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annes Vermeer
회화의 기술 🇳🇱De schilderkunst
Johannes Vermeer (Jan Vermeer) 1632- 1675
The Art of Painting 1666 ~1668
120 x 100 cm
Kunsthistorisches Museum Wien
미술사학계에서는 이 작품이 '회화'의 알레고리로 해석하는 것이 정설이며,[2] 따라서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작품 속의 구성과 상징은 페르메이르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복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의 크기도 120 x 100cm에 달하여, 페르메이르의 역대 작품 가운데 《마르타와 마리아 집의 그리스도》, 《뚜쟁이》에 이어 가장 큰 작품이다.
《회화의 기술》은 페르메이르의 그림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1868년 지금의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재평가한 데 일조한 프랑스 미술평론가 테오필 토레뷔르제르는 이 작품이야말로 페르메이르의 제일 흥미로운 그림이라 여겼다. 또다른 미술평론가 스베틀라나 알페르스도 본 작품을 독특하고 야심찬 작품이라 평하였다.[3] :119 발터 리트케는 "페르메이르의 화실을 상상 속의 무대로 삼아, 본인의 거장다운 발상력과 실행력을 보여준다"고 하였으며,[4] 알베르트 블랑케르트는 "자연주의적 기법, 밝은 조명공간, 복잡한 구성의 통합에 있어 그 어떤 그림도 이에 필적하지 못한다"고 평했다.
페르메이르의 서명
《회화의 기술》은 어떤 화가가 자신의 화실에서 파란색 옷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여인을 화폭에 옮기는 장면을 담아냈다. 여인은 창가에 서 있고, 뒷편의 벽에는 거대한 네덜란드 지도가 내걸려 있다. 여인의 오른편에는 "I [Oannes] Ver. Meer"라는 서명이 적혀 있으나 연도는 적혀져 있지 않다.학계에서는 이 작품의 제작연대를 1665년~1668년경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지만, 일각에서는 그보다 늦은 1670년~1675년에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6]
1663년 프랑스 작가 발타자르 드 몽코니스가 페르메이르의 집을 방문할 당시, 페르메이르에게 당장 보여줄 수 있는 그림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따라서 이 그림은 페르메이르가 "본인의 화실에 자기 작품의 뛰어난 예시로 두고 보여주기 위해" 그렸을 것이란 추측이다.
페르메이르가 이 작품을 좋아했던 것은 확실해 보이며, 평생 동안 누구에게도 팔지 않았다고 한다. 이 점에서 알페르스는 이 작품이 "페르메이르 본인이 그려왔던 것을 집약하고 평가하는 그림에 해당된다"고 보았다.
작품 속 요소
작품 속 이젤 앞에 앉아 팔받침 막대를 쓰며 그림을 그려나가는 화가의 모습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화가와 모델, 이 두 명 뿐이다. 모델이 되는 여성은 시선을 아래에 두고 있고, 화가는 등을 돌리고 있다. 여기서 화가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본인을 묘사한 것으로 여겨졌으며, 모델로 서 있는 여성에 대해서는 장루이 보두아예르가 페르메이르의 딸이라는 설을 제기한 바 있다.[9] :172
화가는 이젤에 걸린 캔버스 앞에 앉아 붓과 팔받침용 막대를 오른손에 쥐고 있으며, 캔버스에는 여성의 머리장식 부분이 살짝 비춰지고 있다. 팔소매와 등쪽에 구멍을 낸 검정색의 우아한 겉옷을 입고 있으며 그 사이로 흰색 셔츠가 드러나고 있다. 바지는 짧고 푹신하며 주황색 스타킹을 신고 있는데, 동시대 루벤스의 자화상과 마찬가지로 다른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던 값비싸면서도 유행에 맞춘 옷차림이었다.
왼편의 근경에는 태피스트리와 의자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런 식으로 배치하여 원근감을 드러내고 시선을 이끄는 구도를 르푸수아르 (repoussoirs)라고 부른다. 또한 페르메이르의 다른 작품 《신앙의 알레고리》의 구도처럼 방 안의 천장이 보여지고 있다.
학계에서는 그림 속 여러 사물이 어떤 개념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우선 석고 마스크는 당대 학문간의 비교론이었던 파라고네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며,[10] 좌측 테이블에 놓인 천과 가죽 조각, 폴리오 (2절판 대형서)는 그 시대의 지식인이라면 갖춰야 할 자유과 (교양과목)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리석 타일의 바닥과 화려한 황금색 샹들리에의 표현은 페르메이르의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예시이자 작가 본인의 원근법 지식을 드러내고 있다. 각각의 사물은 빛을 다르게 반사하거나 흡수하여, 재료의 물성을 상당히 정확하게 구현하고 있다.
클라스 피스허르의 《레오 벨기쿠스》(1611년)[11]
특히 여인의 뒤에 내걸린 대형 지도는 명암 표현이 돋보이는 요소로서, 당시 네덜란드의 17주와 주요 도시 20곳의 전경이 펼쳐져 있이 지도는 실존하는 지도로서 1636년 네덜란드 지리학자 클라스 얀스존 피스허르가 제작하였으며, 야코프 오흐테르벨트와 니콜라스 마스의 그림 속에서도 좌우에 새겨진 도시 전망 그림을 제외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현재는 파리 국립도서관과 스웨덴 스코클로스터에 비슷한 지도가 소장되어 있다.
지도의 왼쪽 상단에는 두 명의 여성이 그려져 있는데, 하나는 직각기와 나침반을, 다른 하나는 팔레트와 붓, 도시의 전망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작품 속에 묘사된 샹들리에 윗쪽 쌍두수리 장식
회화의 기술, 또는 회화의 기술, 알레고리, 화실의 화가 는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가 그린 유화 작품이다. 1666년~1668년경에 그려졌으며, 현재 오스트리아 정부의 소유로서 빈 미술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화가는 아마도 이 대형 실내 공간에 제목을 붙였을 것입니다. 1663년과 1670년에 베르메르는 성 루카 예술가 길드의 회장을 지냈지만, 이 그림이 길드에 기증된 계획적인 선물, 즉 그 조직에 속한 예술과 직업을 우화적으로 묘사한 것이라면, 원래 소유주에게 선물된 적은 없습니다. 베르메르의 사유지 목록에는 '회화의 기술'이라는 항목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자신의 회화 예술에 대한 전문성을 과시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걷힌 커튼을 통해 왼쪽 창문 (사진에는 보이지 않음)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가득한 방이 보입니다. 뒷벽에는 네덜란드의 상세한 지도가 걸려 있습니다. 전경에는 의자 와 그 뒤편에 놓인 다양한 물건들로 덮인 테이블이 관람객의 시선을 가운데로 향하게 합니다. 화가는 관람객을 등지고 이젤에 앉아 있습니다. 그는 창가에 서 있는 소녀의 상반신 초상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회화는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테이블 위의 물건들은 조각(석고 모형), 미술 인쇄(책), 태피스트리 직조(직물)를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화가가 그리는 모델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여성 인물은 손에 트럼펫 과 책을 들고 있으며, 머리에 월계관을 쓰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녀는 역사의 뮤즈, 클리오입니다. 고전 미술 이론은 역사를 회화의 주요 소재로 여겼지만, 베르메르는 이러한 교리에 미묘하게 저항했습니다. 어쨌든 네덜란드 미술 시장에서는 이러한 교리가 거의 무의미했습니다. 그는 탁월한 회화적 주장으로 이러한 "열등한" 실내를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화가의 작품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 알레고리적 특성을 부여합니다. 회화적 요소, 시적인 고요함, 그리고 뛰어난 색채의 관능미의 완벽한 균형을 통해 화가는 극도의 우아함과 조화의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베르메르는 실내 공간을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적 도구를 사용했는데, 여기에는 현대 카메라의 선구자인 카메라옵스쿠라가 포함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