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시대·대진경교유행중국비 铁器时代 · 大秦景教流行中国碑
출처: 중국 고고학 소스 : 동북아역사문물연구원
▲ 대진경교(大秦景敎)는 중국 비문 탁본 당나라 비각을 유행시켰습니다. 건중 2년(781)에 세워졌습니다. 대진사 승려 경정술, 조정랑 전 행태주 사사 참군 여수암서. 비문은 중국에서 경교의 대중화를 칭송하며 당나라 경교 연구에 귀중한 자료입니다.
내일 계 5년(1625)에 출토되었으며 장소에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산시 盩厔(금주부터), 하나는 장안(금주 시안), 하나는 장안과 盩厔 사이입니다. 출토 후 시안푸청 서쪽의 진성사로 옮겨졌고, 1907년 비림(碑林)으로 옮겨졌습니다.
▲ 대진경교 유행 중국 비문 탁편비의 전체 높이는 약 2.80미터, 폭은 약 0.85미터입니다. 두께는 약 0.16m. 비석의 제목은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이며, 이마의 윗부분에는 연좌 위에 십자가가 새겨져 있습니다.
비석 뒷면에 글자가 없습니다. 정면 하단 및 좌·우측에는 시리아문과 한문으로 경교승 70명의 이름과 직함을 합각하였습니다. 전면의 비문은 32행, 62자이며 서문과 송의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서문에는 당나라 정관 9년(635) 대진나라 경교승 아라본에서 장안까지, 정관 12년에 장안 의령방에 대진사를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종 때 제주 치경교 사원에 준했습니다. 현종 때 영나라 등 오왕들을 시켜 경내에 단장을 만들고, 오성사진도 보내어 경내에 안치하게 하고, 경교승에게 흥경궁에 가서 공덕을 세우게 하여 현종과 함께 친히 사방을 쓰게 하였습니다.
▲ 대진 경교는 중국 비문 탁편(국지)이 유행하다 숙종 때 영무 등 5군에 경교 사원을 중립했습니다. 대종은 탄생일마다 경교승에게 향을 피우고 반찬을 내렸습니다.
덕종 때 경교승 이스(伊伊斯)가 삭방절도부사(朔方節度副使)로 있으면서 곽자의(郭子儀)를 도와 융마군(戎馬軍)에 참여하였고, 이스(伊伊斯)는 사원을 중수하여 경교를 발양하였습니다.
이 비석이 발견된 후 중국 학자들은 물론 외국 선교사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유럽에서는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연구 작업이 심화됨에 따라 그 학문적 가치는 점점 더 세상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이 비석을 밀반출하려다 실패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분류:고고 표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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