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1.3.연중 제31주간 수요일 로마13,8-10 루카14,25-33
제자의 길, 사랑의 길
- 춘풍추상春風秋霜 -
춘풍추상春風秋霜이란 뜻을 압니까? 오늘 복음 묵상중 새롭게 떠오른 말마디로 중국 명대의 홍자성의 채근담에 나오는 대인춘풍待人春風 지기추상持己秋霜을 줄인 사자성어입니다. 바로 ‘남을 대하기는 봄 바람처럼 너그럽고 따뜻하게 하고 자기를 지키기는 가을 서리처럼 엄정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은 물론 참 사람의 덕목으로 해도 손색이 없겠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과 성인들의 삶이 춘풍추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기대한 것도 춘풍추상의 사랑이었습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한없이 너그럽고 따뜻한 아가페 사랑이었고 자기를 지키는 데는 엄격하기가 칼같은 가을 서리 같이 철저하고 비타협적 엄격한 사랑이었습니다. 자기에게는 너그럽고 타인에게는 엄격한 ‘내로남불’의 소인의 자세와는 판이한 삶의 자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제시한 제자의 길은 얼마나 가을 서리처럼 엄격한지요!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자신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첫째,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제자의 길입니다.
문자 그대로 친지를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 사랑보다 앞세우지 말라는 것으로 사랑의 우선순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모두에 앞서 주님을 사랑할 때 가을 서리 추상처럼 엄격하게 자기를 지키며 이웃에는 봄바람처럼 너그럽고 따뜻한, 집착없는 깨끗하고 눈밝은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이 또한 가을 서리처럼 자기에게 엄정하고 철저한 자세로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무엇보다 자기 책임의 십자가, 자기 운명의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제 십자가를 짊어진 책임적 존재가 되어 주님 제자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얼마나 자기에게 가을 서리 추상같은 무소유의 요구인지요! 문자 그대로는 못살아도 이런 무소유의 정신을 마음에 새겨야 하겠습니다. 이런 모든 소유를 버릴 수 있음은 바로 주님 사랑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가을서리 추상같은 무아無我의 자유로운 제자의 삶이요, 봄바람 춘풍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아가페 이웃 사랑에 전적으로 투신할 수 있겠습니다.
춘풍추상의 사랑, 얼마나 멋지고 매력적인 주님의 제자다운 사랑인지요! 예수님과 그 제자들은 참으로 자기들에겐 가을 서리같인 엄정했지만 세상의 죄인, 약자들, 병자들, 빈자들에게는 봄바람처럼 한없이 부드럽고 따뜻한 연민의 실천적 사랑을 쏟았습니다. 온통 ‘말씀을 가르치시고’ ‘밥을 먹이시고’ ‘병을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신’ 자비행으로 가득한 삶이었습니다.
바로 춘풍추상 사랑의 전형적 모범이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입니다. 자기에게 한없이 엄격하고 철저한 가을 서리 같은 사랑이기에 이웃에 대해서는 이처럼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부드러운 아가페 사랑을 간곡히 권하는 바오로입니다.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모든 계명은 모두 이 한마디 곧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제자의 길은 바로 이런 사랑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자 분별의 잣대입니다. 사랑할 때 무죄입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하라”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과 일맥상통하는 바오로 사도의 “사랑은 모든 죄를 덮어준다.“라는 말입니다. 우선적인 순서는 추상의 사랑에 춘풍의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자기에게 가을서리처럼 엄격할 때 이웃에 봄바람같은 부드럽고 따뜻한 아가페 사랑을 쏟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참 멋진 제자들이 춘풍추상의 사람들입니다. 바로 추상춘풍의 사람 둘을 소개합니다. 6.25사변시 흥남부두 기적의 영웅 라루 선장으로 후에 뉴튼 수도원의 수도자가 된 마리너스 수사입니다. 1950년12월23일, 포탄이 빗발치는 흥남부두에서 60인승 미국 화물선의 배에 200배가 훨씬 넘는 14000명의 피난민을 태워 구한 마리너스 수사로, 훗날 가장 작은 배로 가장 많은 생명을 구한 배로 기네스북에 오릅니다. 훗날 그의 고백입니다.
“그날 우리 배의 키를 잡고 있는 것은 결코 제가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이 배의 키를 잡고 계셨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라루 선장, 아니 마리누스 수도자에 대한 저스틴 아빠스의 증언입니다.
“마리너스 수사는 참 조용한 사람이었습니다. 수도원에 와서 침묵과 기도의 삶을 살기 원했던 그는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자기가 전쟁에서 겪었던 일에 대해서도 거의 얘기 하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제자다운, 자기에게 추상같이 엄정한 마리너스 수사의 겸손한 모습이 참 감동적입니다. 또 한분의 주님의 제자다운 추상춘풍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조선시대 중종임금시 38세에 임금이 내린 사약을 받고 억울하게 죽은 만고의 충신 조광조입니다. 요즘 참 감명깊게 읽은 조광조 평전입니다. 당대는 물론 조선 최고의 유학자인 이황과 이이가 존숭했던 조광조로 이황은 행장을 썼고 이이는 묘비명을 썼습니다. 어린 선조임금이 스승 이황에게 조광조가 어떤 사람인가 묻자 이황의 대답입니다.
“조광조는 훌륭하고 어진 선비입니다. 타고난 자질이 뛰어나게 아름다웠으며, 그 독실한 학문과 힘써 실천함은 비교할 사람이 없습니다. 도를 실천하고 인심을 맑게 하여 세상을 요순의 시대로, 임금을 요순처럼 만들고자 했는데 불행하게도 소인들의 참소와 이간질로 인해 참혹한 죄를 받았습니다.”
이이, 이율곡의 조광조에 평입니다.
“공으로 말미암아 성리학이 숭상할 만하며, 왕도王道를 귀하게 여길 만하고 패도霸道를 천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후세 사람들이 태산과 북두같이 우러르고 국가에서 표창함이 갈수록 융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조광조가 사약을 받기전 그의 임종시와 유언입니다.
“임금 사랑하기를 아버지 사랑하듯(愛君如愛父).
나라 근심하기를 내 집처럼 하였노라(憂國如憂家).
밝은 해 이 땅을 굽어보고 있으니(白日臨下土),
훤하게 이 충심 비추어주리라(昭昭照丹衷).”
주님의 제자되기에 손색없는, 순교에 버금가는 사랑의 죽음입니다. 이어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죽거든 관을 두껍지 않게 얇게 만들라. 먼 길을 가기 어렵다.” 하였고, 거듭 내려서 독하게 만든 술을 가져다가 많이 마시고 죽으니,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다 눈물을 흘렸다 합니다.
추상춘풍, 참 아름다운 현대판 주님의 제자가 뉴튼수도원의 마리너스 수사이고, 주님의 익명의 제자가 조선시대 최고의 성리학자이자 충신인 조광조입니다. 주님의 눈에는 두분 다 성인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추상춘풍의 멋지고 아름다운 당신 제자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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