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2월 14일 일요일 맑음
낮 예배 후에 목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사님은 내가 장로직을 사임하는 것에 대한 미련을 두어서 말씀하셨고 나는 교회의 장래를 위해서는 내가 사임을 하고 뒷일들을 봉사하는 것이 옳을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목사님은 장로님의 연세에 너무 이른 것이라시며 더 일할 수 있는데 아깝지 않는가고 물으신다.
나는 공무원이 정년이라는 것을 만든 것은 사람으로서의 능력이 정년의 나이에 이르러서는 그 힘이 약해지고 기억력이 쇠퇴하고 특히 남의 앞에 서는 사람들에게는 혹여 잘못 망언을 하여 실망이 크게 만드는 것이 염려가 된다는 것과 그것도 자신은 알지 못하고 직분에 연연하는 모습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부담을 덜고 평신도로 돌아가서 내 소신껏 믿음을 가지고 일하고 싶다고 말씀 드린다.
며칠 전 미얀마에서 온 친구의 편지 이야기를 하였다.
내 친구 임정규는 미얀마에서 15년을 선교사로 헌신하고 전도를 하였고 나와 같은 나이에 이미 자기로서는 힘이 육체적인 부담이 있어 안식년에 와서 선교사를 접어둘까 하는 결심을 수차례 하였다는 편지 이야기를 하였다.
이국땅에서 언어와 생활 모습과 식생활이 다른 미얀마에서 자기 목숨도 지탱하기 어려운데 그곳의 영혼들을 위하여 고아원을 운영하고 한국어를 교육하고 재봉을 교육하여 사회에서 살아갈 힘을 길러주고 한국의 부부라는 별명을 얻은 그 삶도 결국은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아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결국 목사님은 이런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리자고 하셨다.
지방회에는 이름을 제하지 아니하고 우리 교회에서만 나의 제안을 들어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우리 교회에 할 일이 많이 있다
그런데 수석 장로라고 하는 이름과 직분이 나를 거북하게 만든다.
더 기도하고 더 묵상하고 더 깊은 고뇌에 빠져보고 싶다.
예배를 마치고 익산으로 저녁 5시에 초등학교 친구 유문옥 부부를 만나러 간다.
3년 전에 아들 주례를 하고 내가 남이로 전근을 가는 바람에 만나지 못하고 오늘 만나는 것인데 부부 동반하여 만나자고 하였다.
강경에서는 만나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 할만한 장소가 없다는 것은 친구도 잘 안다.
그래서 내가 익산으로 가기로 하였다.
내 초등학교 친구들은 다 잘 되었는데 이 친구는 더 자랑할 만 하였다.
익산 농촌연구소의 소장을 하면서 천만송이 국화 축제를 기안하여 성공을 거두고 그것이 청와대까지 연결되어 대통령의 협조를 얻어서 지금은 함평 국화축제나 일산 국화 축제 그리고 원조인 익산 천만송이 국화축제로 살아나고 있는 친구다.
아내에게 같이 가자 이르고 같이 매실 액 두 병과 검은 콩 한 병을 가지고 간다.
감도 가지고 가고 싶지만 그것은 홍시가 되어서 보관하기 매우 어려워 두 가지만 가지고 갔다.
친구는 우리 부부의 따뜻한 내복을 준비하여 선물하여 미안스럽기도 하였다.
다미라고 하는 일식집에서 푸짐한 음식이 나오고 우리는 실컷 먹고 마음에 부담 없는 즐거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결혼한 아들 부부는 쌍둥이 남자를 낳아서 지금 양쪽 부모 집에서 한 명씩 나누어 키우고 지금 잘 자라고 있다고 하여 즐거움에 묻혀 산다고 하였다.
음식을 먹은 다음에 우리는 요즈음 가장 인기가 있다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를 보기로 하였다.
CGV영화관에서 보는데 친구가 자리를 예약하여 놓았으므로 우리는 편안히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아내가 그 영화가 인기 최고여서 보고 싶은 영화라 화들짝 뛰었다.
이야기가 길어 다소 늦게 들어가서 보니 그 넓은 자리가 꽉 차있고 우리는 비어있는 우리의 자리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내 옆의 손님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었고 그 가족이 모두 온 것 같았다.
이 영화는 주로 20대와 30대의 가정을 둔 부부들이 인기가 있다고 한다.
진모영 감독이 조병만(98세) 할아버지, 강계열(89세) 할머니의 결혼 76년간 살아오신 이야기를 살아있을 때에 작품으로 만든 영화였다.
진모영 감독의 제작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진을 보니 인간극장에서 보고 참 복 있는 부부라고 칭찬하던 그 장면이 이 영화였다는 것에 나도 놀라고 말았다.
강원도 횡성의 산골마을에는 잉꼬부부로 소문이 자자한 노부부가 산다.
98세인 남편 조병만 씨와 89세인 강계열 씨 부부다.
자식들은 다 결혼하여 외지에 나가 살고 두 부부만 산다.
뭇울 것 없이 일 잘하던 남편이 어느덧 기력이 약해지고 밤새 쇳소리 나는 해수 기침에 시달리는 날이 많아진다.
부인은 집 앞의 강가에 앉아 말없이 강물을 쳐다보며 먼저 간 아이들 6남매를 생각하는 일이 잦아진다.
남편과 수시로 건너오고 건너가는 저 강이, 남편이 자신을 홀로 두고 먼저 건너게 되는 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면서 간호할 때마다 뒷일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살아야 함을 느끼기 시작한다.
조그만 강이 돌돌돌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아담한 동네.
시장에도 같이 가서 먹을 거리를 사오고 아내가 만든 음식을 절대 맛이 없다고 하지 않으시며 맛이 없을 땐 조금 드시는 것으로 의사를 표하던 할아버지.
89세 소녀감성을 가지고 있는 강계열 할머니와 98세 우직하고 로맨틱하고 장난기가 살아있는 조병만 할아버지.
이들은 어딜 가든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고 두 손을 꼭 잡고 걷는 노부부다.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고, 여름엔 개구리가 헤엄친 개울가에서 물장구 치고, 가을엔 마당에 쓸던 낙엽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는 장난기를 시험하는 신혼 같은 백발의 노부부다.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서로를 의지하며 살던 어느 날, 목사님 댁에서 씨를 받은 멍순이가 새끼를 낳고, 할아버지가 귀여워하던 강아지 ‘꼬마’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꼬마를 묻고 함께 집으로 돌아온 이후부터 할아버지의 기력은 점점 약해져 간다.
가을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마당을 바라보는 담요도 깔지 않은 맨바닥에 누워있던 할아버지의 점점 더 잦아지는 기침소리를 듣던 할머니는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강아지를 바라보며 머지않아 다가올 또 다른 이별을 생각한다.
같이 보는 옆의 아내는 옛날의 우리 집으로 시집와서 시부모를 정성으로 모셨던 기억이 생각나는지 영화가 상영되는 내내 훌쩍거리며 눈물을 닦는 모습이 보이고 나도 가끔은 눈물이 나지만 우리가 겪어야 할 내용이어서 더 유심히 보기만 한다.
감성은 여자쪽이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눈물도 더 많다.
남들이 듣기에는 할아버지의 숨에 찬 기침소리가 노골적으로 싫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우리는 언젠가는 한 번쯤 그런 상황을 보여야 한다.
할머니의 생일날 자녀들과 손자 손녀가 와서 케이크를 자르고 음식을 준비하여 드리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기들의 부모에 대한 일로 싸우는 광경이 나온다.
한 번도 자기들이 모시지 못하고 연약해져가는 부모를 보고 다른 형제를 나무라는 싸움이다.
어쩌면 그렇게 리럴한 싸움이 있을 수 있는가?
영화가 아니라 실제의 상황을 찍은 영화이기에 가능한 장면이었다.
결국은 그 좋은 생일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모두 떠나라고 손짓을 하신다.
그 손짓 속에는 천 마디의 말보다도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우리는 각자의 분량대로 느끼고 갈 것이다.
우리는 돌아오며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쟎아요.”
사실 그렇다 이 영화가 아니라 해도 우리 부부는 이렇게 살아오고 있었다.
저 할아버지 할머니보다도 더 짖궂은 장난을 하며 아내를 놀라게 하기도 하였고 아내는 역시 한 수 위의 고상한 답을 하며 살아 온 우리가 아니던가?
한 가지 의문은 우리가 이렇게 약하게 살고 있는데 저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다.
장난할 때 보니 눈을 던지는 할머니의 속도와 힘이 엄청나고 눈싸움을 할 때의 할머니의 눈송이가 무척 컸고 힘이 있었다.
고적대기 나무를 힘들게 지게에 담고 거뜬히 일어나는 할아버지의 강건함은 우리 부부가 더 건강에 유의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하였다.
우리가 연애할 때 동학사 냇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만 일어나려는 상대방을 물속에 냅다 밀어 던져놓고 가려면 가라고 할 때 젖은 옷이 마를 때까지 우리의 머릿속에 나타나는 꿈들을 이야기하던 그 기억이 되살아난다.
여하튼 우리들도 그런 마음으로 살자고 하였다.
그것은 신앙으로 연결되어 어려운 일이 우리에게 나타나면 기도와 명상과 작은 봉사로 이어지는 삶을 살 것이며 그것이 마음에 위로를 주고 살아가는 재미를 느끼게도 할 것이다.
영화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두 분에게 동시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열 네 살에 시집 온 아내를 스믈 셋의 나이 찬 총각이 사랑하여 성장하도록 기다려 주는 그 마음의 사랑이 사랑을 낳은 것이다.
열 여덟이 되어서 아내가 성장하여 그의 품으로 안겨질 때에 비로소 부부로의 사랑을 꽃 피운 지고한 사랑.
할아버지는 예쁜 동생과 같은 아내를 지극히 더 사랑을 했고 아내는 큰 오빠 같은 남편에게 더 믿음이 강한 사랑을 확인한 것이다.
이 지고한 사랑은 결혼 76년을 지난 100세에 가까운 나이에도 진달래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흐르는 냇물처럼 청아한 소리를 낸 것이다.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너무 잘 아셔 그 고운 옷들을 하나하나 태우며 먼저 보낸 여섯 명의 아이들 속옷을 사다가 천국에서나 만나보라고 옷가지를 태운다.
눈 온 날 할아버지를 땅에 묻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울음이 터진 할머니, 우리 민족의 감추어진 정이 이런 정이 아니었던가?
흐드겨 눈에 앉아 우는 강계열 할머니의 울음을 울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이별의 설움이 눈물로 씻겨질 수 없다는 것을......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우리 모두 닮아봅시다
서로 사랑하며 해로하는 부부로 삶의 끝까지 같이 하는 복을 누리고 싶어라
생일 때 아들 딸 며느리들이 다 모였는데 오빠와 여동생이 싸우더라.
눈물이 나더라.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공은 말하지 말아야한다. 말하는 순간 쌓은 덕은 재가 되어 폭삭 주저앉는다. 우리 친구들 따뜻한 어깨가 되자꾸나. 선춘이 고맙다.