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변방
허형만
공초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변방의 나를 불러 상을 주시니 고맙다고 했더니
변방이 어디냐고 묻는다
묻지 마라 내가 변방이다
들꽃이 무장 피고
흙냄새 정갈하고
치자빛 노을 은은히 번지는 곳
내가 변방이다
한겨울 매운바람에도
뿌리에서 우듬지로
나무들 물 오르내리는 소리 은은하고
온몸으로 푸른 하늘 껴안는 곳
내가 변방이다
변방은 유배지가 아니다
자유다 희망이다
벌 나비 날고
새소리 풀벌레 소리 낭랑하고
꽃잎 뜬 여울이 흐르는 곳
내가 변방이다
초록
장충단 공원
수표교 빤질한 돌
아래로 흐르는
초록
물의 몸을 가르고
매미울음처럼 날카롭게 파고드는
한여름
초록
허형만 시인에게 듣는 시와 시학
시 하나에 매달려 온 지 50년이 넘었다. 그동안 20권의 신작 시집과 9권의 시선집과 8권의 평론집·주해서, 1권의 수필집 등은 내 생의 전부였다. 한때는 초등학교 6학년 교과서에 동시 「동전 한 닢」,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녹을 닦으며」가 수록되고, 「겨울 들판을 거닐며」가 ‘시민이 뽑은 베스트 광화문 글판 10선’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작품이 중국·일본·프랑스·대만·파키스탄·알바니아·베트남·스페인 등 여러 나라에 번역 소개되기도 했다.
나의 문학적 인생관은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와 “써야 할 때 쓰지 않으면 쓰고 싶을 때 쓸 수 없다”이다. 그래서 열심히 쓰지만, 나에게는 아직 대표작이 없다. 터키 혁명시인 나짐 히크메트는 「진정한 여행」이란 시에서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처럼 오늘도 나는 대표작 한 편을 그리워하며 시를 쓰고 있는지 모른다.
Anna Hamilton이 부른 노래 중에 ‘No Rain, No Flowers’가 있다. 윔블던 테니스 여자 단식에서 우승한 체코 선수 본드로우소바의 오른팔에 바로 이 글귀가 새겨져 있었는데, ‘비를 맞지 않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는 이 노랫말은 나의 삶에서나 시 쓰는 일에 중요한 암시의 효과가 있다.
늘 시에 목말라 오늘도 변방에서 햇살과 바람과 함께 노니는 시를 찾아 걷는 나에게 시는 저만치 먼저 가곤 한다. 시는 ‘만남’인데, 시는 ‘치유’인데, 그 시가 요즘 나를 찾아오지 않는 것 같아 슬프다. 한때는 깊은 잠 속에서 시마가 찾아와 나를 깨우곤 했는데, 요즘은 시마의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아 안타깝다. 행여나 하고 자다가도 한밤중에 깨어보지만, 속 모르는 사람들은 나이 탓이라고 위로할 거다.
나는 시를 써오면서 세 가지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첫째는 ‘빛과 소리의 신비’요, 둘째는 ‘만남의 신비’요, 셋째는 ‘은총과 자비의 신비’이다.
시는 특히 ‘만남의 신비’를 체험하는 일이다. 온 우주 삼라만상과의 만남 속에서 문학 작품은 태어난다. 이 ‘만남’은 곧 『주역』에서의 ‘관계’와 상통한다. 『주역』에서 발견하는 최고의 ‘관계론’은 성찰, 겸손, 절제, 미완성, 변방이다. 이 네 가지 덕목을 하나로 요약하라면 단연 ‘겸손’이다. 오스트리아 시인 파울 첼란(본명: 파울 안첼)도 “상대가 없는 시는 생각할 수도 없으며, 시는 만남의 비밀이고, 어떤 사물의 내부에다가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 태어났다. 잘란루딘 루미가 ‘당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포함한 이 세상 삼라만상과의 만남은 한 생의 커다란 축복이다. 잘란루딘 루미는 말한다. “내가 지나온 모든 길은 곧 당신에게 향한 길이었다. 내가 거쳐온 수많은 여행은 당신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내가 길을 잃고 헤맬 때조차도 나는 당신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당신을 발견했을 때, 나는 알게 되었다. 당신 역시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렇다. 나는 오늘날까지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삼라만상을 만났다. 앞으로 나의 생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는 몰라도 그리 만날 것이다. 이 만남이 때로 애증이 되고 때로 축복이 될 터이다. 때로 시가 되고 때로 바람이 될 터이다. 마치 실크로드와 알래스카와 미얀마와 티베트에서 만났던 그 신비로움처럼.
‘만남’은 뜨거운 공감 공간이다. 이 만남을 위해선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공부’는 한자로 ‘장인 , 지아비 또는 사나이 ’이다. 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뜻이며, 는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주체가 사람人이라는 뜻이다. 공부란 천지를 사람이 연결하는 것이다. 공부란 세계 인식과 자기와 인간에 대한 성찰이면서 미래의 창조이다. 자기 자신 안에 갇혀있는 완고한 인식틀을 깨뜨리는 것이 공부다. 진정한 공부는 변화와 창조로 이어진다. 바로 여기에 ‘시’가 존재한다.
‘시’는 존재에서 ‘만남’, 즉 ‘관계’를 통해 진실의 창조로 이어진다. 시는 ‘언어’를 기본으로 하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창조로 이어진다. 우리에게 시적 관심과 시적 상상력이 중요한 이유이다. 그렇다고 하면 결국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영복 교수는 이를 두고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이라고 명명했다. 김수환 추기경님은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했다.
시는 세상을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세계는 달라이 라마에 의하면 “서로 연결된 사건들, 사람들, 사물로 짜여진 거대한 그물망”이다. 우리 중 누구도 외딴 섬이 아니라는 거다. 만물은 서로 의존하고 살기에 보살피는 마음, 나누는 마음을 시인은 시로 표현한다.
“아무 생각 없는 듯 그린 것이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네.” 조선말의 화가 석연 양기훈의 <영모도翎毛圖>를 보고 백련거사 지운영이 쓴 찬의 첫머리처럼 나는 이 순간도 변방에서 조용히 ‘너무 좋아서 미울 정도’의 시를 쓰고자 노력한다. 무자서無子書를 읽고 무현금無弦琴을 들으며. 그렇다. 휠덜린의 말처럼 시인은 신이 내리는 번갯불을 끊임없이 쐐야 하고, 제비처럼 자유로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