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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espn.com/nba/story/_/id/45747447/joel-embiid-philadelphia-76ers-star-sees-you
(장문 주의)
이번 오프시즌 7월 ESPN 기사입니다. (초장문입니다.)
프로 데뷔 이전부터 엠비드에 대한 이야기들, 짧게 기사로 보던 루머에 대한 엠비드의 의견 등이 포함된 장문 기사입니다.
기사를 읽고 난 후에 판단은 각자에게 맡기고, 읽기 전에는 엠비드에 대한 호불호를 내려 놓아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데는 몇 달이 걸렸다. 엠비드가 뛸지, 안 뛸지, 그리고 이 한때 엄청난 기대를 받았던 시즌에 대해 그가 어떤 말을 할지, 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을지 기다린 몇 달이었다.
우리는 그의 피아노 방에 있다. 엠비드는 긴 몸을 소파에 기대고 있다. 그가 몸을 기대기 전에는 널찍해 보였던 소파가 이제는 좁아 보인다.
그는 줄무늬 반바지와 캠프 칼라 셔츠가 맞춰진 셋업을 입고 있다. 그의 아들 아서가 복도에서 얼굴을 내밀어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엿본다. 그의 아내 앤 드 파울라는 위층에서 그날 밤 생일 파티 준비를 하고 있다. 식당에는 장식이 놓이고 있다. 3월 말, 그의 무릎 수술 예정일로부터 9일 전. 이 수술은 아마 엠비드의 농구 운명을 결정지을지도 모른다.
그는 예전에는 인터뷰를 즐겼다. NBA에서 데뷔 경기를 뛰기 전, 2014년과 2015년 여름 동안 오른발 수술로 2년 가까이 재활을 하면서, 그는 재치 넘치고 솔직한 이야기꾼으로 미디어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지난 1년은 달랐다. 요즘 그는 조심스럽다. 그리고 살짝 산만하다. 그의 휴대폰 화면에서는 필리스 경기 중계가 재생되고 있다. 혹시 그는 예의 바르게 나를 돌려보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동안 가벼운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는 지루해 보인다.
그는 새로운 사람에게 이렇게 한다 — 자신의 모습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겉으로는 관심 없어 보이지만, 속으로는 상대를 관찰하며 가늠한다.
내가 묻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얘기를 시작할 수 있을지. 그는 동의한다.
엠비드가 지금 이 인터뷰를 거절할 이유는 많다. 그는 자기 설명이 곧 자기 방어로 왜곡되고, 그 방어는 불평으로 희화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라 — 둘째 딸이 곧 태어난다. 그의 부모는 잘 돌봐지고 있다. 가족은 몇 세대에 걸쳐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다. 그는 카메룬에서는 영감의 상징이다.
우리는 필라델피아 교외의 완만한 언덕 위에 자리한 그의 큰 석조 저택 안에 있다. 11개의 욕실 중 적어도 한 곳의 손수건에는 그의 이니셜이 새겨져 있다. 무슨 불만이 더 필요하겠는가?
“농구 선수로서 어떻게 기억될지는 신경 쓰지만, 사람으로서 어떻게 보이느냐는 신경 쓰지 않아요.” 엠비드가 말한다. “사람으로서의 나는, 누구도 함부로 말할 수 없는 존재예요.”
우리는 서로 몇 피트 떨어져 앉아 있지만, 나는 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거대한 체구와 대비되는 작고 속삭이듯한 목소리. 이건 아주 소수만이 알고 있는 내면의 엠비드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철저하게 보호한다. 거의 편집증적으로. 그들은 엠비드가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를 그대로 본다. 사방에 둘러싸여 있다고 느끼는 사람. 그렇기에 그들은 그를 그의 방식대로 사랑한다.
“그의 신뢰를 얻는다는 건 거의 중독적이야.” 한 친구가 말한다. “마치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장벽을 네가 통과한 것 같거든.”
그래서 나는 바로 묻는다. “당신은 누구를 믿나요?”
“흠.” 엠비드는 말없이 몇 초를 보낸다. “음… 그러니까…”
그는 나를 바라본다. 그의 시선에는 이런 질문이 담겨 있다.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난 친구가 많은 타입이 아니었어요.” 그가 결국 말한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조차, 나는 깊은 얘기를 잘 하지 않아요.”
“왜죠?” 내가 묻는다.
“조용한 집이었거든요. 아버지는 굉장히 조용했고, 어머니도 조용했고… 아주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마음껏 털어놓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그는 내가 이해하리라 기대한다. 우리는 서로 같은 지역 출신이다. 서아프리카와 중앙아프리카의 인접 국가 출신. 우리는 짧은 디아스포라 기억을 공유한다. 체벌. 엄격한 아버지. 그에 맞설 수 있는 강한 어머니.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는 것:
“그들이 날 사랑한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이리 와, 안아줄게’ 같은 사랑은 아니죠. 그런 건 없었어요. 난 그런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들을 변호해야 한다는 감정:
“그 방식으로 자랐기 때문에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것도 사실이에요.”
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감정:
“하지만 나는 내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어쩌면 우리가 같은 배경을 공유해서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난 가을 그는 처음으로 치료(therapy)를 시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난 6개월 동안, 농구라는 중력이 사라진 공허 속에서 — 팬들은 등을 돌릴 준비를 하고, 76ers와의 관계는 균열되고, 그의 전성기는 잃어 가고, 31세의 시즌은 허무하게 사라지고 — 이제 그는 말할 준비가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모두가 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미완의 우승 여정에 대한 책임을 묻는 서사.
심지어 경력에 대한 조기 부고까지.
《더 링거》는 부상 기록을 이유로 2023년 MVP였던 엠비드를 NBA 84위로 평가했다.
《블리처 리포트》는 그를 역대 66위에 놓았다.
2024년 2월 반월판 수술 이후, 엠비드는 2024-25 시즌을 부상 회복과 통증 속에서 보냈다. 고작 19경기. 그리고 그 중에서도 온전히 그 같았던 순간은 극히 적었다.
지금은 그의 표현대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오프시즌” 이다.
그는 다시 몸을 만들고 있다.
마지막 정점으로 도약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게 정말 끝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다면, 조엘 엠비드란 무엇이었는가?
그는 종종 오해받았다.
그의 책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는 지배적이었고, 때로는 쓰러져 있었고, 그 때문에 미움도 받았다.
그의 가장 깊은 슬픔조차 공격의 소재가 되었다.
그의 루키 시즌이 시작될 즈음, 13살 동생 아서가 트럭에 치여 사망했다.
그날 엠비드는 울리는 전화들을 무시했다.
전화를 받았을 때, 전해진 건 끔찍한 소식이었다.
지금도 전화벨은 그에게 섬광 같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 죽었을까 하는 두려움.
그래서 그는 전화를 거의 받지 않는다. 알림은 꺼두고 산다.
그에게 연락이 닿으려면, 그의 비서나 아내에게 연락해야 한다.
그의 답장은 몇 달이 걸릴 수도 있다.
“난 답장을 잘 안 하는 걸로 유명해요.” 엠비드는 말한다. 그는 지금 휴대폰에 읽지 않은 문자 10,000개가 있다고 덧붙인다.
“농담이죠?” 내가 묻는다.
그는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준다.
읽지 않은 문자 9,500개 이상.
부재중 전화 875통.
“그냥… 못 하겠어요.” 그는 등을 기대며 말한다.
내가 묻는다.
“당신 주변에서 가장 짜증나는 것이 무엇인가요?”
“다요.” 그가 말한다.
엠비드는 다리를 쭉 뻗으며 점점 편안해지고 있었다. 나는 일부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면서도 장난스럽게 그를 ‘엿 같은 놈(a--hole)’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난 장난치는 걸 좋아해요.” 그가 말한다. “내가 엿 같은 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인정한다.
“가끔은… 내가 그런 놈일 수 있죠.”
내가 처음 엠비드를 만난 건 지난해 말 시카고였다. 그는 왼쪽 무릎 문제로 7경기를 결장한 뒤 돌아온 상태였다. 유나이티드 센터 원정 라커룸은 가벼운 농담과 분위기 좋은 농담으로 가득했다. 승리 분위기였다. 식서스 베테랑 가드 카일 라우리의 주문으로 시카고 명물 해럴드 치킨에서 치킨 윙이 네 트레이나 배달됐다.
엠비드는 경기 초반 부진했지만, 8점 차 승리 속에서 결국 그답게 플레이했다. 유연하고 파괴적인 존재.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의 층을 겹겹이 얹은 혼종의 플레이 메이커. 그날 그가 했던 것처럼, 로우 포스트에서 상대를 밀어붙이는 괴력형 빅맨에서, 미드 포스트에서 회전하며 페이드어웨이를 날리는 장인으로, 그리고 엘보와 네일에서 흔들림 없는 점퍼를 올라 쏘는 metronome 같은 슈터로 변모하는 과정. 코트를 읽는 그의 사고. 필름 스터디와 훈련과 끝없는 노력이 보인다. 이것은 재능이 스스로를 다듬고 또 다듬는 과정이다.
그는 2쿼터에서 혼자서 시카고 팀 전체보다 더 많은 득점을 올렸다.
하지만 그의 공격보다도 더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2쿼터 후반에 당시 불스 가드였던 잭 라빈을 상대로 한 수비였다. 라빈은 스크린을 타고 엠비드를 향해 속도를 붙여 돌파했고, 왼쪽으로 꺾어 엠비드의 균형을 흔들었다.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동시에 천천히, 그리고 번개처럼 빠르게 일어났다. 엠비드는 한 바퀴 돌며 잠시 등을 라빈에게 보였다. NBA 선수가 99% 이 상황에서는 라빈의 공격이 성공한다. 하지만 엠비드는 회전을 마치고 라빈과 림 사이를 차지했다. 두 선수는 동시에 점프했고, 엠비드의 체중 이동은 뒤로 기울어진 상태에서, 높은 손을 뻗어 라빈의 확실해 보였던 덩크를 컨테스트된 실패로 바꾸었다.
이건 어떤 감독도 가르칠 수 없다. 어떤 훈련도 준비시킬 수 없다. 엠비드가 최고조에 있을 때는 비교 대상이 없다.
니콜라 요키치나 루카 돈치치, 샤이 길저스-알렉산더조차도, 아무리 공격적으로 뛰어나도, 수비의 페인트 존을 블랙홀로 만들어버리는 능력은 없다.
야니스 아데토쿤보나 앤서니 데이비스도, 아무리 다재다능해도, 순전한 점프슛의 도취 상태로 올라가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한다.
라커룸에서 느껴졌다.
엠비드가 건강하게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다면, 이 팀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때는 12월 초, 아직 희망이 살아 있던 시기였다.
엠비드는 해럴드 치킨을 바라보더니 윙 하나를 집고 자신의 라커로 걸어갔다. 잠시 뒤 그는 미디어 스크럼 앞에 섰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0/7로 시작하고도 경기 리듬을 찾았느냐고 물었다.
평소 경기 후 답변처럼 건조했다.
“운이 좋았고, 슛이 들어갔어요.” 엠비드가 말했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물었다.
“진짜로 운이라고 느껴지나요?”
“네, 운이에요.”
나는 그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그의 표정은 지루함을 가장한 듯 얼어 있었다. 그 표정은 잠시 긴장감 있게 유지되다가, 입가에 미세한 미소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이게 바로 전형적인 조엘 엠비드 모습이다.
그는 당신이 얼마나 허세가 있는지, 당신이 그가 얼마나 허세인지 파악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관찰하며 결정한다.
캔자스대 1학년 시절, 엠비드는 가끔 영어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척했다.
그는 카메룬에서 자랄 때, 성인식처럼 혼자 정글에 들어가 사자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지어내곤 했다.
“사람들이 그걸 진짜로 믿었어요.” 그의 대학 감독 빌 셀프가 회상한다.
“그는 재미로 많은 걸 했지만, 자신의 진짜 감정을 표현하는 데는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죠.”
농담은 숨을 곳이었다.
그는 자신이 ‘알려지는 것’ 대신 ‘영리해 보이는 사람으로 알려지는 것’으로 버텼다.
시카고 라커룸의 그를 보며, 나는 그가 대학 시절 팀 동료들의 순진함을 속으로 웃었을 모습이 떠올랐다. 그날 한 기자가 그에게 이 경기를 위해 얼마나 열심히 재활했는지를 물었다.
“트러스트 더 프로세스(Trust the process).”
76ers의 탱킹 전략에서 비롯된 그의 별명에 대한 인용이었다.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하지만 냉담함은 그에게 잘 맞지 않는다. 그는 상처를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대답을 길게 하면, 사람들이 내 말을 왜곡하려 해요.”
엠비드는 몇몇 팀 동료들에게 몸을 돌리며 말했다.
“좋은 대답! 좋은 대답!”
타이리스 맥시는 라커에서 외쳤다.
그 시점은 꽤 충격적인 미디어 사이클 직후였다.
10월 말, 한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 기자가 엠비드의 아들과 사망한 동생을 언급하며, 그의 몸 관리 부족과 프로 의식 부족을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
칼럼은, 엠비드가 ‘동생을 위해 뛴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태도 사이에 괴리가 있다고 암시했다.
며칠 뒤, 엠비드는 공개적으로 반응했다.
“나는 이 도시를 위해 내 몸을 걸고 너무 많은 걸 해왔다.
이 X같은 도시에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니.”
다음 날, 그 칼럼니스트가 라커룸에 나타났다. 두 사람은 마주 섰다.
“다음에 내 죽은 동생과 아들 이야기를 또 꺼내면, 내가 뭘 하는지 보게 될 거야.”
엠비드는 말했다.
말다툼은 엠비드가 기자를 밀치는 순간 종료되었고, 구단 직원들이 사이에 섰다.
NBA는 엠비드에게 무보수로 3경기 징계를 내렸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그 칼럼은 그를 갉아먹는다.
“NBA가 나에게 벌금을 백만, 이백만, 오백만, 천만을 매겨도 상관없어요.”
엠비드는 말한다.
“그가 그때처럼 내 앞에 와 있으면, 난 또 밀칠 거예요.”
엠비드는 2011년 농구를 위해 카메룬을 떠난 자신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다.
아서가 죽은 날, 그의 에이전트였던 프랑수아 냠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엠비드가 울음을 토하고 처음 말한 문장은:
“그건 내 잘못이야. 난 형편없는 놈이야.”
2014년 드래프트 날, 가족이 함께 있을 예정이었지만, 엠비드는 첫 발 수술 후 의사가 비행을 금지했다. 그는 LA에 머물렀고, 아서는 미국 동부에서 지내다 카메룬으로 돌아갔다. 사고는 약 4개월 후에 일어났다. 형제는 3년 동안 만나지 못한 상태였다.
“그건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엠비드는 거의 속삭이듯 말한다.
“난 여전히 느껴요.”
감상적인 여정을 떠나보자. 어린 조엘 엠비드는 2009년 코비 브라이언트가 네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보고 농구에 반한다. 16살에야 본격적으로 농구를 시작한다. 2011년 7월, 그는 카메룬 수도 야운데에서 열린 캠프에서 발견된다. 두 달 후 가족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온다.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은 재능이지만 빠르게 성장한다. 여러 명문 대학들의 관심을 받고, 결국 캔자스의 ‘Late Night in the Phog’를 직접 본 뒤 캔자스를 선택한다. 그리고 2014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3순위로 NBA에 입성한다. 이후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다.
이건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큰 단절과 외로움이 숨어 있다. 그는 당시 현역 NBA 선수이자 같은 카메룬 출신인 루크 음바 아 무테와 후원자 냠의 도움으로 올랜도 서쪽의 몬트버드 아카데미로 왔다. 하지만 첫 해에는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이후 그는 다시 게인스빌의 더 록 스쿨로 옮겨야 했다.
더 록에서 새 코치의 도움으로 그는 홈스테이 가정에 머물게 되었다. 그 집의 마시 한센이 처음 본 18살의 엠비드는 거의 7피트에 육박하는 키를 하고 있었고, 딸이 쓰던 작은 침대에서는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할 것 같아 보였다.
엠비드의 억양은 강했고 영어는 서툴렀다. 누군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면, “플로리다”라는 대답 정도가 전부였다. 한센은 그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금방 눈치챘다. 그는 부모님과 통화할 때는 괜찮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는 깊은 침묵 속으로 잠겨들곤 했다.
엠비드 안에는 늘 설명하기 어려운 외로움 같은 게 있었다. 가장 또렷한 어린 시절의 기억 중 하나는 형제들과 함께 프랑스로 가족 여행을 갔던 일이다. 모두가 밖에 나가 구경을 즐길 때, 그는 고집을 부리며 이모의 아파트 안에 틀어박혀 비디오게임만 했다. 이후 가족들은 프랑스 여행에 그를 데려가지 않았고, 형제들만 데려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크게 달라진 게 없어요.”
한센은 어떻게든 그와 소통하려 했다. 초콜릿칩 쿠키를 만들어주고, 점심으로 중국 음식을 사다 주고, 아들이 농구를 통해 엠비드와 친해지길 바랐다. 하지만 엠비드는 마음을 열지 않았다.
“나한텐 모든 게 어색했어요.” 엠비드는 회상한다. “그 집에 갔을 때 처음 본 것 중 하나가 총들이었어요.”
한센의 남편은 군 복무를 했고 사냥을 즐겼다. 엠비드의 아버지도 카메룬 군 장교였지만, 엠비드는 사람들이 집에 그렇게 많은 총을 두고 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 누구도 내 시각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어요. 내가 왜 방에만 있고 문을 잠그려 했는지… 솔직히 좀 무서웠어요.”
농구도 위로가 되어주지 않았다. 팀 동료들과도 거의 교류하지 않았다. 그는 그들과 거리를 두었고, 동료들은 그대로 받아들였다. 엠비드는 코치에게 차라리 몬트버드 기숙사가 나았다고 말했다. 그곳에서는 자신처럼 영어가 서툰 다른 외국 선수와 함께 지냈기 때문이다.
“1년 안에 전혀 다른 세계로 던져지고 또 다른 세계로 다시 던져진 셈이었죠.” 한센은 말한다.
이후 엠비드는 더 록의 다른 코치 집으로 옮겨 살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 시기의 엠비드를 명랑하고 장난기 있고, 방에 있던 큰 존재감, 그리고 무심한 듯하다가 갑자기 날카로운 한마디를 던지는 소년으로 기억한다. 다들 그를 좋아했고, 그를 그리워했고, 멀리서 응원했다.
하지만 엠비드 자신은 늘 모든 것을 의심했다. 자신의 농구 실력조차.
“조엘은 자신이 D-I 레벨(최상위 NCAA) 선수라는 걸 몰랐어요.” 더 록 teammate 프레디 비톤도는 말한다. “난 늘 ‘넌 지금 연습에서 우리 다 박살내고 있는데 말이 되냐’라고 했었죠.”
캔자스에 도착했을 때, 엠비드는 자신이 5년은 학교에 다니며 1년차는 쉬면서 성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빌 셀프 감독은 그에게 말했다. “넌 내가 가르친 선수 중 최고가 될 거야.”
2014년 봄, 신입생 시즌이 끝났을 때 그는 이미 드래프트 전체 1순위 후보였다. 엠비드는 셀프 코치를 찾아가 말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고. 건강한 식단도 몰랐고, 운전도 못했다.
“사실은 잔류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속으로 생각했죠. ‘난 이걸 받을 자격이 없어. 평균 11점 밖에 못 넣었잖아.’ 농구 자체를 잘 몰랐어요.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고요.”
하지만 그의 아버지, 음바 아 무테, 그리고 냠은 이제 NBA로 갈 때라고 말했다. 그는 짐을 싸서 LA의 에이전트 저택으로 옮겼다.
그곳에서 첫 발목뼈 수술을 회복하던 시절, 어느 날 밤 집에 돌아왔을 때 보안 비밀번호를 몰랐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한창 회복해야 할 오른발에 깁스를 한 채 펜스를 넘어 들어갔다. 그리고 경보가 울렸다.
그때 그는 몬트버드 JV 팀에서 리바운드 받아 단독 속공에 나섰다가 백보드를 지나 밖으로 튀어버리던 소년에서 겨우 3년이 지난 상태였다. 그의 삶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속도로 가속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만들어낸 ‘조엘 엠비드’라는 이야기 속으로.
“난 내가 얼마나 잘하는지 몰랐어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나는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저 말을 믿어야 하나?” 엠비드는 말한다.
아담 실버가 2014년 NBA 드래프트에서 엠비드를 전체 3순위로 호명하는 순간, ESPN 화면에는 카메라를 멍하니 바라보는 엠비드의 모습이 잡혔다.
“혼란스러워 보이네요. 조엘에게 커피 좀 줘요.” 당시 ESPN에서 해설을 하던 빌 시몬스가 말했다.
이후 엠비드는 그 장면이 지연된 영상이었고, 실제 반응은 주먹을 불끈 쥐고 웃는 모습이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는 아직도 그 시간의 지연을 온전히 따라잡지 못한 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엠비드와 필라델피아는 그의 발이 회복되기까지 2년을 기다렸다. 그 기간 동안 그는 재활과 영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리그에서 보낸 세 번째 해(하지만 코트에서는 첫 시즌)는 지금도 문제를 일으키는 왼쪽 무릎의 반월상연골 파열로 조기 종료됐다. 시즌 중단 판정이 난 지 몇 주 뒤, 그는 믹 밀 콘서트 무대 위에 올라가 셔츠를 벗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춤을 췄다. 당시 구단 운영 책임자였던 브라이언 콜란젤로는 공개적으로 엠비드를 질책했다. 엠비드가 “이미지 상의 선을 넘었다”고 했다.
다음 시즌, 2017-18 시즌에는 경기 전에 트레이너가 발 마사지를 해주는 동안 코트 사이드에서 햄버거를 먹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렇게 엠비드를 둘러싼 초창기 내러티브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조엘은 게으르다. 신경을 안 쓴다.
“지금도 사람들은 내가 2년 차, 3년 차 때 했던 어리석은 행동들을 계속 얘기해요.” 엠비드는 말한다. “하지만 나는 16살 때 농구를 시작했어요. 게으르게 해서 이 자리에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선수들보다 훨씬 늦게 출발했고, 그래서 엄청난 속도로 배워야 했어요. 새로운 나라에 와서 언어도 모르고, 문화도 다르고, 혼자서 버텨야 했어요. 이걸 해내려면 집중하지 않으면 절대 안 돼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오해받는 데 있어서 네 책임도 있는가?’
“미디어가 만들어낸 모든 내러티브를 살펴봐요.” 엠비드가 말했다. “난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래서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라.”
그는 장난처럼 말했다. 나는 그가 곧 웃을 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러티브를 봐봐.”
조엘은 변명한다.
“그건 변명이 아니야. 매년 부상을 당했고, 그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야.” 그가 말한다. “내가 100% 건강하면 우승을 노릴 실력이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믿는다고 생각해. 난 건강할 때 정규 시즌에서 그걸 보여줬어.”
그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만약 내가 이렇게 했다 치자. ‘그래, 올 시즌 그냥 편하게 가고 25점만 넣을래. 아니면 20점.’ 그리고 플레이오프에서 30점 넣는 거야. 그러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와, 플레이오프에서 기어올랐네. 조엘 조던.’ 이런 식으로.”
“예전에 브루클린과의 시리즈가 완벽한 예야. 상대는 나한테 더블팀을 계속 했어. 하프코트에서도, 공만 잡으면 바로. 난 괜찮았어. 패스 돌리고, 팀이 슛 넣고, 그리고 이겼거든. 근데 그게 뭐를 깎았을까? 내 스탯이지.
그러니까 그런 내러티브가 있다면, 난 괜찮아. 왜냐면 내가 뭘 겪고 있는지, 내 몸 상태가 어떤지, 아무도 내 몸 안에 들어올 수 없잖아.”
“또 뭐가 있는데?” 그가 묻는다.
조엘은 개인 상에 집착한다.
“누구든 MVP를 노릴 수 있는 위치에 오면, 당연히 노리게 돼. 나는 내가 이 위치까지 올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 처음 리그에 들어왔을 때는 ‘수비만 잘하는 좋은 빅맨’ 정도가 목표였다고.”
그의 시선은 다시 플레이오프 쪽으로 향한다. 짜증이 배어 있다.
“사람들은 마치 정규 시즌에 더 열심히 하고 플레이오프에선 덜 하는 것처럼 얘기해. 말이 안 되지. 플레이오프가 되면 출전 시간도 더 늘고, 더 강하게 뛰고, 양쪽 코트에서 더 많은 걸 해야 하는데.”
그는 자신의 플레이오프 +/– 수치가 위대한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스스로 말한다. “이거 드류(한렌)가 하는 말 같네. 걔는 통화 시작 13분 만에 내 플레이오프 스탯 링크부터 보내거든.”
“하나 더 있을까?” 내가 묻자,
“응. 듣고 싶어.” 그가 말했다.
조엘은 재능은 있지만, 팀을 이끌 ‘비물질적인 무언가’가 없다.
“누구도 해내기 전엔 우승자가 아니야. 그건 괜찮아. 난 아직 해내지 못했으니까. 찰스 바클리는 위대한 선수였지. 근데 우승은 못 했어. AI도 마찬가지. … 그렇다고 그들이 위대하지 않았던 건 아니잖아. 그들은 엄청났어.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리드하는 거야. 난 코트에서 리드해.”
엠비드가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은 성장하고 배워. 지금 내 팀 동료들에게 물어봐. 몇 년 전 팀 동료들이 기억하는 나와는 완전히 다를 거야. 몇 년 전 나는 팀에 거의 없던 사람이었어.”
“왜?” 내가 묻는다.
“모르겠어.” 그는 잠시 비판과 논쟁에서 벗어나 자기 안을 들여다본다. “내가 자라온 방식 때문인 것 같아. 외롭다고 말하고 싶진 않지만… 미국에 왔을 때, 나는 혼자였어. 그래서 난 항상 내 스스로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가르쳐왔어.”
2014년 여름 무렵, 76ers는 당시 단장 샘 힌키가 추진하던 ‘프로세스’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때까지 힌키가 얻어낸 성과라고는 부상으로 결장 중인 빅맨(널렌스 노엘)과 슛이 안 되는 한계 때문에 곧 트레이드될 신인왕(마이클 카터-윌리엄스) 정도였다.
엠비드는 그해 가을 필라델피아에 왔지만 이미 오른발 주상골 수술로 2014-15 시즌 전체 결장이 확정된 상태였다. 20살에 구세주처럼 기대를 받았으나, 그와 팀 전체를 둘러싼 불확실성은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압박감을 피하듯 장난꾸러기 역할에 몰입했다. 소셜 미디어에서 유쾌하게 놀았고, 리한나와의 일방적인 ‘썸’ 콘셉트로 트위터에서 화제를 만들었으며, Vice Sports와의 영상에서는 자신이 대용량 셜리 템플을 마신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들을 과장스럽게 연출했다.
플로리다와 캔자스에서 그를 지도했던 옛 코치들은 그런 엠비드를 거의 알아보지 못했다. 캔자스 감독 빌 셀프는 말한다. “나는 그가 자신에게 모든 시선이 쏠리는 걸 원하거나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속으로 ‘조, 도대체 뭐 하는 거야? 그냥 조용히 하고, SNS 좀 그만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서 엠비드는 무너지고 있었다. 그는 동생을 잃은 슬픔에 짓눌린 채 필라델피아 도심 리츠칼튼 호텔에서 혼자 지내고 있었다. 마치 오래 머물지 않을 것처럼. 그는 비디오 게임을 하고, 몸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았다. 발은 낫지 않았고, 농구도 할 수 없었다. 몸무게는 거의 300파운드까지 늘었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는 농구를 그만두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었다.” 한 친구는 그렇게 말한다.
그와 76ers의 관계도 틀어졌다. 엠비드는 자신의 부상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느꼈지만, 구단은 그것을 ‘게으름’으로 치부했다고 복수의 관계자들은 전했다. 엠비드는 좌절한 나머지 재활과 훈련에 나가지 않기 시작했고, 팀과의 소통도 끊었다.
“내가 일부러 나쁜 놈이 되어야 했어.” 엠비드는 말한다. “그들이 나한테 뭘 하라고 하면, 그냥 ‘안 해’라고 했지.”
76ers는 대응 방법을 찾지 못한 채 계속해서 그에게 벌금을 부과했다. 엠비드는 그 해 벌금이 30만 달러에 이르렀을 때부터는 더 이상 금액을 세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도 그럴 가치가 있었어. 내 말을 안 듣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난 내 몸을 위험에 계속 내맡기고 싶지 않았어.”
한편, 힌키는 엠비드를 중심으로 구단의 건강·퍼포먼스 시스템을 현대화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엠비드가 처음 팀에 왔을 때 그의 재활을 맡았던 사람은 인턴이었다.
힌키는 21년 동안 호주 스포츠 과학 연구소에서 일한 데이비드 마틴을 영입했다. 이후 1년 동안 마틴은 힌키에게 월 단위로 아주 까다로운 질문 이메일을 받았다. 그 중 하나가 잊히지 않았다고 한다. “주상골 부상을 가진 7피트 선수의 재활 팀과 치료 계획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들의 첫 미팅 중 하나에서, 힌키는 큰 네모를 그리고 그 안에 90% 정도를 차지하는 작은 네모를 그렸다. 큰 네모는 마틴이 써야 할 전체 시간, 작은 네모는 엠비드 회복에 써야 할 시간이었다. 힌키는 엠비드의 사이즈·기술·재능의 조합이 얼마나 희귀한지 강조했다. 마틴은 특수부대와 투르 드 프랑스 우승자를 상대해본 경험이 있었지만, 바로 그 순간 자신의 경력의 정점이 여기일 수도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2015년 6월, 힌키와 마틴은 엠비드와 그의 발 수술을 집도한 리처드 페르켈 박사를 만나기 위해 LA로 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발이 아직 낫지 않은 상태였다. 엠비드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마틴은 그 자리에서 거의 낯선 존재였고, 엠비드가 자신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정말 날카로운 눈빛이 있어요. ‘헛소리는 하지 마’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이죠.” 마틴은 회상한다.
엠비드는 실망과 동시에 일종의 정당함을 느꼈다. 자신의 말이 맞았고, 팀 내부에서 자신을 의심하던 사람들은 틀렸다. 발에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통증을 핑계로 삼은 것이 아니었고, 게으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얻어진 ‘승리’는 또 다른 마음의 굴레를 만들었다.
엠비드의 머릿속에는 모호하지만 강력한 ‘그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외면했던 사람들 — 코치, 프런트, 의료진. 그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이 아프든 말든 상관없이 자신에게 뛰라고 했다고 느꼈다. 자신을 뽑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든, 뽑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든. 티켓을 팔기 위해서든, 팔기 위해서가 아니든. 엠비드 입장에서, 그들은 자신의 경력이 18개월이 되든 18년이 되든 상관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래서 ‘충성’은 그의 삶에서 극도로 중요한 가치가 되었고, 동시에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시험하는 방식은 그가 조직 내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었다. 그는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를 만들며, 주변 사람을 붙이고 또 떼어내기 시작했다.
마틴은 자신이 엠비드를 절대 버리지 않을 사람임을 증명하기 위해 종종 원정 대신 필라델피아에 남아 엠비드와 함께했다. 어느 날, 마틴은 엠비드의 아파트 테이블 위에 20달러짜리 지폐 뭉치가 어질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마틴은 그것을 치워두라고 조언했다. 영양사, 트레이너, 청소 인력 등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엠비드는 “괜찮아. 누가 가져가면 바로 알 수 있어.”라고 말했다.
“혹시 일부러 이렇게 하는 거야?” 마틴은 물었다. “누가 훔치는지 보려고?”
엠비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면… 나를 시험하는 건가?” 마틴은 말했다. “내가 네 돈을 가져가는 사람인지 보려고?”
둘은 웃었다.
엠비드는 말한다. “내가 사람들을 일부러 시험하는 건 아니야. 그냥 그대로 두는 거지. 그리고 뭐가 사라지면 난 그게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어.”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고, 돈이나 다른 물건들이 사라진 적도 있어. 그런데 굳이 누군가를 대놓고 추궁할 필요는 없었어. 그냥 ‘아, 알겠다’ 하는 거지. 그러면 그 사람과는 앞으로 말도 안 하고, 절대로 믿지 않는 거야.”
2015년 여름, 엠비드가 두 번째 수술을 받은 뒤 마틴은 엠비드를 보호하고 지지할 소수의 핵심 인력을 꾸렸다.
그중 핵심이 된 인물이 숙련된 물리치료사 킴 카스파레였다. 많은 사람들이 엠비드의 태도를 ‘게으름’으로 해석했지만, 카스파레는 그 안에서 ‘두려움’을 보았다. 그는 자신의 몸을 믿지 못했고, 자신이 받는 조언도 신뢰하지 못했으며, 그 조언을 주는 사람들의 의도조차 믿지 못하고 있었다. 카스파레는 이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이 선수는 가족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 ‘내가 이 사람을 지켜줘야 해. 이 사람은 상처받아 있어.’”
카스파레는 처음에는 컨설턴트로 시작했지만, 엠비드에게 안정감을 주는 존재가 되면서 결국 2019년 76ers는 그녀를 정식 물리치료사로 채용했다. 원래는 4주 계약이었지만, 그녀는 엠비드와 무려 9년을 함께 일하게 된다.
카스파레를 만났을 무렵, 엠비드는 이미 ‘사라지는 선수’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카스파레는 그런 면에서 문제를 겪은 적이 없었다.
“우리가 약속한 시간에 조엘이 안 온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다만 지난 9년 동안 그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절대 나타나지 않았던 것도 봤죠.”
엠비드는 NBA 팀 조직이 일반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에 순응하지 않았다. 마틴은 말한다. “NBA에서는 사람들이 틀려도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자신감 있게 말하면 결국 사람들이 따른다는 문화가 있어요. 하지만 조엘은 그런 식으로 조종당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구단 내에서 엠비드에 대한 평판은 최악에 가까웠다. 트레이너, 코치, 마사지사, 기자, 리바운드 잡는 인턴까지 — 모두가 그에 대해 뒷말을 했다.
“사람들은 복도에서 속삭입니다.” 마틴은 말한다.
엠비드는 거대한 신비 같은 존재였다. 후드를 푹 눌러쓰고, 말을 거의 하지 않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사람이었다. “그는 팀에서 누구와도 얘기하지 않았어요. 말 그대로 완전히 침묵이었죠.”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결국 마틴은 퍼포먼스 부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비밀 설문조사를 만들었다. 엠비드를 포함한 몇몇 선수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게 했다.
— 이 선수가 MVP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 올스타?
— 우승팀의 주전?
— 로테이션 플레이어?
— 아니면 유럽에서 뛸 선수인가?
결과는 참담했다. “조엘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마틴은 말한다. “그는 조직 내에서 외면받고 있었죠.”
마틴은 이러한 적대적인 환경에서는 엠비드가 절대 제대로 회복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결국 그는 힌키와 구단주 조시 해리스에게 엠비드를 카타르 도하의 아스페타르 스포츠 의료 병원으로 데려가자고 요청했다. 저항도 있었지만, 결국 구단은 이를 허락했다.
마틴은 그곳에서 엠비드가 최대한 많은 전문가를 만나도록 일정표를 빽빽하게 채웠다. 그러나 엠비드는 종종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유를 묻자, 엠비드는 NBA의 생활 리듬을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 일정처럼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이다. 마틴은 그 말이 이해됐고, 상담 시간을 오후로 옮기자 엠비드는 결석하지 않았다. 엠비드는 아스페타르를 마음에 들어 했고, 구단은 그를 2016년 2월과 3월 두 차례 더 보냈다.
이 과정에서 패턴이 생겼다. 엠비드에게 충성하며 그의 미래를 진심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76ers 안에서 또 하나의 ‘엠비드 조직’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들은 엠비드를 상처받은 천재이자 외로운 존재로 보았고, 그를 보호하려 했으며, 그의 결점을 감싸면서도 그를 최대한 끌어내고자 했다.
카스파레는 말한다. “그에게 ‘그만 누워 있고 일어나서 운동하자’라고 직접적으로 말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그랬다면 그는 그냥 일어나서 라커룸으로 가서 아무것도 안 했을 거예요. 그건 내가 감수할 수 없는 리스크였죠.”
나는 마틴에게 물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기에 엠비드를 너무 봐준 것이 아니었냐고.
마틴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
“조엘은 정말 독특해요. 그와 함께 있다 보면, 기존의 규칙을 그대로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게 됩니다. NBA의 많은 규칙과 관습은 사실 구단주가 편하고, 단장이 권력을 느끼고, 코치가 유능해 보이고, 스태프가 존중받는 느낌을 얻도록 만들어진 것이거든요.”
그리고 그는 덧붙였다.
“내가 정말 통찰력이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냥 그를 위한 복잡한 합리화를 만들어낸 걸까?
솔직히 지금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지난 지금, 엠비드를 지지했던 사람들조차 그 시기에 자신들이 그를 살린 것인지, 아니면 버릇을 나쁘게 만든 것인지 잘라 말할 수 없다.
엠비드 측 한 인물은 말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서 상황을 그대로 보면, 그가 지금 NBA에 남아 있고, MVP가 된 건 정말 ‘기적’입니다. 리그 최고 코치들과 최고 프런트조차 ‘그는 다시 코트에 서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으니까요.”
나는 76ers의 닉 널스 감독과 단장 대릴 모리를 뉴저지 캠든에 있는 팀 훈련장에서 만났다. 4월 초 늦은 아침이었고, 선수들이 훈련을 위해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그 시점, 정규 시즌은 5경기만 남아 있었다. 76ers는 그중 4경기를 패했고, 24승 58패 — 엠비드가 데뷔하기 전인 2015-16 시즌 이후 최악의 성적이었다.
2024-25 시즌 동안 널스와 모리는 모두 팬들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특히 모리는 MIT 슬론 컨퍼런스에서 “AI 모델링으로 선수 결정을 돕는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고, 이어 “필라델피아 팬들은 화가 에너지의 전부인 것 같다”고 말해 더 큰 반발을 샀다.
널스는 시즌 내내 ‘의료 브리핑 담당자’ 같은 역할을 떠맡아야 했던 것에 지쳐 있었다.
“계속 의료 관련 질문만 받아요.” 널스는 짜증 섞인 동작으로 말한다. “’엠비드는 화요일에 이 검사를 받을 예정입니다. 수요일에 결과가 나올 거예요.’라고 말하면, 화요일에 일정이 바뀌고 검사가 밀리면서, 수요일이 되면 ‘왜 업데이트 안 했습니까?’라고 하죠. 아니, 일정이 바뀌었을 뿐인데.”
엠비드의 출전 여부가 계속 불확실해지면서 팬, 언론, 팀 사이의 긴장은 점점 커졌다. 특히 어느 날은 엠비드가 워밍업 후 출전 여부를 결정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는 워밍업에 아예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는 그가 경기장에 아예 없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의 무릎 보호대를 봤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가 쓰던 자리에 휴대폰이 있었다고 했지만 그게 엠비드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사생활을 철저히 지켜요.” 한 스태프는 말했다.
하지만 그가 ‘읽을 수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보면 된다.
그의 경기 전 워밍업은 완전히 작은 연극과 같았다.
슛이 빗나갈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유를 묻는 몸짓.
눈을 굴리는 표정.
숨을 내쉬며 머리를 흔드는 모습.
무릎을 움켜쥐고 주저앉아 손을 꽉 쥐는 절망.
그리고 그만의 독특한 표정과 몸짓들.
잘못 던졌는데 들어가면, 고개를 기울이고 입을 비뚤게 하며 “뭐, 이럴 수도 있지”라는 표정을 짓는다.
어떤 때는 팔을 옆으로 뻗으며 욕을 자신에게 퍼붓는다.
그는 언제든 일이 잘못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그는 워밍업 중 두 번이나 혼자 넘어졌다. 한 번은 시카고에서, 그리고 한 번은 크리스마스 경기에서였고, 그 장면은 그대로 바이럴이 되었다.
마스크를 벗은 그의 표정에는 엠비드 특유의 감정이 겹겹이 있었다.
짜증. 피로. 지침.
‘왜 또?’
그리고
‘그래, 결국 또 이거지.’
그는 마치 바닥까지 자신을 배신한다고 느끼는 듯, 코트를 내려다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그는 그날 크리스마스를 순수한 ‘앙심의 쇼’로 만들었다.
그는 보스턴을 싫어한다. 보스턴도 그를 싫어한다.
그보다 더 완벽한 무대가 어디 있을까?
제일런 브라운과 페이턴 프리차드를 유로스텝으로 지나가며 앤드원.
DX 세리머니.
전반 종료 직전 3점 성공 후 두 팔 들어 “엿 먹어라” 제스처.
센터 코트에서 팬들과 말다툼하며 가슴에 손을 얹고, 손을 흔들고, 비웃는 미소.
마지막 자유투를 성공시킨 뒤 그는 뒤로 걸어가며 악마 같은 미소를 지었다.
엠비드의 감정은 그날의 경기 하나를 넘어
하나의 팀,
하나의 시즌,
심지어 한 도시의 분위기를 좌우했다.
"사람들이 골든스테이트에서 그가 진짜 부상을 당했다는 걸 잊는 것 같아요." 닉 널스는 말한다. "하지만 그때까지 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농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건 단순히 좋았던 수준이 아니라, 우리가 본 최고의 농구 중 하나였다.
2024년 1월 골든스테이트전에서 왼쪽 무릎을 다치기 전까지, 엠비드는 출전한 경기에서 팀을 26승 7패로 이끌고 있었다. 그는 평균 34분 플레이하며 경기당 35.3점을 올리고 있었는데, 이는 1961-62시즌의 윌트 체임벌린의 기록을 뛰어넘는 페이스였으며, 리그 역사상 ‘분당 1점 이상’ 득점을 기록한 두 번째 선수가 될 흐름이었다. 그는 22경기 연속 30+득점을 기록했는데, 이는 NBA 역사에서 다섯 번째로 긴 기록이었다. 또 30점과 10리바운드를 동시에 기록한 연속 경기 수는 16경기로, 카림 압둘자바와 역대 2위 기록 타이다.
2023년 12월, 엠비드가 뛴 경기에서 필라델피아는 8승 1패를 기록했다. 그는 그 기간 동안 평균 40.2점, 12.6리바운드를 올렸고, 야투 성공률은 60.6%에 달했다.
대표적인 장면들도 있었다. 12월 말, 미네소타를 상대로 기록한 51점 12리바운드 경기. 그리고 1월, 샌안토니오를 상대로 3점슛을 단 두 번만 시도하면서 올린 70점 18리바운드 경기. 완전히 옛식 방식으로 상대를 압도한 퍼포먼스였다.
골든스테이트전 이후 그는 무릎 반월상연골 수술로 두 달을 결장했다. 시즌 막판에 복귀했지만, 몸은 분명 만신창이였다. 그래도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해 뛰었다. 필라델피아는 막판 8연승을 달렸고, 플레이인에서 마이애미를 꺾고 뉴욕 닉스와 1라운드를 맞았다.
엠비드는 1차전 초반엔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2쿼터에서 펌프 페이크 후 스텝스루로 올라가는 동작 중 백보드를 맞춰 자신이 뛰어올라 덩크를 완성했으나, 착지 순간 왼쪽 무릎이 꺾이며 쓰러졌다.
그는 누운 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왼쪽 얼굴은 마비된 듯 굳어 있었다. 이후 그는 기적적으로 후반에 돌아왔지만 팀은 1차전을 졌다. 2차전도 마지막 순간 판정 논란 속에서 패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눈을 내리고 손으로 이마를 가렸다. 한 기자가 프랑스어로 질문하자, 그는 단호하게 끊었다.
"프랑스어로 이야기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시리즈를 이길 것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몸은 이미 한계치를 넘어가고 있었다.
그는 플레이오프 개막 며칠 전 벨 마비 진단을 받았다. 두통과 시야 흐림을 겪었고, 왼쪽 눈이 감기지 않아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무릎은 부어 있었고, 몸의 균형 감각도 흐트러져 있었다. 치료는 거의 24시간 내내 이어졌다.
니콜라 바튬은 말했다.
"나는 매 경기 전후로 그의 무릎을 봤어요."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걸 보고도 어떻게 걸을 수 있었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었어요."
엠비드는 매 경기 후 드류 핸런에게 말했다.
"나 내일은 못 뛰어. 진짜로 못 해."
하지만 다음 날, 그는 또 코트에 섰다.
아무도 그의 진짜 상태를 알지 못했다. 그는 위기 상황일수록 자신을 철저히 숨긴다. 그는 말 그대로 ‘혼자 고통을 버티는’ 상태였다.
4월 25일, 시리즈 3차전을 앞두고 새벽까지 치료를 진행한 뒤, 트레이너 캐스파레는 더는 이 상태로 갈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엠비드에게 긴 문자를 보냈다.
“넌 실패해도 돼. 져도 돼. 하지만 스스로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어. 너는 이미 충분히 싸웠어. 용감하게 싸웠어.”
그리고 그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저 평소처럼 경기장 치료 테이블에 누웠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읽었어."
그리고 그는 뛰었다.
그날 엠비드는 50점을 넣었다.
팀이 반드시 이겨야 했던 경기에서.
필라델피아는 시리즈를 6경기 만에 졌다.
엠비드는 평균 33점, 10.8리바운드, 5.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4쿼터가 되면 몸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엠비드는 그 시리즈를 돌아보며 말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위에서 누군가 ‘지금은 뛰면 안 된다’고 말해줘야 해요. 그냥 멈춰야 한다고."
그는 자신이 종종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돌아오기엔 너무 빨랐고, 스스로를 너무 밀어붙였다고.
"안 뛰면 소프트하다는 얘기를 하고, 뛰면 내 몸이 무너지고… 어느 쪽이든 욕을 먹어요. 하지만 나는 팀을 위해 뛰고 싶었어요. 동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결국 선택은 내가 했던 거고, 그 선택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거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바뀔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겠죠.
하지만 나는 알아요.
나는 항상 뛰고 싶을 거예요."
미국 농구대표팀 단장 그랜트 힐은 닉스-식서스 시리즈 동안 중계석에서 엠비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엠비드가 부상에도 뛰는 모습을 존중했지만, 동시에 “가장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힐은 그해 여름 파리 올림픽을 앞두고 1년 넘게 엠비드를 설득해오고 있었다.
모든 시작은 2022년 가을 엠비드의 집을 방문한 자리였다. 엠비드는 최근 미국과 프랑스 시민권을 모두 취득한 상태였고, 어느 나라를 대표할지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힐은 국제 무대에서 버틸 수 있는 사이즈와 피지컬을 가진 빅맨이 필요했다. 힐이 대표로 뛰었던 1996년 미국 대표팀에는 샤킬 오닐, 하킴 올라주원, 데이비드 로빈슨이 있었다.
“엠비드는 우리가 오랫동안 가지지 못했던 차원을 팀에 가져다줄 수 있었어요.” 힐은 말했다. “그동안의 올림픽에서는 스위치와 기동력은 뛰어나지만, 확실한 포스트 존재감은 부족했거든요.”
힐은 엠비드와 짧게 인사만 할 생각이었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두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그는 그냥 저를 알아가고 싶어 했어요.” 엠비드는 말했다. “그게 정말 고마웠어요.”
힐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생각이 깊고, 똑똑하고, 사람과 잘 어울렸어요. 보여지는 모습보다 훨씬 많은 면을 가진 사람이었죠.”
엠비드는 그 자리에서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는지 말하지 않았다. 이후 1년 동안 둘은 꾸준히 연락을 이어갔다. 2023년 10월, 식서스가 볼더에서 캠프를 할 때 힐은 기자들을 피해서 호텔로 찾아갔다. 프랑스 측은 엠비드에게 10월 10일까지 답을 달라고 압박했고, 엠비드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그렇게 강요하지는 마.’ 라는 느낌이었어요.”
다음 날 아침, 힐의 전화가 울렸다.
엠비드는 미국 대표팀에서 뛰겠다고 말했다.
그 날은 힐의 생일이었다.
“그날 받은 최고의 생일 선물이었죠.” 힐은 웃으며 말했다.
7월, 엠비드는 대표팀 훈련 캠프에 합류했지만 몸 상태는 완벽하지 않았다.
“우린 서두르지 않았어요.” 힐은 말했다. “우리가 그를 필요로 한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요.”
엠비드는 핸런과 캐스파레와 함께 매일 몸을 만들었고, 프랑스에서 조별리그를 앞둘 즈음에는 “코트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처럼 보였다고 힐은 회상한다.
엠비드는 스테픈 커리에게 스크린을 걸어주는 사소한 동작에도 신나 있었다.
하지만 개막식에서 비를 맞고 심하게 아팠다. “정말 심하게,” 캐스파레는 말한다.
그는 리옹과 파리를 오가며 팀과 따로 이동해야 했고, 세르비아전에서는 정상 컨디션이 아니었다. 다음 경기는 팀 닥터의 권유로 결장했다.
그러나 메달이 걸린 경기에서는 꼭 필요했다.
특히 세르비아와의 준결승 리매치에서 미국은 4쿼터에 뒤지기까지 했지만, 엠비드와 커리가 경기를 뒤집었다. 엠비드는 연속 7점을 넣었다.
“우리는 그 없이는 세르비아를 이기지 못했어요.” 힐은 말했다.
“그에게 시간을 준 보람이 있었죠.”
하지만 엠비드와 관련된 일은 절대 단순하지 않다.
그가 미국을 선택한 것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카메룬에서 뛰어야 했다는 사람도 있었고,
프랑스가 “그가 먼저 프랑스를 원해 시민권 절차를 서둘렀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시즌 초 그의 무릎이 다시 반응하지 않자, 올림픽 출전이 문제의 원인이라는 비난이 본격적으로 쏟아졌다.
엠비드와 그의 가까운 이들은 그 주장을 강하게 반박한다.
“뉴욕 시리즈에서 내가 어떻게 움직였는지 비교해보세요.” 엠비드는 말했다.
“아니에요. 올림픽 때문이 아니었어요.”
그의 역할은 제한적이었고, 출전 시간도 일정하지 않았다.
몸 상태는 100%가 아니었지만 무릎과 전체적인 컨디션은 괜찮았다.
캐스파레는 말했다.
“그는 계약도 지켰고, 금메달도 따냈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괜찮았어요.”
하지만 정규시즌이 시작되자 식서스는 흔들렸다.
엠비드는 시즌 첫 21경기 중 17경기를 부상과 출장 정지로 결장했다.
폴 조지와 유망한 루키 재러드 맥케인까지 다쳤다.
여론은 답을 요구했고, 오래된 불안이 다시 떠올랐다.
얼굴 골절, 엄지 인대 파열, LCL 부상, 과신전, 반월상연골, 벨 마비…
“매년 스스로에게 묻게 돼요. ‘왜 나지?’”
엠비드는 말했다.
캐스파레는 말한다.
“그는 너무 크고, 너무 부드럽게 움직여요. 점프하고 착지하고 버티는 움직임에서 그 두 특성이 서로 충돌하죠.”
거대한 트럭이 페라리처럼 움직이는 셈이었다.
“그만큼 관절에 가해지는 부담이 엄청나요.”
그의 천재성은 항상 위험성과 함께 나타난다.
우리는 늘 두 가지를 동시에 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의 내면에는 오래된 의문과 두려움이 있었다.
엠비드는 2023년 MVP를 수상했지만, 핸런은 “진정한 자신감”은 2023-24 시즌에 와서야 생겼다고 느꼈다.
“그는 그제야 ‘나는 코트에서 무엇이든 통제할 수 있다’는 상태에 도달했어요.”
엠비드는 말한다.
“골든스테이트전 부상 전까지, 나는 내가 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에 거의 다 와 있었어요.”
하지만 그 부상은 모든 걸 흔들었다.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캐스파레는 말했다.
“그는 아주 최근에야 자신을 믿기 시작했는데, 그 타이밍에 또 다친 거예요.”
사랑하는 이들은 그의 어려움을 알아챘다.
그러던 중, 76ers 부단장인 자메어 넬슨이 조심스럽게 상담 치료를 권했다.
엠비드는 처음에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거 안 믿어요.”
하지만 그는 넬슨을 믿었고, 결국 상담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지금도 100% 진심으로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내가 상담을 완전히 믿게 될 거라고는 말 못 하겠어요.”
상담은 엠비드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 줬다.
“사람의 기대와 압박에 내가 너무 끌려다닌 게, 지금 내 상황의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어요.”
무릎 상태에 대한 불확실성은 엠비드와 구단 사이에 남아 있던 오래된 긴장을 다시 불러왔다.
수개월 동안 모호함과 반복되는 붓기.
그리고 어느 날, 엠비드는 더는 참지 못했다.
밀워키전 직전, 그는 ESPN의 리사 살터스에게 또 다른 수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단은 그 말을 듣고 놀랐다.
“내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내가 듣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해요.”
엠비드는 말했다.
“그건 하나의 도움 요청이었어요.
아무도 진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았어요.”
닉 널스가 연습을 지휘하러 나가고, 모리와 나는 회의실에 그대로 남아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그의 일에 대해,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결말이 난 이야기처럼 말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엠비드의 이야기는 진행 중이라는 점에 대해, 동시에 여러 가지 가능한 미래를 머릿속에 떠올린 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딱 그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방식이랑 완전히 똑같습니다.” 모리가 말했다. “근데 사실 이걸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결말을 원한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나는 엠비드의 무릎이 회복되지 않는 미래, 다시는 MVP 레벨의 선수로 돌아가지 못하는 미래에 대해 물었다.
모리는 잠시 멈췄다.
지난 9월, 그는 구단주들과 함께 그 미래에 반대하는 쪽에 1억 9,290만 달러를 걸었다. 34세 시즌에 거의 7,000만 달러를 받게 되는 3년 연장 계약이다. 그들은 폴 조지에게도 4년 2억 1,2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미 기량이 하락하고 있는 선수지만, 챔피언십을 목표로 하는 팀에서 엠비드를 옆에서 보조할 수 있는 ‘프리미엄 3옵션’이라는 가치를 믿었기 때문이다. 엠비드는 그런 선수다. 두 번, 세 번이라도 베팅할 수밖에 없는 선수. 그런 선수 때문에 당신은 직장을 잃을 수도 있다. 사라질 수도 있다. 힝키가 그랬다. 그의 멘토였던 모리 역시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
“아니, 다시 말할게요.” 모리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아니…”
그 문장을 끝내지 못했다. 그 미래를 상상하는 순간, 전류 같은 감정이 그의 몸 전체를 스쳤고, 방 안에 퍼졌다. 그는 웃음을 터뜨렸다. 76ers 홍보 담당자도 웃었고, 나도 왜 웃는지도 모른 채 따라 웃었다.
모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걸어갔다.
“오늘은 그냥 긍정적인 쪽을 생각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방을 나갔다.
4월, 그의 수술이 있은 지 일주일 뒤, 나는 다시 엠비드를 찾아갔다. 지난번과 똑같은 문으로 들어가고, 같은 화장실을 쓰고, 같은 신발 덮개를 신고, 같은 복도를 지나 피아노가 놓인 방에 앉아 기다렸다. 그는 다시 휴대폰으로 야구를 보고 있었다. 왼쪽 무릎은 붕대로 감겨 있었고, 팀 USA 티셔츠와 식서스 반바지, 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같은 무릎에 14개월 만에 두 번째로 받는 수술이었다. 그는 이미 재활을 시작한 상태였다.
그에게 감기가 걸려 있었고, 목소리는 갈라지고 더 작아져 있었다. 그는 지쳐 보였다.
나는 모리에게 했던 질문과 그때 있었던 일을 설명한 뒤, 엠비드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엠비드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보더니 말했다.
“나도 일어나서 나갈까 봐.”
그리고 똑같은 장면이 반복됐다. 그는 숨이 찰 정도로 웃기 시작했다. 방에 함께 있던 팀 관계자도 웃었고, 나도 같이 웃었다.
한참 웃고 난 뒤, 엠비드는 기침을 하고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다.
“잘 될 거예요.” 우리는 웃음을 가라앉힌 뒤 그가 말했다. “나 자신을 믿어요. 그리고 신을 믿어요. 올바르게 하고 있다면 결국에는 보답받는다고 믿어요. 그래서 ‘안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없어요.”
나는 그들에게 모두 ‘심연’을 바라봐 달라고 요청했다. 엄청난 연봉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미래, 구할 수 없는 커리어. 그리고 두 사람 모두 내 얼굴 앞에서 웃으며 말했다.
“말도 안 돼.”
조금 전, 나는 그에게 더 큰 질문을 했었다. 농구를 완전히 그만둔 뒤의 삶, 앞으로 몇 년이 어떤 성공과 어떤 실패를 가져오든 간에, 그 이후의 시간을 상상해달라고.
그는 도망치듯 떠나는 장면을 말했다. 가족과 여행하고, 자신이 이뤄낸 것들을 즐기며 사는 삶. 그의 표정에는 기대가 담겨 있었다.
“그때가 되면 여러분은 나에 대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할 거예요.”
그는 말했다.
“진짜 기다려져요.”
피아노 방은 어두운 색의 큰 오토만과 높은 커튼, 대리석 벽난로로 꾸며져 있어 마치 카탈로그 속 사진 같았다. 엠비드와 아서가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두드리곤 하지만 실제로 연주를 하는 사람은 엠비드의 여동생이나 닉 널스가 집에 왔을 때뿐이다.
그런데 엠비드가 앉아 있는 소파 위에는 한 장의 그림이 걸려 있다. 엠비드가 귀족처럼 차려입고 있고, 가슴께에는 골든두들을 안고 있는 초상화다. 나는 처음 보고 웃음이 나왔다.
엠비드는 그 그림이 마운틴 듀 촬영 현장에서 챙겨온 소품이라고 말했다. 장난 같은 선물. 언뜻 별 의미 없어 보이지만, 그 방에서 엠비드가 직접 선택한 것으로 보이는 건 그 그림 하나뿐이다.
그 그림 속 강아지는 ‘클라우스 힝키 드 파울라 엠비드’다. 드 파울라는 엠비드 아내의 성이고, 힝키는 엠비드를 드래프트했으나 엠비드가 NBA 데뷔하기도 전에 자리에서 밀려난 샘 힝키를 뜻한다. 그리고 클라우스는 엠비드가 10번은 다시 봤다는 드라마 <뱀파이어 다이어리>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의 이름이다.
이 모든 게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엠비드는 좋아하는 드라마를 매일 밤 잠들기 위해 반복 재생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나는 클라우스가 2020년 10월, 엘리베이터 문에 끼여 내부 장기 손상을 입고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 나서야, 이 모든 농담 속에 얼마나 깊은 상처가 담겨 있는지 깨달았다.
그때 엠비드는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남겼다.
“오늘 아침, 내 가장 친한 친구를 잃었다! 내 성장 배경에서 집 안에 개를 들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너를 통해 난 이 세상에 대해 전혀 다른 걸 배웠다.”
가까운 인터뷰에서 엠비드는 다시 말했다.
“그게 내 첫 반려견이었어요. 동생이 죽은 일 같은 비극을 겪고 나면… 그냥 잊고 사는 건 너무 어렵거든요. 차라리 기억하고 싶어져요.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내게 이유가 되었던 것들을.”
대화 도중, 방 안을 왔다 갔다 하며 숨바꼭질을 하다가 양치하기 싫어서 질질 끌던 아서가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 21번 안아줘.”
아서가 말한다.
둘은 껴안으며 하나, 둘, 셋…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사랑해.”
아서가 방을 나가자, 엠비드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이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항상 내 주변에 뭐라도 있어야 해요. 내가 왜 여기 있는지 기억하게 해주는 것들. 동생 일도 그렇고… 아들이 태어난 것도 그렇고.
가끔은 그냥 방을 지나다가 저 그림을 보면 생각이 나는 거죠. 근데 이게 또 반대로 작용할 때도 있어요. 지난번에 카메룬에 갔을 때… 집안 곳곳에 내 남동생 사진이 걸려 있었거든요.
그걸 보는 순간 그냥 눈물이 나요.”
“언젠가 누가 이걸 다 기록했으면 좋겠어요. 다큐든, 책이든, 뭐든.”
엠비드가 말했다.
“우리는 단장들의 버너 계정 스캔들부터 시작해서, 정말 좋은 선수들도 여럿 드래프트했고, 그런데 또 이상하게 일이 틀어지는 일들이 계속 있었죠. 힝키가 쫓겨나고, 콜란젤로가 들어오고… 정말 별의별 일이 다 있었어요. 내가 말하는 ‘연속성’이라는 게 이런 거예요. 그건 위에서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여러 면에서, 그는 이미 팀의 ‘위’에 있다.
프런트 오피스가 세 번 바뀌고, 감독이 세 명 바뀌고, 곁에서 함께 뛰었던 스타들이 실패하거나 너무 빨리 떠나가거나 아직은 미완성인 채 지나갔다. 벤 시몬스, 지미 버틀러, 제임스 하든, 타이리스 맥시.
그 모든 동안 엠비드는 변화 속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존재였다.
팀이 그를 닮아온 건 어쩌면 당연했다.
엠비드는 농구를 혼자 익힌 선수였다. 스스로 영상을 보며, 흑백 화면 속 하킴 올라주원을 따라하며 기술을 만든 선수였다. 대학 시절 그는 날마다 새 기술을 익혔고, 그것은 팀 동료들과 코치들을 놀라게 했다. 뉴멕시코전을 앞두고 그는 팀 동료 방에 노트북을 들고 들어와 말했다.
“이거 봐. 내일 이거 할 거야.”
그리고 정말 그 다음 날, 그는 그 동작을 해냈다.
랍패스를 잡고, 포스트업으로 상대를 밀어붙이고, 드림 쉐이크로 수비수를 얼려세운 뒤, 반대편으로 돌아 레이업을 마무리했다.
해설자가 외쳤다.
“오! 오!! 올라주원이다!”
한렌과 새로운 기술을 작업할 때면, 엠비드는 한렌 주위를 돌며 묻고 또 묻는다.
“다시 보여줘. 다시. 다시. 다시.”
그리고 어느 순간,
“됐어. 알았어.”
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고독 속에서 쌓은 천재성은 팀을 이끄는 데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말로 리드하고 싶지 않았어요.”
엠비드는 말했다.
“나는 그냥 플레이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내가 몸 던지고, 팀을 이끌고,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그게 내가 생각하는 리더였어요.”
처음 NBA에 왔을 때 코치 브렛 브라운은 그에게 팀 던컨의 리더십 방식을 보여주려 했다. 하지만 던컨은 스퍼스라는 조직의 안정 속에서 리더가 될 수 있었다.
엠비드가 가졌던 건 ‘더 프로세스’ 라는 혼란과, 그리고 트위터였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찾는 데 시간이 걸려요. 근데 사람들은 내가 예전에 하던 것들로 날 계속 규정해요.”
엠비드는 한숨처럼 말했다.
“장난치고 놀았던 것도 나지만, 사실 그걸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어요. 그게 진짜 나는 아니었으니까.”
하든과 함께한 1년 반은 엠비드를 빠르게 성장시켰다.
그들은 서로 가까웠고, 그 유대감은 코트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맥시는 그 변화의 가장 큰 수혜자였다.
엠비드는 맥시를 직접 한렌에게 연결해줬고, 지난 여름 맥시가 연장 계약을 맺었을 때 그는 “가장 먼저 나를 믿어준 사람은 엠비드였다”고 말했다.
올해 10월 식서스 캠프에서도, 엠비드는 가장 먼저 신인 맥케인을 언급하며 칭찬했다.
엠비드는 하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는 2023년 보스턴과의 7차전 패배 이후 팀이 다시 리셋 버튼을 누른 것이 실수였다고 본다.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 ‘연속성’이에요.”
엠비드가 말했다.
“뭔가를 잡았다고 느꼈을 때, 그걸 쌓아 올려야 하는데 우리는 매번 다시 시작했어요. 매년 그랬어요.”
조엘 엠비드에게 연속성이 부족하다는 문제는 단순히 구단 차원의 불만을 넘어, 십대 시절 농구에 인생을 걸었던 순간부터 그의 삶 전반에 계속 존재해온 특징이다. 그리고 76ers에서 일어난 이별과 변화들 중 일부는 그의 선택과도 관련이 있다.
그는 스스로 선수 영입이나 트레이드 같은 사안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이후 결과에 대해 불만을 드러내곤 한다. 지미 버틀러의 이탈은 그 가장 분명한 사례다. 엠비드가 이런 태도를 갖게 된 데에는 그의 개인적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리그 초기에 팀 내 입지가 약했을 때, 만약 팀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지닌 스타가 있었다면 자신이 일찍 트레이드되거나 밀려났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누군가의 직장이 사라지는 일에 내가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고 항상 다짐했다. 누가 트레이드되거나 해고되는 일에 내가 관여하고 싶지 않다. 그러니까 ‘누굴 영입해야 하냐, 누구를 트레이드해야 하냐’ 같은 걸 나한테 묻지 말라고 해왔다.”
그의 이 태도는 일종의 신념이지만, 동시에 그의 재능과 위상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 **‘순수함’**을 지키고 싶어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엠비드는 요즘 푹 빠져 있는 스포츠 비디오 게임 ‘MLB The Show’를 할 때, 자신의 팀이 절대 무너지지 않도록 될 때까지 계속해서 트레이드하고 또 트레이드한다. 그리고 그제서야 게임을 시작한다. 현실에서는 얻을 수 없는 확실한 안전, 의심, 침묵, 불운, 부상,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관계에 영향을 주는 복잡함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세계를 게임 속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아무도 모르지만, 제임스(하든)도 지금 나랑 말 안 해.” 엠비드는 말한다.
“‘그 자리’에 있다는 게 싫은 부분 중 하나야. 그런 상황의 중심에 놓이게 되거든. 제임스 입장에서는, 내가 그가 팀에 남지 못한 데에 관여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난 ‘내가 득점왕이었고, 너는 어시스트왕이었고, 우리 둘의 픽앤롤은 누구도 못 막았다’고 생각해.”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느끼는데 관계가 이렇게 틀어지면 정말 마음이 아프다. 서로 깊은 유대감을 가졌다고 믿었는데… 그런 걸 잃어버리는 건 크다.”
지난 가을, 엠비드는 마르시와 릭 한센을 올랜도에서 열린 필라델피아 경기로 초대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들은 라커룸 근처에서 기다리며 닉 널스와 몇몇 선수들과 사진을 찍었다. 엠비드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셋은 함께 사진을 남겼다. 크림색 스웻슈트를 입은 엠비드가 두 사람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야.” 엠비드는 마르시에 대해 말한다. “그녀는 나에게 정말 잘해줬어.”
“우리는 그의 아들 이야기를 나눴어요.” 마르시는 회상한다. “그가 많은 걸 겪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지금은 좀 안정된 것처럼 보였어요. 괜찮아진 것 같았어요.”
그러던 그녀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울음이 번진다.
“그를 더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아마 그는 그걸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요. 나는 엄마예요. 그리고 나는 그에게 엄마처럼 마음을 줬어요. 하지만 그가 그걸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못했을 거예요.”
킴 캐스페어는 다섯 살과 두 살 아이가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엠비드를 그녀의 ‘첫째 아들’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처음 통화했을 때,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베이비시터를 교대하러 가는 길이었다. 내가 그녀와 엠비드가 MVP를 받았던 날 포옹한 사진 이야기를 꺼내자, 그녀는 그대로 울음을 터뜨렸다.
“사람들이 보지 못한 수많은 시간들이 있어요. 아무도 모르는… 365일 중 355일을 함께 보냈던 그 해였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는 인정받았죠. 그는 팀 전체를 떠받쳤어요. 당시 76ers는 그렇게 좋은 팀이 아니었어요. 그를 통해 팀은 강해진 거예요. 그는 그런 존재였어요. 바로 그 사람이었어요.”
도쿄 올림픽 이후, 그녀와 엠비드는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다. 엠비드를 돌보는 일은 인생 전체를 바치는 일과 같았고, 그녀는 자신의 가족을 함께 챙길 방법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2024년 봄과 여름—닉스 시리즈, 파리 올림픽을 향한 준비, 대형 계약 연장과 그의 몸 상태에 대한 걱정—그 모든 압박이 둘의 관계에 영향을 미쳤다.
“어쩔 때는 정말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내가 알던 그를 잃어버린 것 같기도 했어요. 잘 맞지 않는 지점이 생긴 거죠.” 그녀는 말했다.
그는 여전히 열심히 했고, 그녀를 존중했다. 하지만 그 사이 거리가 생겼다.
엠비드는 자신의 몸을 관리하는 일이 상대에게 모든 것을 요구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녀가 떠나야 했던 이유도 이해한다. 하지만 상황만 허락됐다면, 그는 여전히 그녀와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전화로 그에게 물었다.
“조금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될까?”
잠시 멈춤.
“…응, 해봐.”
“그 관계는 괜찮은 거야?”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면, 솔직하게 말할게.”
그의 목소리가 단단해졌다.
“우리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고, 내 일은 코트에서 결과를 만드는 거야.”
그리고 곧 무너질 듯 부드러워진다.
“하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어. 상황이 나빠졌을 때, 모든 게 변해버린 것 같았어.”
그는 또 하나의 이별, 또 하나의 상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역할이 뒤바뀌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사람들은 잘될 때 옆에 있어 주지만, 상황이 안 좋을 때에도 그 자리에 있어 주기를 바라잖아. 그런데 나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다고 느꼈어.”
그와 캐스페어는 지금 두세 달에 한 번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엠비드는 관계가 틀어지면 침묵 속으로 숨어버리는 사람이다. 그는 누구보다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로 들어간다.
캐스페어는 올해는 아서의 생일 파티 초대가 오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엘은 정말 예측하기 어렵거든요.”
내가 물었다.
“그게… 마음 아프지 않아?”
“나는 그에게 내 삶 전체를 바쳤어요. 9년 동안.”
“네. 그걸 받아들이는 건 정말 쉽지 않아요.”
엠비드와 내가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6월 말이었다. 그는 이번 오프시즌에 몇 가지 변화를 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무리하지 않을 거야. 내 커리어 내내 우리는 그런 접근을 거의 해본 적이 없다고 느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전, 모레이는 엠비드가 9월 트레이닝 캠프에 맞춰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었다.
“우리는 아직 복귀 일정이 없어.” 엠비드는 말했다. “가능하면 빨리 돌아오고 싶긴 하지.”
나는 구단이 그의 이런 ‘조급하지 않은 접근’을 지지하느냐고 물었다.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야 — 여긴 비즈니스라는 거야.” 엠비드는 말했다.
“결국 결과가 전부야. 내가 너무 일찍 돌아와서 예전 모습이 아니라면? 그럼 아무리 돌아와도 이길 수가 없어.”
우승 반지가 없는 것만이 자신의 커리어에 남은 유일한 “오점(stain)”이라고 말한 엠비드는, 이번 포스트시즌 동안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경기를 보기도 아프고, 보지 않으니 또 기록지를 뒤적이며 생각에 잠기지 않을 수 없었다.
“플레이오프는 정말 보고 싶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재활 때문에 코트에 나서지도 못했다. 그 대신 친구이자 페이서스의 스타인 타이리스 할리버튼에게 메시지를 보내며 응원했다.
그를 다시 농구로 끌어당긴 것도 바로 할리버튼이었다.
“그가 계속 나한테 보라고 설득했어.” 엠비드는 말했다.
그래서 그는 할리버튼이 닉스를 꺾고 동부 우승을 확정짓는 경기를 시청했다.
결승은 끝까지 보지 않았다. 그런데 7차전의 유혹은 결국 참기 어려웠다.
하지만 할리버튼이 1쿼터 남은 5분 즈음, 오른쪽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며 쓰러지자, 엠비드는 곧바로 TV를 꺼버렸다.
“말도 안 돼.” 그는 말했다.
“진짜… 눈물이 나더라.”
우리는 후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 긴 커튼이 드리운 피아노 방에서.
이제는 저녁이 되어 빛도 서서히 옅어지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이런 말들을 해줬다면 좋았을 텐데.” 엠비드는 말했다.
“어릴 때 말이야…”
그는 말을 멈추더니, 예상치 못한 고백을 내놓았다.
70점을 넣었던 그 날, 그는 경기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것이다.
농구 역사에 남을 득점 퍼포먼스는, 제대로 몸도 풀지 못하고 다급하게 유니폼을 입고 신발끈을 조여야 했던 날에 나온 것이다. 그는 약간 쑥스러워하면서도, 약간은 뿌듯하다는 듯 말했다.
나는 그를 바라보며 표정을 읽으려 했다. 처음엔 믿기 어려웠다.
“지금 말 그대로 워밍업도 안 하고 와서 70점을 넣었다고 말한 거야?”
그는 나를 보며 말했다.
“아마도 그렇지.”
순간 나는 그가 나를 시험하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 슬며시 번지기 시작한 특유의 장난기 어린 미소가 완전히 터지는 순간 —
그가 진짜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과거로 향하는 감정의 길을 따라가기 시작했다.
먼저, 솔직함부터.
“그게 옳은 방식은 아니야. 맞는 접근은 미리 들어가서 웨이트도 하고 준비를 하는 거지.”
그리고 스스로를 마주하려는 시도.
“어릴 땐 나도 내 몸을 신경 쓰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충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
그는 한 걸음 더 내디딘다. 자신의 이야기 중심부, 스스로 묻고 두려워하는 질문에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혹시 내가 내 부상들에 스스로 영향을 준 건 아닐까?’
“그게 어떤 부상들에 영향을 줬을지도 모르지.”
그는 말했다.
하지만 곧 안전한 곳으로 물러난다. 현실 속 위안으로.
“하지만 누가 얼굴에 팔꿈치를 휘두르는 걸 어떻게 막아? 누가 무릎 위로 쓰러지는 걸 어떻게 막아? 그건 막을 수 없어. 그건 그냥 일어난 일이야. 그건 준비와는 상관없어.”
그의 약함과 불운만이 그를 설명하지 않는다.
그의 강인함도, 노력도, 희생도, 그리고 믿기 어려울 만큼의 성장도 모두 사실이다.
그는 그 모든 것으로 만들어진 사람이다.
“준비를 안 한 게 아니야. 준비했어.”
엠비드는 말했다.
그는 손을 티셔츠 주머니에 넣은 채, 수많은 감정이 섞여 소용돌이치는 것을 가까스로 눌러 담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가장 깊은 곳,
자신이 스스로 기댈 수 있는 이야기,
스스로를 지탱하는 진실로 돌아갔다.
“만약 내가 준비하지 않았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16살에 농구를 처음 시작해서 여기까지 오는 건 절대 불가능했어. 누가 뭐라고 해도.”
그리고 그는 말하지 않아도 이어지는 결론을 남긴다.
“그리고 그 다음은… 너도 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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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워밍업도 안하고 70점이라... msg가 좀 많이 가미된거 같네요..
시간내서 읽어봐야겠네요 글 고맙습니다 ㄷㄷ
좋은 글 번역 감사합니다…이전에 엠비드 루키오토도 잠시 수집하면서 그의 이력을 좀 따라갔었는데 이런 깊이있는 글을 접하니 참 그도 고생많이 했군요
엄청난 장문 번역 감사합니다. 잘 읽었어요!
엠비드도 참 쉽지 않은 인생을 겪고 있었군요...멜로님 덕분에 좋은 글 잘 읽었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