희와 김종필 등이, (1979년) 1212 군사반란은 보안사 장교들(전두환 등)이 주도했다. 군과 권력기관의 정보망을 꿰고 있으니 국가권력도 찬탈할 수 있다는 유혹이 들었던 것이다. 이들은 이번에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을 자신들의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 구국의 일념 종북반국가세력 척결 부정선거 의혹 규명 등 온갖 명목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권력의 달콤한 꿀을 계속 빨아먹을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욕망이 문제다.
여당 국민의힘이 내란비호당을 스스로 사들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이 당은 대통령실과 운명공동체가 돼 가고 있다. 국민의힘 주류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같은 구멍의 오소리' 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고위 관료들도 일반 시민과 유리돼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듯하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도 내란의 지도자를 사실상 편들고 있어 내란 사태 장기화가 우려된다. 더 늦기 전에 국민 편에 서서 공직자로서 마지막 봉사를 하고 나서 정상 참작을 받기 바란다.
동서고금의 독재자들은 위기의 순간에도 음모를 꾸며 재기를 노렸다. 결코 스스로 물러나지 않는다. 윤석열 그는 절치부심하며 반전 공세의 기회를 엿보고 있다. 죄상이 만천하에 알려졌는데도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고 요소요소에 있는 비호세력을 선동하고 있다. 이런 정국의 혼돈 상태가 계속되면 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신속하고 질서 있는 탄핵과 대선을 통해 하루빨리 정국을 안정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그런 다음 차기 대통령과 국회가 중심이 돼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을 규명하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권력기구 간 억제와 균형, 그리고 투명성을 추진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무엇보다 잠재적 독재자를 대선후보군에서 사전에 배제하고 제왕적 대통령을 실질적으로 견제 감시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는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에게만 맡겨져 있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국민은 마음 놓고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